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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스페이스 이끼 SPACE IKKI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www.spaceikki.com
하나의 선이 있다. 이것은 하나의 기계적인 선이다. 선은 내가 볼 수 있는 방식으로만 어떤 세계를 보여준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한없이 멀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 선 안으로 들어가 있는 순간이 가장 황홀하다.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추락하고 상승하고, 상승하고 또 추락하고... 선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움직임 속에서 자기 스스로 움직이며 그 여러 가지 움직임을 그대로 기꺼이 기록한다. ● 공간과 시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대로 우주의 어떠한 점과도 다시 연결 될 수 있는 것이 이 선이다. 나의 길은 세계를 다시 새롭게 지각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계를 설명하고 싶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그것이 사실은 곧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나는 임신 중에 하찮거나 작고 우습게 여겨지는 삶의 무의미한 행위들이 거대한 의미로 이어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면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찾은 삶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 "(중략)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아름답지 않나요 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147p)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中)
치읔 *르프랭 치읔 ● 어느 시절 마녀가 살았다. 마녀의 얼굴은 새하얗다 못해 붉기까지 했다. 머리칼이 얼마 없는 슬픈 마녀는 형용사와 같은 이름 그대로 외로운 여인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들판으로 나갔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바다로 발길을 돌렸다. 발가락 끝까지 치맛자락을 끌어내린 마녀는 저만치서 풍겨오는 인간들의 체취를 한껏 들이킨다. 알싸하고 콜콜한 냄새가 그녀의 코를 통해 폐부로 전해지려는 찰나, 마녀의 숱 적은 머리칼이 쑥쑥 자란다...그녀는 마녀다. ● 파도가 있었다. 고독한 파도는 달빛에 쫓겨 서쪽으로 몸을 달린다. 달빛에 쫓기어 부리나케 내달린 파도의 부재 속에 널빤지 한 장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널빤지 아래로 탄력 있는 용수철이 균형을 잡는다. 고독한 파도, 잔인한 달빛, 냉철한 널빤지, 고고한 용수철, 숱 적은 마녀, 이들은 그 자체로 단두대가 된다. 발가락 끝을 고이고이 싼 마녀의 조신한 발걸음이 단두대로 향한다. 아이 같은 즐거움을 바라는 마녀는 널빤지 위로 몸을 싣는다. 동쪽 달빛에 쫓기는 파도는 마녀를 향해 돌진하고, 마녀는 본능적으로 널빤지에 납작 엎드린다. 온 힘을 다해 파도와 바람을 버텨보지만, 마녀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용수철은 달빛의 울부짖음에 힘입어 그녀를 저 멀리 바다의 끝으로 이끈다. 철없는 마녀는 '용수철 그네'를 타고 바다의 끝을 보고, 다시 널을 뛰어 바다 속을 내려다본다. 퐁당, 마녀가 추락한다. 바다는 미쳤다. 추락하는 순간에도 마녀는 바람이 전해주는 인간의 콜콜한 냄새를 추억하며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을 자꾸만 끌어내린다...그녀가 추락한다...얼마 되지 않는 마녀의 숱 적은 머리칼이 자란다...숱 적은 머리칼이 흩날린다...마녀가 떨어진다.
