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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스페이스 이끼 SPACE IKKI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www.spaceikki.com
사람이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빈집, 빈방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마다 흡사 관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한 때는 가족의 희망이며 보금자리였을 공간이 이제는 모든 희망을 걷어가 버리고 절망과 회한만을 남기고 간 자리로 남아있다. 빈방의 창문은 희미했으며 그곳에 걸린 커튼은 사람이 살았었다는 나지막한 고백 같았다. ● 빈집, 빈방을 찍는다는 일은 맥이 빠지는 일이다. 살았던 사람들의 기가 쇄진해 버린 데다 그나마 있던 기력마저 데리고 가버린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기조차 무거워 무덤 같기도 했다. 철거 대상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는데다 미로 같았고 천정은 낮았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니 창문도 없는 방에 부서진 침대 하나가 남아 있는데 여분의 공간은 한 치도 없었다. 그 방에서 침대를 제작하지 않으면 도저히 들여올 수 없는 구조였다. 눅진한 공기 속에서 삐져나온 매트의 속살들은 섬뜩함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날 산꼭대기 빈집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현관에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대개의 빈집들은 문이 꼭꼭 잠겨져있다. 그 중 문이 열린 집은 폐허의 빛깔이 선연했다. 나는 애써 아무 감정도 없이 신발을 신은 체 방문을 열어 제치고 들어섰다(때로는 열 문도 없다). 방안으로 쪽문이 나있고 안은 창문도 없이 어두컴컴했다. 그 곳에 밧줄 한 자락이 드리워져있고 그 아래 창백한 중년의 여인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흘러 내려진 밧줄 아래로 드러난 모습이 인형 같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얼른 돌아섰다. 그 순간 어떻게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후 수습은 절차를 밟아 처리 되었다. 오랫동안 아른거리는 아픔이었다. 그런데도 내 사진은 빛이 밝다. 꽃무늬 벽지와 오렌지색 커튼과 바다를 닮은 파란 벽들은 순진하게 밝다. 더 이상 무거워 질 수 없는 오기 같은 것이 있었다. ● 어제 사진 찍고 간 빈집이 오늘 헐리는 것을 보는 일은 충격이었다. 건물을 제거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과 인격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거의 손에 쥔 거 없이 쫓겨나다 시피 하는 철거민들에게 '보금자리'라는 임대 아파트를 짓고 회유의 손짓을 하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도시의 미관을 위해서 '판자촌'은 깔끔히 정리가 된다. 누구를 위한 미관이란 말인가? 간혹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진을 찍고 가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묻는데 대꾸 할 말이 없었다. '당신들이 살았던 곳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말 한들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 김지연
빈 집에 서다 ● 퇴근해서 돌아오면 집안은 늘 깨끗이 치워져 있었으나 조금만 주의해서 살피면 방바닥이나 마루에는 담뱃재 흘린 자국이 있고 화장실에서도 연탄광에서도 부엌 바닥에서도 담배꽁초가 발견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재떨이에도 열십자로 혹은 수레바퀴처럼 뱅뱅 돌려가며 필터에 세게 손톱자국이 박힌 꽁초가 있었다. 나는 화가 나기보다 우울하고 불쾌했다. 아내의 옷자락이나 방석, 테이블보 위에 조심성 없이 뚫린 담배 불구멍을 나는 예사롭게 보아 넘기기가 어려웠다. (오정희 「바람의 넋」)
내가 다시 집을 찾았을 때, 밥 그릇 하나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어제 던진 것처럼 생생하기 까지 했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를 상상하며 질끈 눈을 감는다. 집은 텅 비었지만 예전처럼 말끔한 구석은 없었다. 돌아서면 어지럽힌다는 아내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가도 어지럽힐 것도 없는 집안이 말끔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니 오랫동안 환기를 안 한 탓인지 눅눅하고 퀴퀴한 시멘트 냄새가 전해졌다. 훔쳐갈 것도 지킬 것도 없는 집은 창문이며 방문들을 살뜰하게 지키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를 주워 열쇠 구멍에 넣고 이리저리 들쑤시자 방문은 쉽게 열렸다. 방안 모서리 틈에서, 없어졌다며 유치원 가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울던 딸아이의 작은 머리방울을 발견했다. 거미줄을 훌훌 털고 그것을 주워들자 먹잇감이 없어 말라죽은 거미 사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딸아이와 아내가 봤다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와 딸은 지금 없다.
