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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03_목요일_05:00pm
기획 / 아트포럼뉴게이트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_11:00am~05: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아트포럼 뉴게이트 ARTFORUM NEWGATE 서울 종로구 명륜4가 66-3번지 Tel. +82.2.517.9013 www.forumnewgate.co.kr
차가운 현실 원칙에 응전하는 가족적 공간 ● 오랫동안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왔던 임만혁의 요즘 작품은 좀 더 다채롭고 울긋불긋 밝아진 색상으로 이상적인 가족의 이미지에 어울릴 법한 아기자기함과 아늑함을 부여한다. 몇 년 전 부터는 친근한 동물까지 포함시킴으로서 가족 공동체의 외연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동물, 또는 동물적 요소는 단순한 장식적 액세서리가 아니라, 놀이와 치유, 유대라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인간의 눈망울과 똑같은 눈을 가진 동물은 친구이자 가족인 것이다. 그에게 작업과 생활 또한 분리되지 않는다. 작업실과 생활공간이 하나가 된 생활 밀착형 작업 스타일은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그의 선택이다. 사적 영역으로 고립된 가정은 무한히 연장된 아동기까지 책임지면서 가정을 부양하는 이나 보호받는 이 모두에게 간단치 않은 공간이 되었다. 그곳은 결코 자연적으로 주어진 유토피아가 아니다. 가정은 현대의 경쟁적 사회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그러한 중산층적 이상은 점차 극소수에게나 실현가능한 가족 로망스일 뿐이다.
임만혁의 작품에서 가족 이야기에 내재된 평화로움과 불안함의 공존은, 가정이 반드시 따뜻하고 행복해야만 하는 곳이기에 더 춥고 불행을 야기할 수 있는 역설적인 곳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정은 인간적 친밀함이 절정을 이루는 곳이지만, 가족 이야기로 작품을 특화시킨 작가에게 가족의 양지쪽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유난히 추워 보인다. 극단적인 분업화를 통해 서로 달라진 생활 패턴은 물론, 서로 다른 성과 세대, 종들이 공존하며 소통하는 그의 작품은 이러한 근대적 모순이 펼쳐지기 이전의 유토피아의 이미지가 남아있다. 연민을 자아내는 크고 동그란 눈과 인체를 이루는 각진 실루엣은 이상적인 것만큼이나 도달하기 힘든, 또는 지키기 어려운 가족의 드라마가 내재한다. 실루엣 뿐 아니라 형태의 그 내부를 채우는 특유의 준법은 상처받기 쉬운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지만, 동시에 벽화 같은 오래된 표면의 견고함이나 강한 리듬을 연상시키면서, 위기 속에서도 끈질기게 그 명맥을 이어온 가족 공동체를 강조한다. ● 전시된 20여점의 작품은 최초의 가족인 아담과 이브 시리즈로부터 골프장에서 현대적 여가를 즐기는 이들을 비롯해, 대부분 가족을 소재로 한다. 임만혁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은 원시시대의 가면이나 현대의 캐릭터처럼 유형화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가 개별성보다는 보편성에 주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딱히 어떤 특정한 가족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사람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그가 다른 성과 세대의 인간 간의 심리적, 물질적 관계가 집약되어 있는 장으로서 가족에 주목한 결과이다. 그의 작품에서 가족은 거친 사회로부터의 방파제이자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 가족과 사회 등을 분리하는 경계면으로서의 방파제는 그리 견고해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사적인 영역의 대변자가 된 가족이나 가정의 경계는 지배적 시스템에 의해 그어진 가변의 영역으로, 결코 공적 영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임만혁의 '가족 이야기'는 동시에 사회의 이야기가 되며, 가족상은 동시에 현대의 풍속화가 된다.
