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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923_금요일_06:00pm
LOOM Project #1. 아티스트 토크_이혜인 2016_1021_금요일_05:00pm 이메일 / [email protected] 협력 / 아트선재센터 * 별도의 참가신청이나 참가비는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 기체 GALLERY KICHE 서울 서초구 방배로42길 35 2층 Tel. 070.4237.3414 www.gallerykiche.com
걷고 잠시 머무는 곳의 그림 ● 이번 전시 리플렛에는 작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면에 있다. 작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뒷모습인데 수레 위의 종이 상자에 Golden Tree Compnay라는 글자가 써져 있다. 작가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때 화구를 담아 가지고 다니는 상자이다. 전시의 제목도 이 상자의 글자에서 가져왔다. 우연히 선택한 것이었지만 '금빛 나무'라는 단어가 이번에 전시된 그림들과 꽤 잘 어울린다. 어떤 화폭은 정말 금빛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전에 그림들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색인데 덕분에 그림이 한결 환해 보인다. 그런데 화가의 전시에 그림 대신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대표 이미지로 사용하는 것은 조금 이례적이다. 어떻게 보면 결과물인 그림 그 자체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동하는 행위에 더 방점이 찍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온 화가가 동시에 그림의 무게 추를 덜어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렇게 이동하는 것은 그의 작업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혜인 작가의 작업을 알기 전까지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그림 속에는 풍경이 들어있었다. 아름답거나 기괴하거나 작가의 심리적 상태가 포개어져 있거나 간에 야외의 풍경이 회화의 어느 곳에서나 존재했지만 풍경을 그리는 장소는 그 결과보다 부차적인 사실로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에 캔버스를 들고 야외에 나가 스케치를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사진으로 찍은 것을 작업실에서 다시 그리거나 보이지 않는 풍경이나 대상을 그리거나 추상적인 형태를 찾아가는 경우가 더 빈번한 것이다. 야외에서의 그림 그리기가 학창시절의 사생대회나 취미화가들에게서 간간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떠올리고서야 화구를 챙겨 밖으로 나가고, 장소를 찾고, 그 자리에서 그림을 완성하는 이혜인 작가의 작업 방식의 특별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전시에는 2016년 그가 찾아 다닌 장소들과 그 곳에서의 시간들 특히 늦은 봄에서 여름을 걸쳐 가을이 오기까지의 시간이 오롯이 담겨있다. 금천구의 공단 일대에서 5월과 6월의 많은 시간을 보냈고, 여름에 접어들면서는 홍제천 변을 그렸으며, 이전부터 그의 그림에 종종 등장했던 능곡역 근처의 들판 풍경도 다시 나온다. 이 세 곳을 모두 가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전시가 시작 된 후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면서, 이미 가본 장소와 퍼즐을 맞추기도 했고, 전시를 보고 난 후 그 중 한 곳을 산책하면서 내가 보았던 그림과 퍼즐을 맞추기도 했다. 사실 이 곳들은 나의 기준에서 "특별한" 장소들은 아니다. 그 장소의 맥락이 작업에 서사적 줄기를 생성해 주는 것도 아니다. 대게 작가가 거주하고 활동하는 반경 내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곳들로 보이는데, 작가 개인에게 있어 중요한 곳이기도 하고 몇 가지 기억과도 얽혀 있는 것 같지만 객관적으로 대단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역사적 장소들은 아닌 것이다. 흔히 도심의 장소들, 근교의 풍경을 작업에서 접할 때 자주 등장하는 폐허나 재개발과 직접 연관되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소들은 이 그림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가 되었다.
