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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선 블로그_q.cyworld.com/23401163
초대일시 / 2018_0308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소노아트컴퍼니 SONO ART COMPANY 서울 서초구 동광로 41(방배동 792-4번지) B1 Tel. +82.(0)2.3466.5151 www.sonoart.co.kr
단순화된 색감, 작가의 붓질이 보이는 자국, 쉽사리 구분되는 형태.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가 이상선의 작품들에서 읽히는 특징들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형태들이 있음에도 어딘가 구속되지 않는 불분명한 외형으로 인해 관찰자들은 자신들에게 친숙하며 상상 가능한 나름의 이미지를 유추하기 마련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과연 어떠한 생각에서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전시 제목을 한번 보자.
전시 제목인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인위적이지 않은 상태), 산(散: 흩어지다, 내버려두다, 풀어 놓다, 헤어지다). 이를 연결시켜 보면 의미와 의도를 버리고 어떤 것도 남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작가 이상선은 과연 '무엇'을 '왜' 버리고자 하는 것일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도를 버리고 표현의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무언가를 버려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방향성이 곧 무위(無爲)라는 개념에 있을 터이고, 이를 위한 몸짓이 산(散)으로 동작 되는 일련의 행위들일 터이다.
대중들에게 이상선의 대표적인 작품이미지는 화면에 흩날리는 꽃잎과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기억될 듯 싶다. 일반인들에게 그렇게 인식될 지라도 작가의 작품은 그 이전에 보여준 설치작품들과 전시장 벽면에 드리운 유머러스한 드로잉, 건조하고 마른 자연 풍경에 기인한 단순화된 이미지들을 병행해서 추구하고 있었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작가가 드러내는 형상들과 형태적 요인들은 구성적으로만 본다면, 열거한 것들로 간추릴 수 있겠다. ● 일반인들이 작가 이상선하면 떠올리는 아이들 소재의 그것과 다른 작품들이 외형적으로 멀게만 느껴지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서술하자면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이들 전체적으로 동일한 흐름이 내재하고 있다.
작가가 표현한 어린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먼저 떠 올려보자. 한결 같이 웃는 모습의 아이들 얼굴이 때로는 화면 속에서 관찰자를 응시하기도 하고, 저희들만의 세상에서 순진 무구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마치 웃음 소리가 작품 너머에 흘러 넘칠 듯이 어깨를 들썩이고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런데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아이들이 등장하는 이 시리즈 제목을 그는 '아해(兒孩)'로 명명하는데, 이는 20세기 초반 한국 근대사의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의 "오감도"에 등장하는 단어이다. 의식적으로 이상선은 이 단어를 가져와 자신의 작품 시리즈에 사용했다. 또한 작품들의 다수는 마냥 밝고 경쾌하기 보다는 명도 낮은 색채와 무채색에 기인한 색감들이 전체적으로 읽힌다. 그렇듯 흩날리는 꽃잎, 웃는 아이들의 표정이라는 키워드 자체만으로 이상선의 작품을 읽어 낸다면 이는 그가 지닌 이면의 것들을 놓치고 마는 실수를 범한다 하겠다. 일전에 이런 특징들을 필자는 시인의 시에서 읽히는 시대적 우울감과 맞닿아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누구나 간직한 어럴적 이야기들이 담긴 작품 속에서, 이젠 희끗희끗하니 새치를 간직한 어른이 되어 버린 나를 투영하게 만든다. 그리곤 이내 여운 있는 미소를 남기는 그런 작품이 이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추상적 풍경』과 『에코 없는 무아지경』, 『시발점』 등등의 전시와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평면 회화의 단순화된 형태들, 아이들의 웃음이 들릴 듯한 모습은 더 이상 어디에도 없다. 마치 누군가 지나간 빈 자리 마냥 무언가 떠난 여운만이 드리운다. 심지어 공허함 그 자체만이 드리워져 있다. ● 노자의 『도덕경』 가운데 「무위」 편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무릇 천하는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결코 한 사람의 사사로운 것이 될 수 없으니 억지로 하거나 강제로 해서는 안되다' 물론 이 부분은 노자가 예술가에게 일컬어 나아갈 작품 세계를 설파 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지도자의 바른 가짐에 대한 설명 가운데 나온 글이다. 여기에서도 성인(成人)은 무위자연의 도를 따르며 정도와 한계를 벗어나 과분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해제가 붙어있다.
지난 작품들에서 동일하게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작가의 공허함은 작가가 현재 버리고자 하는 의미 없음의 일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작품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청천 벽력 같은, 변화의 순간을 마주 하기 보다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지나가고, 없어지고, 사라져 흔적을 남기듯이 이상선의 작품들 속에는 그런 무위(無爲)들이 내재되어 오고 있다. 단지 그런 개념들이 본격적으로 드리운 것이 최근 몇 년 간 작가의 작업인 게다. 무의미의 의미라는 말이 있다. 의미 없는 것이 즉 의미라는 것인데 지금 작가의 여정이 그렇다. 의식적으로 의미들을 버리고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자연적인 상태를 위해 작가는 의식적으로 흩어내고 내버려 둔다. 일련의 이러한 지난한 과정들이 지나 더 이상 의식적으로 버리지 않게 되는 상태를 소망하며 말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많이 드러내고 가벼워지고 있다. 기다려 본다. 이상선의 다음 작품들은 얼마나 더 가벼워질지, 어떻게 공허함이 드리울지. ■ 이진성
Vol.20180313e | 이상선展 / LEESANGSUN / 李尙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