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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씨알콜렉티브 CR Collective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20 일심빌딩 2층 Tel. +82.(0)2.333.0022 cr-collective.co.kr
서은애가 갑옷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 속에 늘 등장하던 자화상이 마치 가면이었다는 듯 이목구비조차 온전치 않은 익명의 달걀형 얼굴이 전면에 등장하였고, 때때로 이 인물은 팔다리가 없거나 잘려나간 신체를 붕대로 감고 있다. 인물을 둘러싼 황량한 배경 역시 특정할 수 없는 익명의 장소들이다. 늘 전통 산수와 같은 특정한 배경에 자화상 같은 특정 인물이 등장했던 과거 그의 그림들을 떠올려볼 때, 알 수 없는 배경에 알 수 없는 인물이 등장했다는 것은 보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변화이다. 표정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인물들이 고통과 절망 속에 있다는 것은 쉽게 느껴진다. 절단된 신체와 피를 머금은 붕대, 팔다리를 대신한 엉성한 나뭇가지들과, 그러한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엉성한 인물의 자세는 인물의 고통을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서은애의 작업은 과거에도 늘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초기에 그것은 키치적 요소들을 이용한 '우스꽝스러움'이었고, 그 다음에는 과거 거장들이 구현한 세계 속에서 즐겁게 노니는 '유쾌함'이었으며, 최근에는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허무에 직면한 '쓸쓸함'이 그의 작품 전체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가 담아내고자 하는 정조에 따라 때로는 만화나 화투장 같은 대중적 이미지들이 사용되기도 하고, 섬세하게 재현된 옛 그림들이 배경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실제 공간에 설치된 사물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작품의 주된 조형요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전통과 현대를 담대하게 오가는 서은애의 방식은 일종의 전형성을 구축해 왔으며, 그의 작품임을 보증하는 특정한 요소들이 다음번에는 어떠한 바리에이션으로 다가올지를 늘 기대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그러한 관객의 기대를 크게 배신하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를테면 낄낄거리고 웃다가, 여유자적하게 세상을 즐기며 놀다가, 인생의 회한과 삶의 허무함을 담담히 이야기하다가, 갑작스럽게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과도 같다. 이번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과 그만큼의 심리적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그의 작품들이 늘 기성의 어떤 것들에 '기대어' 있었는데,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들에서는 '참조'될 만한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도 크게 달라진 점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서은애의 방식으로 여겨졌던 정교하게 공들인 붓질과 같은 기법적 요소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세필로 정성스럽게 마무리해 왔던 과거의 흔적들과 그것을 지워내려는 거칠고 어색한 붓질이 공존하고, 그림을 완성한 이후에는 제거해야 할 것들을 그대로 제시하여 날것 그대로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과거로부터 달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애써 구축한 과거의 '서은애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 이윤희
"메마른 날들을 가로질러 / 오래도록 걸었다. / 눈도 코도 입도 없이 // 넘치도록 많은 생각 / 어긋나는 마음 / 사납게 달려드는 말들을 피해 / 낯선 골목을 유령처럼 흘러 다녔다. // 마치 한 번도 열린 적 없었던 것처럼 / 미동도 없이 견고한 저 문들 // 무수한 두드림에도 / 굳게 닫힌 문들은 / 도무지 열리지 않았고 // 먼지처럼 바스러지는 한 줌의 낡은 몸은 / 검은 탄식을 낮게 흘리며 / 삐걱삐걱 절뚝이는 다리로 / 오늘도 아득한 시간 속을 서성인다."
소통의 부재와 단절, 그 스산함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상처 입은 인간상 ● 동양의 옛 그림들을 배경 삼아 현대인의 삶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라는 물리적 간극을 경쾌하게 뛰어넘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과 마음이 존재함을 화폭 위에 유쾌하게 담아내고자 했던 내 작업들은 몇 년 전부터 삶의 회한이나 쓸쓸함 등 현실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스산한 정서를 덤덤히 그려내는 방식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 예전 그림 속에서 생기발랄하게 표현되었던 수려한 산수배경은 차갑고 딱딱한 회색조의 콘크리트 건물배경으로 대체되었고, 화면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던 유쾌한 인물들은 팔이나 다리가 없는 상처투성이의 인물로 대체되었다. 고아하게 다듬어 붓자욱을 남기지 않았던 전통적 채색방식도 거칠고 둔탁한 필치로 전환되었고 그림의 표면은 울퉁불퉁한 요철감까지 느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곱게 정제된 것으로부터 잘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으로의 시선 이동과 더불어 정서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호기로움이 이제 중년을 넘어서고 있는 삶의 무게감 앞에서 내면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아프게 드러내며 보듬는 방향으로 옮겨간 셈이다.
이번에 발표하는 신작들에서는 굳게 닫혀진 문들 앞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황망히 서성이고 있는 벌거벗은 인물을 그려냄을 통해 현대인들의 인간관계 속에서 쉽게 관찰되는 진실한 소통의 부재와 단절이 만들어 내는 막막함과 스산한 아픔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 서은애
Vol.20171017e | 서은애展 / SEOEUNAE / 徐恩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