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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대전문화재단_대전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모리스 갤러리 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번지 Tel. +82.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자신에게 거는 진지한 대화 ●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채주면 어떨까? 말하지 않아도 나의 몸짓과 표정을 보고 내 마음을 헤아려준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이러한 완전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기대를 한다. 수많은 심리학적 연구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사인을 온전히 알아차리기 힘들다. 마치 조금씩 가려진 이미지가 드러나는 퍼즐게임처럼, 단지 일부만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그 기호의 의미를 찾아내야한다. 윤유진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퍼즐게임 같다. ● 촘촘한 그리드, 그 반복적인 기하학적 형태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그 형태들 사이로 마치 떨어진 타일 조각 뒤의 신비한 그림이 엿보이듯 작가가 숨겨놓은 그림이 있다. 밑에 숨겨진 이 형상들은 이렇게 말을 거는 듯하다. "내 모습을 알아봐주세요. 바로 당신의 마음속에 '이미' 있는 '그것'이랍니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윤유진은 무엇을 숨겨둔 것일까.
일상의 경험, 그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 ● 윤유진의 화폭 속 이미지는 작가가 몇 해 전 머물렀던 영국과 프랑스 등지의 풍경이다. 하지만 특정한 한 곳이 아니라 작가에게 시각적인 자극을 주었던 풍경들의 결합체이다. 템즈 강변의 건물과 에펠탑의 조합이랄까.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형상들은 언뜻 우리가 직접 가보지는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봤을 법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미 아는 그 풍경 이미지이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만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그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서 다시 조합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과거는 더 이상 그 순간이 아닌 현재에서 재해석되어진 새로운 기억이 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 속에서 "기억은 사실이 아닌 '해석'"이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언뜻 마주치게 되는 데자뷰를 겪을 때, 언뜻 과거의 기억인 듯 하지만 그 기시감은 오히려 현재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이와 같이 윤유진의 기억은 화폭 속 이미지를 통하여 작가가 겪었던 그 시간을 현재에 해석되어 되살아나게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팝아트적인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색으로 변주된 형상으로 나타낸다. ● 아서 단토(Arthur Danto)가 『브릴로 박스』에 인쇄된 일상적 이미지에 의미를 두었듯, 팝아트의 상징적인 방식으로 윤유진은 기억 속 풍경을 재현(re-present)한다. 이러한 팝아트적인 형태는 작가가 학생시절부터 즐겨 쓰던 방식이다.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지만, 화면을 꽉 채우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구에 팝아트적 묘사방식은 잘 부합했다. 워홀이 판화로 동일이미지를 찍어내듯, 윤유진은 같은 형태의 컵, 글자 등을 화면 가득 채웠다. 이러한 작화방식은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도 이뤄진다. 단지 이번에는 형상이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화면의 바탕을 이루는 풍경이 매력적인 팝아트적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다.
촘촘한 그리드, 비밀의 열쇠 ● 이렇게 공들인 풍경이 화면 아래에 깔려있다. 마치 우리 인간의 무의식처럼 말이다. 작가가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일상이 무의식처럼 드러나는 것을 표현한다고 하듯, 화폭에 침잠해 있는 무의식의 이미지는 화면을 덮은 기하학 형태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날 뿐이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설명되는 의식과 아직 분절되지 않은 무엇인 무의식 사이의 경쟁은 작가의 말처럼 "상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수평 수직의 그리드, 그리고 그리드를 이루는 삼각형이라는 추상적 형태가 사회적 기준이나 개인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의식적인 세상이라면, 그 밑에서 그리드의 색에 영향을 주거나 빈 공간 사이로 빼꼼이 얼굴을 내미는 형상은 그 기저에 깔린 인간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바로 여러 기억이 중첩되고 해석된 그 무의식 말이다. ● 여기서 화면을 전반적으로 가득 채우는 그리드를 더 살펴보자. 사실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시야를 지배하는 것은 촘촘한 기하 형태들이다. 실상 작가는 이 기하 형태들 밑에 기억의 형상을 그려두었다. 하지만 공들여 형태를 만들고 그린 그 형상을 다시 기하 그리드로 덮어버린 것이다. 다만 그 그리드의 색이 밑의 형상에 영향을 받아 달라지며, 결과적으로 우리는 기하도형으로 분절된 풍경을 보게 된다. 어쩌면 무의식을 합리적 이성으로 재단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과 같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이드(S. Freud)가 의식으로 억눌러진 무의식을 몇 가지 실마리로 추적해 들어가듯, 작가가 숨겨놓은 단서가 되는 몇 가지 형태를 쫓아 숨겨진 풍경의 정체를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작가는 이를 의도 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숨겨둔 단서를 관객들도 찾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소통의 실마리 일 수 있으니...
