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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릴레이 개인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777 RESIDENCE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03-1 3층 Tel. +82.31.8082.4246 changucchin.yangju.go.kr
어제도 오늘도 아닌 흔적 : 폐허와 부재에 관한 경야(經夜) ● 서울에서 구파발을 지나 고양시 방향으로 매끄럽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육중한 바위산 때문인지, 버려진 듯한 들녘에 드문드문 세워진 어설픈 직육면체의 성냥갑들 때문인지, 스산하고 공허한 기운이 흘러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에게 삶의 터전에 대한 이야기가 부재하는 장소로 다가온다. 이 지축지구는 다른 여느 지구처럼 고양시에 얼마 남지 않은 취락마을로 오래된 건축물들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어 내부 구조만 남아 있거나 한 쪽 면을 드러내어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놓여 있다. 집을 짓기 위해 사용된 모든 재료들은 주변에 종류별로 분류되어 단정하게 각각의 군을 이룬다. 이 폐허 속에서 벽돌, 나무, 콘크리트, 철, 흙, 유리 등 명확하게 분류된 재료들은 한여름 밤에 이곳을 지나갈 때면 마치 죽은 이의 장사를 지내기 전에 밤을 새워 이 장소를 묵묵히 지키는 모습을 자아낸다. 한 때 어느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마지막 흔적들을 경야(經夜)하듯이 과거와 현재가 물러설 수 있는 부재의 공간을 미래를 위해 내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 작가 이시내는 거주지에서 작업실을 왕래하면서 오랜 기간 이곳에 자리한 온전한 집에서부터 누군가의 소박한 삶의 역사가 허물어져가는 과정까지 공공주택 조성사업을 하는 공사장 풍경을 근 2년 가까이 관찰해왔다. 작가는 번영과 쇠퇴를 되풀이하는 도시계획과 여기에 딸려오는 보편화된 건축 트랜드의 기하학적인 요소의 풍경들을 수집한다. 작가는 이전에 과거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고 반성일 수도 있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지 않은 유휴공간(remaining space)이나 폐허(ruin)에 초점을 두었었다. 반면, 이번 작업들은 표류하는 영역(territory) 안에서 변화의 욕구가 무르익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영역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폐허가 아니라 새로운 풍경으로 대체될 내일에 대한 것이다.
전시 「어제도 오늘도 아닌 흔적」에서 이시내는 물리적인 장소뿐만 아니라 흔적과 관련된 부분에서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재조직하여 가변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 조형적인 방식으로 사유한다. 또한,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기억과 퇴적물이 쌓여 있는 곳에서 새로운 컨텍스트와 지형학적인 도식에 개인적인 여정이 직조되어 그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도시 재개발이나 재건축의 현상에서 파생되는 사회,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이동, 순간, 행위에 의해 남겨진 일상의 흔적들인 건축적 재료의 물성을 수집하여 물리적인 주변환경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작가가 발견하는 파편들은 독특하게도 처음부터 흔적을 읽어낼 만한 덩어리들이 아니라, 곧 있으면 잊혀질 틈과 사이공간(In-Between)에서 발견된 점, 선, 면과 같이 지극히 형식적인 요소가 도드라지는 오브제들이다. 이와 같이, 포획된 시각적 요소들은 설치와 평면의 방식으로 재조합 되어 불확정한 상황을 자극하며 관찰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상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과거의 장소가 되어버린 공간의 현존에 대해 작가는 문자적으로 "벽 사이"의 사이 공간에 초점을 둔다. 동시에 여러 이미지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가의 도면 작업은 본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가 아닐까 싶다. 작품 「지축동 440-105」(2016), 「지축동 449-6」(2016) 그리고 「지축동 440-38」(2016)은 도면 중 세 개의 공간을 가지고 다섯 장의 유리 단면 각각에 스크린 인쇄를 하여 레이어드한 평면 작업이다. 각 공간의 도면에는 번지수와 세입자명만 있을 뿐 가정집, 상업시설 또는 종교시설이었을지 모를 수직, 수평, 화살표, 공간의 면적, 위치와 같은 시각적 기호들이 있다. 작가는 이 기호들을 통해 허물어지기 이전의 장소와 흔적을 가늠한다. 이들이 현실에서 구현된다면 벽이 되어 공간을 나누고 누군가의 자취들이 담겨 있을 터이다. 릴케(Raine Maria Rilke)가 "설계도를 통해 폐허를 본다"고 말했듯이, 작가는 기하학적인 도면을 통해 시간적 그리드의 선적 요소들을 중첩시켜 현재 폐허에 가까운 이곳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직한다. ● 지축동 시리즈의 도면작업에서 드러나는 불확정성(Indeterminacy)의 맥락은 흥미롭게도 존 케이지의 도형악보(Graphic Notation) 와 그 이미지의 유사성을 함께한다. 