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빛 Eternal Light

한호展 / HANHO / 韓鎬 / mixed media   2017_0209 ▶ 2017_0428 / 일요일 휴관

한호_Eternal Light-Paradise_캔버스에 한지, 펀지, LED_80×18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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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퍼포먼스 / 2017_0209_목요일_05:00pm

세미나 / 2017_0209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09:00am~05:00pm / 일요일 휴관

주필리핀 한국문화원 Korean Cultural Center in the Philippines 2F Mancor Corporate Center, 32nd St., Bonifacio Global City, Taguig City 1634 Tel. +63.(0)2.555.1711(내선 105) www.koreanculture.ph

한호 작가의 노마드적 글로컬리즘: 보편과 특수의 변증법적 수렴을 통한 한국 현대 글로컬 예술의 구축 The Nomadic Glocalism of Han Ho's Art: (A Construction of Korean Contemporary Glocalist Art through) A Dialectic Convergence of Universality and Particularity ● 미술사나 비평의 영역에서 최근의 가장 중요한 논점 중의 하나는 '글로컬리즘'일 것이다. 이 주제는 문화적 차이의 문제에 주목함으로써 혼종성(hybridity)이나 양가성(ambivalence)과 같이 반(反)본질주의적 탈식민주의의 주요 개념으로부터 파생, 발전되었다. 호미 바바와 같은 탈식민주의 문화이론 연구자들은 "포스트모던은 표상 속에서 표상 불가능한 것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리오타르의 규정 역시 용어와 개념에 있어서 서구권 특히 영미권 내의 저널리스트들, 미디어 전문가들, 패션 컨설턴트들, 광고 카피라이터들에 의해 전유되면서 애매하게 희석되었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대도시 중심에서 효과적인 반(反)엘리트주의로서 순진하고 희망적인 대중주의를 함의하고 있었고, 대중적 미디어 담론에서는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부시의 공화당 정권에서와 같이 보수 성향이 지배적이며 제2, 제3세계의 사회주의 경제 실패와 혼란 너머 자본주의 체제의 승리를 찬양하던 시기에 개인주의적 다원주의의 한 형태를 공표하려는 시도에서 나타난 결과물이란 것이다.

한호_퍼포먼스

역사주의에 반하는 우발성과 문화적 비결정성의 법칙과 전략들은 간혹 탈중심적 주체가 역사를 부인하는 주체, 즉 주체로서의 권한을 상실함으로써 사회 정치적 책임을 포기하는 주체와 같다고 성급히 판단되고 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에 널리 퍼져 있는 비극적 트라우마는 현대의 국제사회가 결코 온전한 평등주의를 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2008년 북경 올림픽에서의 신민족주의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준 영국 관객들의 공공연한 인종차별, 그리고 최근에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과거사 발언과 신군국주의의 행보는 이에 대한 자명한 증거이다. 역사주의적 전체론(holism)에 대해 후기 구조주의적 사유가 제시한 대안은 그처럼 또 하나의 서구적 헤게모니의 은폐된 표방이 아닌,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의 버내큘러한 특성이나 로컬리즘이 글로벌한 경향 가운데 동등하게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 오웬스는 동시대 예술이 "차용, 장소 특정성, 일시성, 축적, 담론, 혼종 등과 같은 다양한 전략들"에 의해 상당 부분 특징 지워짐으로써 "이전 세대의 모더니스트와 구분"된다고 진단한 바 있다. 호비 바바가 지적했던 것처럼 하이폰 부호를 이용한 혼성적 연결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요소들을 문화적 동일시나 미적 평가의 척도로서 강조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체성과 의미의 생산에 내포되어 있는 수행적 본성에 있는 것이다. 전 지구화의 담론과 수사가 보다 두드러지고 모든 것을 포괄하게 되면서 반대로 공동체에 대한 불확정적이고 불확실한 담론들 역시 등장하는데, 그는 초국가적인 문화 담론이 애국적인 것과 탈국가적인 것, 고향(혹은 고유성)과 세계 사이의 관계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원격 행위를 통한 글로벌한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인간 일반의 영역을 초월하지는 않는 사회적 공간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며, "인간의 삶은 단지 국가가 아닌 지방, 마을, 거리, 사업, 조합, 직업과 같은 것들을 지켜야 하므로 보다 작은 규모에 적합하다. 그것은 인간적 지평보다 좁은 다양한 집단 가운데 하나로서 도덕적 관심에 부합하는 영역들이라고 할 수 있다"는 아피아(Kwame Anthony Appiah, 1954~)의 언급을 인용한다.