유화의 물성, 회화의 정체성 ● 작가의 기억을 담은 형상을 숨긴 기하 형태들은 매우 차갑게 느껴질지 모른다. 자로 잰 듯 바르게 화면을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 형태 하나하나에서 수공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두꺼운 유화물감을 얹고 그 위에 삼각형의 시트지를 하나하나 붙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유화물감이 말랐을 때 그 시트지를 뜯어낸다. 만약 작가가 차가운 화면을 만들고자 했다면 시트지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트지가 뜯어지면서 생기는 물감의 균열과 마티에르를 남겨둔다. 기하 형태가 화면 밑바닥의 형태들을 해체시켰다면, 그 기하 형태를 수공적 기법으로 다시 한 번 파열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는 기하학적 형태 하나하나가 엄밀한 의미에서 같은 것이 아님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 유화의 물성을 통한 회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 유화의 물성, 이는 평면성 외에 회화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특성이다. 유채 물감 특유의 끈적임을 위하여 작가는 기름을 적게 섞고 그마저도 신문에 흡수를 시켜 제거한다. 그렇게 하여 얹어진 유채 물감은 화면에서 마치 공예와 같이 캔버스 표면 위에 두터운 두께를 만들고 그 표면은 뜯어진 시트지에 의하여 변형된다. 유화 물감을 화면에 얹고 적당한 굳기에서 시트지를 떼어내는 작가의 반복적 행위는 수공 장인의 것과 같다. 또한 밑바탕에 기억의 형상을 그리고 그 위에 두터운 유채 물감을 얹은 후, 다시 형태 하나하나를 다듬어 내는 이 과정은 여러 레이어의 중첩이며, 한 겹 한 겹 공을 들인 작품이다. 그 치열함을 느껴본다면 어떨까? 더불어 이러한 반복적인 행위는 작가의 말처럼 "일상 속의 습관, 기억"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가 밑바탕에 그린 기억의 형상과 그 위를 덮은 기하형태 역시 같은 맥락인 것이다. ● 동일한 색을 가진 기하 형태들이 이루는 촘촘한 그리드 때문에, 윤유진의 작품이 일견 단색화와 같은 추상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자신은 소통을 원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자신의 무의식을 차분한 색의 형태들로 덮어 정리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흔히 엉뚱한 상상을 하는 자신을 숨기고, 평범한 듯 혹은 바른 모습으로 사람들과 마주대하고 싶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내가 숨겨둔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림이 하나의 텍스트가 되고, 기호가 되어 관람객과 그림을 통해 소통하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림을 통해 작가 스스로가 자신에게 거는 대화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이 관객 역시 스스로에게 말을 걸게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말이다. 이렇듯 윤유진은 팝아트적인 형상과 추상적인 기하형태로 성찰을 지점을 마련해주고 있다. 그 치열한 반복적인 작업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그 노력과 직관이 있기에, 앞으로의 5년, 10년이 더 기대가 된다. ■ 허나영
Vol.20161105c | 윤유진展 / YOONYOOJIN / 尹裕診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