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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329_목요일_05:00pm
후원 / 한국예탁결제원 KSD갤러리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주말 및 공휴일 사전 예약시 관람 가능
KSD갤러리 KSD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로4길 23 한국예탁결제원 1층 Tel. +82.(0)2.3774.3314 www.ksdgallery.kr
기묘한 풍경, 이상한 위로 ● 내가 처음 잃어버린 것은 운동화이다. 초등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이맘 때로 기억한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집에서부터 도보로 20-30분 정도 되는 대로변에 있었는데, 등굣길에는 학교를 향해 오른쪽에 나 있는 인도를 이용하고 집에 돌아올 때는 왼쪽 길을 따라 걷는 것이 나의 습관이었다. ● 운동화와 '이별'한 곳은 집에 올 때 걷던 왼쪽 길,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길 아래로 흐르고 있던 개천이었다. 그 개천은 얕고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유속이 느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주변에 무성히 엉켜있는 잡초에 걸리기 일쑤였고, 비가 와야 물이 불어나 빠르게 흐르던 그저 평범한 도심하천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안전을 위해 개천 쪽으로 세워져있는 난간 사이로 나는 한 발을 집어넣었고, 멀쩡히 잘 신고 있던 운동화를 발등에 살짝 걸친 채 흐르는 개천을 바라보면서 발장난을 쳤다. 순간, 내 발 위에서 흔들거리며 놀던 운동화가 벗겨졌고 개천으로 떨어졌다. 아뿔싸! 물살을 타고 유유히 흘러가는 운동화를 눈으로 쫓으면서 따라가 보았지만, 평소 무시했던 속도와 달리 그 개천은 내 종종걸음보다 더 빠르게 운동화를 멀리멀리 보내 버렸다. 어디 한 곳에서 멈추지도 않고 둥둥 떠내려가는 운동화를 결국 포기한 채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꾹 참았던 눈물을 엄마 앞에서 쏟아내고 말았다. 신학기를 맞아 새로 신은 지 얼마 안 된,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들이 장식되어 있던 파란색 스웨이드 운동화. 내 최초의 '상실'은 바로 그 운동화이다.
오래전 기억 속에만 남아있던 그 파란 운동화 한 짝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백기은의 작품에서 내가 겪었던 상실감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작품에서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백기은은 마치 암호화되어 있는 문서처럼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언어로 그녀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표현하는 것은 그녀의 세상에 그리고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 백기은은 가방 안에 항상 넣고 다니는 노트에 펜으로 드로잉을 한다. 그녀에게 드로잉은 일기와 같은 것인데 집에서, 작업실에서, 지하철 안에서, 카페에서 수시로 꺼내어 드로잉을 한다. 그리고 점 하나, 선 한 줄은 어느 순간 면과 형태를 갖추고 숨을 쉬기 시작한다. 생물체의 구조와 감각 기관을 닮은 형태들이 반복되는 단색의 드로잉에는 그녀가 지나온 시간과 공간, 기억과 상상이 응축되어 있다. 그날그날의 느낌과 생각을 적는 드로잉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는 상황과 '만약(If)...'이라는 가정을 떠올리며 자신이 잃어버린 대상들을 하나하나 풀어내어 위치지우고 새롭게 구성한다. 그녀의 몸과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 있던 상실의 감각은 손에 쥔 펜을 따라 종이 위에 고스란히 옮겨져 집요하게 다시 새겨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그녀의 드로잉은, 이별에 대한 기억을 채집하고 애도하는 도구이자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마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그렇게 백기은만의 방식으로 풀어헤쳐진 손바닥 크기의 작은 드로잉들이 확대되고 색을 입고 삼차원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법한 상상의 생명체들이 촉수를 뻗고 지느러미를 흔들고 날개를 펄럭이며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부서질 듯 연약해보이지만 의외로 질기고 단단한 철사로 만든 입체물의 다양한 구성단위들이 반복적으로 서로를 침투하고 에워싸고 빙빙 돌면서 미묘하게 움직이는 형태들로 재탄생한다. 외부와 내부가 동시에 보이는 몽글몽글하고 반짝이는 덩어리, 겉과 표면은 바닥에 비쳐져야 보일 뿐 오히려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안쪽인 구조물,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결과로 드러나야 하는(그리고 드러날 수밖에 없는) 내밀한 생각 등 다채로운 이중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장면은 빛을 반사시키고 벽과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간다. 개별 형태들 서로가 주고받는 미세한 파장과 느슨한 관계가 만들어내는 장식적이고 화려한 풍경은, 그녀의 '숨은 그림 찾기'로 우리를 초대한다.