한호_Eternal Light-happy tree_캔버스에 한지, 펀지, LED_205.5×139cm_2017

한호 작가의 작업은 현재진행 중인 현대미술에서 노마드적인 글로컬리즘으로 설명될 수 있다. 노마드적이라 함은 그의 최근 십 수년의 생활터전이 한 곳으로 정착되지 못한 채 세계 각지의 도시로부터 도시로의 유목민적인 이동성을 보여주고 있고, 그가 살면서 활동했던 도시들은 한국의 대전과 서울, 프랑스의 파리, 미국의 뉴욕, 중국의 북경 등 지구 내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글로벌한 노마드족(族)이다. 그의 작품이 드러내는 글로벌한 특성은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이 대표적인 국제 규모의 미술전시 참여와, 이제는 남반구로 건너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올해 첫 선을 보이는 비엔날레에까지 족적의 반경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 전지구적 특성만이 한작가의 예술적 특질이라면, 수많은 예술들과 구별됨 없이 그와 같은 대규모의 국제 전시에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예술에는 글로벌한 보편성과 로컬한 고유의 특성이 함께 존재하며 이것은 그의 인생 절반 이상이 노마드적 삶과 교육과 작업의 과정에서 터득된 것이기에, 나는 그의 현재까지의 작업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노마드적 글로컬리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속에서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간성을 공유하는 세계적 보편성을 공유하면서도, 비문자적 언어로 가시화되는 그의 출신지역, 국적, 인종, 성별, 언어, 사회 내 초기 교육의 기초 등 한호 작가가 완전히 배제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근원적 정체성으로서의 로컬리즘이 그를 규정하는 특수성으로 함께 발현된다고 생각된다. 그의 예술에 있어서 보편과 특수는 변증법적 "수렴"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을 극복하는 공존의 상태에 놓여 있다. ● 내가 여기서 한호 작가의 작업을 규정함에 있어서 '조화'나 '통합'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서로 이질적인 것들의 어울림으로 나타난다거나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전체성의 추구를 통한 통합 또는 통섭과는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면 작업에서 여러 요소들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든 평면과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가 혼성적이든, 그것들에는 기본적으로 한호 작가가 자신의 예술에서 추구하는 방향성 안에서 한데 모이는 수렴의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즉 개별적인 작품에서나 최근의 일시적인 조화 혹은 통합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예술 자체가 특정한 방향성을 지니며 그곳을 향해 수렴되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리고 이것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변증법적'이란 표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러한 한호 예술의 전개과정은 대결, 대립, 끊임없는 우위의 뒤바뀜, 화해, 조화, 혼합 등을 통해 보편과 특수의 공존을 이뤄냄으로써 한 방향으로의 수렴을 가능케 한다.

한호_Eternal Light-Paradise_캔버스에 한지, 펀지, LED_91×116cm_2017

한호 작가는 지난 수년간의 작업에서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장르의 혼성을 보여주는데, 회화에 있어서는 평면성이라는 모더니스트의 물질적 조건에 천착하면서도 평면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현대의 첨단 테크놀러지를 이용한 영상과 설치, 그리고 심지어는 회화 작품과는 정반대로 물질적 결과물로 남지 않는 퍼포먼스를 함께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타의 작가들에게서도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한호 작가에게 있어서는 더욱 특별한 공통의 방향성 위에 놓인 전략들이기 때문에 주목된다. 그의 회화가 지닌 독특성(singularity)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한호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그에 대한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어릴 적 배웠던 서예를 통해 익숙해진 전통 한지를 서구식 캔버스의 대체물로 사용한다. 그리고 여기에 뛰어난 기법적 완성도를 유지하며 정교하게 그려 넣은 인물이나 풍경은 그려진 것과 구멍 뚫린 흔적들이 혼재함으로써, '그림(painting)'의 윤곽과 '그리지 않은' 윤곽이 마치 렌티큘러의 표면에서처럼 교차한다. 또 한 가지는 전통적 회화 방식 안에서 물감으로 구현된 빛 대신 광학적 물질로서의 직접적인 빛이 결합되어 하루의 시차나 공간의 조명에 따라 빛과 형태의 다양한 변주를 가능케 한다. 이것은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 그리는 행위와 그리지 않은 행위, 물성과 입자로서의 빛에 대한 인식과 응용 등, 서로 모순되거나 역설적인 것이 작가가 추구하는 회화 예술의 평면적 가능성을 위해 한데 모여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 그의 회화 작업은 관객들이 마주하는 최종 결과물로만 인식되기 보다는 그가 도달하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철저한 회화성의 추구를 통해 자족적인 완결성을 구축해내는 것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그의 회화 작품은 곧바로 완성된 회화 표면을 구멍 뚫어 '훼손'하는 행위가 더해지며, 다시 이것을 지지하는 틀을 해체하여 재구성하고 급기야는 뒷면에 현대의 첨단 조명인 LED를 설치하여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완성시킴으로써 각각의 과정이 구축과 해체, 그리고 반복을 보여주는 유사 프로세스 아트(pseudo-process-art)로 간주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물질적 존재로서의 평면 회화에만 한정하지 않고, 시간의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영상과 설치작업, 또한 자신이 그 과정에서 행위의 주체이자 동시에 예술적 소재가 되는 퍼포먼스를 예술형식으로 모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적 그릇에 담아내는 내용들은 글로벌한 시각문화의 아이콘들에 대한 재고로부터 시작해서, 극히 한국적이거나 민족사에 국한되지만 절대 제거할 수 없는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한국인으로서 지닌 작가의 로컬한 특질까지 포함된다. (물론 여기에서 내셔널리즘의 문제는 논외로 한다.)

