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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915_금요일_06:00pm
후원 / 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B동 전시장, E동 창고갤러리 Tel. +82.(0)32.760.1000 www.inartplatform.kr
얼룩진 경계 속 빛나는 것들 ● 손승범의 개인전 『얼룩진 경계 속 빛나는 것들』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 무슨 이유로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맹목적인 폭력에 관한 전시이다. 그의 회화작업 안에는 어떤 절단 혹은 휘두름의 흔적이 있다. 가령 「사라진 단원들」 속 아리아드네와 줄리앙의 흉상은 참수형을 당한 것처럼 목이 잘려 있다. 특히 아리아드네 목의 절단면은 누군가 고의로 세심하게 잘라낸 것처럼 매끈한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떨어져 나온 손과 발의 형상, 그리고 애초에 사지가 달려 있지 않은 마네킹 등은 상해를 입은 신체를 연상시키며 공중에 떠 있다. 분명 어떤 타격이 가해졌다. 여러 곳에서, 여러 방향으로, 순식간에. 하지만 이는 대상들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산이 부수어 버리지는 않을 정도의 타격이다. 어찌 보면 전시장의 한 귀퉁이에 매달린 「흩뿌려진 달」은 불가항력적인 어떤 인력 혹은 불가해한 광기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 같기도 하다. 무대의 붉은 막은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고 말하려는 듯 이제 막 닫혀버렸고 이 무자비한 폭력의 장면은 그 장막을 배경으로 태연하게 우리 앞에 상연된다.
「사라진 단원들」의 맞은편 벽면에 「사라지는 아기천사」 시리즈가 있는데 이 연작에 등장하는 천사들의 몸에는 누군가 뾰족한 것으로 도려낸 듯한 구멍이 여럿 나 있다. 그 뒤에는 예수의 탄생 또는 부활을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장식 트리, 편백나무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천사의 형상과 패턴화된 빈 공간 사이의 경계가 제법 뚜렷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천사들은 서서히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영문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패여 나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천사는 지상의 존재가 아닌 천상의 존재이므로 사람처럼 살갗을 에는 고통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손승범의 회화에는 잔혹함과 무감각함 혹은 둔감함이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부서지거나 자신의 일부를 서서히 상실하고 있는 순간에도 천사나 석고상 등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만면에 은근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인체의 형상을 반영한 이 대상들은 실상 사람과는 철저히 다른 속성을 띠고 있기에 실질적인 감정전이가 일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이 대상화된 무감각은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 자신의 기억을 변환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의 결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전시에서 다루는 폭력은 단순히 외부에서 가해진 물리적인 힘에 국한되지 않고 이상화된 기준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압력과 개인의 욕망을 포함한다. 「재생되는 꽃」의 축하화환에 새겨진 '성공', '대박', '개발'과 같은 단어들, 「사라진 단원들」과 「녹아내리는 피조물들」에 등장하는 트로피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규준이 설정되면 언제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누락된, 주변적인, 실패한 존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작가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존재들, 즉, 깃털 하나만 손상되어도 쉽게 버려지곤 하는 셔틀콕과 행사 이후 눈보라 속에 방치된 화환의 이미지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묘하게도 땅에 떨어진 셔틀콕과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야자수 잎은 천사의 날개를 닮아 있다. 그리고 이 날개 비슷한 대상들은 애초에 사회적 게임에 이용되다 훼손되고 결국 버림받기로 되어 있던 것들이다. 