치읔치읔 도시엔 치약이 없다는 걸 명심해. 여자는 남자의 그 말을 잊었다. 오늘밤 남자와 여자는 치읔치읔 도시에 도착했다. 둘은 허름한 모텔에 짐을 풀었다. 도시엔 정말 치약이 없었다. 치약대신 무엇으로 이를 닦아야 할까 고민하다 여자는 화장실 변기 위에 놓인 반투명색 병을 보았다. 조명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진주빛깔 병에 샴푸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오래 되었는지, 여자가 병을 들어 올리자 좌우로 진척하게 기울었다. 여자는 화장실 문을 빠금히 열고 남자가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남자는 침대 대각선으로 누워 TV를 보는 척 한 손에 리모컨을 쥐고 잠들어 있다. 여자는 샴푸를 한번 펌핑해 입에 넣었다. 향기로운 당근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서너 번의 칫솔질로 풍성한 거품이 인다. 여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리모컨을 꼭 쥔 채 꼼짝하지 않았다. 손에서 리모컨을 빼내려 하자 손가락에 힘을 준다. 여자는 대각선으로 뻗은 남자를 그대로 둔 채 삼각형으로 난 작은 공간에 간신히 몸을 누인다.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다리를 구부리고는 무릎에 머리를 묻는다. 깊은 숨을 내쉬자 무릎과 가슴 사이로 샴푸향이 전해진다. 여자는 그것이 재미있는 듯 연신 숨을 크게 내신다. 코끝과 인중 위로 작은 이슬이 맺힌다. ● 치읔치읔 도시를 다녀왔지. 내가 모두 망쳐버린 도시. 나 같은 여자는 정말 최악이라며 면전에서 침을 뱉은 도시. 추억도 없는 도시. 반추할 수 없는 도시. ㅊ의 ㅊ은 너무 가벼워. 새벽녘 입 벌린 사내 옆에서 혼자 중얼거렸지. 치읓보다 치읔. 위가 하나 더 는 기분야. 이제 세 개. 하나만 더하면 반추위(反芻胃)를 완성할 수 있을 지도. "한번 삼킨 음식을 다시 입안으로 토하여 잘 씹은 후 삼키는 것"을 반추라고 말했던가. 아마도 반추적 인간이라는 학명을 만들어야겠지. 호모 레미니시아? 호모 리콜리니우스? 호모 리코보엔스? 그럴듯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누군가에게 물었더니, 너가 시인이냐며 머리통을 갈겼지. 그래서 시인이 되었어. 그날, 치읔치읔 도시에서 침 세례를 받고 난 후 시인이 되었지. 숱 적인 시인. 마녀의 치렁치렁한 벨벳 치마를 빌려 입고 귓바퀴 뒤에 담배를 꽂은 채, 시인인척 얼굴을 숨겼지. 아마 드러냈다고 하는 말이 더 솔직할 거야. 그럴 거야. 그렇겠지. ● 날이 밝자 여자의 입안에서 샴푸 향이 사라졌다. 여자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을 이겨내려 연신 겹 쌍꺼풀을 만든다. 남자는 아직도 손에서 리모컨을 놓지 않았다. 여자 또한 작은 삼각형 안에 안전하게 누워있다. 침대 옆으로 난 커다란 창문에 매달린 커튼이 조금씩 살랑이기 시작한다. 아침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새벽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바람이 불자 이불을 덮지 않은 남녀가 동시에 오그라든다. 여자는 더 이상 오그릴 것이 없어 오른쪽으로 돌아눕는다. 그러자 자신과 똑같이 오그라든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남자는 팔짱을 낀 채 리모컨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잠이 들었다. 여자의 머리위로 남자의 뜨거운 날숨이 규칙적으로 불어온다. 남자가 숨을 들이쉴 때 서늘한 새벽바람이 여자의 왼쪽 팔뚝을 스치고 지나간다. 황금빛 솜털을 머금고 알맞게 부풀어 오른 털구멍들이 일제히 솟아오른다. 여자는 몸을 한 번 떨더니 남자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쳐든다. 코털을 제거한 남자의 콧구멍 속으로 오톨도톨 돌기가 솟아있다. 코 속에 털이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던 남자는 과연 이 도시에 작은 가위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수염과 함께 코털도 쑥쑥 자랄 것이다. 숱 적은 마녀의 머리칼이 언젠가 자란 것처럼.
