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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인천신세계갤러리 INCHEON SHINSEGAE GALLERY 인천시 남구 연남로 35(관교동 15번지) 신세계백화점 5층 Tel. +82.(0)32.430.1158 shinsegae.com
있음과 부름 ●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신은 어떻게 존재했는가? 그 20년간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았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경험했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에 임했는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좀 어색하고 공격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지난 인생을 증명하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고, 세상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살아왔는지 고백하라는 압력으로도 느껴질 수 있어 쉽게 응할만한 요구는 아니다. 게다가 왜 하필 20년이란 말인가. ● 사실을 말하자면 서두의 질문은 불특정 다수에게 던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미술계에서 20년 동안 조각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 박소영을 향해 비평가가 특별한 의도를 담아 묻는 것이다. 그 의도는 박소영이 '소환하다 (re-call)'라는 주제로 2017년 현재에서 출발해 역으로 1997년경까지 거슬러 가 자신이 해온 창작과 그 과정/결과로서 작품을 하나의 전시 안에 재구성하고 의미부여하는 맥락에 근거한다. 말하자면 여기서 '20년'이라는 시간은 숫자들의 단순 연속을 넘어 한 작가가 자신의 있음/존재(being/presence)를 증명할 수 있는 축적된 리얼리티다. 그리고 이때 박소영에게 '소환'은 작품들―그녀의 미적 세계관, 생에 임하는 태도, 대상에 대한 지각과 정서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혹은 당시에는 불완전하게 담겨 세상 밖으로 나왔던 그것들―을 스스로 돌아보고 현재 삶의 조건으로 불러들이는 자기 표상(작가에 따르면 "작가의 내러티브") 행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박소영이 이전에 완성한 작품들을 재탕 전시하거나 자기 복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시간 안으로 과거를 불러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박소영 자신인 것/예술'을 현재 진행형으로 요청하고 새롭게 하는 수행법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문맥상 그녀가 이름 붙인 '소환하다'는 '있음의 부름'으로, 'recall'보다는 're-call'로 독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2017년 『소환하다』 전시에 모여 새롭게 구성되는 박소영의 표상들 또는 "작가의 내러티브"는 인체에서 출발한다. 아니, 어쩌면 그 표상들은 모두 인체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먼저, 전체 작품이 인체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볼 이유는, 그것들이 말 그대로 '인간 신체'를 모델링의 바탕으로 삼았고 추상/개념화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분명 사람의 몸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째, 그 작품들이 인체와 거리가 멀어지면서 동시에 인간적이고 생명체 같다고 말한 뜻은 앞서 와는 다른 차원이다. 그것은 박소영의 조각들이 지난 시간 동안 인간의 외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를 조형기법에 따라 본뜨는 인체 소조(塑造)에서 점차 정서, 내면, 마음, 심리 등 인간의 내적 요소들을 함축한(그러므로 보는 이가 그로부터 정서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자극받을 수 있는) 미학적 독립체로 이행했다는 의미다. 미술대학 조소과 실기실에서 흔하게 마주칠 법한 여자 누드 입상이 마치 녹색 피부 밑에 숨겨진 것처럼 보이는 조각 「18년」(1983-2001)부터, 돌고 돈 나머지 결국 식별 가능한 사람의 디테일은 사라지고 백색 회전운동으로만 남은 것 같은 「돌아버리겠네」(2009)를 거쳐, 이제는 어떠한 고통이나 불행도 내려놓은 듯 고요하게 누운 몸 「눕다」(2017)에 이른 것이다.
박소영의 조각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가짜 꽃잎이나 플라스틱 이파리, 또 때로는 장식용 레이스가 조각 본체의 껍질로서 완전하게 표면을 감싼/뒤덮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물고기의 몸과 비늘의 관계처럼 말이다. 때문에 다수의 미술비평가나 큐레이터가 이 작가의 서명(signature)처럼 언급하는 점, 또 대부분의 감상자에게 뚜렷하고 강렬하게 남는 인상은 독특한 재료와 작업방식이다. 여러분은 장식용 조화(imitation flower), 요컨대 가짜 식물이나 꽃을 알 것이다. 그것들은 대부분 투명 플라스틱 필름(clear film)이나 나일론 천에 녹색 또는 붉은색 이파리 무늬, 벚꽃 등 꽃잎 무늬를 대량 프린트 해 만들어진다. 패턴을 무수히 반복하지만, 각 무늬의 단위는 손톱 또는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로 작다. 박소영은 그것들을 시장에서 사서 단위별로 하나씩하나씩 오리고, 다시 그 작은 이파리/꽃잎 무늬들을 미리 만들어놓은 조각 본체의 표면에 정교하게 덧입혀 붙이는 노동집약적 방식으로 창작한다. 또는 내부 본체 없이 그 무늬들만을 연속 배열하고 접착시켜 뭔가 사물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로는 불특정한 형상의 가벼운 조각으로 만들어낸다. 대략 1997년 즈음 시작해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 같은 재료 및 제작 방식은 앞서 썼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박소영 미술의 시그니쳐'로 여겨질 만큼 독자성이 있다.
