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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 2017_0922_금요일_04:00p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展
주최,주관 / 양주시_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협력 / 장욱진미술문화재단 후원 / 네이버_중앙일보
관람료 / 성인 5,000원 /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700원 7세 이하 영유아 및 65세 이상 노인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YANGJU CITY CHANGUCCHIN MUSEUM OF ART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Tel. +82.(0)31.8082.4245 changucchin.yangju.go.kr blog.naver.com/yuma2014
장욱진의 먹그림과 도자기그림 – 선線 ․ 선禪 ․ 선善의 예술 ● 1970년대는 화가 장욱진에게 있어서 다양한 조형작업을 시도한 새로운 시기였다. 약 10년간의 경기도 덕소 화실(1963-1974)생활을 정리하고 서울 명륜동(1975-1979)으로 올라온 장욱진은 갱지에 매직마커, 화선지에 먹, 도화(陶畫)와 판화작업 등 특정한 매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장욱진이 스스로 '먹그림'이라고 불렀던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작업들은 그가 회고했던바와 같이 자신이 아내에게 추천했던 사경(寫經)을 그녀가 선뜻 시작하지 못하자 직접시범을 보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우연히, 멋모르고 시작한 '먹그림' 작업들은 충북 수안보 시절(1980~1985)에 본격적인 작업으로 제작되었다. 그의 '도자기 그림' 작업 역시 1970년대 중반 '도자기'라는 매체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경기도에 한 가마를 빌려 도화작업을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윤광조, 신상호 등 다른 도예가와 활발한 협업 활동을 펼쳤다.
서울서 했다면 먹그림이 서울서 부터지. 근데 그게 또 멋 모르고 한 거지. …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 아요. 먹은 딱 장소가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정해졌어요. 그러니까 새벽에 맑을 때. … 가령 내 도 화도 똑같아요. 그것이 내 체질에 맞기 때문에 한 거예요. (강가의 아뜰리에, 그리면 그만이지, 장욱진, 1987) 유화작업과는 달리 붓으로 단번에 그어 완성되는 일획(一劃)성이 짙은 '먹그림'은 고요한 새벽, 자신의 수안보 화실에서 정신이 가장 맑을 때 가능한 '때와 장소가 정해진' 작업이었다. 백자에 청화(靑華)로 그린 도화(陶畫)작업 역시 개칠을 용서치 않았으며, 그래서 '청화 같이 정직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는 화가에게 먹그림과 도자기 그림은 그의 체질에 꼭 맞는 작업이었다. 자신의 정신세계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고자 했던 장욱진의 작품에는 불교철학의 선禪사상(무아무인관자재(無我無人觀自在) 나도 없고, 너도 없을 때 비로소 관자재의 경지에 도달한다.)이 깃들어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으며, 자신을 한 곳에 몰아넣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하면 거기에는 나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 장욱진의 예술정신은 선禪사상의 '무아무인관자재(無我無人觀自在)'를 떠오르게 한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탄생100주년기념전 『장욱진의 먹그림과 도자 -선‧선‧선 線‧禪‧善』展은 화가 장욱진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가 새롭게 시도했던 먹그림작품 30여점과 도자기그림 30여점을 선보인다. 장욱진의 '먹그림'과 '도자기 그림'은 화가의 예술철학과 조형정신을 응축하고,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흑과 백으로 절제된, 그러나 자유롭게 발현되고 있는 먹그림과 도자기에 그려진 심플하고 간결한 '선線'은 단순하지만 그의 예술정신을 응집한 선線의 미학이다. 그가 그은 한 획, 한 획의 선線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와 기운에는 내적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부처의 선'禪'사상이 녹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철학의 '선禪'사상을 장욱진은 실제 자신의 삶에서 실천 하고자 했다. 그는 평생을 자연에 회귀하여 도인과 같은 삶을 살며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함을 잃지 않고자 했다. 소박하지만 사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그의 선善 한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線의 미학 ● 화선지에 먹으로, 도자기에 붓으로 그려낸 '선線'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장욱진 특유의 생동감과 운동감은 붓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충분히 즐기며 그려낸 붓놀림에서 발현되고 있다. 무의식의 직관으로 인해 표현된 선線 의 조형성은 단숨에 빠른 필치로 그려내어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다. 거침없는 산의 능선, 곧게 뻗은 나무의 기둥과 활력 넘치는 나뭇가지, 여유롭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욱진 특유의 역동적인 '선'의 표현은 자유롭지만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함축하고 있다. 일필로 단숨에 그려낸 선들은 매우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물의 본질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을 압축하고 응집하여 화면의 여백에 이유를 부여해준다. 장욱진은 붓의 자유로운 운필을 스스로 '붓장난'이라며 유희하듯 즐겼지만, 붓이 너무 자유롭게 놀아나는 것을 경계했다. "먹그림을 그릴 때 운필이 자유로우면 빳빳한 붓을 쓰는 것이 제격이다. 부드러운 여느 붓도 오래 쓰다보면 바스러질 정도로 굳어지는데 마침내 그런 붓으로 그린 그림이 볼만했다"는 그의 언급에서 사물의 본질을 하나의 선線으로 응집하고 함축 시킨 만큼 붓에 의해 선이 너무 가볍게 놀아나는 것을 주의했음을 알 수 있다. 초벌구이한 분청유약에 뾰족한 못이나 대꼬챙이를 이용해 음각형태로 선묘한 도화陶畵작업 역시 화가의 단순하고 간결한 조형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불필요한 요소들은 모두 생략한 채 간결하고 절제된 선線의 표현이 소박하고 수수한 분청의 바탕과 함께 어우러져 그의 탈속적인 정신세계를 느끼게 한다.