금천예술공장 근처의 공단 야외에서 주로 그린 그림들은 「슈퍼 테이블」이라는 큰 제목이 붙어있다. 근처 슈퍼마켓 앞에 놓여져 있는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작업실 삼아 그린 작은 크기의 그림들이다. 작가는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금천예술공장에서 레지던시를 했는데 2016년에 그곳에서 다시 전시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그 장소를 다시 찾게 되었다. 막상 레지던시를 하는 동안에는 인근 풍경을 그리지 않았다는데, 시간을 묵힌 후 다시 찾은 그곳에서 비로소 그 풍경을 그릴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그림은 공장의 건물들, 근처의 하천 풍경, 슈퍼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들과 지나가는 사람 등을 한 조각씩 담고 있다. 아침의 빛에서 한낮, 그리고 해질 무렵과 가로등 불빛 아래까지 화폭에 담긴 시간들이 빛의 색깔로 만든 시계처럼 나열되어 있다. 작가는 그림 속에 공장이라는 삶의 조건이나 그곳에서의 분주함과 같은 이야기를 굳이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초점이 나간 채 찍힌 스냅사진이나 그 곳의 이런저런 공간들을 포착한 그림 일기 같다. 몇 월 몇 일 그곳에 있었고, 어디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구체적인 사실이 각각의 그림에 도장처럼 함께 한다. 마치 '나 여기에 있었다'는 실존의 확인처럼 말이다.
전시장 바닥의 좌대에 손수건처럼 접혀 있었던 그림 속의 장소는 홍제천 부근이다. 커다란 캔버스를 접어서 조각조각 그린 그림이고, 전시 중에 한 번씩 다른 부분들이 보일 수 있도록 뒤집어 주었다. 대부분 밤에 그린 이 그림에는 열대야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슬렁슬렁 걸어 나와 산책하던 천변의 모습이 담겨있다. 때로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림을 그리면 툭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고, 그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며 말을 거는 어린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2016년 여름 밤, 천변 풍경이 역시 일기장처럼 그 안에 포개어져 있다. 나는 9월의 어느 날 작가와 홍제천 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은 완성된 후였고, 전시는 아직 시작하기 전이었다. 작가는 여름이 되면서 홍제천과 가까운 연희동에 작업실을 구했고, 나는 비슷한 시기 인근 불광천과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갔다. 더위가 좀 가신 늦은 오후, 한가한 천변에 앉아 내부순환로를 따라 흐르는 홍제천 풍경을 보았다. 내부순환로의 고가가 천변 위를 지붕처럼 덮고 있고 고가의 기둥에는 커다랗게 그림들을 프린트해서 걸어놓았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감상하라고 만든 일종의 '야외 미술관' 컨셉으로 구청에서 꾸려놓은 듯하다. 우리가 대화를 하며 바라보던 방향의 기둥에는 머릿수건을 쓰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담은 이인성의 그림(해당화. 1944. 리움 삼성미술관 소장)이 붙어 있었는데, 나중에 전시에서 그 그림이 다시 이혜인 작가의 접힌 그림 속에 담긴 것을 보았다. 외국인인 듯 이국적인 초상을 뜬금없이 야외의 기둥에 붙여놓았던 것이 다시 이혜인 작가의 지난 여름 기록 안에 흘러 들어온 것이다. 그림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천변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 날은 작업에 대한 얘기도 하고, 새로 이사한 집과 새로 이사한 작업실에 대해 얘기했다. 더운 날 창문을 열어 놓은 집들 사이를 관통하는 소음들과, 조그만 땅에도 야채와 꽃을 심는 이웃 할머니의 얘기를 하면서 지난 여름을 차곡차곡 접었다.
전시가 끝날 무렵인 10월의 마지막 주에 마지막 장소인 경기도 고양시 능곡역 근처 들판을 걸었다. 역에서 작가를 만나 지하보도를 관통해 능곡역의 들판을 걸어가면서 그림 속에서 보았던 풍경들을 눈으로 마주했다. 들판 뒤로 전철 역사와 고층 아파트들이 겹겹이 이어지던 그림 속의 앵글이 실제로 보였다. 사람이 지나가면 동시에 돌아보고 짓는 개들, 깊이 패인 둑 아래 개울의 풍경들 역시 낯익었다. 작가가 그림을 그렸던 계절보다는 조금 더 무르익은 색감의 장면이었다. 늦가을 들판은 추수가 끝나 마른 짚풀이 둥그렇게 말려있었고, 여기저기 겨울에 수확하는 밭 작물이 심겨져 있었다. 둑의 가장 자리에 키 작은 관목들이 자랐다. 지키는 사람도 막아서는 사람도 없는 이 들판은 다양한 작물들과 잡초, 들풀들이 뚜렷한 경계 없이 자라면서 조화로운 모습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 가본 곳이었지만 그 들쑥날쑥 한 생태의 풍경이 특별히 편안했다. 능곡은 작가의 고향이자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다. 작가는 특히 이 들판을 자신의 공간, 자신의 작업실로 만들었다. 2010년에는 여기서 그림을 그렸고 또 구조물을 설치해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컨테이너 창고 앞에 설치된 차양 아래에서 햇볕을 피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단단한 흙 바닥의 둑길에 캔버스를 펴 놓았다가 자동차가 지나가면 그림을 접고 펴기를 반복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뭇가지가 쏟아질 듯 내려오고 있는 「맑은 날 해질녘에만」은 그렇게 만들었다. 야외에서 그린 탓에 그림에는 낙엽과 진흙, 나무씨앗들이 붙어 있다. 캔버스의 가장자리는 안으로 감아 말아 뾰족한 각을 지웠다. 화면이 부드럽고 약간은 조각처럼 보인다.
