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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02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배정혜-관점과 배열의 차이로 나타나는 꽃 ● 작가는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는 대신 이를 사진으로 마감했다. 손을 대신해 기계적으로 실현된 꽃 이미지가 화면 가득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진은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고 지시하며 실재를 대체한다. 커다란 꽃 사진/꽃 이미지가 화면의 중심부에 심연처럼 자리하고 있다. 꽃의 전체적인 형상이 한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중심부에 근접한 혹은 어느 일부분을 절취한 시선이다. 패널에 밀착된 사진위로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천, 노방이라 부르는 한복 천이 매끄럽게 감싸고 있다. 어른거리는 듯한, 초점을 묘하게 흔드는 피부의 개입이다. 바탕 면에 막을 친 이중의 화면이자 일종의 틈, 사이, 공간이다. 순간 사진은 촘촘히 직조된 섬유질 밑으로 잠기면서 은연중 가려지고 은폐된 듯한 표면을 흐릿하게 투영한다. 그로인해 사진의 명징성, 기록성, 재현성은 순간 약화되고 실재는 흐려지고 지워지면서 소멸되는 듯한, 혹은 아득한 시간의 연무 속으로 흩어지는 것과도 같은 감상을 자아낸다. 보여지면서도 사라지는 듯한, 나타나면서도 가라앉는 듯한 이상한 시각의 모순이 교차하고 있다. 리얼리티가 있는 구체적인 사물과 현실계에서 출발했지만 이런 연출로 인해 다분히 꿈과 시적인 장면, 리얼리티 너머의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이 이중의 화면은 사진과 천이라는 오브제로만 이루어졌다. 수공의 흔적, 손의 내음과 기억을 간직한 붓질을 대신해 사진과 레디메이드인 천이 화면/회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대상에 기생해나가는 사진이미지를 통해 형상이 대체되었고 손의 놀림과 모필의 흔적은 증발된 체 매끈한 화학적 표면만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덧씌운 투명하고 매끈한 노방 천의 일부에 조밀하게 바느질한 자국이 특정 형상(꽃잎)을 촉각적으로 안겨준다. 또는 작은 크기의 빛나는 원형의 구슬도 매달려있다. 바느질이 그리기를 대신하고 실의 궤적이 붓질, 물감의 물성을 대체하고 있다. 다소 차갑고 냉정하며 즉물적인 사진을 부드러운 촉감의 천으로 감싸면서 사진이미지의 객관성, 기록성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한 후 그 위에 작가의 손길, 체취를 얹혀 놓았다. 그 바느질, 시침 자국은 바닥에 깔린 사진이미지에 부단히 개입하고 간섭한다. 휘날리는 작은 꽃잎이거나 떠다니는 나비나 벌레들, 혹은 유동하는 문자들이 그것이다. 그것들은 바닥에 자리한 이미지로부터 분리된 별도의 존재이면서도 바탕과 관계를 갖고 있는, 공모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미지들이다. 바느질로 상형된 나비나 벌레는 실제 향기 나는 꽃을 향해 몰려들고 날개 짓을 하는 것 같고 작은 잎들은 꽃에서 떨어져 나와 걷잡을 수 없이 날리는가 하면 한글과 알파벳 문자들 역시 가독성의 체계에서, 문법의 규칙성에서 빠져나와 눈처럼 날린다. 유행어이자 신조어와 같은 다양한 합성어들이자 모호하고 불안정한 문자들이다. 그 문자는 순수한 시각성의 기호로 부유한다. 그 부박 하는 불안한 문자의 저 안쪽에 한 송이 꽃이 확고한 자태를 드러내며 피어난다. 피어나고자 한다.
배정혜의 화면 또한 단일한 평면뿐만 아니라 복수의 화면들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몇 개의 화면들이 서로 잇대어 있거나 좌우로 이어나가 전개된다. 꽃의 일부를 클로즈 업 해서 촬영한 이미지를 확대해 보여주는 낱개의 화면들은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여주는 한편 하나의 대상으로부터 출발한 무수한 관계성을 암시하게 해준다. 그러자 꽃은 '굳건하고 불변하는 산'처럼 혹은 또 다른 풍경처럼 다가온다. 그 위로 지극히 가볍게 꽃잎들이 날린다. 불변과 진중함을 보여주는 산과 대비되는 동시에 외형과 다른 내면의 양상을 반영하는 연출로 다가온다. 그런가하면 사물에 달라붙어 보는 시선이자 일정한 거리가 무산된 데 따라 그만큼 또 다른 세계, 풍경을 펼쳐 보인다. 꽃을 바라보는 파편적인 시선들이자 단일하고 총체적인 시선에 저항하는 복수화 된 시선, 동시에 무수한 관계 속에서 변화와 차이를 거듭하고 있는 존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것은 익숙하고 관습적인 시선에서 벗어난 바라보기이자 무수한 조합으로 인해 드러난 꽃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한 인식을 유도한다. 대상은 정해진 고정된 모습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보여질 수 있다는 것!
