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할 꿈 - 기억, 상상 이미지 ● 박경태의 신작, 「도래할 꿈」은 이미 부재하거나 일부만 남아 있는 기억의 장소를 표상한다. 한 개인에게 특별한 장소는 기억의 자장을 견고히 하면서 동시에 증거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구체적인 회상의 닻을 내리게 하고, 네거티브 필름의 잠상(latent Image)처럼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현상 전이기에 부재하는 것 같지만, 흔적으로 남아있는 부동의 매체로서 기억의 장소는 마치 발굴되기를 기다리는, 하지만 땅을 파는 이가 없다면 유령으로 떠돌, 유물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박경태는 기억의 유물을 발굴하기 위해 데스마스크(death mask)인 사진으로 장소를 직접 떠낸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직접적인 형판(型板)이라기보다, 흔들리고 왜곡되고 사라지는 기억의 자리처럼, 형(形)은 희미하고 색과 면만 이글거리는 추상이다. 볼 수 없기에 재현의 바깥에 머물렀던 '기억'을 소환하고, 이미 왔거나 다가오고 있는 '도래할 꿈'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박경태는 역설적으로 '재현의 (불)가능성'을 탐색한다. 라캉이 재현의 의미를, 사라진 대상이 단지 상실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에 의해 "환상의 창조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듯이(조선령, 『라캉과 미술』, 경성대학교출판부, 2011, p.209.) 박경태는 대상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상상으로 대상을 실재화시키며, 멀고 가까운 기억의 장소들을 흐릿하지만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유령 심상으로 표상했다.

박경태_도래할 꿈 #02_매트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100×150cm_2017

박경태_도래할 꿈 #03_매트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60×90cm_2017

주지하다시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지시하는 사진의 재현력과 지표성 때문에, 기록을 근간으로 하는 사진은 종종 '기억'과 동급으로 언급되며 사진의 사실성이 곧 기억의 확실성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사진은 의심의 여지없이 사실과 객관의 영역을 담당해 온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의 사진은 세계의 단순한 재현뿐만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고,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형상화 하는 등 다채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특히 사진과 함께 논의 되어 온 기억 담론이 '기억 강박'(Andreas Huyssen), 심지어는 '기억 전쟁'(Frederick Crews)으로 발전하며 수 세기 동안 가정 되어 온 기억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 하는 것에서, 불안전한 기억의 처소들은 많은 예술가들의 구체적인 창작의 마중물이 되었다. 또한 작가 개인에게는 '기억행위remembering'가 내면으로 가는 매혹적인 여행이자, 보존되어 있던 망각을 발견할 때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결코 중단할 수 없는 파르마콘일 것이다. 고대 도시 델포이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리바디아'에는 망각을 상징하는 '레테Lethe'의 샘물과 기억을 상징하는 '므네모시네Mnemosyne'의 샘물이 동시에 흐른다고 한다. 이처럼 기억과 망각이 동형체이듯 어쩌면 기억을 재현하는 일은 재현의 불가능성을 전제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박경태_도래할 꿈 #04_매트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60×90cm_2017

박경태_도래할 꿈 #05_매트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60×90cm_2015

박경태는 「도래할 꿈」에서 재현의 불가능을 표상하려는 모험을 시도한다. 비밀스럽고 더욱 확실하면서도 더 필연적이고 고정되지 않는 방법으로 전달 될 수 없는 말들을 직조한다. 무엇보다 사진에서 중요시하는 사진의 의미만이 아니라 정보라는 항목으로 축소할 수 없는, 그 짜임새(texture)는 오직 색채의 번짐과 스며듦과 겹침으로 이뤄진다. 포착할 수 없는 찰나의 시간과 우리가 살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이 명확한 형태도 없이 색채의 대비로 순환하고 있다. 이는 형태를 지양하고 색을 이용함으로써 비가시적인 기억의 운동성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콘트라스트가 강한 색채의 대비는 에너지를 함축한다. 색은 대비를 통해 본래의 칼라를 잃기도 하지만, 옆의 색과 동화되기도 한다. 무겁거나 가벼워지기도 하고, 차갑고 따뜻해지기도 한다. 마치 서로 다른 기억들이 중첩되어 하나가 되거나 잊었던 기억이 갑자기 서늘하게 솟아나 그동안의 기억의 자리를 찬탈하듯이. 혹은 의식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던 검은 대륙이 발견될 때 비정형의 색-에너지로만 전해진다면 이러한 형상이 아닐까. 원근은 해체되고 중심은 사라지면서, 의미와 전언(傳言)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어느새 빠져나가는 손에 쥘 수 없는 '물'처럼 박경태의 사진은 프레임의 바깥으로 계속 흘러가고 있다.

