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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914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센터 쿠 ARTSCENTER KUH 대전시 유성구 엑스포로97번길 40 골프존 조이마루빌딩 6층 Tel. +82.(0)42.864.2248 blog.naver.com/kyj2969
어쩔거야, 나란히 나타난 이 죽음과 부활-이지현의 작품들 ● 커브는 우아해. 우리의 손은 때로는 아주 우아하지. 시간을 부드러운 핸들처럼 돌리며 커브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 곳 직전에 이르러서도 두려움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듯이 커브를 돌아본 적이 있는지. ● 직선에 익숙한 우리는 곡선에 대해 두려움이 가득하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기만 한다면 앞이 벼랑이라도 두렵지 않겠니? 단지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니? 보이지 않아도 우아한 시간이 있지. 우아함이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시간. 우아함에는 비장함과 경이로움이 함께 들어있지. 우아한 것은 위험해서 비장한 거야. 단 한 번의 흔들림으로 모든 포즈를 잃기 쉽거든. 그러나 우아함은 경이로운 거야. 단 하나의 포즈로 위험을 뛰어 넘으니까. ● 직선을 커브로 만들어 본 적이 있니. 보이는 것은, 직선은, 주어진 길이지 개척해가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빠른 길을 두고 왜? 라고 했지만 직선을 다시 커브로 만들어 본 적이 있니. 두려움을 뛰어넘는 곡선의 경이로움을 만난 적이 있니. ● 커브. 새들의 날개. / 커브. 갑자기 모르는 곳으로 몸의 방향을 바꾸는. / 커브. 몇 번, 혹은 몇 백 번, 혹은 몇 천 번의 전생. / 미래는 우리의 전생. / 다시 돌아가는 미래여서 우아하다. // 여기, 직선을 다시 곡선으로 만드는 책
글자들이 종이 속으로 들어갔다. 남김없이 다 펼쳐졌다. 여기가 세계다. 종이와 글자들은 함께 직선의 세계로 편입되었다. 누가 먼저 질서를 잡기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 이 지상에 생겨난 이후 변하지 않는 직선의 형태. 책. 이것에게 우리는 무엇을 이토록 오래 묻는가. 이 속에서 내내 무엇을 찾는가. 이 속에 무엇이 있다고 믿고 있는가. 책. 글자들이 기거하는 종이. 이상한 묶음. 인간이 수 천 년 동안 거듭하는 일... 180쪽...250쪽...2500쪽... 책. 이 속에서 '글자들' 아니 '말' 아니 '언어'는 무엇을 꿈꾸는가. 꿈꾸는 언어를 따라가는 우리가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인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단 한 권의 책'을 꿈꾸었지만, 세상에는 책이 여전히 많고. '종이책의 죽음'이 빈번하게 언급되는 가운데에서도 매일 매일 종이책은 쏟아져 나온다. 세상에, 아직도, 『책』이라니.
피어난다, 책! ● 책을 한 장 한 장 펼쳐 날카롭고 가느다란 도구로 수백 번 찌른다. 글자는 글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찔린다. 그런 책을 새로 겹겹이 쌓기도 하고 둥글게 말기도 하며 전시장 한 벽을 다 채우기도 한다. 문학, 고전, 성경, 악보, 잡지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단 1960~1970년대 만들어진 헌책들로만 작업한다. '오래된'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세상을 깨달은 시점"에 방점이 있다. ● "어릴 적 죽은 토끼의 사체가 부패되는 과정"과 "아버지의 서재에서 누렇게 변해가는 수많은 책들을 보던" 체험이 이런 방식의 책 작업으로 이어졌다. "활자를 읽을 수 없을 만큼 난도질당한 책은 고유기능을 상실"(「Dreaming Books」, 황인성)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로소 단 한 권의 책으로 부활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책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는 이지현의 작업은 시대를 철저히 역행하는 방식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강애란의 '디지털북'. 책 모양의 플라스틱 상자 안에 LED 조명을 넣어 만든 색색으로 빛나는 책들이 서가에 꽂혀 있다. 내용은 없고 표지만 있는 책들. "읽는 책이 아닌 인식하는 책"(강애란)들은 흐르는 이미지 속에 놓인다. 고정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 보인다. 능동성을 갖게 된 책에서는 러시안룰렛이 느껴진다. 강애란은 시대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지현은 그와는 정반대에서 책을 보여준다. 이지현의 작품에서 책의 죽음인 동시에 책의 부활이 함께 보이는 것은 시대와는 가장 동떨어진, 그러나 책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전광영의 한지 오브제 작품은 어린 시절 한약방 천장에 매달려 있던 한약 봉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고서의 한지로 스티로폼을 싸고 그 위에 역시 같은 한지로 노끈을 만들어 묶은 삼각형 조각 수천 개를 모아 「집합(aggregation)」 시리즈를 만들었다. 전광영의 고서의 한지는 시간의 복원이나 시간의 위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래된 시간이 강조되지 않는, 그렇다고 오래된 시간의 이미지를 지우지는 않는 자연스러움을 갖게 된 시간을 보여준다. 이지현의 작품은 전광영의 자연스러움과 닮아 있지만 그러나 다른 점은 전광영의 작품에서처럼 지켜낸 시간의 이미지가 없다는 것. 글자들을 찌르는 방식은 책에서 책을, 시간에서 시간을 빼내는 방식. 그러나 빼낸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음에서 부활이 보이는 까닭.
