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의 그림자 Shadow of Sagunja

선미展 / SUNME / 善美 / painting   2017_0928 ▶ 2017_1022 / 월요일,10월 3일~5일 휴관

선미_사군자의 그림자 Shadow of Sagunja展_아트스페이스 에이치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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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 블로그_blog.naver.com/magenta05 인스타그램_@artist_sunm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주)평안엘앤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10월 3일~5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성북구 성북로 49 운석빌딩 2층 Tel. +82.(0)2.766.5000 www.artspaceh.com

그림자로 피어난 사군자 ● 아트스페이스 에이치는 오는 9월 28일 선미의 개인전 『사군자의 그림자(Shadow of Sagunza)』를 오픈할 예정이다. 전시타이틀에서 이미 암시하듯이 그녀는 이번 개인전에 단 4점의 신작들만 전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4점'이란 매화(梅花)·난초(蘭草)·국화(菊花)·대나무(竹) 등 사군자(四君子)를 뜻한다. ●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사군자는 매·난·국·죽의 특성을 덕(德)과 학식을 갖춘 군자(君子)의 인품에 비유한 것이다. 매화는 이른 봄에 추위를 무릅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특성으로 인해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고,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리는 향기로 인해 군자의 고결함을 나타낸다고 여겨졌고, 국화는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꽃을 피워 군자의 은일자적함에 비유되었으며, 대나무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그 푸름을 잃지 않는 특성 때문에 군자의 높은 품격과 강인한 기상으로 간주되어왔다. ● 물론 선미는 이전에도 '사군자' 중 매화와 대나무를 모티브로 작업해 왔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구작들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구작들은 사진이나 실물을 직접 보고 작업한 것인 반면, 이번 신작들은 일명 '명화'를 모티브로 차용하여 작업한 것이다. 그리고 구작들은 화려한 컬러로 작업된 것인 반면, 신작들은 단색으로 작업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번 신작들 역시 구작들과 마찬가지로 선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요철(凹凸)' 작업으로 제작되었다. 이를테면 하드보드지를 칼로 일일이 오려내어 채색하고 겹겹이 쌓듯이 접착제로 중첩시켜 만든 '요철' 작업 말이다. ● 그런데 선미의 구작들은 화려한 컬러로 채색되어 있어 요철에 의한 그림자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반면, 이번 신작들은 화면 전체를 단색이나 투톤으로 처리하여 요철로 인해 만들어진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와이? 왜 선미는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일까? 혹 그녀의 작품이 '요철'로 이루어진 작업이란 점에서 요철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왜 그녀는 사군자를 조선시대의 명화를 차용하여 제작한 것일까? 선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선미_사군자의 그림자-국화 Shadow of Sagunja – chrysanthemum_부분

● "근래에 사군자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내가 사진이나 실물을 보고 작품을 했을 때와는 다른) 명화 속의 구도에서 아름다움과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명화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찾아 볼 수는 있지만, 현대미술과는 달리 자주 접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고전 미술은 일반적으로 특정계층에게 향유되어왔고, 더 넓은 계층이 한국의 명화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군자는 서양의 명화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품이 있고 매력이 있다. 또한 서양의 명화는 많은 작가들이 재해석했지만, 한국의 명화는 많이 다뤄진 적이 없었다.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의 명화를 본인의 현대적 재료와 기법으로 재해석해보고 싶었다." ● 누군가 조선시대의 사군자를 재해석하려면 무엇보다 조선시대의 사군자를 분석해야만 할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시대의 사군자 분석은 피할 수 없는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말이다. 물론 그/녀는 조선시대의 사군자 분석을 통해 문제제기나 새로운 대안도 모색해야만 할 것이다. 그때 꼭 필요한 것이 현실인식이다. 말하자면 누군가 조선시대의 사군자를 재해석하고자 한다면, 조선시대의 사군자에 대한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선미_사군자의 그림자-매화 Shadow of Sagunja – plum_ 하드보드지에 아크릴채색_152.5×100cm_2017

선미의 '그림자-매화'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백매(白梅)'를 모델로 삼아 작업한 작품이다. 선미는 단원의 '백매' 여백을 검정으로 물들어놓았다. 그리고 단원의 '백매'를 '홍매'로 전이시켜 놓았다. 따라서 선미의 '그림자-매화'는 고아한 품격을 자아낸다. 그것은 마치 밤에 핀 매화처럼 고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 선미는 단원의 '백매'에 그려진 고목(매화나무)을 만년에 접어든 단원으로 그리고 붉은 꽃봉오리를 그의 '정신'으로 재해석해 놓았다. 이를테면 선미는 '그림자-매화'를 통해 단원의 '백매'가 올곧은 화가의 지조와 절개를 드러낸다고 말이다. 따라서 선미의 '그림자-매화'는 단원(의 '백매')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Hommag)라고 할 수 있겠다.

선미_사군자의 그림자-난초 Shadow of Sagunja – orchid_ 하드보드지에 아크릴채색_150×83.5cm_2017

선미의 '그림자-난초'는 추사 김정희의 일명 '불이선난(不二禪蘭)'을 모델로 삼아 제작한 것이다. 추사의 '불이선난'을 '부작란(不作蘭)'으로 부르기도 한다. 부작란(不作蘭)은 '난을 그리지 않은 것'을 뜻한다. 따라서 추사의 '부작란도(不作蘭圖)'를 문자 그대로 직역하자면 '난초를 그리지 않은 난초 그림'이 되는 셈이다. ● 추사의 '불이선난'에는 제발들을 적잖다. 그런데 선미의 '그림자-난초'에는 제발들이 부재하는 난초만 '그려놓았다'(기보다 차라리 그림자로 '드러나게 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 점에 관해 선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 "추사의 '불이선난'은 자유분방한 기이한 서예(제발)들로 인해 그림의 품격에 손상을 입힌 것으로 보였어요. 그러니까 청초하고 기품 있게 그려진 난초 그림이 서예의 위세에 눌려 왜소하게 보인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품격이 있어 보이는 난초 그림 자체만을 표현하고 싶어 제발들을 부재시켜보았어요."

