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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20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결핍과 흡수, 그리고 공존 ● 나는 생명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한다. 주로 야채, 곡식 등 음식 재료를 작품 소재로 삼아왔다. 햇빛과 물을 섭취하며 주변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야채와 곡식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고 자신은 조용히 소멸해 간다. 마치 어머니 같은 존재다.
야채는 부드럽고 곡식은 단단하다. 부드러운 야채는 수분이 많아 금새 시들기에 저장이 어렵다. 단단한 곡식은 건조하고 외부가 껍질로 덮여 있어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다. 비록 성질은 다르지만 모두 '씨앗'에서 비롯된 생명들이다. ● 씨앗은 빛을, 바람을, 흙을, 물을 머금고 자란다. 여기에 시간이 보태진다. 이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씨앗은 자라지 못한다. 일정한 수분이 공급되고 적정한 시기가 찾아오면 씨앗은 싹을 틔운다. 『중용』에서는 '시중(時中)'이라는 개념을 통해 적절한 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빛과 바람과 흙과 물을 머금은 채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다 시중(時中)을 얻으면, 말라 죽은 듯했던 씨앗은 이윽고 새로운 생명체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때를 기다려 발아하는 생존의 지혜를 말라있는 씨앗에서 발견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휴면기 상태처럼 발아 시기가 유보된 씨앗, 해빙기처럼 분출하는 씨앗과 적절한 때를 기다려 발아하는 여러 씨앗들이 등장한다. 씨앗은 홀로, 무리를 지어, 각각의 자리에서 스미는 물을 품고 생장한다. 씨앗의 생장은 변함없는 태양과 달리 변화무쌍한 달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달은 불안정해 보이지만 나름의 주기가 있고 이 주기로 생명을 품는다. 특히 달의 인력은 동물의 생식과 식물의 발아에 큰 영향을 끼쳐 이를 표현해보았다.
가장 짧은 시간은 순간이고 가장 긴 시간은 영원이다. 겨우내 영원과 같은 긴 시간을 기다려 헐거워진 봄의 흙에서 순간 발아하는 경이로운 씨앗들. 거대한 나무의 시작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개미 같은 작은 곤충이 이토록 거대한 나무의 새싹을 없앨 수도 있다. 생명이 생명을 먹는 먹이 사슬 속에서 돌고 도는 생태계의 신비. 숲에서는 어떤 생물도 혼자만 살려 하지 않고 삶과 죽음이 언제나 공존한다. 마찬가지로 나무에서도 죽은 조직을 품고 밑동과 가지, 줄기와 옹이에서 새싹이 튼다. 한 나무에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셈이다.
삶과 죽음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이때 생명은 단순히 '있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의미이다. 끼니와 끼니 사이를 하나의 '생'(生)'이라고 볼 때 우리는 지속해서 먹으며 생을 이어간다. 먹고 사는 것이 생을 지속시키는 일이고 그 속에 삶이 녹아 있다. 매일 밥상에서 접하는 평범한 야채와 곡식들은 가녀리고 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강인하고, 생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흡수하여 번식하고 순환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서 나온 이들이 다시 우리의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매개체가 된다. 모두 얽히고 설켜 있다. 공존의 장(場)이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 흡수는 필수적이며 역설적으로 결핍도 필요하다. 결핍이 없다면 결코 흡수는 일어나지 않으며 흡수 없는 결핍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생명체는 결핍 속에서 이를 메울 영양분을 '흡수'하며 오늘도 삶을 이어 나간다. 육체의 구체적인 섭취를 통한 흡수만이 바른 삶을 영속시키지는 않는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가 적절히 이뤄져야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흡수는 정신적인 의미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몸과 마음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씨앗을, 야채를, 곡식을 바라보면 그런 관념의 '흡수'가 '공존'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른다.
한 여름의 왕성한, 분출하는 생명성이 아니라 조용하면서도 치열한 식물의 생명성을 표현하려 하였다. 겨울의 결핍 속에서도 온기를 '흡수'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최혜인
Vol.20171202d | 최혜인展 / CHOIHYEIN / 崔憓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