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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90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 ART FACTORY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5(통의동 7-13번지) Tel. +82.(0)2.736.1054 www.artfactory4u.com
흐릿하게 쌓여져가는 삶의 누적을 빡빡 긁어모아 명확한 무언가로 환원했다. 그런데 그렇게 간신히 끄집어낸 무언가를 또 다른 언어로 다시 설명해야 하는 번역의 과정이 과연 나와 내 작업에게 유용한 행동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 가령 내가 'x'를 안다고 치자. 그리고 "나는 'x'를 알고 있다"라는 완성된 문장으로의 정리를 통해 나를 모르는 사람도 그 문장을 보고 내가 'x'를 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앞의 과정을 통해 나는 과연 'x'를 안다고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봄과 동시에 본의 아니게 앞으로도 'x'를 알고 있다고 해야 하는 문장에 대한 책임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문자라는 도구로 나 스스로 내 작업을 무언가로 규정짓고 문장에만 얽매이게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몹시 조심스럽다.
지난 몇 년간의 내 작업은 그림자의 상징성에 근간을 두고 주로 그림자와 관련된 이미지나 형태를 가진 작업으로 전개되어왔다. 그리고 재작년부터는 그림자 작업과 함께 진행되어 온 것이 '창(窓, Window)' 작업이다. 창 작업은 그림자 작업과 분명 엇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재현의 정도나 각각의 프로세스 자체가 판이하다. 그림자 작업이 아웃도어 작업이라면 창 작업은 인도어 작업이라고 간편하게 답한다면 너무 무책임한 것일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창 작업은 재현 중심적인 그림자 작업에서 오는 일종의 갑갑함을 풀어내고 결여된 무언가를 채워나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했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림자 작업과 창 작업은 이러한 관계를 맺고 서로 상응하며 내 작업 전반에 자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의 대부분은 창 혹은 그것과 유사한 형태의 이미지들로 구성된다. 수직과 수평, 정면과 측면 등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준(또는 인식)을 전복시켜 재해석이 가능한 상태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까지가 내 소임일까. ● 곡선이면서 동시에 직선인, 무엇이라고 쉽사리 규정하기 애매한 형편은 움직임을 통해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다. 바로 이 물리적인 착시가 내가 이 작업을 통해 나누고자하는 핵심의 실마리이다. 작업은 그것을 수직과 수평을 혼용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이 시각적 착각을 유발하는 바탕인 나무판과 PP벨트(또는 와이어)의 대치 상황 또한 분명 흥미로운 부분을 찾을 수 있다. 나무판을 강제로 휘게끔 하려는 PP벨트의 장력과 그리고 그것을 버텨내는 나무판의 강한 저항 상태 그 자체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확인할 수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작업에서의 이러한 의도적 착시와 강제적인 변형 의지는 'x'이기도 하고 'y'이기도 하고 싶어 하는 (혹은 이어야만 하는)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응어리의 곪아터짐일까. 아니면 지금 내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본능적인 몸부림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심심한 위로라고는 할 수 있을까. 나와 나 자신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일상의 충돌에서 생겨난 정체불명의 파편 같은 이 전시가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여기까지의 두서없는 나열은 내 나름의 정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각자 삶의 기준은 스스로가 정하듯, 작업에 대한 해석 또한 각자의 몫일 것이다. ● 작업에서 나는 창작자임과 동시에 중계자이기도 하다. 완성된 작업은 내가 타자와 교감하기 위한 수단이자, 일종의 놀이 도구로서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부디 숨바꼭질하는 마음으로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발견해 주길 기다려본다. - 'x'에게 ■ 이정태
Vol.20170910g | 이정태展 / LEEJEUNGTAE / 李政泰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