백기은은 이번 KSD 갤러리 전시회 『이중유영_깊은 바다에서』에서 물 속 또는 물 위, 어쩌면 땅 속 깊은 곳, 아니 우주 어딘가 일지도 모르는 미지의 공간을 걷고 헤엄치고 떠다니는 생명체들을 보여준다.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스나크 사냥」, 「감각공생체드로잉」에는 그녀가 상상해낸 존재들의 무한한 변신과 생명력이 가득 차 있으며, 「하늘에 딩동댕동 손가락 비행체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기 위해 꿈꾸고 연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백기은은 「유연한 사고의 가능성들」에서 커다란 캔버스 위에 직접 드로잉을 하고, 입체 형태에 동반하는 그림자를 조형적 요소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거대한 풍경을 구축하는 작업에 도전하고 있다. 「이중유영」은 가는 철사로 엮은 내부의 면과 외부의 면을 반복해서 겹치고 연결해 가면서 형태를 점점 확장하고 있어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 『이중유영_깊은 바다에서』에는 "잡을 수 없는 것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쉽게 사라지는 미미한 것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려는"(백기은 작품 노트 중에서) 백기은의 고민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제는 잃어버린다는 것, 이별이라는 것이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눈물을 닦고, 깊은 바다 속에서처럼 숨이 차겠지만 느리게라도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겠다는 그녀의 바람이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특히 「반짝이는 가능성들」이 품고 있는 색구슬은 수없이 마주하게 될 어렵고 힘든 상황에 그저 속절없이 놓이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선택하겠다는 희망과 의지를 담고 있다("예전에 TV에서 보았던 「전설의 고향」이었던가? 어떤 사람이 위험한 곳을 가야했는데 산신령이 색색의 구슬을 건네줬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 구슬을 던지면 그 속에서 요긴한 도움이 나타났던 그런 상황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색색의 구슬이 몸속에서 생겨난다면, 그런 구조를 가진 몸이라면... 제가 만든 반짝이는 발광체들에서 그런 희망을 담은 가능성들을 만들어내는 상태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백기은과의 인터뷰 중에서)). 이번 전시회가 작가 백기은에게 더 멀리 뛰어오를 수 있는 '도움닫기'이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말로 글로 제 아무리 훌륭히 표현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느끼고 기억하는 상실의 양과 질, 폭과 깊이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상실감을 100% 이해할 수 없다. 비단 상실감뿐이랴. 다른 이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상실이라는 결과에는 선택과 포기라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선행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상실과 이별이 자의였든 타의였든 간에 그 대상에 대한 애도의 시간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 친한 사람에게 속을 보여주며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때로는 낯선 이에게 솔직한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의외의 격려와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백기은의 작품에 무심코 한 발자국 다가설 때 각자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상실과 이별에 대한 아픈 기억과 경험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침잠해있던 불확실하고 선명하지 않던 그 무언가가 내 눈앞에 불쑥 떠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잊고 지냈던, 피하고 싶었던 '그것'에 마주하게 되면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고 기괴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작품이 두 세 걸음 나에게 다가와 내 가슴에 남아있던 슬픔의 응어리를 사르르 녹여버리는 마법을 부릴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누군가는 깊은 바다이든지 뜨거운 사막이든지 척박한 환경과 고달픈 현실 어디라도 버티고 견디면서 뚜벅뚜벅 건너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수도 있다. 이제 나도 내 파란 운동화에게 마지막 안녕을 외쳐야겠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굿 럭! ■ 문호경