작업 방식이 집요할 뿐 아니라 엄숙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작품이 종교적이지는 않다. 한시도 여백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한 뜨거움만이 있다.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성큼 가까이 가기 어려운, 획 돌아설 수도 없는 경건함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책이 아니다. 꽃이다. 그러나 이것은 꽃이 아니다. 낱낱이 찔린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낱낱이 찔린 시간이 아니다 계란바구니다. 담은 것, 닮은 것, 터지는 것. 그러나 이것은 계란바구니가 아니다. 읽다가 멈출 수 있는 것. 다시는 펼쳐보지 않을 수도 있는 것. 한 귀퉁이를 접어놓는 것. 한 세계를 접어보는 것. 어쩌자고 다시 돌아와, 어쩌자고 다시 피어나는 것. 이것은...
노동만이 책을 순결하게 만들 수 있다 ● 이지현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갤러리에는 적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책들은 벽에 걸려 있었다. 책들을 양쪽 벽면에 두고 섰을 때 갑자기 말들이 사라졌다. 고요해진 것이 아니라 말들이 사라졌다! 노동으로 부활한 작품인데 무겁지 않았다. 경건했으되 아름다웠다. 아름다웠지만 어느 곳을 강조한 중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에서 막 떨어져 내릴 꽃처럼 순결했다. ● 이지현이 책을 펼쳐 어느 방향에서 어느 방향으로 작업을 하는지 모른다. 어떤 두께의 책을 어느 시간대에 하는지도,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이 작업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어디가 끝일지도 모른다. 다만 고른 헌 책이 있다. 그리고 빈틈이 없을 때까지 한가지의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만 안다. 이지현의 작업 방식. 이것은 분명 노동이다. 그러나 노동만이 책을 순결하게 만들 수 있다. 책을 아는 이지현의 손이 점점 더 순결해질 것이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오로지 책을, 오로지 한 가지 방식으로 작업하는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질문들이 자꾸 자꾸 떠오른다. 책이라는 시간의 행방과 방향을 다 불러 세우게 한다. 책이어서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이 모든 질문들이 사라진다. 호명이 있던 자리에서 다시 호명이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다시 책이 오로지 책으로 나타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만든다. ● 그의 작품을 볼 때 한 자리에 오래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책이 나타났기 때문. 아니 책이 나타날 줄 알았기 때문. 책이 가장 연한 자신의 시간을 드러낼 줄 알았기 때문. 가장 최후의 그래서 가장 최초인 시간, 죽음과 부활을 함께 드러낼 줄 알았기 때문.
어쩔거야, 이 글자들! ● 이지현의 작품은 바스라질 것 같다. 마른 꽃 같다. 속이 상하다 못해 가장자리부터 타들어가기 시작한 시간 같다. 지우려고 했지만 끝내 지워지지 않은 인간의 기억 같다. 아니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나무의 기억 같다. ● 죽음과 부활이 나란하게, '소멸의 직전'이라는 커브를 목격하게 하는 이지현의 작품을 우아하다고 한다면 이 우아함의 대가는 혹독하다. 그러나 혹독하거나 지독하다고 하기에는 맺힌 곳도 욕망도 없어 아름답다. 바스러질 듯한 이 순결의 욕망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태초라고 부를 수 있을까. 비로소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소멸 직전. // 가장 위험한 커브. (웹진民硏 통권011호에서 발췌) ■ 이원
Vol.20170914k | 이지현展 / LEEJIHYUN / 李支鉉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