선禪사상 ● 장욱진과 불교의 직접적인 인연은 그가 열일곱이던 해에 성홍열을 다스리기 위해 만공선사가 있는 수덕사에 정양하면서 시작되었다. 장욱진의 예술세계는 내적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한 불교의 선禪사상의 철학이 배어 있으며, 작품의 소재 면에 있어서도 불교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는 사찰, 부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도상 등 불교적 도상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먹그림에는 아기부처, 미륵존여래불, 달마, 관음보살 등과 같은 직접적인 불교적 주제가 주된 주요 소재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장욱진이 먹그림을 시작하던 시기인 1979년 자신의 막내아들을 먼저 잃고 절을 자주 찾게 되면서 작품의 소재에도 영향을 받게 된 것으로도 추측된다. 모든 것을 압축하여 일필(一筆)의 선으로 사물의 본질을 응집시킨 장욱진의 먹그림은 '진리의 깨달음은 문자를 떠나 곧바로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서 본성을 보아야 한다'는 선종의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대변할 수 있겠다. 또한 검은 묵墨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선線과 그 배경을 하얀 화선지의 여백으로 채우고 있는 화면의 공간은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운 진정한 공空의 자리는 무엇이든지 있을 수 있는 상태로서의 유有의 자리'임을 의미하는 선종의 진공묘유眞空妙有와도 상통한다.
선善한 삶의 태도 ● '표현(表現)은 정신생활, 정신의 발현(發現)'이라 했던 장욱진은 그의 예술정신을 자신의 삶에서도 그대로 실천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단 두 번의 사회생활을 제외하고 평생을 자연과 동화되어 도인과 같은 무위자연의 탈속적인 삶을 살았다. 먹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 아래 유유자적하게 누워있는 도인의 모습은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던 장욱진 자신을 그린 자화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단란한 가족과 집, 어린아이와 새, 나무, 해와 달 등이 모두 정겹게 어우러져있는 자연친화적인 그의 작품은 실제 장욱진의 충북 수안보 화실을 연상케하며, 소박한 시골정경의 넉넉함 또한 느낄 수 있다. 장욱진의 절제되고 소박한 삶은 자연의 근원성을 추구하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했던 그의 심플한 예술정신과도 일치한다. "체면같은 것은 다 잊었다"며 평생을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함을 잃지 않고자 했던 장욱진의 선善한 삶의 태도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작품으로 현발된 것이다. ■ 윤여진
선線 ● "검은 것과 흰 것, 그게 제일 힘든 거예요. 색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중에서 흰 건, 이 빛에서 가장 단순하다는게 아주 교묘한 거거든." (장욱진, 1987) 선禪 ● "꽃이 웃고 새가 노래하고 봄비가 내리는 그런 곳에 참 부처의 모습이 있는 것일까. 그림도 그런 것일까." (장욱진, 1977) 선善 ● "백자 초벌구이에 청화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이 구워져 나오는 것을 보면 청화같이 정직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장욱진, 『공간(Space)』, 공간사, 1977.11)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의 거장 중 한명이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에 속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몸을 온통 새까맣게 칠하고 눈만 하얗게 그린 까치로 최하점수를 받았으나 일본인 미술선생의 배려로 까치 작품을 "전일본소학생미전"에 출품하여 1등상을 받는다. 그는 부상으로 수여된 유화물감을 가지고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 학생미술전람회(1937)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1939년 동경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는 길로 들어선다. 한국전쟁 이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54-1960)로 일하였으나 6년 만에 작품창작을 위해 스스로 그만두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동화적이고 심플한 선 표현과 독창적인 색채를 선보였다. 1963-1974 덕소, 1975-1979 명륜동, 1980-1985 수안보, 1986-1990 용인 마북리의 화실에서 작품활동을 하였고, 1990년 12월 27일 74세로 선종하였다. 장욱진은 "나는 심플하다"라는 그의 말대로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평생을 아이, 어른 모두 좋아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 ■
Vol.20170912l | 장욱진展 / CHANGUCCHIN / 張旭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