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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2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최혜인이 그리는 소재는 곡물과 야채이다. 여느 작가들처럼 아름다운 꽃이나 수목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늘 밥상에 올라올 만한 먹거리이며, 흔해서 오히려 기억에서 열외 될 그런 것들이다. ● 일반적으로 선택되는 보다 의미 있는 식물, 예를 들면 사군자나 잘 알려진 화초들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식과 부식으로 친근한 쌀, 콩, 콩나물과 버섯, 상추, 호두 등이 그가 그리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밥상에 올라오는 먹거리인 곡식과 야채들은 부분적으로 보면 생김새, 길이, 색깔 모두 제 각각이지만 하나의 이름, 하나의 존재로 인식되는 것들이다. 다양한 관계가 공존하는 사람 살이 같기도 하고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룬 가족 같기도 하며 이 속에서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를 경험한다. 이렇듯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면서 각각 저마다의 자리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공생하는 삶을 곡물과 야채를 빌어 표현한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 작가는 '인생'이라는 서사적 구조 속에서 이러한 친숙한 소재를 통해 변화하는 자신만의 사유를 짜 나아간다. '살림'의 어원이 부엌데기 엄마들의 궂은 일이 아니고 인간이면 누구나 동참해야 할 숭고한 노동,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본다면, 작가는 우리의 주식인 쌀과 콩 등 곡물에서 진정한 '살림'을 만난다. 곡물의 발아하고 번식하는 과정들이 수많은 붓질의 화면 위에서 견고하게 스며들어간 색과 함께 생명과 죽음의 순환하는 공간을 이룬다. ● 한 톨의 쌀알에서도 우주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땅에서 수확된 생명의 먹거리에서 우리 일상의 삶을 소근소근 펼쳐 보이는 전시이다. ■
"매일 접하는 곡식과 야채. 가녀리지만 동시에 강인함. 채식주의자 같은 담백함. 군(群). cluster. 인간관계. 사람살이. 살림. 달. 모성. 번식. 흡수. 순환" ● 생명의 시작으로서 발아하는 콩 싹, 감자 싹들, 동양인의 주식인 쌀을 보면서 먹고 사는 '食口'의 원초적 의미, 기생하고 공생하는 인간관계를 떠올렸다. ● 시작은 같았으나 발아 시점이 모두 다른 싹들, 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의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켜있는 콩나물에서 사회적 인간 관계를 떠올리고 소복하게 담겨진 첫 생일상 하얀 쌀밥과 제사상의 밥 한 공기는 탄생과 죽음이 만나는, 순환의 공간이다. 우리의 인생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떠도는 별처럼 계속 움직이며 어디론가 흘러간다. 형태가 조금씩 변하는 밤하늘 달의 모습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곡물의 발아하고 번식하는 과정은 하늘의 달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늘 일정한 형태의 태양과 달리 만물을 생성시키고 스스로 변화하는 달의 속성이 임신, 출산 등 여성의 가변적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가진 중요한 기능을 번식력이라고 볼 때 원시 신화 속에서 달은 생식 능력을 지니는 대지 모신(母神)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달의 주기에 맞게 농사지어 수확하는 절기에 관해 표현해 보았다. ● 세밀한 선의 표현을 위해서 얇은 순지에 세필을 사용하였으며 풍부한 색감과 질감 표현을 위해서는 캔버스에 과슈, 아크릴, 종이에 안료, 백토와 함께 사용하였다. ■ 최혜인
최혜인은 오랫동안 식물에 예술적 관심을 집중해 왔다. 식탁과 주방에서 흔하게 마주쳤던 야채와 곡물은 현실 세계에서 그와 친숙한 관계를 맺어온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회화는 단일한 군집 내의 이질적 색깔과 모양 혹은 동일한 범주 안의 상이한 성질과 상태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목도한 이질감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해 왔다. ● 가까움(proximité)은 하나의 상태, 쉼(repos)이 아니라 정확히 불안이고, 결국 압박과 같은, 언제나 불충분한 가까움이다. 그의 회화에서 식물들은 언제나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면서 끊임없이 심리적 거리감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존재와 다르게』에서 레비나스(E. Levinas)가 언급한 가까움의 원초적 불충분함을 떠올리게 한다. ● 근작들에서 그는 식물을 매개로 인간 개체와 그 관계에 대한 유기적 사유를 지속한다. 여전히 그는 불충분한 가까움의 존재들의 다름과 차이에서 개성이 제각각인 인간 개체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 뿌리가 뒤엉킨 채 무리를 이루고 있는 콩나물에서 복잡다단한 이해들로 얽힌 인간관계를 떠올린다. 여기에 덧붙여 근작들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캔버스와 종이에 과슈와 아크릴, 안료와 백토를 사용해 한층 풍부해진 색감과 질감만이 아니다. 근작들에서 그는 관계와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 「가족」,「사춘기」,「상추꽃」등 기존 회화에서 그는 관계의 확정과 그것에서 비롯된 구체적 상황을 형상화해 왔다. 이에 비해 「움트다」,「번식하다」,「정착하다」,「순환하다」와 같은 근작들에서 보듯 그의 예술적 관심은 관계의 생성과 지속, 과정과 구조로 이행 중이다. 그는 발아하고, 열매 맺는 감자와 콩을 통해 충돌과 갈등, 화해와 이해의 반복 속에서 생성되고, 성장하고, 확장되는 인간관계를 본격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달이 차고 기울듯이, 낮이 길었다가 짧아지듯이, 산모가 생명을 잉태했다가 출산을 하듯이 그의 근작들에서 가시화되는 관계와 상황은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 관계에 대한 이러한 그의 이해의 태도는 쌀알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최근 회화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동양인의 주식인 쌀을 통해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란 뜻의 '식구'(食口) 본연의 의미를 확인한다. 동시에 소복하게 담긴 밥 같기도 하고, 둥글게 쌓아 올린 봉분 같기도 한 쌀더미에서 안온한 과거를 건조한 현재로 호출해 낸다. 마치 소중한 생명을 축복하기 위해 차려진 첫 생일상의 흰 쌀밥이 고인을 기리는 제사상에도 오르듯이 그의 근작들에서 과거와 현재, 생성과 소멸, 상실과 축적(蓄積)은 동일한 궤도에서 순환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 인간 개체에서 인간 관계를 경유해 다시 관계의 구조로 예술적 탐문의 중심축을 이동하고 있는 최혜인의『소행성』은 존재론적 모험이다. 관계의 성립과 순환의 사유를 통해 그가 확보해 나가고 있는 것은 확고한 자아와 이를 토대로 심화되고 있는 예술 세계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형식과 동일한 모티브로 현란하지 않는 변화를 성실히 모색해 나가고 있는 그의 존재론적 모험에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적당한 거리와 일정한 관심으로 꾸준히 깊어 가는 미더운 관계를 떠올린다. ■ 공주형
Vol.20140423b | 최혜인展 / CHOIHYEIN / 崔憓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