한호_Eternal Light-dream_영상, 투명 스크린_500×700×230cm_2015_부분
한호_Eternal Light-dream_영상, 투명 스크린_500×700×230cm_2015_부분

형식적 측면의 글로컬한 특성을 좀 더 논의해보자면, 빛에 대한 인식과 구현에서 보이는 글로벌한 회화성과 고려불화의 배채법이 현대적으로 적용된 로컬리즘의 영역에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빛은 진리, 도덕, 신앙의 분야에서 추구되어야 할 궁극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구체적 물질 입자로 구성된 것이라는 것으로 변화된 것은 광학의 발달로 인해 밝혀진 19세기 유럽에서의 일이었다. 이때까지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이래로 빛이 지녔던 종교적 신비성을 물감이라는 구체적 물질로 대체하여 표현하고자 했던 베네치아 화파의 전통이 수백 년 동안 회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랬기에 한호 작가가 구현해낸 평면 회화와 LED 조명의 결합은 빛 인식과 표현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변형을 통해 글로벌한 보편성을 새롭게 자각시킨다. 그런데 그의 LED 사용 방식은 한국적 전통에서부터 찾을 수 있는데, 이미 천 년 전의 왕조였던 고려 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제작되고 뛰어난 예술성을 이룩했던 불화의 제작방식을 연상시킨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독자적 예술 가치를 인정받은 고려 불화는 제작기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배채법"이라는 채색 기법이다. 이 배채법 또는 복채법은 그림을 그릴 때 화면이 되는 종이나 특히 비단의 뒷면에 물감을 칠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앞면으로 우러나오게 함으로써 앞면에 그려진 대상의 음영과 채색을 보강하는 기법이다. 그래서 화면의 효과는 서구의 선원근법과 같은 체계적 공간감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나 대상의 입체감을 은은하게 드러낸다. 한호 작가가 서구적 방식의 캔버스 프레임을 재구성하여 뒷면에서부터 LED의 빛이 우러나오게 만드는 것은 한국 고유의 불화 제작방식을 현대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획득한 로컬리티의 특수성과 차별성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다.

한호_Eternal Light-Well of yagob_블랙미러, LED_110×110×110cm_2013
한호_Eternal Light-Well of yagob_블랙미러, LED_110×110×110cm_2013_부분

한호 작가의 예술에서 나타나는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은 일종의 '상호매개성(intermediacy)'에 의해 작동하고 있으며, 본질과 외적인 것의 변증법, 예술에 있어서의 진정성과 비진정성, 지역이라는 공간적 차이의 불식, 전통과 현대라는 시간적 거리의 좁힘 등 서로 충돌하거나 대립적인 요소들의 결핍 지점 혹은 사이-공간(in-between)의 영역에서 변증법적 갈등과 화해를 통해 수렴되는 '진행 중'인 사건으로 파악될 수 있다.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는 세계 시민주의의 본질이 "공간과 시간의 변형...원격 행위"에 있다고 보았다. 이 원격 행위는 텔레미디어의 발전에 의해 상호매개가 가속화되며 더 이상 중간 단계의 매개가 필요 없는 즉각성(immediacy)를 유발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보편과 특수는 19세기의 역사주의적 변증법 안에서 대립과 충돌의 양태로 공존할 수 없으며, 물리적으로 한 쪽이 정복되거나 화학적으로 통섭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유지되며 공존하는 상태에서 어느 지점을 향하는 수렴이 요구된다. ●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글로컬리즘을 예술적 작업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계 속의 보편성을 공유하면서도 그것이 몰개성적 보편성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호 작가가 한국의 전통적이고 고유한 특수성으로부터 보편성들을 이끌어내서 수렴시킨 예술 작품들은, 특수와 보편의 대결 구도가 아닌 비문자적 공통 언어로서의 시각예술에 있어서 하나의 비평적 지표가 될 만한 글로컬리즘의 구현으로 평가될 수 있지 않을까 가늠해보며 이후의 작업 전개에 대한 기대를 갖도록 한다. ■ 장원

Vol.20170209b | 한호展 / HANHO / 韓鎬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