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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홈페이지_www.limchaewook.com 임채욱 페이스북_facebook.com/chaewook.lim
초대일시 / 2017_0526_금요일_05:00pm
주최 / 쇳대박물관 후원 / 서울특별시_종로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노박 Gallery Nohbak 서울 종로구 낙산성곽서1길 24-1(이화동 9-444번지) Tel. +82.(0)2.766.6494
가깝고도 먼, 산-사진의 자리 ● 임채욱은 신작, 『낙산-꿈꾸는 산』에서 너무 가까이 있었지만 좀체 드러나지 않기에 잘 볼 수 없었던 이 도시의 꿈들을 찾아 나선다. 그간 작가가 담은 풍경이 높고 크고 위풍당당한 산의 진면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엔 서울의 내사산 중 동쪽에 위치한 낙산(駱山)이 주제이자 배경으로, 산과 함께 어우러진 곳곳의 소소하고 간단없는 일상들을 발굴하고 있다. '낙산'의 속에서, 위에서, 아래에서, 다시 그 산을 통해서 작가가 수집한 낙산의 기억과 풍경들은 단순 기록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기대고 있는 사진의 힘을 환기시키고 있다. 풍경-대상을 향한 존중과 기다림으로 시작하여, 삶의 무대이자 동시에 기억의 저장소이고 공동체의 기억 창고인 낙산의 시간들을 사진으로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과 이웃, 마을 공동체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처럼 과거의 자취가 빠르게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중대한 일이고 임채욱은 사진의 기록적, 미학적 가치를 낙산과 함께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도시를 기록한 사진의 출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으젠느 앗제 (Eugene Atget, 1857~1927)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변화하는 파리 시내 곳곳의 풍경을 8만 5천여 장의 원판사진으로 남겼다. 곧 사라질 건물과 거리, 공원풍경, 이미 소멸된 것들의 흔적, 문화제, 도시의 상점까지, 방대한 그의 사진은 자료로서의 가치와 예술로서의 가치로 양립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중요성이 배가되고 있다. 사진에서의 시간의 더께는 기록의 가치를 예술적 힘으로 확장시키고 때론 변환하기도 한다. 특히 빠르게 유동하는 현대도시의 시공에서 매끈하게 떨어져 나온 사진 한 컷은 드라마의 서사와 음악의 서정을 함축한 묘한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것은 한 도시공간에서 익명의 군중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공통경험이 두터울 때 더욱 커진다. 누군가가 촬영했던 곳이 내가 스쳐 지나갔던 곳이고, 내가 유심히 들여다보고 머물렀던 공간에 그도 함께 했을 것 같은, 내 기억 속 유리건물이 그에겐 노출콘크리트 벽으로 찍혔을 때의 낯설음과 어느 해 봄의 패션 모드가 사진에서 튀어나올 때의 반가움 등 공감의 진동이 쉽게 느껴지고, 공유의 폭이 넓은 미디엄인 사진이 현대인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임채욱의 '낙산' 사진이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도, 쉽게 변형되고 편집되는 기억의 처소처럼, 데자뷔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억을 기술(記述)하는 사진의 자리는 언제나 유효하다. 사진이라는 매체와 기억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이 있다. 기억은 그것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특정 매개체에 의해 발굴되거나 반추, 소환이 더욱 용이해진다. 흔히 시간 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진이 기억의 확실한 마중물을 담당한 것도 그 시제가 언제나 과거이기 때문이고, 기계적인 복사 능력으로 기억의 보증을 확고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과 손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회화와는 달리, 사진은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재현방법으로 과거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사진적 사실주의는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의 증거 즉 절대적 과거의 재현으로만 출현하기 때문에 (…) 진술적 재현에 관련하고 그때 응시자는 재현된 대상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갖는다.' (이경률, 『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영상과 기억적 재현 : 기억미술과 사진』,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제 14집」, 2000년, 시공사, p.92.) 는 이경률의 언급처럼 사진은 과거 사실의 뚜렷한 증거가 되어왔다. 이처럼 사진이 기억의 메타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대상이 있어야만 촬영을 할 수 있는 분명한 지표성이 전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 사진에서는 이 지표성이 모호해지긴 하지만, 디지털과 필름 카메라 모두 기본적으로 촬영대상의 확실한 '있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억은 단지 사진일 뿐이다." (Philippe Dubois, L' acte photogrphique, Edition Nathan, Paris, 1990, p.266. 이경률, 위의 책, p.92에서 재인용) 라고 말한 필립 뒤부아의 명제는 기억 기술(記述)로서의 사진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잊을 수 없는 과거의 경험이 (망각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중에 잔존하는 것을, 사진의 네거티브 필름에 보이지는 않지만 형성되어 있는 잠상(Latent Image)으로 비유할 수 있는 것도 사진만의 고유한 지표성 때문이다. 이처럼 사진매체만의 기억-각인(刻印)의 효과는 그동안 기억을 기술(記述)하는 사진의 위상을 견고하게 해주었다.
