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경계 위에서 On the edge of the time-Part2

박은영展 / PARKEUNYOUNG / 朴恩暎 / drawing   2016_0719 ▶ 2016_0729 / 월,공휴일 휴관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28×35.6cm_201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522a | 박은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6_072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 월,공휴일 휴관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 3층 Tel. +82.(0)2.720.7230

박은영은 숲을 그린다. 그렇지만 그냥 아무 숲이나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직접 보고 겪은 숲, 그러니까 여행으로 다녀왔다 던지, 혹은 일상에서 종종 산책하곤 하는 동네 뒷산과 같이 직접 눈으로 보았던 숲을 그린다. 그런데 숲을 그리는 방식이 조금은 남들과 다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작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게다. 연필이나 펜으로 종이에 드로잉을 할 수도 있을 테고, 거기에 수채물감으로 색을 입히기도 할 것이다. 혹은 우리가 화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처럼 이젤에 새하얀 캔버스를 올려놓고 그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유화물감으로, 혹은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칠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동양화 혹은 한국화라고 부르는, 화선지에 먹과 물감으로 그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그림이고, 오늘날 화가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동원해서 그림을 그려내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방법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그 다양한 기법 중에서, 박은영은 먹지(carbon paper)로 그림을 그린다. 먹지 드로잉을 하는 것이다. 먹지로 그림을 그리다니? 왜? 그리고 어떻게?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28×35.6cm_2016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28×35.6cm_2016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먹지는 무엇인가를 똑같이 복사하는 용도로 쓰이는 종이이다. 원하는 그림을 맨 위에 놓고, 그 아래에 먹지를 대고, 그리고 그 아래에 흰 종이를  놓은 후 맨 위의 그림을 꾹꾹 눌러서 따라 그리면 그 이미지가 맨 아래 종이에 그대로 복사된다. 똑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려야 할 때 유용하다. 이 원리는 과거에 인쇄에도 이용되었다. 그래서 먹지는 전사지라고도 불린다. 먹지는 도자기에 밑그림을 옮기거나, 민화의 본을 이용해 밑그림을 그릴 때 사용되고, 또 일상에서는 영수증이나 계약서 같은 서류를 한 번의 손 글씨로 여러 장 복제할 때에도 쓰인다. 그러나 박은영에게 먹지의 용도는 이와 다르다. 박은영의 작업에서 먹지는 단순히 이러한 복제의 수단이 아니다.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28×35.6cm_2016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28×35.6cm_2016

박은영은 본인이 직접 찍은 울창한 숲의 사진을 이용해 먹지 드로잉을 그린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바로 먹지로 전사하기에는 두껍다. 그래서 그는 먼저 자신이 찍은 숲 사진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그 위로 비치는 이미지의 윤곽을 따라 그리는 작업을 선행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사진으로 포착한 이미지를 그대로 모두 다 베껴내지 않는다.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포착된 사진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만을 골라 그려낸다. 1차 선택 과정이다. 같은 사진으로 작업할 지라도, 어떤 작품에서는 나무기둥과 나뭇잎 뭉터기 같은 큰 윤곽만 그려내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세세하게 나뭇잎 한 장 한 장, 잔가지 하나하나 모두 다 그려낸다. 작업하는 순간의 심리적, 신체적 상황, 그리고 작가가 정한 조형적 기준이 이런 1차적 다름을 만들어낸다. 박은영의 1차 드로잉이다. 이렇게 그린 1차 드로잉으로 이제 비로소 먹지 드로잉 작업이 시작된다. 작가는 1차 드로잉을 먹지로 옮겨 그리면서 먹지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한다. 바로 압력에 대한 먹지의 예민함이다. 먹지 드로잉에서는 옮겨 그릴 때 누르는 힘의 강약 조절을 통하여 채도를 조절할 수 있다. 힘을 세게 주면 선은 진해지고, 힘을 약하게 주면 선은 흐려진다. 뿐만 아니라, 선을 따라가면서 손가락 끝이나 손바닥이 닿으며 살짝만 압력이 가해져도, 먹지의 안료들은 바로 아래 있는 종이에 묻어난다. 이런 식으로 그림에 작가가 의도한 이미지가 더해질 수도 있고, 혹은 작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우연한 이미지가 더해진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강약효과를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 이미 그려 놓은 선을 따라가는 반복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강약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박은영의 2차 드로잉이 완성된다. 맨 처음 작가가 찍었던 숲 사진, 이를 얇은 종이에 베껴 낸 1차 드로잉과는 또 다른 2차적 다름을 가지는 먹지 드로잉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작가는 1차 드로잉을 치우고 먹지 위에 손가락을 이용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운 선을 긋는다. 역시 강약을 조정하고, 또 선의 굵기를 조정하며 먹지 위로 힘있는 움직임을 더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드디어 박은영의 먹지 드로잉이 완성된다. 자연의 복제(사진) - 사진 복제 (비치는 종이를 이용해 윤곽 베껴 그리기) - 먹지 전사 (먹지 드로잉)이라는 3번에 걸친 자기 복제를 통해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그 위에 작가의 감정을 더함으로써 박은영의 먹지드로잉은 탄생한다. 사진에서 드로잉으로 재탄생한 박은영의 숲은 이제 먹지로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작년까지 그의 작업 제목이 "환생의 숲 Forest of Rebirth"인 것은 여기에서 멀지 않은 이유일테다.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56.2×75.5cm×6_2015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56.2×75.5cm_2015