박경태_도래할 꿈 #07_코튼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120×180cm_2016

박경태_도래할 꿈 #11_매트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60×90cm_2015

기억-망각은 '물'같은 것이다. 나를 비추기도 하지만 내가 빠져버리면 속수무책인 물. '레테Lethe'와 '므네모시네Mnemosyne'가 함께 흘렀던 그 물. 다시 사진의 속성으로 비유하자면, 대상을 그대로 옮겨오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흔적으로만 겨우 머물게 하는 것이 기억이고 망각이다. 박경태는 유년의 기억을 지속시키기 위해 '물'을 매개체로 사용한다.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언급처럼 '지속'이란 흐름이며 액체적이고 연속적이기에, 박경태가 물의 성질을 창작의 프로세스에서 중요하게 활용한 것은 지속되는 기억의 흐름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물은 온갖 모습으로 변화한다.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때론 신비로운 몸짓으로 고체에서 액체, 그리고 기체로 승화한다. 무엇이든 다 비추는 순수하고 청명한 거울이었다가 일순 사나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은 빛을 굴절시키며 반사할 때 환상적인 환영(illusion)을 만들어낸다. 박경태는 물과 빛의 충돌로 발생한 효과를 물의 속성처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물이 잔잔할 때는 사진도 거울에 비친 영상처럼 깨끗하게 정지되어 있고, 물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이미지가 뚝뚝 떨어져 내린다. 기억이 불어오고 빠져나가는 모습도 아마 이러할 것이다. 기억의 양과 속도도 물의 양과 속도처럼, 그 소리가 각각 다르고 변화하는 형태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리고 기억과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삶을 지탱하는데 가장 필요한 자원이고 살아있음의 증거가 된다. 기억이 없으면 시간도 없듯이, 인간은 기억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동시에 물처럼 끊임없이 변해가는 존재이다. 물이 끝나는 시점을 정할 수 없듯이, 기억 또한 시작과 끝을 통제할 수 없다.

박경태_도래할 꿈 #17_매트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80×120cm_2017

박경태_도래할 꿈 #19_매트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80×120cm_2017

'도래할 꿈'은 이미 왔거나 언젠가는 다가 올,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날마다 새롭게 생성되는 꿈-기억의 자리이다. 선형적인 시간 속에서는 꿀 수 없는, 모든 것이 다시 오고, 시작되는 영원히 회귀하는 자리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유년의 기억은 박경태의 사진처럼 계속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 사진을 해석의 대상으로 보게 되면 그 꿈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사진'을 볼 때 우리의 의식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사진의 구도와 칼라, 소재 등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요소를 통해 사진의 메시지를 분석하고 파악하려는 지각의 활동이다. 또 하나는 지각이 아닌 '상상'하는 태도로, 사진의 형식적인 요소들을 활성화하여 어떤 이미지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차이란 무엇일까. 하나의 사진을 단지 분석적인 대상/사물로 지각할 때는 궁극에는 종이/인화지만 남게 되지만, 이미지로 지향할 때는 새로운 형상-꿈이 된다. 한 장의 사진은 종이에 그칠 수도 있고, 상상이미지로 활성화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를 각각 '지각'과 '이미지'로 구별하였고 이는 서로 다른 지향적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요컨대, 사진은 관객의 지향성에 따라 분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상상이미지로 생성될 수도 있다. 박경태의 「도래할 꿈」은 그 두 가지의 갈림길을 내준다. 하나는 쉽게 해석이 마감된 미끈한 인화지 면이거나, 또 하나는 기억의 장소에서 계속 생성되고 있는 '도래할 꿈'이 그것이다. 기억-사진이 단순히 화석화된 존재인가, 아니면 유령처럼 다른 형상으로 변화하며 계속 살아가는 존재인가. 사진에서 본질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재촉하는 이에게는 결코 보여 지지 않을 기억들의 다른 존재 방식들 - 부재 혹은 비존재로서 상상하는 의식 차원에서만 개시되는 자발적인 이미지를 박경태의 사진에서 보게 된다. ■ 최연하