우리는 역을 기점으로 들판의 너머에 있는 대로변으로도 조금 걸었다. 모퉁이에 관광호텔을 개조해서 만든 오래된 병원이 있었다. 그 옆 커다란 모과나무 가까이 횡단보도에 남녀 한 쌍을 묘사한 조각이 있다. 이 역시 그림에서 본 적이 있다. 석양을 그린 그림을 가운데로 하고 각기 두 점이 양 옆에 붙어있는데, 이 두 그림에서 포착된 계절과 시간의 차이가 보인다. 땅 바닥에 앉아 있는 이 조각상이 예전에는 좌대에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어느 시점에선가 조각상의 위치가 바뀌었고 그 때 조각도 바닥으로 내려왔다. 왠지 그 보도에 어색한 형태로 자리잡은 조각상 옆에 놓인 길로 걸어가면 작가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고, 그 근처에서 문방구를 했던 부부가 아직도 살고 있다고 덧붙인다. 아주 오래 전 한 아이의 하교길이 눈에 그려지는 듯 했다. ● 이혜인의 그림들에는 그 날의 날씨와 햇볕이 반영되어 있다. 그림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다른 날 다시 그려야 했을 때도 처음 그 그림을 그렸던 것과 비슷한 시간에 그림을 그려야 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몸의 리듬, 날씨, 습도, 빛의 변화 등과 같은 미세한 조건들이 연속될 때 그림 역시 잠시 멈춤으로부터 다음 붓질로 연결된다. 나뭇잎, 흙과 함께 무심코 발바닥에 밀린 자국도 그림에 남아 있고 캔버스가 접힌 자국도 무심히 드러나 있다. 들판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거기에 풀들이 자라는 것처럼, 그림은 마치 그냥 거기에 생겨난 어떤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전의 한 인터뷰에서 작가가 "나는 이미지 생산자가 아니다."라고 대답한 것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 목소리를 통해 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를 그림 그 자체보다 강조하고 있다고 느꼈다. 물론 그림을 지속하는 행위에 대한 강조가 그의 그림에 대한 가치나 평가를 떨어트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에는 아름답다거나 강렬하다, 묵직하다, 깊다 등의 형용사를 충분히 붙일 수 있다. 빛과 풍경을 포착하는 빠른 속도, 그리고 화가의 눈 앞의 프레임을 그림의 프레임에 연장하는 것 캔버스를 접거나 입체로 만드는 것 등의 형식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혜인의 그림은 무엇보다 '움직인다, '걷는다', '숨을 쉰다' 등과 같은 동사들에 매우 잘 어울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 자유롭게 자신의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에서도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자신이 점유하기 쉬운 일상적인 실내의 공간 뿐 아니라 들판이나 거리, 공단과 천변까지 열린 어떤 곳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줄곧 밖으로 나가는 작가의 행위를 통해 마치 증명처럼 펼쳐지고 있다. ●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특별하다"는 것은 새삼 야외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밖에서 할 수 있는 행위들은 의외로 제한되어있다. 그림을 그리는 평화로운 행동 조차 때로 타인이 이목을 끌거나 쫓겨나는 이유가 된다. 작가는 베를린에 머물 때 "나는 개 한 마리 없어요. 나는 총도 없어요. 나는 당신의 30분을 훔칠 거예요."라는 글을 이동식 집 구조물에 써 붙이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펠트로 만든 그의 이동식 집 구조물은 전시장으로 옮겨져 설치되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 전시된 작업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경기도 고양시의 능곡역 인근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자라왔던 곳이다. 스무 살 무렵 지역이 재개발 되면서 작가의 집이 있던 지역도 해체되었다. 살고 있던 집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집의 불안정함은 작가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듯 하다. 집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경험이 자신이 발 붙이고 있는 대지의 단단함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달팽이처럼 화구를 이고 밖에 나가거나 그림을 그릴 자신만의 임시적 구조물을 만들어 여기저기를 떠돌기도 하면서 그림의 공간을 밖에서 찾게 된 것은 더 이상 영원한 내 집이란 없다는 자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펠트 천으로 만든 텐트를 들고 베를린의 추운 계절을 나섰던 작가는 올 여름 서울과 그 근교에서 훨씬 가볍고 단출한 짐 수레에 상자를 싣고 길을 나선다. 