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에 서다

김지연展 / KIMJIYEON / 金池蓮 / photography   2015_1003 ▶ 2015_1130

김지연_빈방에 서다展_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_2015

초대일시 / 2015_1016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am~10:00pm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동 TAKEOUT DRAWING Itaewon-dong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637번지 Tel. +82.2.790.2637 www.takeoutdrawing.com

사람이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빈집, 빈방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마다 흡사 관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한 때는 가족의 희망이며 보금자리였을 공간이 이제는 모든 희망을 걷어가 버리고 절망과 회한만을 남기고 간 자리로 남아있다. 빈방의 창문은 희미했으며 그곳에 걸린 커튼은 사람이 살았었다는 나지막한 고백 같았다. ● 빈집, 빈방을 찍는다는 일은 맥이 빠지는 일이다. 살았던 사람들의 기가 쇄진해 버린 데다 그나마 있던 기력마저 데리고 가버린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기조차 무거워 무덤 같기도 했다. 철거 대상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는데다 미로 같았고 천정은 낮았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니 창문도 없는 방에 부서진 침대 하나가 남아 있는데 여분의 공간은 한 치도 없었다. 그 방에서 침대를 제작하지 않으면 도저히 들여올 수 없는 구조였다. 눅진한 공기 속에서 삐져나온 매트의 속살들은 섬뜩함 바로 그것이었다.

김지연_빈방_군산 신풍동 2_2015

어느 날 산꼭대기 빈집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현관에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대개의 빈집들은 문이 꼭꼭 잠겨져있다. 그 중 문이 열린 집은 폐허의 빛깔이 선연했다. 나는 애써 아무 감정도 없이 신발을 신은 체 방문을 열어 제치고 들어섰다(때로는 열 문도 없다). 방안으로 쪽문이 나있고 안은 창문도 없이 어두컴컴했다. 그 곳에 밧줄 한 자락이 드리워져있고 그 아래 창백한 중년의 여인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흘러 내려진 밧줄 아래로 드러난 모습이 인형 같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얼른 돌아섰다. 그 순간 어떻게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후 수습은 절차를 밟아 처리 되었다. 오랫동안 아른거리는 아픔이었다. 그런데도 내 사진은 빛이 밝다. 꽃무늬 벽지와 오렌지색 커튼과 바다를 닮은 파란 벽들은 순진하게 밝다. 더 이상 무거워 질 수 없는 오기 같은 것이 있었다. ● 어제 사진 찍고 간 빈집이 오늘 헐리는 것을 보는 일은 충격이었다. 건물을 제거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과 인격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거의 손에 쥔 거 없이 쫓겨나다 시피 하는 철거민들에게 '보금자리'라는 임대 아파트를 짓고 회유의 손짓을 하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도시의 미관을 위해서 '판자촌'은 깔끔히 정리가 된다. 누구를 위한 미관이란 말인가? 간혹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진을 찍고 가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묻는데 대꾸 할 말이 없었다. '당신들이 살았던 곳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말 한들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 어느 초여름, 그 빈집 앞에는 유채꽃과 황매화가 만발하고 있었다._ 김지연 ● 사진가이자 아키비스트인 김지연은 2011년 전북과 전남 일대의 시골집을 촬영했다. 「낡은 방」이라는 제목의 이 작업은 고령의 노인이 살고 있는 방 내부와 방 주인의 뒷모습으로 이뤄져 있다. 손때 탄 단출한 세간이 전부인 사진 속 방은 이제 곧 사라질 운명을 예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쓸한 농촌의 실상이라든가 독거노인의 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지는 않는다. ● 대신 급속한 근대화와 도시화에 휩쓸리는 사이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뿌리와 태도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화려하고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욕망케 하는 대도시의 삶은 과거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누렸던 느긋한 시간들을 희미한 기억의 저편으로 내몰아 버렸다. 김지연의 「낡은 방」은 이렇듯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으로 우리를 소환시키며 모든 기억을 잉태한 장소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게 만든다.