박경태_도래할 꿈 #20_매트지에 피그먼트 베이스 잉크젯_100×150cm_2017

A Dream to Return - Images of Memories and Imaginations ● Park Kyoung Tae's new work, 「A Dream to Return」 represents places of memories that have already become nonexistent or are partially existent. A place that is special to an individual strengthens the magnetic field of memory and at the same time, is much more than a mere proof of it. This is because an anchor of detailed reminiscences can be cast, and even memories that seem to have disappeared still remain as latent images of negative films. They seem nonexistent as they have yet to be developed, but as an immovable medium, places of memories are comparable to relics, waiting to be excavated but doomed to remain a phantom if no one is digging. In order to excavate the relics of memory, Park Kyoung Tae created molds of places using photographs which are the death masks. However, as places of memory which gets swayed and distorted rather than as direct mold of the reality, their shapes are blurred. They are abstractions of burning colors and faces. Park Kyoung Tae explores the '(im)possibility of reproduction' in a paradoxical manner by summoning 'memories' that have been loitering on the outside of reproduction as they are invisible, and reproducing 'a dream to return' which became or is becoming true. Just as Jacques Lacan viewed reproduction as something that not only makes one recognize the loss of a subject which disappeared, but also as "existence as an illusory creation" made by an artist Seon Ryeong Cho, 『Lacan and Art』, Kyungsung University Publication, 2011, p.209. , Park Kyoung Tae represented near or distant places of memories as images of phantoms which are blurred but contain powerful energies in them by not simply imitating but substantializing the subjects using imagination. ● As you are well aware of, due to their characteristic of measure and reproduction of showing facts as they are, photographs taken for recording purposes were often mentioned as being on the same level as 'memories', and the realness of photographs was directly connected with the certainty of memories. Photographs have undoubtedly been in charge of the factual domain and objective domain. However, contemporary photographs attempt at multifarious changes in addition to a simple reproduction of the world such as interpreting the world and creating a nonexistent virtual world. In particular, memory discourses which were taking place together with discussions on photographs developed into 'Obsession with Memory' (Andreas Huyssen) and even into 'The Memory Wars' (Frederick Crews), demanding for a reexamination of our notion of memories that has been hypothesized for many centuries. This made places of insecure memories become the priming water of detailed creation. To the artist as an individual, 'remembering' is an attractive travel deep into his inner self. Discovering the forgotten yet well-preserved memories could be painful, but it certainly is a pharmacon you won't be able to stop using. I was told that in a small village near the ancient city Delphi called 'Livadeia' flows 'Lethe', the river of forgetfulness and 'Mnemosyne', the river of memory. Just as memory and forgetfulness are isomorphic, perhaps reproduction of memories can only be possible when based on the premise of the impossibility of reproduction. ● In 「A Dream to Return」, Park Kyoung Tae attempts at an adventure of representing the impossibility of reproduction. He weaves together words that cannot be delivered in a secretive, definite, inevitable, and unfixed way. Above all, not only the meaning of photographs which is much emphasized in photography but also the textures which cannot be reduced under a single category of information are solely created by the spreading, permeation, and overlapping of colors. The transient time which cannot be captured and an eternity that we cannot live circulate through contrasting colors without having a specific shape or form. Rejecting shapes and using colors as such are attempts at revealing the motility of the invisible memory. Strong color contrast in his works implies the existence of energy. Colors lose their original colors through color contrast, but they also assimilate into each other. They become heavy or light, or cold or warm. It is as if different memories overlap to become one or forgotten memories are suddenly brought back to replace the previous memories. Wouldn't it be like this when a black continent which lied dormant deep down in our consciousness gets discovered and delivered in unfixed colors-energy? While