마녀가 빠진 바다는 좀처럼 잔잔해 지지 않았다. 마녀가 빠지거나 빠지지 않거나 바다는 마찬가지다. 바다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추억을 하지 않는다. 기억도 하지 않는다. 그저 마녀의 추억과 인간의 추억과 낙타의 추억과 악어새의 추억을 집어 삼킬 뿐이다. 파도가 서늘한 마녀를 삼키자, 뜨거운 인간의 피가 해수의 온도를 전과 동일하게 맞춰 주었다. 뜨거운 인간이 또 한 번 추락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인간의 피로 뜨거워진 바다는 얼음을 녹인다. 그 후로 인간은 추락 없이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인간의 바다가 된 지 오래다. 옛날엔 마녀가 있었지. 어느 시절 마녀가 있었다. ● 여자는 이상한 꿈을 꿨다. 치약이 없는 치읔치읔 도시에서 칫솔 위에 작은 해삼 하나를 얹어 놓는다. 물컹하지만 심지 있는 그것은 여자의 입 속에 들어가자마자 윗니 아랫니를 자유롭게 오가며 여자의 이빨을 훑는다. 그러다 유독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들어간 어금니 사이에 정성을 쏟는다. 여자는 어릴 적 오른쪽 두 번째 어금니에 아말감을 박아 넣은 적이 있었다. 해삼은 용케도 그것을 찾아내고 특유의 빨판을 이용해 붙였다 떼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쩍쩍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욕실 안으로 울려 퍼진다.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언제 양치질을 끝내야 할지, 언제 이것을 뱉어내야 할 지 난감해했다. 그럴 때 여자는 꿈에서 깼다. 턱뼈가 뻐근한 듯 아래턱을 좌우로 움직여 본다. 여자의 콧등위로 수염이 자라 있다. 남자의 것이다. 남자의 해삼이 목젖을 건드리자 여자는 등을 거세게 요동치더니 마른 토악질을 뱉어낸다. ㅊ억-하며 해삼이 입 밖으로 튕겨 나간다. 남자의 겨드랑이에서 리모컨이 떨어진다.
파도가 잠잠해질 때, 인간들은 바다가 추억을 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머리에 깃털을 꽂고 왼발 오른발 이상한 발걸음으로 쩔뚝거리는 남자는 그 거짓말을 언젠가 자신이 말했었다며 추억에 잠긴다. 바다가 추억할 때 비로소 인간들은 반추할 수 있다고도 했다. 수억 년 전 파도가 삼켰던 생선들이 다시 바다의 식도를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것이라고.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들은 그것을 믿었다. 바다가 반추할 때 그 속으로 그물과 막대기와 앞뒤로 뚫린 유리병과 작살들을 내던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바다는 많은 것을 반추했다. 쓰도록 짠 위액들이 거짓말처럼 넘쳐났다. 간혹 바닷물이 인간들의 발톱 사이로 파고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면 인간들은 미간을 찡그렸다. 때론 발톱 사이가 벌어져 붉은 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자 왼발 오른발 쩔뚝이는 한 남자가 얼른 그곳을 나오라고 소리쳤다. 잘못하다가는 발 전체가 녹아내릴 수 있다며, 바다의 소화력에 대해 떠들어댔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 기억도 없이 여자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치읔치읔 도시에서 남자와 여자 모두 잠을 잔다. 당분간 그 누구도 깨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잠이 필요했고, 남자는 언제나 잠을 자는 습관을 가졌었다. 틀렸다. 남자가 눈을 뜬다. 실내화를 신지 앉은 채, 화장실로 향한다. 잠이 덜 깬 듯 터덜터덜 걷는 남자의 엉덩이 뒤로 힘없는 해삼 하나가 함께 터덜거린다. 해삼이 물을 토한다. 노란 물이 위액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노란 오줌을 토해낸다. 쏟아낸다. 비워낸다. 힘겹지만 시원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쏟아지는 오줌소리에 여자도 잠에서 깼다. 모든 것이 틀렸다. 여자는 잠이 더 필요했지만 깨고 말았다. 변기 속으로 거품이 인다. 남자는 거품이 이는 것을 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물을 내린다. 뜨거운 오줌이 소용돌이치며 내려간다. 침대로 향하는 남자의 엉덩이 사이로 해삼이 보인다. 해삼은 물을 토해 내고 기진맥진이다. 끝에 매달린 오줌 한 방울이 핑크색 카펫 위로 떨어진다. 오줌이 떨어진 자리가 붉은 색으로 변한다. 여자는 재빨리 눈을 감는다. 여자의 눈으로 이미 너무나 많은 빛이 들어와 있었다. 눈을 감자 주홍빛 원들이 떠다닌다. 자꾸만 눈에 힘이 들어간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감긴 눈꺼풀 위로 눈동자가 구른다.
