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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80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가이아 GALERIE GAIA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7-1 Tel. +82.(0)2.733.3373 http://www.galerie-gaia.net
당신은 오늘 무엇을 발견할까요? Qu'allez-vous découvrir aujourd'hui? ● 연이은 전시를 끝내고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떠났던 여행이었다. 이 여행의 주제는 콘솔라리움Consolarium. 위로를 뜻하는 consolation의 라틴어 어원 consolari에 공간을 담은 접미사 um를 붙여 만든 박효빈식-위로-공간. 자기 자신을 향한 담담한 위로로 지어진(build) 콘솔라리움엔 작가가 두 눈으로 직접 본 따뜻한 풍경과 당시 느꼈던 위로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2015년 첫 개인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16년 두 번째 개인전 『Steal-Life』, 그리고 그해 여름 또 한 번의 전시『표리:경』를 치르기까지 주변 일상과 기억을 품고 있는 사물을 그렸고, 일상의 언저리를 그렸다. 그러다 훌쩍, 이곳의 일상을 벗어나 그때 그곳의 일상(풍경)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일상은 곧 삶 자체이며, 이러한 의미는 보이는 일상에서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알아차리지 못한 이면에 존재한다."(작가노트) 작가는 과거에 잠시 살았던, 일상적으로 만나는 파리의 풍경을 일기 쓰듯이 기록했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현장을 그 자리에서 과슈로 쓱쓱 담아냈다. 과슈는 현장에서 페인팅을 대신 할 수 있는 재료였다. 이후 서울에 돌아와 21×21cm짜리 정사각 과슈 드로잉을 바탕으로 다양한 크기의 페인팅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 박효빈의 콘솔라리움은 철저히 사생을 바탕으로 한다. 사생에 해당하는 영어인 "'drawing from life'는 사생의 말뜻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두피디아)이라던데,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리는 것에 "순간의 풍경, 그리고 사물과 함께 호흡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담긴다"(작가노트)고 믿는 작가는 그날의 파리에서 그때의 현재(의 위로)를 그렸고, 오늘의 현재로 돌아와 그때 당시의 현재(의 삶)를 그렸다. 그래서일까 이 여행엔 2004년부터 2007년까지의 파리 유학 시절이 2016년 파리의 여름-가을이 2017년 서울의 봄-여름이, 그의 시간대가 한데 엉켜있다. 그렇게 사생을 바탕으로 한 '공원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그때의 시간을 이때의 시간에 그린 그림이자 이때의 시간에 그때의 시간을 맞춰 그린 그림. 그때 그 현장의 현재와 지금의 현재가 뒤틀린 시간대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기억 속을 걷는 사람(L'homme qui marche). "우리는 걸으면서 풍경을 만든다. 그래서 걷는 일은 머릿속에 풍경화를 그리는 일이다. 몸으로 마음으로 호흡으로 시신경으로 머릿속에 풍경화를 그리다 보면 우리는 그만 어느새 풍경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내가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내가 풍경 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오로지 풍경만이 남는다."(정수복, 『파리를 생각한다.ㅡ도시 걷기의 인문학』) 풍경만 남은 공원엔 까마귀가 참 많았다. 까마귀를 보면서 나는 불행을 떠올리고, 당신은 행복을 떠올린다. 행복(길조)와 불행(흉조)은 생각의 사소한 한 끗 차이. 문득 작가는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파리의 공원에서 만난 까마귀에 자신을 투영해본다. 그러자 살아있는 것들이 작가의 그림 속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번 작업엔 사람이 처음으로 풍경 속에 등장"하는데 "자연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사람이 들어가니까 감성이 배가 되고, 다른 감정들이 추가되더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정사각 행렬을 이루는 「en europe」(2016~2017)의 유럽 풍경들은 「몽수리 공원」(2017)의 기억이 되어 콘솔라리움의 반듯한 네모 공간(캔버스)에 오롯이 놓였다. 일상과 그가 주는 위로, 파리의 공원과 이탈리아 근교의 산과 그들이 주는 위안과 함께. 이게 콘솔라리움의 전부다.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작가는 이에 기존의 "감정을 실어 딱딱/답답하게 쌓아 올려 표현"하던 방식을 버려내고,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풀고, 붓질을 풀어내어 "보다 감정에 충실하게 표현"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사물의 기억이 풍경으로 커져 개인적인 기억이 되었다" 덧붙였다.
위로 속을 걷는 사람(L'homme qui marche). "프랑스어로 걷기를 표현하는 낱말인 플라느리는 일상의 생활에서 짧은 시간을 귀하게 여기며 그리 넓지 않은 범위를 한가롭고 기분 좋게 걷는 행위를 말한다. (...) 플라느리를 즐기는 사람인 '플라뇌르flâneur'는 특별한 목적 없이 걷는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도시의 흐름 속에 떠맡기고 그때그때의 기분과 호기심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서서히 발길을 옮기는 산보객이다. 그에게는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선택의 폭이 넓기만 하다. "당신은 오늘 어디를 걸으실까요?" ■ 이혜진
Vol.20170809f | 박효빈展 / PARKHYOBIN / 朴孝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