having perspective dismantled and the center fade away like 'water' you cannot hold in your hand, Park Kyoung Tae's photographs keep on flowing out of the frame the more you feel you are getting closer to their meaning and messages. ● Memory-forgetfulness is like 'water'. It reflects you but will render you helpless once you fall into it. It is the same water that flows with 'Lethe' and 'Mnemosyne'. To compare it with the characteristics of photographs, it reflects the subject in its integrity, but memory and forgetfulness makes it survive in the form of mere traces. In order to make the memories of his childhood persist, Park Kyoung Tae uses 'water' as the medium, Since 'persistence' is a liquid-like, continuous flow that Henri Bergson mentioned, Park Kyoung Tae had the characteristics of water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process of his creation to express the flow of memories which persists endlessly. Water changes into all kinds of shapes and forms. It changes from solid to liquid and sublimates into gas tempestuously at times, with soft whispers and mysterious gestures at others. It was a pure and clear mirror which reflects everything but instantly, it wields ferocious powers. Water creates imaginary illusions when it refracts and reflects light. Park Kyoung Tae presents the various collision effects of water and light and likens them to the various different characteristics of water. When the water is calm, the photograph is still and clear just like the images reflected in the mirror, and when the water swings by the breeze, images come dropping down. The way memories come and go will probably be the same. The quantity and velocity of memories and their sounds are all different, just like the various different changes in the quantity and velocity of water. Both memories and water are the source of life, the most essential resource in sustaining life as well as the proof of being alive. Just as there can be no life if there is no time, humans form their identity through memories and they are existences that continuously change like the water. As it is impossible to put an end to where the water ends, it is impossible to control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memories. ● 'A Dream to Return' is the place for memories-dreams which are paradoxically created anew everyday as they already became or is becoming true. It is a place which cannot be dreamed of in linear time; it is where all things come to, start and return eternally. To most of the people, memories of childhood keep on approaching like the photographs of Park Kyoung Tae. However, you will not be able to discover the dream if you view the photographs as the subject of interpretation. It seems our consciousness is largely divided into two when it comes to observing 'photographs' in general. One is visual perception activity which tries to analyze and understand the messages of the photographs through visual and formal elements such as the composition, color and subject. The other is an attitude of 'imagining' and not 'perceiving', 'aiming' at images by activating the formal elements of photographs. What then, could be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When a photograph is perceived as a subject/object of analysis, you will ultimately be left with a plain paper/photographic paper, but if you aim for an image, then you gain a different new shape-dream. A photograph can either become activated as an imaginary image or left as a flat piece of paper. Jean-Paul Sartre distinguished this as 'perception' and 'image', and said they take place because the aims of the activities are different. In short, photographs can become the subject of analysis or newly created as imaginary images depending on the aims and orientation of the viewers. Park Kyoung Tae's 「A Dream to Return」 precisely presents those two ways; a smooth photographic paper with easily interpreted messages or 'a dream to return' which is created continuously in the places of memories. Are memories-photographs simple fossilized existences or are they existences that continue to change their shapes like a phantom? Different methods of existence memories have which will never be revealed to those who rush to draw the essence out of photographs – voluntary images which only start to appear on the level of imaginary consciousness where memories exist in the state of absence or nonexistence can be witnessed in Park Kyoung Tae's photographs. ■ CHOI Yeonha

Vol.20171026c | 박경태展 / PARKKYOUNGTAE / 朴耿台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