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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511_금요일
후원 / 한국산악회_한국등산사연구회_다빈치
관람시간 / 11:00am~06:00pm
금보성아트센터 KIM BO SUNG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6길 20(평창동 111번지) Tel. +82.(0)2.396.8744 blog.naver.com/kbs5699
1. 인수봉과의 인연 ●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하던 1992년 무렵이었다. 휴가를 마치고 자대 복귀를 위해 수유리에서 철원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가에서 우연히 거대한 봉우리를 보았다. 처음 그 봉우리와 마주친 순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봤다. 인수봉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달프고 힘든 군 생활에서 인수봉을 바라보던 순간은 작지만 큰 행복이었다. 군대 시절의 인수봉은 내게 곧 서울이고 휴가였다. 인수봉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 인수봉을 가슴으로 본 3년간의 군대 시절, 인수봉을 그림으로 그린 3년간의 대학 시절, 인수봉을 무심하게 잊은 9년간의 방황 시절, 인수봉을 사진으로 작업한 11년간의 작가 시절, 내 인생의 절반을 인수봉과 함께했다. 2. 인수봉 작업 ● 인수봉을 주제로 삼은 작업은 사진보다 먼저 회화로 시작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며 인수봉을 수묵화로 그리고 한지를 구기거나 부조 형식으로 작업해 보았다. 사진을 한지에 프린트하기도 했다. 지금 내가 사진으로 다양한 작업을 펼칠 수 있는 것은 모두 대학 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대학 시절에는 회화가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사진을 바탕으로 두고 입체 및 설치 영상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 이번 인수봉 작업에서는 회화적 사진이 중심이었던 기존과는 달리 다큐멘터리 사진의 비중이 많은 편이다. 사진 한 장에 담긴 미시적 관점이 아니라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거시적 관점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특이한 점은 모든 사진 속에 인수봉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수봉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사진들도 있어서 숨은 그림 찾 듯이 인수봉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나의 개인적인 관점과 산악인들의 공동체적 관점 그리고 서울이라는 환경적 관점을 상호 유기적 관계로 파악하고 그 중심축에는 언제나 인수봉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작업의 핵심이다. 3. 인수봉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 첫째는 인수봉의 초상이다. 인수봉을 처음 보았을 때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초상 사진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인수봉 바위의 얼굴을 담았다. 인수봉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듯 그 모습이 달라진다. 나는 인수봉의 모습에서 동쪽 면은 독수리, 동남쪽 면은 합장한 손, 남쪽 면은 부처님, 서쪽 면은 말의 머리 등의 형상을 발견했다. 사람들마다 인수봉을 보고 연상하는 모습들은 천차만별이다. 인수봉은 서울의 큰 바위 얼굴이다. ● 둘째는 인수봉과 사람이다. 한국의 클라이머에게 인수봉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탐구했다. 주말이면 인수봉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클라이머의 모습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인수봉이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클라이밍을 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것이 인수봉의 클라이머들을 본격적으로 작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인수봉에 오르는 클라이머 뒤로 서울의 고층 아파트와 빌딩 숲이 펼쳐지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인수봉 바윗길 중에서 취나드 코스를 개척한 파타고니아(미국 아웃도어 브랜드)의 창업자인 이본 취나드와 재미 산악인 선우중옥에 주목했다. 이본 취나드가 파타고니아를 통해 추구한 환경문제에 대한 철학과 실천은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한국 산악인이 히말라야 14좌와 알프스 3대 북벽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인수봉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수봉은 한국 산악인에게 고향 같은 존재다. ● 셋째는 인수봉과 서울이다. 