이 도시의 플라뇌르(Flâneur) 사진가로서 임채욱이 발굴해 낸 낙산의 현재-기억들은 곧 사라지거나 변형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욱 "살아가는 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벤야민의 언급처럼 이 도시의 흔적들을 채집하고 상상력과 함께 표상하는 일은 작가에게 중요한 몫이 된다. 최근에 현대의 도시풍경을 조명한 한 전시회에서, 철학자 김진영은 "도시를 사진 안에 담는다는 건 다만 그 도시의 지금 여기를 기록하는 일만은 아니다. 도시를 사진화 한다는 건 그 도시의 잊혀진 꿈을, 순장된 도시의 꿈을 깨워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순장된 도시'란 그 도시가 생성될 당시 꿈꾸었던 '꿈의 도시'를 말한다. "역사는 꿈의 시간들이며 매 시대는 태어날 때 그 안에서 자기만의 꿈을 꾼다. (…) 하나의 도시가 무엇을 꿈꾸었는지는 그 위에 세워진 도시가 아니라 그 도시가 무너졌을 때이다."라는 벤야민의 전술을 옮기며, 김진영은 지금-여기의 도시 밑에도 그 도시가 꿈꾸었으나 세워질 수 없었던 꿈의 도시가 순장된 도시로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임채욱은 낙산을 거닐며 사물들의 은밀한 제스처를 발견하고,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을 찾고, 성곽과 골목의 숨어 있는 흔적들을 수집한다. 벤야민이 말한 순장된 도시, 즉 도시가 꿈꾸었던 '그 도시'에 대한 기억이나 흔적, 꿈의 편린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 속에서 '리얼리즘'과 '탐미주의'에 대한 시각이 맥맥히 깔려 있는 것도 일상(日常)과 이상(理想)과 세상(世上)이 동시에 흐르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사진적인 프로세스를 견지하면서도 대상에 대한 탐미적인 시각을 가져가는 것. 거기에 작가 특유의 서사와 서정은 사진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히며 우리의 남루한 일상과 꿈, 통속과 존귀가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묘한 조화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설악산과 북한산, 인왕산을 촬영한 임채욱에게 '낙산'은 사진이미지의 의미 분출의 지점을 찾아 근원적인 회의로 통하는 계기라 할 수 있다. 한 사진가의 사진적 궤적을 따라가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형식의 완결성보다 그 형식을 떠받치는 사진가의 존재적 위치(생의 내용)이다. 임채욱은 『낙산-꿈꾸는 산』에서 그의 첫 작업이 생성되는 근원으로 회귀해 들어가 자신의 삶의 자리, 사진의 자리, 기억의 공간을 산책하며 사진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간의 방대한 작업에서 자칫 놓치기 쉬울 내용의 깊이나 주제의 한계를 검증하면서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재촬영하는 사진가로서의 미덕으로 이어진다. ■ 최연하
Vol.20170526h | 임채욱展 / LIMCHAEWOOK / 林採旭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