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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XX SPACE XX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 B1 www.facebook.com/spacexx
'죽음'과 '삶' 혹은 '죽어 있음'과 '살아 있음'은 최근에 나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것들이다. 죽음이란 것은 꽤 오랫동안 겪어왔던 인간이 가지는 순환적인 궤적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죽음과 관련된 최근의 다양한 경험들은 좀처럼 분리되지 않고 통합된 하나의 사건처럼 연결된다.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단상들이 한 개인과 그 개인을 둘러싼 세대, 사건, 시대를 통해 재생되는 것은 그 해석의 실제에 다다르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잠든 것'은 물리적 죽음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죽음의 실제와 별개의 것이지만 실제의 외관과 관련된다. 죽은 듯 보이는 외관을 통해 살아 있음을 통찰하는 것은 그 외관이 죽음과 별개의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을 감은 상태의 의식의 살아있음이 죽음의 외관으로부터 곧 벗어나 살아 있는 상태에 다다를 것이라는 기대감과도 같지만 그러한 기대는 동시에 영영 깨지 않을 듯한 죽음의 외관에 사로잡혀 두려움이 된다. 이 모든 것을 대하는 나는 감정적이 된다. 슬픔과 아쉬움, 막연함과 그리움, 모호함과 낯섦은 죽음이 '잠들어 있는 무엇'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해소된다.
지난 겨울, 간밤에 폭설로 무너진 울타리 속에서 발견한 키우던 닭들의 살육의 현장에서 그로부터 꽤 오래 전에 미디어에서 접한 바그다드의 희생자들의 모습을 연상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닭을 물어 죽였을 거라 추측되는 짐승(혹은 그러한 종류의)은 몇 일 후에 밭 한 가운데에서 죽은 체로 발견된다. 누군가를 죽인 누군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자신의 어머니의 무덤에 돌아가고, 병마와 싸우던 누군가는 절대자에게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바다에 빠진 아들을 기다리고, 혹은 스스로 그 일부가 되려고도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는 시대를 아쉬워하며 누군가는 그 시대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동시에 죽음과 죽음을 인식하는 것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대하는 의식은 죽음과 관련된 개별자의 이야기를 '거의 죽은 것'과 '완전히 죽은 것', 또한 그 반대의 지점에 '살아 있는 것'으로 연결시키고 두 지점을 연결하는 형태인 '잠든 것'으로 분리한다.
'죽지 않고 잠든'展은 자의로 혹은 타의로 죽음을 목전에 둔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죽음 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죽음에 다다르기에는 누군가는 때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이고 아예 오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기다리지 않고, 누군가는 기다릴 줄 알고 누군가는 모른다. 죽음은 죽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죽음과 관련이 없는 현실(살아 있는 상태)에서 발생하며, 그래서 죽음의 물리적 실제에 다다라야만 비로서 죽음 자체가 발생되기도 한다. 눈을 감고도 선명하게 재생되는 '잠든 것'은 죽음과 분리된 무엇이며, '살아 있는 것'보다 '죽은 것'보다 생생하게 재생된다. ■ 신승재
Vol.20170422e | 신승재展 / SHINSEUNGJAE / 申承宰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