그런데 작품을 보는 이들의 관심과 해석이 그처럼 질료적/물리적/제작기법의 측면에 쏠리면서 아쉬운 점도 발생했다. 상대적으로 박소영의 조각 작품이 풍기는 느낌이라든가, 그 때문에 감상자가 자극받는 감각 지각적(aesthetic) 특성이라든가, 개별 이미지가 불러들이는/환기시키는(recall) 정서적 내러티브 같은 것은 깊게 논의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조각가들이 성형할 때 주로 사용했던 포리코트 깡통 안쪽 면을 가짜 벚꽃으로 덮은 「조각의 껍질」(2000)이 기폭제가 되어 이 작가의 작업에서 비판적 사고, 페미니즘 시각, 반미학적 경향성을 읽어내는 비평들이 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기억을 소환하면(2004년 「말하자면 '조각'이 빛이었던 것이다」라는 평론을 쓴 나 자신부터), 지금에는 다소 묘하다 싶을 정도로 박소영의 작품들에서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부분은 해석되지 않아온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지난 20년간 이 작가의 미술에서 조명하고 길어 올려야 했던 가치가 개인보다는 큰 것, 인간의 마음보다는 조형형식에 입각한 것, 삶의 리얼리티보다는 미학적으로 지향할 것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지금 다시 기억해보건대, 그때는 그때대로 의미와 역할이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다르다. 박소영의 최근 미술은 그녀의 인생이 다사다난한 경험으로 완숙해지고, 깊어진 생각으로 군더더기가 없어지고, 그 와중에 인간에 대한 마음 씀과 공감능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풍성해진 만큼이나 보는 이의 감성을 두드리는 힘이 커졌다.
대표적으로 「그녀에게」(2013)를 들 수 있다. 보는 순간 커다란 부처님 머리 혹은 침울하게 웅크린 누군가의 뒷모습을 연상시키는 조각인데, 동글동글 말린 검은색 레이스 리본을 본체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늘어뜨려 붙인 작품이다. 그것이 실제로 어떤 대상을 모티프로 한 것이든 「그녀에게」는 감상자에게 적잖은 시각적 충격과 더불어 정서적으로도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큰 덩어리를 감싸고 있는 검은색의 디테일, 즉 나선형 고리들이 무수히 연속해 약간의 현기증을 유발하는 레이스 다발이 뭔가 음울하고 비극적이며 혼란스러운 기분을 자극한다. 그 느낌은 작가가 그 조각을 하게 된 개인적인 배경, 이를테면 삶의 어려운 순간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가 사람이기보다는 구석에 내팽개쳐진 물건처럼, 모퉁이처럼, 벽으로 스며들어버리는 검은 기운처럼 여겨졌다는 이야기를 몰라도 우리가 작품을 대면하자마자 공감하게 되는 그런 것이다. 분명 지금 여기 있지만 그림자처럼 존재감 없게, 심지어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상태. 하나의 조각이, 그것도 구체적인 묘사가 별로 없이 단지 커다랗고 검은 덩어리로만 형상화된 조각이 보는 이에게 그처럼 묘한 양가적 감정을 자아낸다는 데 「그녀에게」의 미학적 특성이 있다.
있음과 부름. 『소환하다』 전시에서 작가 박소영이 중점을 두는 의미는 그녀 자신의 지난 20년 간 작업이고 그 결과물로 '있는' 작품들을 2017년 지금 여기의 조건 속으로 '불러서' 구성-재구성하는 행위다. 앞서도 비슷한 논평을 했지만, 그것은 단지 과거 작품의 편집이나 지나간 작업의 재활용 같은 것으로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조금 더 진지하고 내적인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멋지다고 본다. 왜냐하면 조각가 박소영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매순간 있고(존재), 그 있음이 매순간 지나가버리는(부재) 생의 질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언제고 그것을 다시 부르거나(기억) 혹은 영영 사라지게 할 수밖에 없는(망각)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컨대 이렇게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박소영의 『소환하다』는 삶의 필연성을 공유하는 우리가 '그녀에게' 공감하게 되는 장, 개념이나 방법론만이 아니라 느낌과 정서로 함께 관계할 수 있는 한시적 장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 강수미
Vol.20170606i | 박소영展 / PARKSOYOUNG / 朴昭映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