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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61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부산대학교 아트센터 부산시 금정구 부산대학로 63번길 효원문화회관(NC백화점) 8층 Tel. +82.51.510.7323
재현과 조형으로서 풍경 ● 배지민의 작업은 풍경이다. 도시 어디서든 보게 되는 건물들, 큰길과 골목길, 상점, 인물들이 등장한다. 산복도로를 낀 마을 풍경, 배, 그 사이에 도심의 거리와 어시장의 풍경으로 시선이 오간다. 배와 산복도로를 이어주는 시선 사이에 부두가 있고, 자갈치 시장 풍경이 있는 셈이다. 이번 전시 전체를 엮고 작품을 이끌어 가는 시선의 방향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일반 회화에서 흔히 경험하는 구축적인 형태묘사나 현실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재현의 형상이 없지 않지만 대부분 모필(毛筆)로 간략하게 잡아낸다. 순간적인 감성의 만남, 먹이나 선이 만들어내는 임의성이나 즉발성에 풍경은 해체되고 재현 밖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조각조각 이어붙인 듯한 지붕과 지붕, 벽과 벽이 서로 기대어 덧댄 다가구 주택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이리저리 호응하면서 전개된다. 산복도로 전체를 조망하려는 듯 다급하게 잡아낸 집들은 화면을 비집고 증식된다. 급한 경사로 이어지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구조이자 내용이며 요소이자 전체로 작동한다. 좁은 골목에 세워준 승용차와 간략한 선으로 처리된 인물들, 그들의 노곤한 걸음걸이, 옥상에 널린 빨래, 전신주와 목욕탕 굴뚝, 에어컨 실외기와 창문들을 소품으로 「산복도로」 「하늘동네」가 펼쳐진다. 상하좌우 어디에서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구조다. 배지민의 풍경에서 간과할 수 없는 공간 감각이다.
먹 선과 먹색으로 이어지는 소략한 구조와 형상은 산복도로 동네의 지형적 특색과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구체성을 읽기 힘들게 한다. 감천마을이나 수정동 따위로 마을 이름을 연상하지 않으면 그저 여느 동네를 거칠게 구성한 풍경일 뿐이다. 조형적으로 재구성된 어떤 마을이라는 추상이 되고 만다. 화면을 이끌고 있는 먹과 선들, 거칠게 개칠된 먹색들, 담묵에 스며든 농묵의 섬세한 반응만 두드러져 보인다.
배지민의 인물은 배 위에 혼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기다림」으로, 마을길에서 벗어나 혼자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로 혹은 「불빛의 명암」아래 거리를 배회하거나 「늦은 귀가」로 도심을 지난다. 시장 어귀 질척한 상점가를 지나는 「수산시장」의 행객이거나 물건을 나르는 「자갈치 시장」의 노동자 모습으로 나타난다. 화면의 구성요소로서 작은 부분인데 인물이 유난히 드러나 보인다. 배경을 이루는 풍경들의 간략한 면과 선, 느리고 빠른 붓의 움직임 사이에서 인물에 눈이 가는 것도 그런 인상을 더해 준다. 움직임을 가진 소재라는 점에서 인물이 담당한 역할일까. 현실재현의 의지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물은 배경의 간략한 선조와 대비를 보이며 작품 전체를 이끌고 있는 즉발성과 임의성이 강한 감필 묘사에 구체적 현실로 대응한다. 동네풍경을 다루는 태도와 대조를 보인다.
이 지점에서 배지민의 작업은 현실 드러내기인지 조형적 해석인지 분명하지 않다. 굳이 그림이 서사적 사건을 진술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소재에서 드러난 현실을 외면한다면 다루는 소재에서 어떤 의미도 읽어내지 못했거나 그저 현실을 완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외된 지역의 장소성을 완상물로 바꾸는 것은 작가의 허약한 현실인식으로 여겨진다. 역으로 직접적인 표현이나 개념적인 사건의 묘사보다 정서적인 반응을 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유명사로서 그곳이 구체가 아니라면 현실은 먹색이라는 단조로운 색상으로 환원되고 풍경의 정황은 증발되고 만다. 현실의 남루를 떠벌릴 일은 아니라도 적어도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태도가 없다면 소재를 선택한 이유도, 현장의 스케치도 정당화되기 힘들다. 소재는 곧 작가의 세계관이자 내용이고 방법의 기저다.