배정혜가 보여주는 대상은 분명 꽃이지만 다양하게 뜯겨진 시선에 의해 다른 존재로 변화를 거듭한다. 본래 고정된, 변함없는 실체는 없다. 불가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항상 진행되는 무상한 변화만이 본체라고 말한다. 이른바 제행무상諸行無常이 그것이다. 동일성에 반하는 것은 '차이'다. 무상을 본다 함은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본다는 의미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차이뿐이니 이를 '차이의 존재론적 일차성'이라 부른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실상은 무상이고 차이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대상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 언어로 규정하는 것, 재현이라는 단일한 방법론에 의거해 사물을 지시하고 규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상을 지우는 동일성의 힘과 의지를 가동시키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미술은 단일성과 통일성을 목표로 하지 않고 개별성과 무수한 차이를 확인하는 장이며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소소하고 구체적인 활동들의 집합이 아니던가?
작가는 꽃을 다양한 시각, 낯선 시간과 거리 속에서 들여다보았다. 어떤 모습이 꽃의 진실이거나 참된 모습일까? 이는 비약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로 역류한다. 거울에 비친 나는 누구인가? 나를 보는 무수한 타자들의 시선과 나라고 믿는 나의 시선들, 이 이질적이고 무수한 차이를 지닌 시선들이 교차하고 미끄러진다. 사실 모든 '나', 모든 '자아'란 결국 그가 속한 '세계' 안에 있는 것이고, 그 세계의 규정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온전히 내가 마음먹은 대로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및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다. '존재'한다는 것은 가족, 친구, 지인, 타인을 모두 포함한 더 넓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주체는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출발하는 불변의 출발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텅 빈 자리'일 뿐이며, 그걸 둘러싼 관계 속에서 채워지는 결과물에 불과하다. 결국 배정혜의 작업은 광의의 자화상에 해당한다. 꽃은 특정 대상이자 자아를 대리한다. 다기한 시점에 의해 다르게 다가오는 꽃의 모습, 조각난 이미지들의 결합과 해체로 이루어진 꽃은 자아를 보는 여러 관점의 충돌을 반영하고 그러한 꽃/자아를 보듬고 치유하고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촘촘히 박아나가는 바느질, 부드러운 천의 감쌈, 그리고 꽃의 향을 향해 모여드는 나비와 벌레 이미지의 개입이다. 이 모든 것들은 분열된 자아를 위무하는 상징적 연출이다. 작가는 단일한 총체적 시점을 지우고 변화무쌍한 차이를 노정시키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생각하게 한다. 안정적이고 고정된 자리가 아니라 다기한 관점과 모호함 속에서도 여전히 긍정적인 생에 대한 꿈을 망실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 박영택
화가, 엄마, 며느리, 딸, 친구, 누군가의 배우자,,,, 다양한 내 역할에 따라서 타인들이 나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모습도 다르겠지. 내가 보는 거울속의 난 이러한데 진짜 내 모습은 아닌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파편들이 모여서 진짜 내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난 주목받는 예쁜 꽃이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숨어버리고 싶은 늘 이중적 모순된 마음이 공존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배우자로서 나서야 할 때도 있고 숨기고 싶을 때도 있고...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느낌, 그 낯설음도 어차피 내 모습이거늘 훤히 비치는 천으로 조금이라도 가려본다. ●조각조각 나뉘어진 꽃이 다른 모습으로 모여 이게 나라고 외친다. 그 위에 따스한 위로의 손바느질이 정성을 다해 어루만져주고 나비, 벌레 들도 여전히 향기나는 꽃인양 모여든다. ●내 속에 떠도는 기억들은 크고 강한 모습인 듯 연약함을 숨기고 흩날리는 반짝임으로 교란시킨다. 불확실한 말들이 모여 기억의 물결을 이루고 읽히고 싶으나 읽기 어려운 언어로 모호한 삶을 노래한다. 따로 또 같이 모여진 조각난 내 모습이, 기억이 여전히 만들어져가고 있다. ■ 배정혜
Vol.20171025a | 배정혜展 / J. Bae / 裵楨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