선미_사군자의 그림자-국화 Shadow of Sagunja – chrysanthemum_ 하드보드지에 아크릴채색_213×55cm_2017

선미의 '그림자-국화'는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국석도(菊石圖)'를 모델로 삼아 작업한 것이다. 영화 『취화선』에서 오원은 자신의 그림에 문기가 없다는 말에 "꼭 그림 안 되는 놈들이 시문(詩文)을 적어 넣어서 세인들의 눈과 귀를 속여먹으려 든다"고 비꼰다. 하지만 그의 '국석도'에 쓰여진 제시(題詩) 역시 대필한 것이다. 선미는 오원의 뜻에 따라 '그림자-국화'에 제시를 삭제해 놓는다. 그 점에 관해 선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저는 그 제시가 대필한 것이라는 점에서 삭제하여 오원의 그림만 오롯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관객이 대필한 제시를 삭제한 오원의 그림만을 보게 된다면, 그 그림에서 오원의 강렬한 필법(筆法)과 묵법(墨法) 그리고 특이한 설채법(設彩法)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그 점을 저의 '그림자-국화'에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방법론이 아닌 현대적 방법론으로 말이죠." ● 선미의 '그림자-국화'는 노랑 단색화로 표현된 작품이다. 선미는 다양한 국화 색들 중에 노랑을 선택했다. 왜 그녀는 다양한 국화 색들 중에 노랑을 선택한 것일까? 선미의 답변이다. ● "우리 선조는 황색을 으뜸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노랑은 음양오행에서 중앙의 땅(地)을 상징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노랑은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지요. 저는 오원의 '국석도'를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重陽節) 때 임금이 자신이 아끼는 신하에게 하사한 '국화도'를 상상하며 표현해 보았습니다." ● 선미가 '그림자-국화'를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국화도'로 표현해 보고자 했다는 점에서, 선미의 '그림자-국화'는 오원의 '국석도'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겠다.

선미_사군자의 그림자- 대나무 Shadow of Sagunja – bamboo_ 하드보드지에 아크릴채색_230×82.5cm_2017

선미의 '그림자-대나무'는 우봉 조희룡의 '묵죽도(墨竹圖)'를 모델로 삼아 작업한 것이다. 그것은 자주색과 붉은 색 등 투톤으로 제작된 것이다. 선미의 '그림자-대나무'는 우봉의 '묵죽도'에 표현된 농묵과 담묵의 대나무들을 자주색과 붉은 색으로 전이시켰다. 그런데 우봉의 농묵과 담묵은 자연스런 반면, 선미의 자주색과 붉은 색은 그에 비해 강렬한 대비를 드러낸다. 왜 선미는 우봉의 농묵으로 표현된 대나무를 과하게 강조한 것일까? ● "이번 '그림자-대나무' 경우는 매화나 난초 그리고 국화와 달리 구도에 대한 생각을 피력해 보고 싶었습니다. 구도의 중요성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꼭 구도상 필요한 오른쪽 중간에서 하단으로 쓰여진 기다란 제발 역시 삭제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저의 '그림자-대나무' 구도는 전반적으로 불안정하게 보이게 됩니다." ● 그렇다면 선미는 관객에게 우봉의 대담한 구도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자신의 작품을 '희생'시킨 것이란 말인가? 우봉은 추사에 가려져 그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선미는 추사의 심복이란 이유로 유배를 당했던 우봉처럼, 그녀는 우봉의 독자적인 화풍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유배'를 택한다. 더욱이 그녀는 우봉의 묵죽(墨竹)을 적죽(朱竹)으로 표현하여 행복을 기원한다.

선미_사군자의 그림자 Shadow of Sagunja展_아트스페이스 에이치_2017

선미의 '그림자-대나무'는 추사의 심복이란 이유로 유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배지에서 뛰어난 집필과 작품활동을 계속했던 우봉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선미가 본 우봉의 '묵죽도'는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그 푸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처럼 군자의 높은 품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 혹자는 조선시대에 묵죽도가 널리 그려졌던 이유들 중에 하나로 정치적 엘리트였던 일부 문인들이 자신들의 이상형인 군자(君子)를 대나무에 투영한 것으로 들곤 한다. 그런데 사군자가 활발하게 그려졌던 조선시대를 보면 사회와 정치 문제로 복잡했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시 '사군자'는 당대 부정부패로 물든 사회와 정치의 문제를 꼬집은 것이 아닌가? 선미는 '그림자-사군자'를 작년 초부터 작업하기 시작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작년 대한민국은 다시다난했지요. 특히 '국정논란'으로 전 지역에서 촛불집회가 올 봄까지 열리기도 했지요. 당시 정경유착 등 정치 및 사회의 문제들을 보면서 사군자의 '뜻'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사군자를 '그림자'로 표현해 보기로 했지요.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적폐청산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 시기에 우리 선조가 강조했던 군자의 모습을 되새김질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림자-사군자' 작업을 했습니다." ■ 류병학

Vol.20170928d | 선미展 / SUNME / 善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