그의 작품에서 가족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많은 내용들이 파생될 수 있는 다산(多産)의 주제이다. 그는 원주의 장인이 만든 두터운 장지 위에 목탄으로 형태를 그린다. 30-40번씩 칠해서 바닥이 은은하게 투영되는 채색 방식은 고분벽화와 민화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 우연과 실수까지도 작품의 요소로 포함하는 바탕처리는 깊이 감을 준다. 붓 대신에 목탄으로 그려진, 화면에 편재하는 리드미컬한 선적 요소는 동양화의 준법에 해당한다. 사선과 예각으로 처리된 임만혁의 준법은 원근법적 입체감 없이도 평면적인 색채와 형태에 존재감을 부여한다. 그의 작품은 타자화 된 전통을 불러들여 현대성에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가분수 같은 큰 얼굴에 정면성을 유지하며 가면 같은 모습을 한 인간, 그리고 중요한 부분을 크게 그리며, 기하학적이고 단순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은 다 표현하는 방식은 작가가 수집해왔던 아프리카 조각상들에서 왔다.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그림에 나타난 한국인의 체형을 참조한 작품에서, 강조된 눈과 더불어 커진 귀, 그리고 손을 통해 인물의 심리적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은 초상화의 어법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화면 가운데에 놓는 방식은 동양화의 형식이다. ● 이렇게 표현된 가족 또한 영원불변한 한 가지 패턴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임만혁의 작품에서 가장의 권위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적 가족은 흔들리고 있다. 남성 화가로서, 그리는 이의 주체적 관점이 투사된 그것은 불행도 다행도 아닌, 변화해 가는 세태의 반영이다. 공적 영역과 분리된 사적영역으로서 배타적인 경계선을 가진 핵가족은 근대의 산물로, 결코 침해되지 않는 이상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다. 가족은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그의 가족 이야기는 가족의 역사 또한 포함한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은 가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작게 표현되곤 한다. 그가 참조하는 고대 벽화에서 중요한 사람이 가장 크게 그려지므로, 남성의 축소임은 분명하다. 남자 가장의 위치나 비중의 축소는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반증일 뿐, 결코 실추가 아니다. 자전거나 동물 등에 올라 탄 피에로 같이 불안한 균형을 잡고 있는 임만혁의 작품 속 가족들은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에 대해 자문하게 한다.
냉혹한 시장에 던져진 경쟁적 개인들에게 가정은 어머니의 젖가슴같이 따스한 모성의 공간으로 간주되어왔지만, 남성/여성으로 대변되는 공적/사적 영역의 차이가 차별을 낳는 이분법이 지속되는 한, 모성의 공간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임만혁의 가정 풍경에 내재한 따스함 이면에 깔린 멜랑콜리의 측면은 주목 할 만하다. 그것은 냉혹한 사회의 대안이 되어야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위기의 가정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임만혁의 작품에 나타난 가족은 현실 속의 또 다른 현실을 예시하는 가상(illusion)의 차원을 복구함으로서, 모성적 공간의 미학적 의미를 되살린다. 화사하고 따스한 색이 바닥까지 겹겹이 스며있는 화면은 현실과는 다른 가상적 차원을 강조한다. 모더니즘에서 현실로부터 분리된 언어는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유폐되기 시작했고, 추상화된 예술 작품은 그 논리적인 귀결인 '물질에의 충실성'을 향하면서 물화의 과정을 완성했다. 이러한 극단적 분리는 인간은 물론 예술 또한 빈약하게 했다는 점에서 소외의 과정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임만혁이 참조하는 원시, 또는 동양의 양식들은 근대를 통하여 사라진 가상의 영역을 다시 복귀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가상의 영역은 장식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장식이란 벽화처럼 한 장소에 온전히 속해 있으면서 공동체와 상징을 공유하게 하는, 즉 근대적 의미의 예술이 있기 이전에 있었던 총체적인 문화 환경과 더욱 가깝다. 심리학자 위니코트는 원래 엄마와 아기 사이에서 존재했던 잠재적인 공간이 아이와 가족 사이에서, 개인과 사회 혹은 세계 사이에서 관념적으로 재생된다고 말한다. 이 중간의 영역을 현실의 원칙이 가하는 쓰라림으로부터 구원받도록 하는 문화적 체험의 장이 된다. 임만혁이 그리는 가족이 위치하는 곳 또한, 현실 원칙의 쓰라림을 완화하고 인간의 창조력이 풀어헤쳐지는 중간 영역이다. 그의 가족풍경이 주는 따스함은, 단순히 가족상이라는 소재적 차원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를 통해 사라진 미적차원, 또는 잠재적 공간의 복귀에 있다. 이러한 노력은 예술로 하여금 단지 예술이 아니라, 세계와 살아있는 관계를 맺게 할 것이다. ■ 이선영
Vol.20120503a | 임만혁展 / YIMMANHYEOK / 任萬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