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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키스갤러리 이태원 KISS GALLERY ITAEWON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10길 88(보광동 265-972번지) Tel. +82.(0)2.745.0180 www.kissgallery.co.kr
사물의 기억; 기억의 일상 ● '기억', '과거', '현재', '오늘', '미래', '세계'… 이 거대한 단어들을 대할 때면 그 어감이 갖는 헤아릴 수 없는 추상성의 무게에 짓눌려 움직일 수 없다. 잡을 수 없는 단어의 광활한 개념에 맥이 풀리기도 한다. '현재'는 존재하는 것인가? '현재'라고 발언한 순간, 바로 '과거'가, '기억'이 되어버리지 않던가. 그렇다면 '현재'와 '과거(기억)'는 다르긴 한 건가? 어제의 '오늘'은 과거일 텐데 과연 '오늘'은 무슨 의미인가? '미래'는 어떤가? '세계'는? '세계'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추상성은 우리를 미궁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러한 미궁을 걷다가 작가 박효빈을 만났다. 그는 추상성이라는 미궁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 무던히 그 개념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있었다.
박효빈의 작품에는 거대한 추상적 개념이 스며 있다. 하지만 그 거대함에 비해 작품의 형상은 단출하다. 힘을 크게 실어 작품을 무겁게 만들지도 않고, 사유를 얽히고 설켜 이미지를 복잡하게 구성하지도 않는다. 박효빈은 정직한 사물들을 정직하게 그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추상적 개념을 올곧게 드러내고자 한다. "정물은 각 사물들마다 개인의 기억과 의미를 품고 있기에, 일상을 넘어서 상징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마음으로 파악된 특정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작가노트) 그렇기에 작가가 그린 사물들은 단순히 미적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건조한 물건이 아니라, 기억을 머금고 의미를 끌어안은 정신적인 어떤 것으로 격상되어 있다. 박효빈은 작품을 설명할 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데, 그의 사물에 대한 생각이 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들렌느 에피소드'는 사물에 의해 과거가 소환되는 '비자발적 기억'을 보여준다. 그는 현실의 사물을 "무의식에 담고 있는 과거의 기억과 삶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 삼음으로써 작품을 이 '비자발적 기억'에 대한 사유에 닿게 한다.
'현재'의 사물, '과거'의 '기억', '세계'를 이루는 사물 등 그리 녹록하지 않은 개념을 끌어안고 있는 박효빈의 사물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작품 제목이 모두 「still-life」로 같다는 점이다. '정물화'의 영어 표현이 'still-life'라는 걸 생각한다면 무척 단순하고 가벼운 제목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어쩌면 가장 정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일상 사물의 의미"나 "현실에서 사물", "우리의 주변에 항상 놓여 있"는 등을 말하며 '일상성'을 강조한다. 작가에게 '일상성', 즉 특별하거나 특수하지 않은 어떤 평이함은 작품에 전제돼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제목의 독특성은 작가가 추구하는 이러한 '일상성'을 깨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가 그린 일상의 사물을 일상의 사물이라고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사물이 특별한 외적 기표를 가지면 일상성은 그 즉시 무너지리라.
하지만 박효빈은 작품 제목과 달리 이번 전시 제목을 『Steal-life』로 명명했다. 작품에서는 '일상성'에 내재된 드러나지 않는 상징성을 보여주려 한 반면, 전시 제목에서는 작가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still-life'에서 'steal-life'로 살짝 바꾼 것을 쉽게 언어유희의 차원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미묘하고 복잡한 사유가 숨어 있다. '정지된-삶(생물)'이 '삶(생물)을-훔쳐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수동적 상태에서 능동적 상태로 변하게 된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 변화를 끌어오길 바라는 마음이 전시 제목에 은유적으로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박효빈 작품은 아련하고 알싸한 감정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작품의 무채색 색조와 옅은 붓질은 '노스텔지아'의 과거를 소환하여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자신과 대면하게 한다. 그는 감정을 중요시한다. "붓질의 결이나 텍스처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작가노트)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현실의 사물이 아니라, 기억의 사물이며, 감정의 사물이다. 작가는 유화의 두꺼운 마티에르 보다는 얇고 투명한 표현법을 선호한다. 연약한 기억과 손상되기 쉬운 감정은 얇고 투명한 표현과 감성적인 붓질을 통해 캔버스 위로 떠오른다. 박효빈의 힘은 작은 사물에, 평범한 일상에 거대한 추상적 정신을 담는 색조와 붓질에 점점이 스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안진국
Vol.20160612f | 박효빈展 / PARKHYOBIN / 朴孝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