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만혁 Gallery Hee Solo Exhibition

임만혁展 / YIMMANHYEOK / 任萬爀 / painting   2018_0901 ▶ 2018_1101 / 월,화요일 휴관

임만혁_가족이야기13-2_한지에 목탄채색_133×87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503a | 임만혁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 희 GALLERY HEE 경남 양산시 하북면 예인길 47 (초산리 산22-44번지) 한송예술촌 17-48 Tel. +82.(0)55.383.1962 www.galleryhee.com

젊은 예술가들의 등대, 화가 임만혁 ●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모사해보면서 화가에의 꿈을 키우고 훗날 거기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창작기법을 찾아낸 화가가 있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대관령 산신제에 갔을 때 처음 만난 민화에서도 깊은 감동을 받은 터였다. 훗날 그의 작품들이 미국의 시카고 아트 페어(2002)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 한국에서 온 이 생소한 작가의 작품들은 순식간에 솔드 아웃 (전작 매진)되었다. 서양화와 한국화를 동시에 공부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 위해 절치부심한 한 젊은 화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젊은 화가가 이제는 어느덧 국내 화단의 중견이 된 강릉 출신의 화가 임만혁 (47)이다. 시카고 아트 페어에 출품할 당시 국내에서는 단 한 번도 개인전을 열어 본적이 없었던 그는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과 수많은 단체전을 통해 개성적인 화풍을 선보여 왔다.

임만혁_가족이야기13-10_한지에 목탄채색_67×53cm_2013
임만혁_가족이야기16-3_한지에 목탄채색_88×66cm_2016

2000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동아미술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들어선 그는, 2002년 젊은 작가들이 선망하는 성곡미술관 주최 '내일의 작가' 공모에 선정되어 이듬해 '현대인의 초상'이란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국내의 대표 화가들을 후원해온 박여숙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어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8년에는 박여숙 화랑의 주관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재는 전속작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는 독립작가이자, 전업작가로 활동 중인 그는 고향 강릉에서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고향에서의 활발한 창작활동은 지난 2011년 강릉문화예술진흥재단이 제정한 '박준용 청년예술문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 상은 강릉의 문화예술 발전을 책임질 유망문화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 재단의 설립기반을 제공한 재일동포 故 박준용 선생의 이름을 따 제정한 상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임만혁_가족이야기17-1_한지에 목탄채색_87×66cm_2017

임만혁은 강릉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중앙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 진학해 한국화를 전공한 독특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전공에 대한 구획이 확실한 국내 예술계의 풍토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대학에서 강의하기가 어렵다며 교수님들이 말리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제 본능대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본능'이라는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 학벌과 자본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본능대로 살기란 지난한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대학 때부터 평생 작품에만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을 팔아서 독립생활이 가능한 작가가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다짐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의 다짐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서양화를 전공하던 학부 시절, 그는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몽땅 쏟아 부어 극사실화 한 점을 완성해보기도 했다. 한국화를 전공하던 대학원 시절에는 신사임당이 초충도를 그릴 때 사용한 기법을 체득하기 위해 두세 달의 정성을 쏟아 그림 한 점을 완성해보기도 했다. 다른 화가들이 백 대접 정도의 물을 사용할 때 그는 신사임당의 기법을 따라 이백 대접 이상의 물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학교에서 단오 때 신사임당 그림으로 퍼레이드를 하는 행사를준비하면서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을 모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그녀의 작품을 여러 번 카피하면서 기법을 배웠습니다. 요즘 제가 쓰는 기법의 원형이 그때 만들어졌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관념적인 그림이 아니라며 웬만한 화가의 작품보다 뛰어난 '국보급 그림'입니다."

임만혁_갈매기와소녀17-1_한지에 목탄채색_43×33cm_2017
임만혁_갈매기와소년17-1_한지에 목탄채색_43×33cm_2017

자신의 '본능'대로 서양화와 한국화를 접목한 그의 화풍은 2000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요즘 제가 쓰는 기법으로 완성해서 처음 출품한 작품이었습니다. 전통 장지 기법의 투명하고 담백한 느낌을 살리면서, 인물화를 통해 현대적 느낌과 사유를 담아내고자 애썼습니다." 한지로 유명한 원주에서 직접 한지를 구입해 서양화에서 사용하는 목탄으로 밑그림을 그린후 채색하는 그의 작품은 '서양화 같은 한국화', '한국화 같은 서양화'의 느낌을 준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이러한 작품세계를 두고 "임만혁은 전통이나 외래 사조에 주눅 들지 않은 자유로운 사유로 인해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한다."며 "전 세대의 작가들이 전통이나 외래 사조에 짓눌려 제대로 자신의 조형세계를 펴 보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동 서양화를 아우르는 조형의 진폭은 이 시대의 하나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라고 평가했다. ● 인물화 위주의 그의 그림은 '가족'과 '바다'가 주된 테마를 이루고 있다. 이 두 개의 테마는 각각 독립되어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섞여서 표현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보고 자라서 바다는 그냥 당연히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칠 년 동안 서울에서 자취하던 시절, 날마다 자취방에 고향의 바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새로이 바다를 '발견'한 뒤 갈색톤으로 표현되는 그만의 바다를 그려냈다. 고단했던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가 짐을 푼 곳도 늘 바다를 볼 수 있는 주문진이었다. 그는 이 바다를 그려내면서 서울에서의 절망을 극복하고 화가로서의 입지도 굳히게 되었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는 다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바다는 마치 로드무비 끝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바다를 통해서 제가 힐링되었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임만혁_닭과 소년17-2_한지에 목탄채색_132×87cm_2017
임만혁_새와 가족17-2_한지에 목탄채색_87×66cm_2017
임만혁_엄마와나17-5_한지에 목탄채색_43×33cm_2017

강릉 출신의 소설가 윤후명은 일찍이 동향의 젊은 화가 임만혁의 작품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평도 썼고, 이를 자신의 소설에 인용하기도 했다. " 내가 그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몇 년 전 고향의 상실감에 유난히 시달릴 때였다. 나는 무엇에겐가 '그립다'하고 고백하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어릴 적 방파제에서 바닷물에 빠져 문어와 놀았던 기억이 무섭게 새로워질 무렵, 내 고향 사람인 그가 나 대신 나의 고백을 들려주고 있었다." 윤후명은 '고향 사람' 임만혁의 여러 작품들을 구매했고, 지난 2006년에는 임만혁, 김원숙의 그림들과 자신의 시, 소설 등을 함께 실은 시화선집 『사랑의 마음, 등불 하나』를 펴내기도 했다. 요즘 예술계에서는 보기 드문 장르간의 소통과 길항을 실현한 것이다. "윤후명 선생님은 저의 그림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윤후명 선생님의 책에도 참여하고, 여러 작품전에도 함께 동참하면서 저의 상상력도 풍요로워져 늘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 그의 작품은 미국, 독일, 이탈리아, 호주, 중국, 일본, 싱가포르,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지금까지 국내외를 통틀어 공식 판매된 작품만 5백여 점. 그는 앞으로 5백점을 더 팔아 1천 점을 채우겠다고 밝혔다. 일찍이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 오직 창작에만 매진하며 망망대해를 헤쳐 온 그의 역정은 화가들뿐 만이 아니라, 고향에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환한 등대가 되고 있다. (『솔향강릉』 2014년 여름호 게재) ■ 이홍섭

Vol.20180902f | 임만혁展 / YIMMANHYEOK / 任萬爀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