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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관(전후아) 홈페이지_http://www.hooam.pe.kr 블로그_http://blog.naver.com/jujukey
초대일시 / 2016_0625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12:00am / 일요일_11:00am~11:00pm
카페 지베르니 Cafe Giverny 252 S Oxford Ave Los Angeles, CA 90004 Tel. +1.213.637.0204
작가는 이제까지 줄곧 권력의 부패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현실 시스템의 이면을 풍자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즉 사회 현상 속에서의 개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삶 속에 숨어있는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을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끌어올려 표현해 왔다.
그러다가 요사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길거리 전시회(Street Exhibition)를 열고 있다. 일종의 나들이며 쉼[休]이다. 작년에는 캐나다에서 드로잉(drawing) 전시회를 열더니, 이번에는 미국에서 개최 한다고 한다. 작가는 선(禪)놀이 하듯 드로잉을 매개로, 표현을 경유해 자신의 내면세계에 도달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드로잉은 그의 내면에 도달하게 해주는 여행이며, 여로이며 여정이다. 그 여정에 다양한 기억이 동반된다. 그는 종이에 활달한 선묘와 불투명수채로 그동안 견지해왔던 해학적이고 풍자적 작업을 펼쳐 보이고 있다. 재료의 소지하기 좋고 운송의 편리함 때문이다. 색채가 전에 비해 강하고 매우 밝아졌다. 색채 표현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다. 작가의 그림은 강한 색채의 면과 면이 서로 대비되거나 균형을 유지하며 온화하면서도 일말의 긴장감이 감돌게 한다. 그 긴장감이란 바로 왜곡된 인체의 불균형과 화면구성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인간의 형태를 일그러지거나 혹은 왜곡된 형태로 표현하는데 이는 미학적으로 불균형과 불비례 그리고 부조화를 싸안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역동적이면서 정적인, 드라마틱하면서 정제된 고차원의 미학적 경지를 열어 놓는다.
그러면서 이제까지의 현실 비판적 태도에서 점차 인간의 내면세계를 파고들어 현대인의 고단한 삶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메타포(metaphor)'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가 사는 동네의 친근한 이웃들이며, 약간 위악하거나 다소 소심하기까지 한 인간 군상들이다. 평범한 이웃의 모습에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그러니까 그 이웃들은 작가 자신이 끌어안아야할 또 다른 자신들인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의인화된 물고기, 종이배 위의 아줌마, 연잎 위의 소꿉놀이, 명상에 잠긴 보살, 고난의 세월을 지내고 새로 맞는 봄날 등,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작가의 그림에는 배가 많이 등장한다. 익살스런 종이배는 삶의 메타포를 의미한다. 망망대해의 바다를 홀로 떠가는 일엽편주에 삶을 비유한 것이다. 그 삶이라는 배가 잘 항해하기 위해선 가족과 이웃들의 '사랑과 지지(支持)'가 중요하다. 사랑은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희망의 무지개며, 배의 축이며 삶의 본질이다. 정신이며 혼이며 그리고 마음을 뜻한다. 그의 그림에는 인체의 손발 대신 새의 깃과 날개가 달린 큐피드 같은 아이콘(icon)이 자주 동원된다. 이는 사랑의 메타포를 상징하는 징표다. 또한 물고기 형상의 모티브도 많이 차용되는데 불교에서 보는 것처럼, 절대적인 존재와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화가로서 작업은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내기 위해 고심한다. 이제는 사회학적 의미가 뚜렷한 주제의식을 넘어, 작가는 점차 사랑과 죽음이라는 존재론적 의미로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시원의 기억을 더듬어 존재의 겉에서 속으로 파고드는 것으로, 주제의식은 더욱 확장되고 심화되어가고, 색채는 통일되어진다.
그는 다른 지엽적인 활동을 모두 접고 은둔거사가 되어, 내면적으로 더욱 깊은 맛깔 나는 작업을 위해 작업실에서 고민 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작가로서 원숙한 경지로 이르는 길이 멀기만 하지만, 항시 교범적인 범주에 맴도는 것에서 벗어나 실험적 작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그를 보는 내 눈길은 미덥기만 하다. 그의 다음 전시가 기대 된다. ■ 김성식
Vol.20160625c | 전중관(전후아)展 / JEONJOONGKWAN / 全重官(厚兒)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