서울 도심에서 바라본 인수봉의 모습을 담았다. 북한산에 오르지 않아도 거리의 횡단보도, 시장, 지하철, 우이천, 한강 등에서 인수봉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수봉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주목하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 풍경에 불과할 뿐이다. 서울의 일상에서 만나는 인수봉의 모습은 세계의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중요한 포인트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는 대부분 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풍광을 볼 수 없다. 반면에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라고 할 만큼 산이 많다. 다만 미국의 요세미티, 스위스 마트호른, 남미의 파타고니아 등의 세계적 명산들은 공통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인 물에 비친 풍광을 하나씩 품고 있는데 비해 북한산에서는 최근까지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늘 아쉬웠다. 이번 인수봉 작업하면서 북한산에서 거의 8km나 떨어진 우이천에서 인수봉의 반영을 발견한 것은 세계적인 도시들과 가장 차별되는 서울만의 풍경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북한산의 백운대(836미터)이고 두 번째가 인수봉(810미터)이다. 하지만 등반사적 가치와 시각적 상징성에서 인수봉은 단연 첫 번째다. 인수봉은 서울의 랜드마크다. 4. 인수봉의 재발견 ● 인수봉은 내 작업의 출발점이면서 산악인의 출발점이다. 인수봉을 통해 알게 된 이본 취나드는 나의 소중한 멘토이자 큰 바위 얼굴이 되었다. 우이천에 비친 인수봉의 모습이 파타고니아의 봉우리와 많이 닮은 것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이천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소년의 모습에서는 마치 나의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풍경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서울의 우이천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고, 인수봉은 어느덧 내 작업의 고향이 되었다. ● 이제 우이천으로 큰 바위 얼굴을 만나러 가보자. ■ 임채욱
임채욱의 작가정신과 인수봉 프로젝트 ● 세계의 어떤 대도시를 가보아도 서울과 같은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는 도시는 없다. 한강이라는 거대한 강과 북한산과 같은 거대한 산을 동시에 품고 있는 도시가 없기 때문이다. 뉴욕, 워싱턴, 베이징, 도쿄, 파리, 런던, 베를린, 로마… 그 어떤 도시에도 서울과 같은 강과 산은 없다. 그래서 서울은 복받은 도시이다. 아니 서울 시민은 축복받은 시민이다. 그런데 시민들 스스로는 그 축복을 모르는 것 같다. 아무런 맥락도 없는 해치 같은 것을 서울시의 상징으로 삼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해치는 판관(判官)의 역할을 하는 일각수(一角獸)이다. 사자도 아니고 해태도 아닌 해치를 서울시의 상징으로 삼은 정책은 그래서 희극이다. 서울시의 상징으로 북한산 자락의 인수봉은 어떨까? 인수봉은 백운대와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해발 810m). 온통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져 일반인은 쉽게 오를 수 없는 외경의 대상 그 자체이다. 우뚝 솟은 산, 우람하다. 그 멋진 자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인수봉, 서울 시내 고층 빌딩 사이에서도 볼 수 있는 산, 우람한 산. 그 바위산은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오늘도 서울시를 감싸 안아주고 있다. 그런 인수봉을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지정하자는 작가가 있다. 임채욱이다. ● 임채욱을 '인수봉 전도사'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얼마 전에는 설악산을 주제로 하여 대형 전시를 개최하더니, 이제 인수봉을 들고 미술계에 나타났다. 임채욱은 미술계, 사진계, 산악계를 두루 섭렵한 이색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이른바 동양화 수학시절 인수봉을 소재로 한 수묵작업을 한 바 있고, 사진작업을 통하여 인수봉을 재해석하고자 했고, 더불어 산악인과 함께 인수봉 학습을 이루어냈다. 이런 바탕에서 이번 '인수봉 프로젝트'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관광객처럼 인수봉의 외피만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그는 인수봉 내부로 들어가 인수봉의 내밀한 언어를 독해했고, 그 결과를 자신만의 작품에 담을 수 있었다. ● 임채욱과 인수봉, 그 둘의 관계는 이제 30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임채욱은 군대시절, 수유리에서 철원행 버스를 타면서 인수봉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가슴으로만 본 3년의 인수봉이었다. 