김지연_낡은 방 시리즈_2011

올해 초 군산 일대에서 촬영한 「빈방에 서다」는 「낡은 방」의 또 다른 연장선에 있다.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정착지가 대부분인 군산의 소룡동, 신풍동, 구암동, 신흥동 일대는 이미 철거가 시작되었다. 무허가 주택에 임대로 살던 이들은 헐값의 보상금을 받고 벌써부터 집을 비워버린 경우도 허다하다. 곧 헐릴 집의 바깥과 내부를 2장씩 나란히 보여주는 이 연작은 「낡은 방」이 처한 가까운 미래를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의 시선은 담담하고 중립적이지만, 그럴수록 사진들은 낡고 누추한 것들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밀어내는 성급한 시대에 대한 은유로 가득하다.

김지연_빈방_군산 해망 550-0_2015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동에서 열리는 김지연의 「빈방에 서다」는 같은 제목의 작품과 「낡은방」 연작을 함께 아우르며 장소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가 말하듯 '장소'란 시간과 사건과 경험이 덧대어져 만들어진 기억의 터전이다. 그럼으로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 더 나아가 시대의 기억을 아우르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김지연_빈방에 서다展_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_2015

그러나 장소성에 대한 질문은 비단 개발과 도시화에 밀려나는 시골과 중소 도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본래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에서 예정되어 있던 이 전시는 건물주가 바뀌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부득이 하게 전시 장소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대중들이 찾아오는 카페이면서 동시에 작가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선보이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의미 있는 실험은 자본과 상업의 논리 속에서 또 다시 설자리를 잃는다. 그럼으로 전시 「빈방에 서다」는 한 시대의 문화와 기억을 만들고 품는 보금자리로서의 '방'을 허무는 여전히 가난한 우리 시대를 성찰하게 만든다.

김지연_빈방에 서다展_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_2015

전시는 출판사 사월의눈이 만든 동명의 사진집 출판도 같이 기념한다. 처음 책을 만들기로 구상했던 시점부터 책의 판형이나 종이의 재질을 결정하고 사진을 선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전시의 일부로 소개함으로써, 한 권의 사진책이 나오기까지의 세심한 흔적에 주목한다. 더불어 사진이든 책이든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문화 활동이든 모든 의미 있는 생산들의 지난한 과정과 고민에도 귀 기울이고자 한다. _ 전시기획자 송수정 ● 사진가 김지연은 전라북도 진안 및 전라남도 마을 몇 곳을 중심으로 「낡은 방」 시리즈를 작업했다. 주로 2011년도에 걸쳐 진행되었다. 실제 안면이 있는 이웃으로부터 시작해서, 「정미소」,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등의 작업을 하면서 익혀두었던 마을을 찾아간 김지연은 이웃이 사는 방에 그들을 앉혀 놓고 이들의 빈 방과 뒷모습을 촬영했다. 그렇게 「낡은 방」은 텅 빈 낡은 방과 뒷모습이 있는 낡은 방이 교차하는 시리즈로 마무리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두 유형의 사진이 자극하는 지점이 다르다. 뒷모습 사진은 보는 이의 감정을 건드리는 감성적인 화면인 반면, 낡은 빈 방은 방과 주인 그리고 그의 취향과 시간이 자연스럽게 고안해 냈을 법한 사물의 질서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중립적이다. 한 사람이 공간과 맺어왔을 관계가 빈 방에 선명하다. 반면, 뒷모습 사진은 미셀 투르니에의 "뒤쪽이 진실이다"란 말을 명제화시킨다. 그의 또다른 문장을 빌리자면, "인간의 뒷모습이 보여주는 이 웅변적 표현"은 기억과 추억을 낚는 미끼인 것이다. 그래서 「낡은 방」은 지역의 소외와 가난, 노년층의 고뇌를 표현하기 보다 인물과 그 인물이 사는 장소와의 교감을 자극한다. 방 구석에 핀 곰팡이는 열악한 생활터전의 증표이기도 하지만, 예스러움과 집단의 옛 기억을 낭만화시키는 벽지의 패턴이기도 하다. ● 책의 구조는 사진의 이러한 양가성에 따라 양방향의 서사로 고안되었다. 전시를 두 달여 앞두고 있는 8월 중순, 그렇게 책은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김지연은 작업하고 있는 새로운 시리즈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보여줬다. 2015년 상반기, 김지연은 새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었다. 「빈방에 서다」를.