박은영의 먹지 드로잉은 작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작가는 먹지 드로잉을 통해 시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앞서 설명한 작업과정을 보며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박은영의 먹지 드로잉은 오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반복되는 고된 노동이다. 사실 그냥 숲을 스케치하고 드로잉하면 어쩌면 더 쉽게 비슷한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이 복잡한 방법을 택한 이유는 시간과의 싸움, 그리고 기다림을 통한 불안과 고통의 해소에 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갈등을 해소한다고 고백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먹지 드로잉 작업을 하면서 시간이 흘러가고, 그 흘러가는 작업시간 동안 작가는 그 안에 빠져 시간을 잊고 또 동시에 완성을 기다린다. 그 경계를 넘나들며 그 안에서 불안이 해소되고 갈등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도 작가의 작업을 함께 한 듯, 반복되는 선과 그들이 그려내는 윤곽, 이미지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자연에 빠져들고 작가가 찾은 균형과 안정을 함께 영유하게 된다. 작가에게 먹지 드로잉은 노동이자 치유이며, 나아가 즐거움이다. 그렇게 박은영의 먹지 드로잉은 "유희의 숲 Forest of Enjoyment"이 된다.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56.2×75.5cm_2015
박은영_Forest of Enjoyment_종이에 먹지드로잉_22.8×35cm_2015

박은영은 또한 먹지 작업을 하며 채움과 비움, 그리고 꾸밈없음 대하여서 이야기한다. 먹지는 자신을 통해 이미지가 베껴지면 베껴질 수록 먹지 스스로는 가지고 있던 안료를 잃는다. 다른 종이에  안료를 넘겨 채워 주고, 그만큼 본인은 비워지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채움과 비움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고, 한쪽이 채워지면 또 다른 한쪽은 비워진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인정함으로써 "더할수록 가벼워지고, 더할수록 줄어들며, 그을수록  소멸하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작가는 드로잉을 하고 남은 먹지를 바라보며, 어쩌면 쓰고 남은 "껍데기"로 남겨진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사용된 먹지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점차 안료를 소진하고 남은 먹지의 자연스러운 형태는 작가에게 "드로잉의 민낯"과 같은 맨 밑바닥 면이다. 꾸미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는 선들은 작가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드로잉의 맨얼굴"이기도 하다.

박은영_On the edge of the time_단채널 영상, 소리_00:04:30_2016

박은영은 먹지드로잉 작업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먹지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유화작업이나 수채화 작업도 한다. 또한, 붉은 색과 푸른 색, 검은 색의 한정된 색만 사용할 수 있는 먹지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직접 먹지를 제작하여 다양한 색상의 먹지드로잉을 한다. 나아가 먹지 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캔버스 작업으로 확장하여 또 다른 새로움을 선사한다.  ● 이번 박은영 개인전 『시간의 경계 위에서 on the edge of the time (part 2)』은 이렇게 작가가 최근 몇 년간 새롭게 도전하며 완성해 가고 있는 채움과 비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힘겨운 기다림과 시간의 경계 위에서 더하고 덜어내는 반복 작업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박은영의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그가 경험한 불안과 갈등의 해소, 균형과 안정을 함께 느끼며 그의 유희의 숲에서 산책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 임은신

Vol.20160719d | 박은영展 / PARKEUNYOUNG / 朴恩暎 / 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