그 후 미대를 다니면서 3년간 인수봉을 화면에 담았다. 이어 방황시기를 거친 다음 인수봉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진작업을 하기 시작한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니까 임채욱 인생의 절반은 인수봉과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 인수봉은 작가생활의 출발이면서 고향이기도 하다. 임채욱은 인수봉을 사진작업에 담으면서 크게 3가지 영역으로 정리했다. '인수봉의 초상', '인수봉과 사람', '인수봉과 서울'이다. 임채욱에게 인수봉은 '큰 바위 얼굴'처럼 외경의 대상이었다. 작가는 인수봉의 사계를 360도로 돌면서 촬영했다. 인수봉은 계절에 따라, 조석의 햇볕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독수리, 합장한 불자, 불상, 말 머리 등으로 보이는가 하면 날 저문 뒤의 외경은 남미 안데스의 거벽 파타고니아와 흡사하다. 임채욱은 그런 다면적 인수봉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인수봉의 초상'이다. ● 인수봉은 산악인에게 교과서 같은 훈련장이다. 한국 출신의 국제적 산악인이 많은 것도 모두 인수봉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도 근교에 우뚝 솟은 인수봉은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현재 인수봉에 오르는 바윗길은 89개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주말만 되면 수십 명, 때로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촘촘하게 인수봉 언저리에 붙어 오름짓을 한다. 도시 근교의 이색풍경이다. 임채욱은 그들을 주인공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자연과 인간, 그 관계를 천착한 결과이다. 그가 찍은 '인수봉과 사람'이다. ● '인수봉과 서울'은, 도심에서 보이는 인수봉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별이 빛나는 야경 속의 인수봉, 특히 도심의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인수봉은 장관을 이룬다. 수유역 버스정류장에서 보이는 인수봉은 더욱 크게 보인다. 대로의 횡단보도에서 보이는 커다란 산,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 임채욱은 수면 위에 비치는 인수봉도 렌즈에 담았다. 물이 너무 가까워도, 혹은 너무 멀어도, 산의 전체 모습은 수면 위에 비치지 않는다. 인수봉의 경우, 8킬로미터 떨어진 우이천에서 반사되고 있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는 개울에서 인수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속에 잠긴 인수봉의 모습, 그 뒤에 아파트촌이 배경처럼 서 있고, 밤하늘에는 별도 축복처럼 빛나고 있고… 인수봉의 또 다른 면모이다. 세계의 어떤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 인수봉은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인수봉을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이다. 인수봉은 임채욱의 사진작업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나타냈다. 하기야 사진작가는 많고도 많다. 자연 특히 산을 소재로 하여 촬영 작업을 하는 사진가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임채욱은 미대 출신답게 남다른 조형성을 챙기고 있다. 그것은 이색 재료의 활용에서도 도드라진다. 재료의 새로운 확장은 현대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지만 한지를 사진작업에 끌고 들어온 것은 획기적인 사태이다. 특히 한지의 신축성을 활용하여 입체적으로 사진작업을 한 점은 놀랍다. 전통한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필묵의 전통을 수학한 임채욱은 한지의 성질을 만끽했다. 수묵의 번지기 효과는 한지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이다. 임채욱은 수묵화의 효과를 사진으로도 대체할 수 있었다. 흑백으로 인화한 한지 사진작품은 수묵화 분위기를 잘 보여주었다. ● 한지는 신축성이 좋은 종이이다. 질기고 유연함은 한지의 특징이다. 구길 수 있는 종이, 그 특성을 살려 임채욱은 인화지 대신 한지에 사진작업을 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작가는 한지를 구겨 입체적 표현을 시도했다. 일종의 종이 구기기 부조이다. 산을 촬영한 사진작품이지만, 산의 괴량감을 한지 구기기 기법으로 입체감을 부여했다. 여기서 임채욱은 입체 사진작업에 조명시설인 등을 활용했다. 즉 한지사진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내부에 조명을 설치한 것이다. 그 결과 한지의 투과성 때문에 독특한 조명효과가 드러났다. 스마트 폰으로 장치하면 관객 참여의 효과도 낼 수 있다. 즉 스마트 조명 작품이다. 관객 참여의 음파 작업. 관객의 목소리에 따라 즉 음파에 따라 조명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지 작업의 새로운 시도이다. 질기고 유연한 한지를 이용한 입체사진 작업. 