김지연_빈방_군한 해망로 4_2015

"2015년 초 군산 '여인숙'에서 12월 군산에서 단체전을 한다고 작업을 부탁받았다. "근대화상회'를 연장해볼까 생각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군산의 철거대상지역으로 지정돤 소룡동(해망로)과 신풍동, 구암동, 신흥동, 부근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지역은 철거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어 이미 오래전 '빈방'의 상태로 있거나 한두 집 철거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곳은 대부분이 한국전쟁 때 내려온 피난민들의 주거지였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하는 것은 물론이요, 무허가 주택에 임대로 살던 사람들은 달랑 7백~9백만원을 받고 쫓겨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전날 보고 갔던 집이 다음날 헐리고 있는 사건을 보고 방 작업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지연의 설명이다. ● 「빈방에 서다」는 기존 책 작업에 대한 제동장치였다. 작가에 의해 두 장씩 병치된 「빈방에 서다」는 따스한 정서가 지배적인 「낡은 방」과 달리 서늘한 기운이 역력하다. 얼핏 보기엔 유휴공간을 포착한 것 같다.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과 석탄난로. 폐허가 인테리어가 될 수 있는 오늘의 소비사회에선 근사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진은 그 모습이 폐허의 우울한 단면이었음을 이내 폭로한다. 책의 방향을 틀기엔 매우 늦은 시간이었지만 「빈방에 서다」는 「낡은 방」과 함께 가야 하는 사진이었다. 사진가 김지연도 말했다. "이렇게 작업함으로써 방 시리즈를 모두 끝내볼까 한다."

김지연_빈방에 서다展_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_2015

「빈방에 서다」와 「낡은 방」은 외관과 실내라는 공간의 대조만큼 상호보완한다. 「빈방에 서다」와 「낡은 방」은 서로의 내연이자 외연이다. 「빈방에 서다」는 「낡은 방」의 감성적 화면이 차마 이끌어 내지 못한 방 바깥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들었고, 「낡은 방」은 「빈방에 서다」와 병립됨으로써 보다 충실하게 삶과 사람을 기록하는 사진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했다. 두 시리즈 모두 다큐멘터리 범주에 속하지만, 병렬구조 속에서 「빈방에 서다」는 「낡은 방」을 개연성 있는 픽션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이중주는 또다시 두 축의 서사를 필요로 했다. 앞선 좌수/우수의 양방향 서사는 더이상 적절한 대안이 아니었다. 게이트폴드 방식과 프랑스식 제본 등을 고민한 끝에 한 쪽 면이 막힌 8면 접지를 적용시켰다. 막힌 지면 사이로 「낡은 방」 사진을 삽입했다. 그 앞뒤로 폐허의 이미지가 인쇄되었다. 널리 알려진 린코 카아우치倫子 川內의 『Ametsuchi』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영향 속에서 궁극에 이 책 『빈방에 서다』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폐허와 폐허 사이에, 사진과 사진 사이에, 무엇보다 종이와 종이 사이에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 전가경

Drawing 56. 빈방에 서다 Empty Room 작가: 김지연 KimJeeyoun 기획: 송수정 Song Sujong 전시기간: 10. 3 - 11. 30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동 오프닝 및 출판기념 2015. 10. 16 6pm

Project 11. 책 집 전국 7개 도시, 23곳의 책방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책집을 이룹니다. 2015.10.1-10.30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Vol.20151013j | 김지연展 / KIMJIYEON / 金池蓮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