숱 적은 마녀가 태어난 날, 같은 움막에서 살던 한 소년의 발이 바다 속으로 녹아내렸다. 마녀와 함께 떠내려 온 양수로 소년의 문드러진 발을 씻긴다. 마녀는 태어나던 날 울지 않아 마녀가 되었다. 마녀는 입을 앙 다물고 눈을 크게 뜬 채 벌겋고 누런 양수에 발을 담근 소년을 바라본다. 그것이 인간이 태어난 날에 치르는 의식이라고 마녀는 굳게 믿었다. 마녀는 단두대에 오르기 전까지 아니, 올라서는 날에도 자신이 '마녀'인지 몰랐다. 그저 '마녀'가 자신의 이름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계집아이에게 붙이는 그저 그런 이름 중의 하나. 누군가 '마녀'라고 부를 때, 돌아보는 이는 마녀 자신밖에 없었으므로. 양수로 발을 닦은 소년은 더 이상 바다 근처에 가지 않았다. 소년이 청년이 되던 시기, 소년은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과 소리들로 마녀뿐만 아니라 움막 사람들을 모조리 혼란 속에 몰아넣었다. 언제나 앉아만 있던 청년이 된 소년은 어느 순간 스스로 일어나더니, 왼발 오른발 쩔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말했고, 청년은 기적이 아니라 수 억 년 전 자신이 걸었던 때를 반추했을 뿐이라고 사람들의 말을 바꿔 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은 청년의 머리위로 길고 가느다란 깃털을 하나씩 꽂아 주었다. 제법 많은 깃털이 청년의 머리위로 빽빽해지자 청년은 움막에서 가장 키가 큰 사내가 되어 있었다. 그 시절 마녀가 살았다. ● 그것은 앵무새 입 같기도 했다. 남자의 반이 잘려나간 검지손톱은 보기 좋을 정도로 오그라들어 있었다. 앵무새 입처럼. 꼭 감은 눈꺼풀 아래로 속눈썹이 삐져나온다. 남자는 여자의 왼쪽 눈에 오른쪽 검지를 살며시 갖다 댄다. 눈은 이내 잠잠해진다. 어느 시절 바다가 반추할 적처럼 여자의 눈은 평온해졌다. 뜨거운 눈물이 성긴 속눈썹 사이를 메운다. 살짝만 움직여도 눈물이 떨어질 태세다. 여자는 눈물이 마를 때까지 눈동자를 의식한다. 남자는 그것을 알아챘는지 여자의 얼굴로 입김을 분다. 야릇한 냄새가 여자의 코를 통해 폐부로 전해진다. 밤새 위는 비워졌으리라. 텅 빈 위속으로 위액이 분비된다. 먹은 것도 없는데 남자는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액을 발산했다. 때로는 그것이 식도까지 넘어오기도 했다. 식도까지 넘어온 그것을 남자는 다시 삼킨다. 그러면 위는 또다시 위액을 뿜어대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녹아내릴 만큼 강력했다. 삼켜진 위액이 다시 위액으로 소화된다. 모든 것이 소화됐다. 녹아내렸다. 위액으로 찌든 남자의 입 냄새를 맡고 있자니 여자의 속이 뒤틀린다. ● 손가락이 잘렸다. 언제나 바른 곳을 가리키던 손가락이었는데, 나로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다. 잘려진 손가락이 아물기 시작했다. 독수리 발톱처럼 남은 손톱이 안으로 오그라들었다. 때론 앵무새의 입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이 흔들린다. 손톱보다 작게 떨어져 나간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흔들려도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지. 깨진 유리창 바람에 날리는 커튼 뒤집힌 우산 생각했다 추억의 축억 뒤집혀진 기역자 주먹쥔 연사 주먹핀 소녀 강박의 다른말 미친바람 지하의 추억 지상의 반추 우리의 저편 점증되는 인간 댄져러스 비드 틈새시장 공격 속쓰림 생각의 생각 생각했다 아는 이름 이름의 다른 말 막말 바른말 추위와 취 날것의 익힘 멍게의 냄새 콘 한 묶음 취기의 추태 ㅊ의 ㅊ 이불의 혈 새어나와 묻어나와 달리고 달려 걷기의 향수 향수의 향수 냄새의 야릇함 내음과 냄시 악지와 찔통 ㅃㅃ 땡땡의 땡땡 도열의 도열 드리의 드리 ㄷ의 ㄸ 따다가 따드려 싹뚝의 뚝딱 기억의 저편 저편의 내편...프로폴션널리티 (생략) ■ 피서라
* 르프랭(refrain) : 1.반복구, 후렴 2.후렴이 있는 노래 3.늘 되풀이하는 말
Vol.20170304d | 정규옥展 / JEONGGYUOK / 鄭圭鈺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