먹은 현실 묘사에 부적합하다는 상투적인 지적을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현실 재현의 유혹이 화면 전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렇게 보면 화면을 구성하는 구조와 내용이 걸맞지 않다. 담묵 사이로 농묵의 선조가 던지는 서정적인 울림으로 현상을 대체하기에는 현실은 너무 팍팍하다. 일견되는 현상을 이끄는 내용으로서 현실은 배지민의 비묘사적인 먹과 화선지 안에서 구체성을 잃고 만다. 그곳을 주목한 이유가 불투명하다는 연유다. 그 불투명성이 이미지와 실재의 괴리가 던지는 한계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의미의 맥락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상투성에 기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정경 속에 점경으로 처리된 인물은 소략한 풍경이 함축한 이미지를 다시 읽게 한다. 화면의 모든 요인이 의미를 향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읽어야 할 것이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조형미를 상호 보충적 관계로 보기란 쉽지 않다. 인물 앞에 검은 선을 배치함으로 인물의 심리적 정황과 묘사하지 못한 것들을 아우르려 하지만 조형성에 집중한 인상이 강하고 개념적 병치에 가깝다. 담배 피우는 표정으로, 풍경에 박힌 듯이 등장하는 점경인물만으로는 자칫 현실을 너무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본다는 단견을 벗어나기 힘들다.
감필로 부두와 배 한 척을 배치한 「시작」은 먹빛의 섬세한 움직임의 감각적 포착에 가깝다. 흰 종이 끝에 놓인 수평선과 하늘, 그 곳에 몇 번의 붓질로 흔들리며 있는 배 한척으로 화면을 분할하는 「다가오다_기다림의 시간」이나 「어귀」의 함축적 시선은 배지민이 보여주는 감성의 폭과 긴장과 무관하지 않다. 배지민은 흰 종이를 그대로 두어 바다로 삼는다. 먹도 묘사도 선도 없이 비어있는 종이의 여백을 하나의 표현 요소로 보아낸 셈이다. 그것은 전통회화의 속성이지만 여백의 적절한 배치는 포치로서 역할과 함께 그리지 않음으로 비가시적인 것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다.
화면 위의 선과 먹, 분방하고 활달한 활용은 견고한 구조물 아래로 비정형의 형상들로 과감하게 화면을 붙든다. 배라고 지칭되지만 배라는 구체적인 형상들은 여기저기 파편적으로 연결될 뿐 온전하게 전체로서 면모를 찾기 힘들다. 부두에서 흔히 목격되는 소재들 역시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지만 구체적 형상의 재현이기보다 지시에 가까운 기호로 여겨진다. 과감하게 그은 측필이 선과 면을 함께 드러내고 비백의 흔적들은 활달한 운동을 생성한다. 수직으로 짧게 찍힌 자국들은 가로로 이어가는 주조음을 끊어주면서 다양한 운동의 자장을 만든다. 담묵의 묘사 사이로 농묵이 스며들고, 감필의 먹색과 선은 과잉의 여백과 대조를 이룬다. 비정형적 구성, 선과 먹, 얼룩으로 분할된 구조물은 재현의 형상이 아니라 화면의 구조로 전환된다. 우연적인 먹의 흔적, 비정형, 배채(背彩)의 먹색에서 오는 직접성의 배제는 재현된 형상이나 조형, 혹은 그 너머의 비가시적인 것에 관심과 연결된다. 비록 현실의미를 상쇄한다고 해도 현실을 다르게 읽을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보여준다. ● 그러나 새 몇 마리를 화면에 들이는 순간, 긴장과 함축이 익숙한 풍경이 되고, 현실의미도 화면의 구조적 접근도, 먹색이 던지는 임의적 즉발성과 긴밀성도 허약해진다. 화면의 특징이자 구성 자체의 논리인 먹색이나 먹 선이 가지는 형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조형논리에 상투적 소재가 끼어들어 현실과 조형 모두에 거리를 만든 것이다. 내용적 부담을 벗어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굳이 현실적 기호들이 현실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감성적 반응도 필요하다.