쪼그려 앉아 언제 죽었는지 모를 거미를 유심히 바라봤다. "아빠, 거미는 곤충이 아냐. 봐봐 다리가 몇 개지? 여섯 개가 아니지? 그래서 곤충이 아니래." 딸아이는 유난히 책을 좋아했지만 아직은 읽지를 못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센 녀석은 무언가 알려주려 하면 입을 비죽거리고 돌아 앉아 눈물을 보이곤 했다. 그래서 또래 나이 치고 상식이 풍부한 반면, 숫자세기도 글자도 잘 알지 못했다. 책을 내게 내밀며 다리 개수를 세려다 나의 손가락을 잡고 거미다리 그림에 갖다 댄 것이다. 나는 둥글게 말려 오그라붙은 거미 다리를 조심스럽게 세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웃음소리가 벽에 부딪혀 내 뺨을 후려갈기기 전까지 나는 거미가 곤충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앎의 기쁨에 빠져 있었다. 녀석은 그런 기쁨에 여러 번 웃었으리라. 아내의 무릎에 앉아 반짝이던 눈망울로 책 한번 엄마 한 번 눈을 맞추던 딸의 모습이 선하다. 나는 아내와 아이가 자주 앉아 책을 보던 자리를 찾으려 거실로 나갔다. ● 아내가 아이를 낳을 무렵 우리는 무리를 해서 서울 변두리에 있는 언덕 위 이 집을 마련했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둘 만의 힘으로 집을 마련했다는 것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집은 내부 벽들이 나무로 둘려 쌓여 있어 살짝만 기대도 특유의 삐그덕 소리를 냈다. 아내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래도 방범이 확실해야 한다며 샷시를 새로 달고 방범창을 내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동네에서 유난히 창틀이 흰, 사방이 쇠창살 창으로 뒤덮인 집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거실 창 아래 소파 하나를 두었다. 아이의 두 다리가 튼튼해 질 무렵 아이는 소파에 누워 두 발을 나무 벽에 올린 채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은 "아빠, 도둑은 이리로 들어오는 거야? 쇠막대기 때문에 못 들어오지?"하며 물은 적이 있었다. 언덕 위 이 동네가 재개발로 묶이며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고 우리 집 근처에도 빈집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빈집들이 늘어갈수록 퇴근 후 올라가는 골목길은 더욱 어두워졌고, 점점 더 집 주변이 컴컴해 졌다. 가로등의 불빛도 사람 수에 비례하는 걸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그 당시 자주 했던 것 같다. 또한 가로등이 골목길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빛이 길을 비춘다는 생각도.
아내는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았다. 그것을 안 것은 아이가 네 살 무렵이었다. 하루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데 딸아이가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을 뜯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칸을 뜯어 건네주고 TV를 보는데, 아이는 이리저리 휴지를 접고 다시 펴고 둘둘 말더니 나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입에 물었다. 그 뒤로부터 곳곳에서 담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담뱃재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냄새가 전혀 베이지 않은 것이 놀랍기까지 했다. 아내의 무엇이 담배를 찾게 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사람이 만드는 빛들이 사라질 무렵, 그곳에는 사람이 만드는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 아이와 아내가 자주 앉아 책을 보던 소파로 왔다. 차마 이 소파를 어쩌지 못했다. 소파에 누워 마치 쥐들을 쫓아내듯 나무벽을 뒤꿈치로 쿵쿵 내리찧던 딸아이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이렇게 하면 모두 놀라서 도망간대요. 엄마가 그랬어요." 당시에는 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었다. 언덕 위 유난히 창틀이 하얀 집, 유일하게 방범창을 단 우리 집에서 아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늘어갔고, 아이의 뒤꿈치는 더욱 바빠졌다. 그리고 이제는 담배를 피울 아내도 뒤꿈치를 찧던 아이도 모두 사라졌다. 이 집 또한 사라질 것이다. ● 소파에 앉아서 아내가 자주 듣던 오티스 레딩의 『부둣가에 앉아서』를 상상했다. ■ 피서라
Vol.20160620c | 김지연展 / KIMJEEYOUN / 金池蓮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