실제로, 케이지의 「폰타나믹스(Fontana Mix)」(1958)에서 드러나는 공간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시내가 도면에 명시된 점, 선, 면들을 철저히 주관적인 동선과 축으로 분열, 일탈, 비틀림 등 해체시켜 예측 불가능한 잠재공간으로 재해석하는 것과 유사하다. 재해석된 도면에서는 목조가옥과 장독대, 차양, 기타창고와 화장실의 면적은 서로 뒤섞이고, 각 공간의 가장자리들과 울타리, 화단, 대문의 길이 들이 흩어지고 재조합 된다. 이처럼, 기존의 기능 및 개념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변형을 가하는 "공간적인 행위"는 역설적으로 테두리가 있는 다양한 형태의 스테인리스로 주조된 수직적인 평면작업대(flatbeds)에 놓이게 된다. 나아가, 각각의 유리판에 각기 다른 기하학적인 요소들을 인쇄하여 중첩시킴으로써 투명성이 만들어내는 건축적 재료의 물성과 공간의 깊이를 만드는 효과를 나타낸다. 이러한 상반되는 태도는 또다시 새로운 규칙의 틀 안에 화면을 편입시키고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소에 대한 흔적과 기억 그리고 은유적인 표현에 대해 현장의 건축적 재료를 발굴, 수집하는 고고학적인 태도는 설치 작업인 「어느 담장을 위한 기념비」(2016)와 「중화된 파편」(2016)에서 그 매스(mass)들이 더 적절히 드러난다. 이 파편들은 역사적, 경제적 가치가 사라지고 기능하지 않는 현대 건축물의 잔해일 뿐, 작가는 그 장소에 남겨진 흔적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오브제가 갖고 있는 조형성과 형식의 측면에 집중한다. 「어느 담장을 위한 기념비」는 작가가 스코틀랜드 글라스고(Glasgow)에서의 유학시절, 오래되거나 무너진 성터와 성곽 주변을 여행하면서, 그것들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도시의 노력과 그 분위기를 느꼈고 그에 착안되어 나온 작품이다. 부서진 벽돌 파편들을 가져와 한때 누군가의 담장이었을 것을 상상하면서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부재하는 가능성의 공간을 평평하게 재구성한다. 이처럼, 한편으로 '시간'을,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을 상상과 개념 속에서 파악하려는 방식은 경계가 모호한 일련의 허구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과 같다.
건축물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강제적이고 물리적인 힘이 가해진 상태의 잔해를 수집한 설치 작품인 「중화된 파편」은 시멘트 파편에 박힌 유기적인 형태의 철근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습으로 폭신하고 동그란 베이지색 러그 위에 놓여있다. 작가는 이 모습을 "골격기관이 없는 생명체"라고 언급하여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는 것을 드러낼 수 있게 하려 한다. 구부러진 네온을 차가운 물성의 철선 위에 살짝 얹어 놓음으로써 상호 교차되는 여러 개의 곡선은 고정된 축을 거부한다. 이 선들을 지탱하는 시멘트 파편 아래 동그란 형태의 러그는 주변부에 임의로 영역을 만들어주면서 차갑고 공허한 상태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서로 양립하는 물성을 하나의 영역에서 매우 가볍고 단순하게 재현하여 건축적 재료들이 충돌하고 이접(離接)하는 것을 공간에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이시내는 쇠퇴되어 잊혀진 공간을 비롯하여 남겨진 흔적들을 매개로 장소에 존재하는 가능성에 대해 사유한다. 그는 부유, 접힘, 중첩, 상쇄 등과 같은 불확정적인 방식들을 통해 허구의 공간을 구축한다. 공간과 물질을 해체하고 재상산하는 방식은 작가로 하여금 자연스레 어떠한 '상태'와 '상황' 에 대해 고민하게 함으로써, 시간을 거꾸로 추적하면서 잊혀진 그 무엇과 앞으로 생성될 그 무엇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를 찾아나가도록 한다. 비록 도시에서 쉬이 발견되는 장소와 공간에 대한 흥망성쇠는 우리네 삶에서 벌어지는 현실이지만 작가는 여기서 이야기되고 있는 도덕적 가치나 그 비용에 관한 의문이 아니라, 실재하는 면과 그 이면에 있는 상상되는 추상적인 공간을 바라본다. 이는 관찰자의 인식이 투사된 공간의 틈 사이에서 잠재공간을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일련의 관계들 속에서 다양하게 재편 가능하도록 이야기의 여지를 남겨둔다. ■ 추성아
이시내는 현대 도시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폐허와 같은 풍경에 관심을 갖고, 설치 및 판화 등의 매체를 활용하여 이에 관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은 주로 특정 지역에 대한 답사로서 시작한다. 2014년 이후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함에 따라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양주 안이나 주변의 버려진 공간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는 집에서 작업실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고양시 지축동의 재개발 현장을 방문한다. 새로운 삶의 건설 현장인 동시에 현대 도시의 상흔인 아이러니한 그곳을 그는 마치 고고학자와 같이 여러 달에 걸쳐 면밀히 살폈다. 『어제도 오늘도 아닌 흔적』전에 전시되는 작품은 이러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지축동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캐내어진 사물들은 나아가 보다 보편적인 현대적 삶에 대한 은유이자 환유로서 제시된다. ■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Vol.20160723c | 이시내展 / LEESINAE / 李시내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