손승범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쓴 소설 속 화자처럼 이미 추락했거나 충돌하는 셔틀콕들을 무심하게 공중에서 내려다 보거나, 지나가는 행인의 시점으로 길에 방치된 화환을 묘사함으로써 그것들과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우리가 그의 그림 속의 '소외된' 존재들을 보면서 선뜻 애잔함을 느끼기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화면 속 장면들과 작가를 서로 무관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애써 명랑하고 키치적인 표현들 또한 앞서 언급한 방어기제로서의 부정과 왜곡을 연상시킨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폭력적인 힘을 반영한 이러한 평면 작업들 사이에 입체 작업인 「녹아내리는 피조물들」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은 버려진 탁자와 화환, 그리고 작가의 주변에 방치된 사물들, 종교의 성상 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제단이다. 손승범은 길 위에 방치된 화환을 가져와 낱낱이 해체시키고는 그 위에 우레탄 폼을 입혀 광택 있는 스프레이로 채색했다. 그런 다음 이것들을 주워 온 원형 탁자 위에 가득 배치하였다. 「재생되는 꽃」 속의 화환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있다고 느꼈던 작가가, 작고 가변적이며 취약한 꽃들을 비정형의 굳은 사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 그것들을 왜 인위적으로 반짝이게 했으며, 왜 신전 형식으로 구성했을까?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이런 일련의 질문들이 머릿속을 한참 맴돌았다. 그런 만큼 이 작업의 개별 요소들과 전시된 여타 작업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녹아내리는 피조물들」의 배경에는 달이나 별을 그린 세 개의 원형 회화가 있는데 이것들은 삼면 제단화의 형식처럼 균형을 이루어 배치되어 있다. 제단이란 신 등의 초자연적 존재에게 희생제물이나 공물을 바치기 위해 다른 곳과 구별하여 마련한 신성한 단을 뜻하는데, 작가가 이러한 구성을 취했다는 것은 이 작업이 어떤 식으로든 희생제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단 위에 놓인 사물 중에는 작은 크기의 아리아드네 흉상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미노타우로스에게 매년 희생제물로 사람들을 바쳐왔는데,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그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미궁을 잘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운 크레타의 공주이다. 미노타우로스가 매해 특정한 인원의 사람을 먹어야 했던 것과 같이 정기적인 생명의 손실을 초래하는 희생제의는 폭력의 한 양태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 폭력은 역설적이게도 사회 내부의 폭력에 대한 예방수단으로 작동한다. 제의적 희생의 대상들은 복수의 위험 없이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들, 즉 사회에서 배척된 이들이 주를 이룬다. 인간이 아닌 대체용 희생물의 경우, 온순하고 순결하며 인간과 가장 비슷한 습성을 보이는 동물 등이 주로 선택되었다. 이 희생제의의 목적은 내적 갈등, 경쟁심 등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폭력의 욕망들을 희생물에게 전가함으로써 폭력이 연쇄적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얼룩진 경계 속 빛나는 것들』展을 폭력에 대한 예방책으로 독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때 작가는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자이다. 그는 그림 속에서 천사들을 사라지게 하고 인간이나 신의 형상을 훼손하거나 위험에 처하게 하며, 버려진 꽃의 숨통을 틀어막아 오래 지속되는 빛나는 존재로 만든다. 전시장 곳곳에 작가가 연출한 이 막연한 폭력의 장면들은 사람을 닮은 무고한 존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 각각의 희생에는 빛이 머문다.
욕망(desire)이라는 단어의 라틴어원(desidus)은 별, 성좌, 천상의 요소들(sidus)로부터 멀어진다(de-)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에 나타나는 욕망의 표현들, 이를테면 결핍된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채우려는 듯한 화면 구성, 우레탄 폼으로 만들어진 부풀고 뒤엉킨 형태들, 주로 유흥을 위해 쓰이는 미러볼 등은 천상의 요소들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 언뜻 종교적 믿음을 부정하는 듯 보이는 장면들 가까이에도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편백나무나 종려나무 잎이 놓여 있으며 이제는 빛바랜 과거의 성취들이 문득 성찰할 만한 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보드라운 온기가 느껴질 것 같이 빛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은 저마다 다른 별자리를 만들어 낸다.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만화 주인공의 눈망울처럼 그렁그렁한 별빛 아래, 아아 저희가 속된 것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 손송이
Vol.20170913l | 손승범展 / SONSEUNGBEOM / 孫昇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