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그늘 The shade of grass

장현주展 / JANGHYUNJOO / 張炫柱 / painting   2017_1208 ▶ 2017_1221 / 월요일 휴관

장현주_풀의 그늘_110×2980cm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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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에무 Art Space EMU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Tel. +82.(0)2.730.5604 www.emuartspace.com

장현주가 그린 '풀의 그늘': 풀, 그리고 자연의 소리 ● 장현주는 장지에 먹, 목탄, 분채 등을 이용해 다양한 매체의 실험을 모색해왔다. 작가는 『지우개로 그린 풍경』, 『뜻 밖에서 놀다』, 『산, 산, 산.』, 『어.중.간.』, 『숲, 깊어지다』에서부터 현재 전시 중인 『풀의 그늘』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상적인 삶의 풍경이 되는 자연 안에서 경험하는 사소하고 우연적인 속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왔음을 알 수 있다. 장현주가 그린 산, 들, 풀 등을 담은 현대적 산수화에는 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행위 뒤에 남은 우연적 발묵 효과가 베여있다. 또한 묵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미세한 잔상들이 선과 색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장현주_풀의 그늘_110×2980cm
장현주_풀의 그늘_110×2980cm_부분

그의 작업은 한지가 지닌 표면적 효과를 섬세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종이의 속성상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레이어드(겹) 효과를 동시에 재현한다. 유화를 여러 번 덧칠하면서 형태가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회화적 붓질 효과와 달리, 한지는 번지는 효과를 잘 보여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루기 쉽지 않는 표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양화 특유의 번짐이나 수묵의 흐르는 느낌이 종이에서 우연적인 드로잉이라는 미학성을 구축하지만 이러한 효과를 위해서 작가는 끊임없이 붓 하나로 표면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 마치 수행하듯 작업에 몰입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작가의 마음과 생각, 몸이 한지와 붓이라는 매체가 합일이 되는 과정을 겪지 않는다면, 종이 특유의 잔상 효과가 쉽게 포착되지 않을 것이다.

장현주_weeds26_장지에 먹, 목탄, 분채_68×50cm_2017

장현주의 근작에는 동양화나 한국화 특유의 미학적 효과들이 등장하면서도 여기에 분채나 목탄 등이 사용되면서 서양화의 특징이기도 한 키아로스쿠로(음영) 효과나 색채의 특징이 구체화된다. 매화가 꽃피는 순간적인 느낌을 표현한 것이나, 전경과 배경이 전면적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공간성을 구축한 작업, 풀들이 조금씩 모여서 소소한 풍경을 이루다가 갑자기 압도적인 장관을 구성하는 형식 등은 음악의 리듬처럼 새로운 운율을 만들어낸다. 비워지고 채워진 공간은 절대적 리듬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장현주가 표현하는 섬세한 선과 면을 따라 서로 끊어지기도 하고 어느 한순간 무심하게 서로 만나기도 한다. 무심한 듯 우연히 상하좌우로 뻗어나가지만 그러한 선의 표현들은 작가가 생각하는 마음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는 여정들이 녹아있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밑그림을 미리 그려두지 않는다.

장현주_weeds28_장지에 먹, 목탄, 분채_68×50cm_2017

예술이 작가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내는 흔적이라면 장현주의 풍경화는 여성으로, 작가로, 개인으로 스스로를 찾아내는 경험의 공간과 기억의 흔적을 기록한 특징을 지닌다. 그의 작업은 그가 써 내려나가는 일기처럼 '여성적 글쓰기'와 생각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관찰과 시선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서사의 흔적이 아니라 소소하고 사소하여 지나치기 쉬운, 누군가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던 공간에 눈길을 돌린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드로잉' 요소, 그리는 행위, 선과 색의 변주 등이 눈길을 끄는 것도 작가 스스로의 생각의 궤적들이 기록된 흔적이기 때문이다.

장현주_weeds30_장지에 먹, 목탄, 분채_68×50cm_2017

장현주가 표현하는 '풀'은 김수영 시인이 시대의식을 담아 표현한 '풀'과는 결을 달리하지만 풀은 이름이 없고 눈에 띄지 않으며 소소한 풍경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이름을 갖지 않는 '풀'은 우리 모두의 모습처럼 늘 그곳에 있지만 인지되지 않는 개인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대상으로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그림자 같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그림에서 장 뒤뷔페나 윌렘 드 쿠닝과 같은 우연성과 즉흥성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렇게 보이는 작품들이 실제로는 작가의 노련한 회화적 표면과의 '놀이'에서 왔다는 사실을 읽어내릴 수 있다.

장현주_weeds31_장지에 먹, 목탄, 분채_94.5×61cm_2017

바로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이번 풀 작업에서 장현주가 과감하게 보여주는 영상 작업은 세로가 110센티미터, 가로가 2980센티미터가 되는 모뉴멘털한 풍경화를 기록한 것이다. 크기 면에서는 장대하고 장엄한 자연의 숨결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대작 안에 표현되어 있는 대상은 동양화의 주된 소재로 사용된 소재가 아니다. 장현주는 거의 매일 하루 4미터 정도되는 종이에 '풀'을 표현하면서 풀과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고 산책하는 속도처럼 느릿느릿 걷는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한 여름 무더운 날씨에, 매 풍경 달라지는 풀이 만들어내는 풍광은, 익숙하지만 낯선 일상적 풍경을 기록한다. 풀들은 꽉 찼다가 어느 한 순간 여백으로 다가오며 선들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풀의 이미지는 이슬을 머금은 풀의 느낌, 여름 하늘 아래 더위를 이겨가며 서 있는 느낌 등 매 순간 다른 날씨와 환경 속에서 자라는 풀을 표현한다. 그는 풀이 가진 다양한 성격이나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죽필, 묵필, 목탄 등으로 풀의 길이와 결을 표현하였고 숲 속으로 들어가는 '걷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가로를 길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대작은 장지에 겹을 쌓아나가면서도 풍경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일필휘지처럼 절제된 선의 울림으로 여러 갈래의 생각에 마침표를 쓰는 것처럼 과감하게 끝난다. 이러한 구조는 캔버스를 연결해서는 전혀 나올 수 없는 회화적 발상이다.

장현주_weeds33_장지에 먹, 목탄, 분채_100×147cm_2017

장현주가 보여주는 '그리기의 흔적'들은 그의 마음,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심리적 결들로 오랜 시간 동안 마음 속에서 뭉쳐지고 덩어리로 존재했던 생각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하나씩 풀려지고 서로 다시 이어지는 생각의 과정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일상적인 여정들이 있는가 하면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느릿느릿 자신의 흐름을 따라 사색하는 여백의 공간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장현주의 그리기는 자신의 신체와 마음이 하나가 되고 또 회화적 공간과 하나가 되는 오랜 생각의 겹이고 시간의 겹이다. 앞을 보지 않고 달려온 작가에게 그 공간은 피안의 공간이기 때문에 단순한 회화적 공간이라 부를 수 없다. '풀'은 작가의 이름이자 우리의 이름을 대신하는 매개항이다. 자연 속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무심한 소리, 곤충의 소리, 풀이 바람과 만나는 소리는 나지막한 흥얼거림처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운드이다. 장현주가 표현하는 산, 풀,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등은 우리의 경험 속에 남아있던 어떤 한 순간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 정연심

Vol.20171208i | 장현주展 / JANGHYUNJOO / 張炫柱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