풍경을 소재로 한 회화나 사진이 대체로 그러하듯 풍경은 그곳이라는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다. 실재의 장소조차 그곳의 풍경이 아니라 여기 그림 속에서, 혹은 자신의 장소에서 겉돌고 있는 배치로 드러난다. 그래서 풍경이 때로 서정의 이미지에서 격렬한 서사를 보이기도 한다. 도심지 고층빌딩과 길, 그 길 위에 놓인 인물들의 뒷모습은 그곳에 있기보다 그곳을 보고 있는 모습으로, 제 삼자로서 타자화 되어 드러난다. 보는 이에게 응시대상이 된다. 그것으로 배지민은 현실너머의 더 풍부한 의미들, 그 의미들을 불러내려하지만 그러기에 너무 팍팍한 현실이 그곳에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그어야 하는 화선지의 수용성과 번짐은 모필의 선을 활달하게 만들고 사물의 형상이나 감성적인 표현을 주저 없이 결행해야 하는 순발력을 요구한다. 만들고 구축하고 기다리고, 이것저것 자료들을 합성하고 묘사하는 작업보다 감성적인 흐름을 내뱉듯 화선지 위로 밀어붙이는 특징은 서양화의 구축과 다른 가벼움, 직관으로서 세계를 만나게 한다. 직관은 순간적이고, 그 순간을 자신의 형식이자 내용이며 세계를 매개하는 이미지로 삼게 한다. 배지민이 동양회화의 사의성이나 형상으로부터 연유한 자유로운 내적 이미지를 사물이나 풍경으로부터, 그 가상으로부터 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 그것은 보는 것이 바로 그리는 것이며 보고, 기다리고, 다듬고, 해석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묘사적 그리기를 비껴가는 것이다. 그것은 재현 가능한 어떤 것에 대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감성과 세계가 만나는 그 지점에 대해 관찰하고 표현한다. 보는 것이 바로 적극적인 표현운동임을 보여준다. 재현 가능이 아니라 행위 가능성, 혹은 이미지로서 화면은 현장의 풍경으로부터 구분시켜주고 묘사를 전제하지 않는 이미지의 가시성을 탐색하고 표현 형식과 일치하는 의미를 보아내려는 것이다. 풍경이라는 현실에 부재하는 것을 먹과 붓이라는 형식으로 가능하게 한다. "굴리고 누르고 점을 찍고 획을 긋는 사이에도 모두 뜻이 있다" (장파, 백승도 옮김, 『장파교수의 중국미학사』, 푸른숲, 2012. p.311)는 왕희지의 말은 고대의 어귀만이 아니다.
간략히 살펴봤듯이 「시작」과 「산복도로」 「자갈치 시장」이 던지는 현실과 재현의 만남은 조형과 이미지로 전환되어 드러난다. 조형으로서 먹과 화선지는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조우하게 하고, 모사나 구축이 아니라 이미지를 넘어서는 세계로 이끌어 준다. 배지민이 소재를 구사하는 방법에서 일견되는 태도는 현실경치가 주는 선입견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모필과 먹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공간 확보에 초점이 있다.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화선지와 모필과 먹에 조화를 얻으려 한다.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탐색이자 현실의미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다. 풍경의 재현과 해체 사이에서, 감필법과 묘사 사이에서 새로운 지형을 더듬는 일이다. 그 지형은 조형과 현실의 어긋남이고 말과 실재의 어긋남이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또한 그리기의 속성으로서 일상의 바깥에 대한 시선이자, 배지민이 세계를 만나는 어법이다. ■ 강선학
Vol.20160610e | 배지민展 / BAEJIMIN / 裵芝敏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