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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630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Tel. +82.(0)2.734.7555 www.topohaus.com
사물의 운율 cadence of thing ● 모든 공간에는 저마다의 표정이 있다. 검박하게 지어진 어느 중세수도원의 고요한 회랑을 걷다 보면 빛과 어두움의 짙은 대조, 세월의 풍화를 이기고 선 돌기둥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히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추운 겨울, 따뜻한 온기가 도는 방 한 켠에 앉아 창문 너머 텅 비어버린 광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머니 품과 같은 아늑함이 밀려와 가만히 눈을 감아보게 된다. ● 스위스의 건축가 페터 춤토르 Peter Zumthor 는 공간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는 공간의 소리와 온도, 주변의 사물, 사물을 비추는 빛, 친밀함의 수준 등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했다. 공간의 표정은 가로와 세로와 높이, 재료와 구축방식 같이 만져질 수 있는 요소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곳이 담고 있는 온도와 습도, 빛의 퍼짐과 소리의 울림,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자리 잡은 사물들과 같이 손에 잡히지 않거나 일시적인 요소들에 의해 구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의 공간은 그곳을 항구적-일시적으로, 물질적-비물질적으로 구성하는 다중의 요소들 간의 관계에 의해 체험적으로 정의된다.
작가는 사람과 공간은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을 공간으로 치환하여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공간이라는 단어가 관습적으로 지칭하는 물리적인 표상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그것이 지닌 비물질적이고 관계적인 속성에 머무른다. '나 라는 공간'으로 치환된 '나' - 작가는 그곳으로 들어가 지속적이며 면밀하게 탐구한다. 그곳의 가로와 세로와 높이, 온도와 습도, 빛과 소리,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어둑하고 차가운 인상을 주는 직사각형의 방, 그 곳을 얇고 투명한 것들이 경쾌한 몸짓으로 점유하고 있다. 매우 가늘고 여리나 명랑하게 운동중인 평면 위의 선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성과 좌표를 부여받고 평면 위의 운동을 확장해 나가는 입체 조형들.
관람객은 평면과 입체 사이의 물리적·시간적 공백을 서성거리며 징후와 흔적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화폭 위에서 운동중인 선들은 본래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직선이었으리라 – 추측해본다. ● 작가는 그 직선에 서로 다른 곡률과 주기를 부여한다. 각기 다른 울림을 부여받은 직선들은 그 간격과 각도, 구부러짐과 펼쳐짐의 정도에 있어 섬세한 차이를 이루며 새로운 운율의 질서를 실험중이다. 때로는 한 점에서 시작하여 다른 한 점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궤적으로, 때로는 구심력 갖추고 도약과 착지를 반복하는 연속적 궤적으로 나타난다. 이 실험은 가로와 세로로 구성된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울림을 부여받은 직선들은 경계에 부딪혔을 때 가볍게 수그러들거나 경쾌하게 재도약하며 운동을 지속한다. 경계는 멈추어야 할 한계가 아니라 늘 마주치며 영향을 주고받아야 할 또 다른 대상일 뿐이다. 반복된 마주침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경계는 먼 옛날 직선이 시작되었던 수평선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그의 강연 "Building Dwelling Thinking"에서 경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horismos에 대해 언급하며 경계는 어떤 것이 멈추어지는 곳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적 전개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었을지도 모른다.
평면 드로잉에서 시작된 운율의 질서는 다양한 두께의 직사각형 폴리카보네이트판 2 (W:1220 x L:2440 x T:var.)으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들은 '찢기', '구부리기', '모으기' 등의 개입을 통해 원형의 형상을 벗어나 연속된 아치 arch 로, 순환하는 고리로, 한 점을 향해 오므라든 반구로 –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전시장을 누빈다. 그것은 리듬이 있는 율동을, 박자가 있는 음악을, 운율이 있는 시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들은 형태적 변형이기 보다는 상태적 포착에 가깝다. 순간적으로 섬세한 균형을 이룬 지속적 운동의 포착. 그래서 이들은 원형 – 혹은 하나의 경계 - 을 떠나 또다른 경계에 부딪혔을 때, 멈추기 보다는 새로운 울림을 시작할 것만 같다. 원형과 그로부터 떠나온 상태 사이의 묘한 긴장감은 존재의 불확정성이 지닌 미세한 떨림과도 같다. ● 신영복 선생은 그의 강의록 [담론]에서 '탈근대의 과제는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의 전환'에 있고 관계론의 최고 형태인 겸손은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근대적 존재론은 우리로 하여금 주체와 객체,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물, 사람과 공간 사이에 이분법이라는 배타적 담을 쌓고 서로를 '남'으로, '숫자'로 바라보도록 지시해왔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담들은 사라지고 담 너머의 것들을 향해 무수히 많은 길들이 열려있음을 보게 된다. 배타적인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와 사물과 공간을 마주하면 그들 하나하나는 불변의-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주변을 향해 열려있는, 서로의 관계망에 의해 끊임없이 재정의되는 개체임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 이와 같은 존재의 상대성은 자신의 일부가 갈라져 홀로 서있는 평면, 끝이 여러 갈래로 찢어진 문 등 사물의 형태적 재편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온도차이로 인해 맺힌 물방울을 머금은 유리 상자, 담아내는 것으로부터 덜어내는 것으로 그 용도를 바꾼 그릇들의 연속적 배열로 이루어진 분수 등상태적 재편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작가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재료들 - 물방울, 입김, 빛, 바람, 유리, 얇은 판 - 은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그것이 다른 존재 혹은 존재 방식과 만났을 때 맺히고 서리고 갈라지면서 정의된다. 작가에게 이와 같은 '연약함'은 존재의 불확정성에 대한 불안함이 아닌, 관계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을 수 있는 우아한 태도가 아닐까.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가 본다. 얇고 투명한 것들이 경쾌한 몸짓으로 그곳을 점유하고 있다. 사물은 저마다의 운율로 이야기를 하고 존재의 공간에는 끊임없는 울림이 있다. ■ 유장희
Vol.20160627d | 박정선展 / PARKJUNGSUN / 朴貞宣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