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숲

한지민展 / HANJIMIN / 韓志旻 / relief.printing   2018_0912 ▶ 2018_0918

한지민_들여다 보기1-Linocut_60×60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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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912_수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4층 2전시장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완전한 세계를 찾아 떠난 유랑의 숲 ● 하얀 여백 위에 자리 잡은 검은 형상들. 나뭇가지와 새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흡사 자연 속 풍경의 일부를 포착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다. 섬세한 선묘를 통해 드러나는 단단한 이 형상들은 나무 혹은 새의 정령처럼 자연에 밀착해있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각자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낸 검은 실루엣은 넓은 여백 안에 당당히 자리한 채 저마다의 몸짓과 행위로 조용히 이야기를 건넨다.

한지민_들여다 보기2-Linocut_60×60cm_2018
한지민_들여다 보기3-Linocut_60×60cm_2018

한지민의 작업은 세상을 포함한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는 개인의 완벽한 통제 밖의 범위에 자리한다. 신체의 경계를 벗어난 순간부터 세계는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표피의 감각과 의식을 향해 다가온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벗어나 아직 인식못한 미지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연속 안에 존재하는 일상이라는 삶. '죽음과 타자는 나의 삶에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자아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어 본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죽음이라는 보편적 유한함을 공유하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매순간 알 수 없는 미래와 조우한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이자 활력이 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심리적인 부담감과 공포, 알 수 없는 불안함의 근원이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지민은 삶 속에서 불현 듯 마주한 알 수 없는 감정들, 기시감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 내면의 두려움과 같은 불안정한 감정들의 근원을 찾아, 고유의 조형언어를 통해 그것과 마주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 그의 작업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가 늘 등장한다. 그것은 외부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단단한 부리를 지니기도, 추락하지 않고 허공을 부유할 수 있는 자유의 날개를 지니기도 한다. 벌거벗은 몸은 부리와 깃털로 보호받은 채, 세상을 유랑한다. 세상을 향한 자기 방어적 기제로 탄생한 이 존재를 향해 작가는 원시 토템과 유사한 의미에서 개인의 기억과 경험이 만들어 낸 일종의 개인 토템이라고 칭한다. 불완전한 세상, 불안정한 심리를 충족시키는 샤먼으로서 자리한 이것은 관계 맺기를 향한 그의 심적 염원을 담은 대상이자, 관계를 회복하고, 불안을 극복하는 대상이며, 스스로를 향한 위안을 담은 상징이자 궁극적으로는 작가 본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지민_아득히 먼-Embossed Linocut_70×100_2018
한지민_아득히 먼-Linocut_70×100cm_2018

줄곧 커다란 화면 속에 홀로 존재했던 이 형상은 이제 막 새의 부리와 날개를 서서히 벗어던지고, 대자연의 풍경 속 일부가 되거나(「우린 여기에 있다」, 「피어나다」, 2017), 둘 이상의 인물군집(「아득히 먼」, 2018)으로 등장하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새의 형상 속에 몸을 숨겼던 인물은 서서히 보호막을 벗어던지고 타자의 삶 속으로 적극적으로 다가가길 청한다. 마치 악령을 쫓는 제의처럼, 군무를 이뤄 보다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몸을 움직였던 시도(「The Moon」, 2014)는 인물 군상 사이로 흐르는 섬세한 감정선(「우아한 침묵」, 2017, 「유랑의 문」, 2018) 묘사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그는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자 인간의 한계와 욕망을 투영한 신화 혹은 소설 속 이야기를 빗대어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는 내면의 상태를 표현하거나, 평소 전달하기 어려웠던 미묘한 감정의 기류를 구체적인 묘사와 상징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한다. 이때 독립된 하나의 개체를 통해 전했던 주관적인 심리묘사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상황 자체로 제시되면서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대한 접근으로 확장되고, 다양한 해석적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이는 그간의 작업을 통해 작가 스스로 터득한 사실, 즉 사회 속의 근본적인, 원초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확인하는 방법인 동시에, 그로 인해 감행하는 적당한 거리두기, 즉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림 밖에서 화면 안쪽의 인물들을 향해 적절히 시선을 유지하는 일이 신화와 소설을 매개로한 공상을 유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지점이다. 이렇게 거리두기를 통해 공상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은 역으로 타자와의 소통 회복을 통해 세계와 건강한 관계 맺기를 희망하는 개인의 염원과 강한 의지를 표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지민_유랑의 문-Embossed Linocut_70×100_2018
한지민_유랑의 문-Linocut_70×100cm_2018

이러한 변화 안에서도 그의 작업은 형식과 기법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특유의 정교함을 지켜나간다. 리놀륨 판에 양각으로 새긴 섬세한 인물 묘사는 타자와의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 누락되거나 소실된 감정들을 되살리는 방법이자, 작업 전반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조형적 특징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그림 속 인물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음각으로 새겨지는데, 이로 인해 하얀 종이 위에 독립된 형태로 나타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여백 안에 독자적인 개체로 존립하면서 화면 전체에 이미지의 집중도를 높인다. 한편, 기존의 조형법과 더불어 음양각 제작 방식으로 인해 이미지가 점차 소실되는 효과를 연출하는 소멸법은 판이 찍힌 종이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작품 속 내러티브를 자연스럽게 구축하는데, 이것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새롭게 시도하는 방식 중 하나로 눈여겨 볼 만 하다. ● 무엇보다 그의 그림은 단색조의 선묘로 섬세하게 새겨진 하나의 완벽한 작은 세계다. 그 세계는 현실의 삶과 달리 창작이라는 이름 안에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공상의 세계이며, 조각도의 날 끝에서 단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고 지어진 단단한 이성의 성(城)이다. 오랜 숙련의 시간을 통해 다듬어진 노련한 선들이 한정된 화면 안에 나이테처럼 쌓여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듯, 불완전한 현실도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한 시간의 흐름을 견디면 어느새 완전한 세계에 가까이 도달해있다. 현실은 결국 완전함을 향해가는 여정 중에 있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 아닐까. 한지민의 그림은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했던 지난 시절의 형상들을 넘어서, 이제 막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작은 여유를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 황정인

Vol.20180913d | 한지민展 / HANJIMIN / 韓志旻 / relief.pr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