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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효령로72길 60 1전시실 Tel. +82.(0)2.2015.8133 www.kepco.co.kr/artcenter
여행으로 머물다 ● 특별할 것 없는 공간에 깃든 특별할 것 없는 시간, 그리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버스 창문에 맺힌 빗방울의 불규칙한 무늬들. 여느 하루의 끝자락에 내려앉은 저녁놀의 영롱한 입자들. 낯선 도시의 후미진 골목 구석에 수놓인 가냘픈 거미줄들. 어둑한 강변을 거닐다가 문득 눈에 띈 강물에 비친 아파트의 아른거리는 불빛들. 그렇다. 그냥 지나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장면들이다. 빗줄기 사이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버스들은 무수히 많고, 오래된 도시라면 후미진 골목의 구석들은 곳곳마다 널려 있고, 맑은 하늘의 해질녘이면 어디서나 저녁놀이 짙게 내려앉아 있고, 강변에 늘어선 아파트 단지는 예외 없이 밤마다 아롱거리는 불빛의 그림자를 물살의 굴곡을 따라 새겨 넣는다. 빗방울, 거미줄, 저녁놀, 그림자와 같은 것들은 보잘것없고 지극히 사소한, 심지어 연약한 대상들이다. 누구든 쉽사리 그것들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그것들을 정말로 목격한 적이 언제였는지 자문해보면 의외로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흔하디흔한, 빈번하게 눈앞에 머물렀을 것임에 분명한,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마법 같은 사건, 그리고 그런 사건을 목도하는 찰나의 시선, 그것이 오정선의 『새벽녘의 시선』이다.
오정선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설치작업을 구사하는 작가로 알려져 왔다. 거울, 비디오, 유리, 아크릴뿐만 아니라 이따금 전구나 수증기, 연기까지 동원하여 관객을 낯설고 기이한 상황으로 인도하는 작업이 여럿 있었으니 그에 대한 이런 규정은 꽤나 타당한 것이었다. 그가 관객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연출한 인위적인 장치들은 이미지의 파편화, 의미의 변형, 드러냄과 감춤의 대위법을 구사함으로써 관습화된 사고의 방식들을 뒤흔들었다. 거울은 관객의 얼굴과 신체를 충실하게 되비치기는커녕 왜곡하고 오염시키고 해체시킴으로써 관객의 정체성을 의문에 부쳤고, 수증기와 연기는 투명과 불투명이라는 양극단 사이에 펼쳐진 반투명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시화함으로써 이분법적 인식의 안이한 패턴을 교란시켰다. 이 기이한 마주침의 환경 속으로 내몰린 관객들은 마치 도수가 안 맞는 안경을 낀 것처럼 인식의 초점을 맞춰 보려 이리저리 신체를 움직이면서 자아와 타자, 소통과 불통, 현실과 비현실의 불확실한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곡예를 펼쳐야 했다.
오정선의 이러한 기존의 작업들에 견주어 볼 때 이번 전시 『새벽녘의 시선』은 외관상 매우 달라 보인다. 먼저 눈에 띄는 차이는 작업을 구성하는 재료의 성격이 매우 일관된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의 작업들에서는 다양한 재료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이번에 전시된 작업들은 대부분 유리, 크리스털, 거울처럼 연약해 보이고 기본적으로 투명한 성질의 재료를 사용한 것들이다. 예외적으로 「악보의 쉼표」는 실을 주재료로 삼은 작업이긴 하지만 실이야말로 매우 연약하며 그물과 같은 작업의 형태가 그 자체로 투명한 성질을 띤다는 점에서 다른 작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전시에 쓰인 유리, 거울, 크리스털, 실은 모두 연약해 보이고 투명한 성질을 간직한, 이른바 '유리적인(glasslike)' 재료들이다. 미국에서 유리를 전공한 작가가 이런 재료들을 다루는 게 그 자체로 특이한 일은 아닐뿐더러 실제로 그는 이전부터 종종 유리를 작업의 재료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다른 종류의 재료들이 배제된 까닭에 연약함과 투명함이라는 '유리적인' 속성이 더욱 부각되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흔하고 사소한 것들이 문득 존재감을 과시하게 되는 찰나의 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듯싶다. 한편으로 유리의 연약함과 투명함은 사소한 대상들의 취약성과 비가시성을 은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빛과 만난 유리가 반짝이는 장면은 그 동일한 대상들이 한순간 찬란하게 현현하는 변용의 사건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공들여 조성한 조명이 그것을 투과하거나 반사하면서 만들어내는 아우라와도 같은 영롱한 그림자이다.
