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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훈 블로그_http://blog.naver.com/bluemuk
초대일시 / 2017_0520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토요일_10:00am~04: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엘르 GALLERY AILE 서울 강남구 역삼동 652-3번지 혜전빌딩 B1 Tel. +82.(0)2.790.2138 www.galleryaile.com
음유(陰柔)적 클리셰, 욕망의 단편선 ● 여타 미술장르 속에서 클리셰(cliché: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를 논한다는 것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틀에 박힌 순간'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여성인물을 다뤄온 서양미술사 속 클리셰는 벗겨진(naked) 여성을 비너스(Venus)로 대체한 상황, 혹은 비너스를 거부한 페미니즘적 여성에 한정된다. 이 공식을 벗어난 한국적 클리셰는 수묵이 가진 고상한 한계성으로 인해, 곱게 단장한 한복의 여인으로 표출되거나 전통성을 거부한 현대화된 미인도에 고착되기 쉽다. 그리는 이들 역시 대부분 여성작가들로,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내거나 한복 입은 미인을 현실 속에 배치시키는 모험을 즐긴다. 이는 젠더와 섹스라는 사회학적(Gender)/생물학적(Sex) 성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한복으로 대체된 전통, 채색에 감춰진 미인이라는 이름 속에 '현실 속 여성'은 자기 체험적 인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돌을 던지듯, 신영훈 작가는 1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시대 여성을 수묵의 범주 속에서 재해석 해 왔다. 여성인물화의 세속적 역할은 페미니즘이 추구해온 억압과 자유의 서사를 담아내야 한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 속에서 여성은 기득권/피기득권의 사회적 대우 관계를 넘어 순수한 정서와 감정의 복합체로 자리한다. 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었는지, 언제부터 그런 행위가 시작되었으며 무엇 때문에 그런 모습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변화를 거쳐 현대 사회에까지 계승되었는지, 이 모든 것을 따지고 들기에는 작품 속 여성의 태도가 모호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수묵인물화 속 여성은 접근이 어렵고 표현의 신중함을 요할 수밖에 없다.
그가 그려낸 여성은 사회적/생물학적 성을 가로지른, 독특한 여성상이다. 중세의 음유시인(吟遊詩人)들이 봉건 제후의 궁정을 찾아다니면서 시를 낭송하듯, 작가는 '지금-여기'의 눈으로 여성이라는 전통적 클리셰를 해체시키고자 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분명히 아름답다. 천상의 여인을 묘사하듯 은밀한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하다. 하지만 그네들의 표정은 세상 밖이 아닌, 작품 안을 향해 있다. 여성이라면 온순한 내면을 지녀야 한다는 피지배적인 가치관은 잊은 듯하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여성 스스로가 욕망하는 모습은 무엇인가?"를 거꾸로 되묻는다. 음유(陰柔)적 클리셰가 의미하는 것은 여성의 외양이 아닌 내면 설정에 관한 부분이다. 진부적인 여성상에서 탈피한 클리셰의 이중성을 통해 뻔하고 예측가능한 '욕망'을 지극히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피상적인 세계관이나 소재가 아닌, 현실을 사는 한 인간으로서 동시대 여성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길 원한다.
남성 문인(文人)들의 전유물이었던 묵화(墨畵) 속에 여성이 등장한다는 것은 역사적 코드 위에 '감각적 자극'이 더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하기에 음유적 클리셰는 외설과 예술의 모호한 경계에 자리한다. 감성과 행위의 묘한 공존 속에서 먹(墨)이 가진 고상함을 스스로 파기시킨 작가는 욕망하는 여성 속에서 남성들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작가의 시선은 여성을 향하고, 그림 속 여성은 우리 모두를 향한다. 작가가 여성을 먹에 가둔 이유는 이 경계의 모호성을 풀어내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 안현정
Vol.20170520b | 신영훈展 / SHINYOUNGHUN / 申煐熏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