이중유영_깊은 바다에서(Flying Fins, Floating Wings) ●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한 매우 작은 감각, 그 작은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면! 말하지 않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떻게 봐도 가능하지 않은데,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단정들뿐일 때에도 희망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 시간으로는 다시 갈 수가 없지만 기억을 반복하더라도 더 나은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생각의 절망에 빠지지 않고 괴로움이라는 감정을 제거해서 또다시 가능성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이런 생각들에 말도 안 되는 답과 어떤 희망을 연결시켜 보기를 좋아한다. 그동안 그려온 드로잉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이런 방식이었던 것 같다. 해결될 방법들이 아예 없는 현실 속의 상실과 무기력함 앞에서 수첩을 통해 질문했던 것이 결코 바보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두움 속에서도 작은 빛, 반딧불 같은 빛남, 상상의 발광기관은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새로운 희망은 구슬처럼 또는 비타민 같은 알약처럼 응축된 어떤 것은 아닐까,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가능성이 가득한 상태나 공간이 거울의 이면처럼 시간의 막 이면, 나와 너무도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숨겨진 어떤 내부의 면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손에 만져지는 외부가 동시에 나타나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표현할 수는 없을까. 아마도 이것은 극단적인 양태의 두 부분이지만 분명 그 반대의 영역과 중간단계가 연결된 어떤 구조를, 그동안 만져왔던 철사라는 친숙한 재료의 결합방식들로 이 고민에 대해 안팎을 연결할 수 있는 해결점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제나 같지만 늘 다른, 늘 움직이고 미끄러지는 다양한 양상의 표현과 그 가능성은 반딧불이의 빛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 오늘도 수첩에 드로잉을 하며 수없이 얻은 그런 상상들은 이런 질문과 답에 대해 또 다른 해답과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다양한 상상들은 마치 각각의 생명체처럼 자신만의 특유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상태 같았다. 파고들기, 촉수내기, 통과하기, 빙빙 돌기, 부유하기, 발광하기 등 서로 공생하듯 미묘하게 연결된 개체들로 여러 개의 다리, 촉수, 지느러미, 곤충의 날개, 번데기나 깍지, 발광기관 등 다양한 생물의 구조가 포함된 입체물들이 되었다. 그리고 드로잉의 라인들을 그대로 닮게 철사의 매듭이나 고리를 하나하나 잡아내거나 매우 작은 삼각형에서 육각형 모양의 무수히 작은 도형들을 입체적으로 짜서 제작해 보기도 했다. 철사들의 조직이기에 매우 가볍고 속이 비치기에 그 내부와 외부가 함께 보이는 구조로 양감의 덩어리를 표현 할 수 있었다. 여러 겹의 레이어, 극도로 치밀한 주름진 표면과 그림자들, 손으로 만져볼 수 있고 또 그 속을 거닐어 볼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의 공간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 반사되는 바닥과 높은 천정의 전시 공간에 투명 줄에 매달려 돌거나 멈추면서 서로 다른 다양한 입체들과 연결 상태가 유지, 또는 이탈되면서 여러 가지 형태(상태)가 만들어지는(상상할 수 있는) 움직이는(마치 매우 느려진 시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드로잉 설치 작업이다. 자신만의 방법들을 찾아내서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내는 생명체들처럼 시공간 속에 존재해 내는 방법들을 손으로 잡아내가며 찾아내려고 했다. 하나하나 그려간 드로잉과 입체작들의 긴 노동은 어쩌면 이 시간을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작은 반영과 질문들에 대한 답, 또는 고민의 결과일 것이라 생각한다. 깊은 바다, 빛이 없는 어둡고 내쳐진 장소에서도 살아내는 방법들의 증거로 존재하는 것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 백기은
Vol.20180329h | 백기은展 / BECKKIEUN / 白基恩 / installation.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