다음으로 언급할 만한 차이는 작가의 이전 작업과는 달리 이번에 선보인 작업들은 관객의 행동(action)보다는 관조(contemplation)를 이끌어낸다는 데 있다. 물론 이번 전시의 작업들도 모두 일종의 설치작업으로 분류되겠지만 「잠시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나 「여행자의 시선」 같은 작업은 회화에 가까운 평면성을 띠고 있고, 「악보의 쉼표」나 「또 다른 해석」 같은 작업들도 관객과의 상호작용적인 요소가 배제된 정적인 조각에 가까워 보인다. 따라서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각각의 작업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관조의 태도로 작업을 응시하게 된다. 요컨대 작가의 이전 작업이 움직여야 보이는 것들에 주목했다면 지금의 작업은 멈춰야 보이는 것들에 관련된다. 현란한 연주를 지시하는 음표가 아니라 그것을 멈추게 하는 쉼표를 내세우는 것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연주를 중단함으로써 공간을 채우고 있던 사소하고 희박한 사물의 웅성거림을 비로소 들리게 만든 것처럼, 이번 전시는 분주하고 맹목적인 일상의 연주를 멈춰 세움으로써 가시화될 권리를 누리지 못했던 흔하고 연약한 사물이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는 쉼표의 자리이다. 이곳에서 버스 창문의 빗방울들은 독특한 형상들의 영롱한 별자리처럼 드러나고(「잠시 멈추면 보이는 것들」), 해질녘 내려앉은 저녁놀은 빛의 산탄처럼 흩뿌려진 대기의 추상표현주의 작품과 같고(「사소함의 합」), 후미진 길모퉁이의 거미줄은 자연의 치밀하면서도 유연한 기하학을 과시하며(「악보의 쉼표」), 강물에 비친 아파트의 불빛은 거꾸로 매달린 찬란한 샹들리에처럼 빛난다(「또 다른 해석」).
오정선은 잠시 멈춰 서서 머무르는 무위와 관조의 몸짓을 뜻밖에도 여행이라고 부른다.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여행.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는 여행. 이는 언뜻 보기에 상당히 모순적인 선문답 같지만, 일상에 휩쓸리지 않고 잠시라도 가만히 멈춰 서서 사물을 비로소 사물로서 체험하는 비일상의 시간을 여행이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거미줄이 쳐진 베네치아의 골목길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인 것은 아니다. 비 내리는 오후의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도, 저녁놀이 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집 앞의 강가를 거닐면서도 여행은 시작된다. 즉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태도와 시선의 변경이 이 여행의 핵심인 것이다. 「여행자의 시선」은 여행으로 머무르기 위해서 갖춰야 할 시선을 제시한다. 이 설치작업은 나란히 걸린 세 개의 동일한 타원형 거울을 보여준다. 그런데 각각의 거울이 반사하는 정도가 달라서 같은 사물이 거울마다 다른 명도로 비친다. 이처럼 밝음과 어둠 사이에 자리한 다양한 명도를 감지하는 시선, 또는 같은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떠올리는 시선, 또는 다른 명도의 이미지를 같은 사물로 인식하는 시선, 이런 시선이 머무름의 여행을 떠나는 자의 시선이다. 그 여행자의 시선은 같음의 다름을, 다름의 같음을 예민하게 구분해낸다.
끝으로 「같음의 발견」은 유리로 만든 일곱 개의 엇비슷한 오브제를 나란히 매달아 놓은 설치작업이다. 이 오브제들은 모두 같은 청색을 입힌 것들이지만 각 오브제마다 모양과 두께가 달라서 마치 다른 청색을 띤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조명과 오브제, 그리고 오브제와 벽 사이의 거리가 제각각 달라서 벽에 비친 오브제들의 그림자는 더욱 다른 청색의 스펙트럼을 보인다. 여기서도 같은 청색은 다른 청색으로 분산되고, 다른 청색은 같은 청색으로 수렴된다. 즉 '같음의 발견'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다름의 발견'을 수반한다. 어떤 사물과 그 거울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물과 그 거울상은 같은 형상이지만 서로 좌우가 뒤바뀐 다른 형상이기도 한 것이다. 또는 새벽녘과 저녁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밤과 낮의 경계로서의 새벽녘은 낮과 밤의 경계로서의 저녁녘이 뒤바뀐 시간인 것이다. 같음과 다름의 사이, 사물과 거울상의 사이, 낮과 밤의 사이, 또는 밤과 낮의 사이, 이 모든 불분명한 경계에 멈춰 서서 시선을 거두지 않을 때, 투명과 불투명 사이에 접혀 있던 무한한 반투명의 스펙트럼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펼쳐진 '유리같은' 것의 세계를 목격하는 시선이 곧 머무르는 여행자의 시선일 것이다. ■ 김홍기
Vol.20170927b | 오정선展 / OHJUNGSUN / 吳政宣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