이는 표현 형식의 확장이고 매체의 개발이기도 하다. ● 임채욱의 사진작업과 인수봉. 이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인문학적 배경을 중시하는 작가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달리 표현한다면, 산의 겉모습만 촬영하는 일반 사진가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취나드에 대한 그의 관심과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는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아웃도어 의류회사인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이다. 그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1963년, 인수봉에서 새로운 등반 루트를 개척했다. 물론 그곳은 장비 없이 올라갈 수 없는 직각의 암벽이었다. 그 길은 후에 '취나드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는 암벽 등반용 각종 장비를 개발했으며 친환경 제품의 생산과 환경운동을 통하여 자신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높였다. 임채욱은 인수봉을 공부하면서 취나드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결국 취나드는 임채욱의 멘토가 되었다. '관광 산수'라는 말이 있다. 관광객처럼 산의 겉모습만 슬쩍 보고 그린 산수화를 비판하는 말이다. 대상의 본질로 들어가기보다 피상적으로만 접근하는 태도, 이는 무게 있는 작품과 연결되기 어렵다. 임채욱은 인문학적 바탕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대상의 본질과 만나고자 고심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남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었고, 또 그와 같은 결과는 자신만의 표현형식과 내용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임채욱의 인수봉 프로젝트는 작가정신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인수봉이 자아내는 의미는 새롭다. 인수봉은 서울의 자존심이자 보배이다. 인수봉이 서울시의 상징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긴 설명 없이 그의 사진들을 통해 직관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 윤범모
픽처레스크_인수봉 ●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는 아직 '사진'이라는 것이 탄생되기 전인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사진을 향한 다채로운 욕망들이 개화하기 시작한 때이다. 대개 사진사(史)의 시작을 1839년과 '다게르'라는 발명가로 환원하지만, 사라지는 자연의 형상을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자동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열망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다게르의 야망은 꿈에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시기에 유독 '자연을 그대로' 옮기려는 열망들이 일어났을까. 풍경의 재현에 관심이 많았던 초기 사진가들은 '경관, 효과, 전망' 등 회화용어를 쓰며 풍경을 '정착'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다게르도 자신의 디오라마 극장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극대화해 보여주며 사진 발명에 착수하게 된다. 영국의 발명가 톨벗이 픽처레스크한 자연을 찾아 여행을 갔던 이태리의 코모호수에서 사진을 처음으로 구상한 점 등을 미루어보면 당시 자연-풍경을 재현하려는 각별한 관심이 도처에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픽처레스크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윌리엄 길핀(William Gilpin 1724-1804)신부이다.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적절한 독특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픽처레스크 미학은 18세기에서 19세기 초반 유럽에서 사진이 탄생하는데 중요한 배경이었다. 당시 훌륭한 경관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손에는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와 클로드 유리(Claude glass)가 들려 있었다고 하니, 가히 오늘날 디지털카메라의 인기와 견줄 만하다.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다 극적으로, 또한 사실적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에게 사진은 꼭 맞춤인 매체이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형상은 사람을 고양시키고 사색과 성찰로 이끌기에, 사진의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 자연-풍경은 사진가들을 매혹해왔다. ● 자연에서도 특히 '산'은 사진가들에게 끝없는 숙제를 안겨준다. 