발 딛고 서 있는 땅에 대한 불안과 지붕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이 세계에서 살아갈 공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당당하고 조용한 항의로서의 그림 그리기로 나아간다. 계절은 따뜻해졌고 금빛 태양으로 밝아졌다. 전시 Golden Tree Company의 작업들은 유난히 더웠던 2016년 여름의 시작과 끝에 천천히 단단한 발걸음으로 지났던 풍경들의 모음이자,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어떤 시간의 일부이다. ■ 김해주
Golden, Tree, Company ● 갤러리 기체에서 열리는 개인전 『Golden Tree Company』에서 이혜인 작가는 스케일의 변화를 시도하고, 우연성을 극대화하면서 회화성 자체에 더 몰두하고 있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여러 장소에 걸쳐 야외작업으로 진행하던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스케일의 변화를 위해 화구 등 짐이 담긴 손수레와 함께 일정 길이의 캔버스 천을 접어 갖고 다니다, 대상을 발견하면 바닥에 펼친 채 그려냈다. 이는 그가 추구하고 있는 특정의 장소와 그에 관한 경험과 기억의 관계, 우연적인 만남에서 촉발되는 의외성에 보다 집중하고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 할만 하다. 이제 작가에게 현장은 대상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그려내는 스튜디오 그 자체이다. ● 이렇듯 스케일에 변화를 주면서 그의 작업방향도 회화적 요소 자체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 쪽으로 옮겨졌다. 그날그날의 빛에 따른 색과 대기의 미묘한 변화, 대상과의 거리나 위치에 따른 시점 등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아마도 그가 펼쳐놓을 생생한 현장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손수레를 끌고 돌아다니며 맞닥뜨리는 대상에 대해 피상적인 관찰자로 머물지 않고, 온 몸으로 교감하면서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작품들엔 그런 작가적 여정을 말해주듯 화면 위에 올라서서 붓질하는 작가의 손짓, 쓸린 발자국 같은 몸의 흔적에서부터 빛, 공기, 바람, 흙먼지, 나무 부스러기 등 대상이 머문 흔적들까지도 낱낱이 묻어난다. ■ 윤두현
Golden, Tree, Company ● Gallery Kiche is pleased to present a solo show of Hyein Lee(b.1981), entitled 'Golden Tree Company', through 23rd September to 22nd October. This is the first solo show at Gallery Kiche. In this exhibition, she will share new works in large-scale as well as in small. The title is taking from brand name of a fruit company on the box which is used to convey her painting tools, when she realized that each word had closely tied to essential elements of her work. ● The exhibition reveals Lee's changed artistic consideration from kinds of narrative including personal and/or social issues to the painting itself such as color, brushstroke and viewpoint while intensifying her longstanding investigation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personal memories or experiences and places. With enlarging canvas started from an aim to overcome some restrictions of time, size and an ambiguous status of her artistic focus in previous works, Lee has tried to clarify her direction by concentrating more on painterly elements. Through exuberant color, multi-view and various scales, these paintings express the artist's interpretation of intimate moments with subjects and places in nature. ■ Duhyun Yun
Vol.20160925f | 이혜인展 / LEEHYEIN / 李惠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