마치 페넬로페처럼, 산의 신성함은 인간의 이해 밖에서 그 자체로 숭고하고 무구하기에 쉬이 접근이 어렵다. 산 사진의 대가인 안셀 아담스가 산의 내밀함과 불규칙하고 무질서함을 재현하기 위해 존 시스템(Zone System)을 발명한 이유가 아닐까. 재현의 불가능과 함께 비로소 재현이 가능한 산. 몰이해와 함께 보기를 시작할 때 겨우 그 자신의 품을 내어주는 산이기에 사진 촬영에서 가장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다. 그 '산'만 촬영한 사진가가 임채욱이다. 이 낭만주의 사진가는 눈앞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마음속에 보이는 것을 촬영하려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 그러기 위해 산이 마음속에 들어와 숨을 쉴 때까지 안과 밖을 사유하며 고요히 기다리는 일이 사진 촬영의 8할이 되었다. 마치 세잔이 자신의 고향에 있는 생트 빅투아르산에 빠진 것처럼, 임채욱에게는 드로잉의 시작에 이미 인수봉이 있었다. 톨벗에게 포토제닉드로잉(Photogenic Drawing)을 개시한 신비로운 식물이 있었다면, 임채욱에게 인수봉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 그렇다. 산은 피사체가 아니라,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불가할 때 비로소 찍히는, 사진가에게 그저 스며드는 존재이다. 픽처레스크가 거친 것, 오래된 것, 인위적이지 않은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듯이 픽처레스크-인수봉은 무한한 변주로 강렬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숭고이다. 임채욱이 멀리서 가까이서, 인수봉 아래에서 그 곁에서 수 백 번을 계속 맴맴 돌 수밖에 없었던 것도 매 순간 변화하는 위협적이고 상냥하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인수봉을 그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인수봉에 분명히 닿았던 빛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와 겨우 정착한 사진들이 바로 임채욱의 인수봉 사진들이고, 인수봉의 '빛'을 임채욱은 분명히 보았다. 결코 '눈'으로 조망할 수 없기에 주의 깊고 치밀한 살핌을 통해서만 표현이 가능한 과정, 인수봉 속으로 자신을 던져,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인수봉 자체가 되어 온 몸으로 감각하는 끝없는 과정으로서의 사진 촬영 행위가 임채욱의 인수봉사진을 만들었다. ● 몇 달 전, 그의 사진을 이해하려는 방편으로 인수봉 가까이 오른 적이 있었다. 멀리서는 선명하게 그 위용을 내보이더니, 다가갈수록 장님 코끼리 만지는 형국이 되었다. 인수봉을 보기 위해 다른 봉우리에 오르기도 했는데 내게 다가온 것은 까마귀 울음소리와 짙은 연무 속에 희끗하게 보이는 나뭇가지뿐이었다. 하산 길에 다시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인수봉이 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이후에 서울시 곳곳에서 광활한 하늘 위로 우뚝 속은 인수봉이 보였다. 평온하면서 웅장하고, 때론 차갑고 도도할 때도 있지만 따뜻하고 친근하기도 하고, 특히 비 온 뒤에는 가장 스스로 높고 화려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학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디에서건 인수봉이 보이면 반갑기까지 했다. 서울에, 북한산에, 인수봉이 있었다. ● 임채욱은 인수봉의 포트레이트를 제대로 찍었다. 포트레이트(portrait)의 어원을 살피면 '끄집어내다, 이끌어내다'라는 뜻을 찾을 수 있다. 인물사진 촬영의 난해함이 내재된 단어이다. 사람이라면 말이라도 붙여가며 촬영할 수 있겠지만, 말 없는 봉우리, 그것도 바윗덩어리 봉우리 속을 어찌 알아 진면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작가가 산이 되지 않고서야, 아니 산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산의 포트레이트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수없는 시행착오와 기다림, 봄여름가을겨울 아침저녁으로 계속 다가가고, 깊이 보고, 다시 보며 한 컷 한 컷 탄생한 인수봉의 모습들이 한 권의 책을 이루었다. 이 책에는 인수봉의 얼굴들과 인수봉과 사람들, 인수봉을 바라보는 서울시가 담겨있다. 볼수록 참 부지런히, 끈질기게, 대단한 열정으로 작업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임채욱과 인수봉과의 교감을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금세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거리에서 시각적으로 소비되는 풍경이 아니라, 결과로서 사실적으로 드러난 풍경이 아니라, 대상화(타자화) 된 풍경은 더구나 아니고! 우리와 함께 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생성으로서의 인수봉'을 임채욱은 본 것이다. ■ 최연하
Vol.20180511b | 임채욱展 / LIMCHAEWOOK / 林採旭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