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OPIAN-그것을 꿈꾸는 나와 그들

김지현展 / KIMJIHYUN / 金知鉉 / sculpture.installation   2016_0427 ▶ 2016_0509

김지현_코리안 랩소디Korean Rhapsody_혼합재료_310×120×9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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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42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2.733.8877 www.gallerymeme.com

비현실적인(utopian) 세계의 막바지에서 ● 요즘 신문지상에서 '87년 체제'의 종언에 대한 얘기를 간간히 듣게 된다. 작은따옴표 속의 숫자와 '체제'라는 용어에 거리감을 느끼는 이도 많겠지만, 1987년 전후의 한국 사회를 실제로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 연도가 어떤 맥락으로 해석되든 간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점이 되었음을 안다. 그리고 '87년 체제'를 탄생시켰던 상징적인 주체 가운데 하나가 최루연기 자욱한 광장을 가득 메웠던 대학생들이었음도 어렵잖게 기억한다. 그들은 자기희생을 마다않는 경이로운 열정과 정의감으로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사회변화를 이끌었고, 새롭게 도래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곧잘 망각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광장의 대학생들이 오늘날의 청년들과는 사뭇 다른 사회적 위상을 가졌던 '엘리트들'이었다는 것이다. 연 10%를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개발도상국에서 또래 인구의 5분의 1에게만 문호가 개방된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마이너스 성장을 눈앞에 두고 있고, 전국 대학교의 정원이 20대 전체 인구보다 많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은 쉽게 체감할 수 없다. 시위참여 때문에 학업에 아무리 소홀했더라도 졸업만 하면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해서 갈 수 있었던 아름다웠던 시절, '헬조선'을 살아가는 88만원 세대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그 시절의 청년들에게는 실현되었던 것이다.

김지현_UTOPIA_혼합재료_2016
김지현_테이블 위의 미사여구_혼합재료_230×90×90cm_2016
김지현_검은드로잉_혼합재료_50×28×28cm_2016

김지현의 전시 『UTOPIAN』에는 '87년 체제'를 열었던 엘리트 청년들이 헬조선의 지질한 중년들로 변모하면서 내면화시킨 환멸의 정서가 드러나 있다. 그것은 의도치 않게 배어나온 것이라 더욱 시리게 와 닿는다. 이 전시는 좌우 이데올로기를 표상하는 남북한 지도자들의 이지러진 두상과 같은 직설적인 표지에서부터 총알, 불덩이, 정장차림의 남성과 같이 현실을 빗대는 은유와 상징에 이르기까지 사회정치적(sociopolitical) 메시지를 담은 기호들을 가득히 품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 대한 모종의 비판을 감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의 주체와 객체가 누구이며, 비판의 목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되물었을 때, 우리는 사뭇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이 전시에서 나타난 현실 비판은 그릇된 현실과 공모하고 있는 자아에 대한 조소를 항시 동반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1987년의 광장에서 청년들이 그랬듯이 훼손된 대의민주주의(이지러진 대통령의 두상)와 맹목적인 천민자본주의(총알모양의 투구를 쓴 사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선명한 정공법을 취하지 못한다. 적(敵)과 나 사이의 전선은 불투명해졌고, 비판의 주체와 객체는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이지러진 대통령의 두상 속에 '나'의 두상이 있고, 총알모양의 투구를 쓴 사람도 '나'와 다를 바 없다.

김지현_Bullet man with fire & pin point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16
김지현_Pin-point talking_혼합재료, 오브제_130×80×80cm_2016

김지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희비극(喜悲劇)적인 특성은 이처럼 지금도 변함없이 '광장'에 서고자 하는 비판의식과, '87년 체제'가 도출했던 유토피아를 오늘날의 디스토피아로 전락시킨 특권적인 집단에 자신도 속해 있다는 자의식이 모순적으로 겹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80년대 민중미술을 연상시키는 '정색하는' 진지함과 2000년대 코리언 팝아트의 작가들이 공유했던 '댄디한' 세련미가 기이하게 공존한다. 관객은 그의 작품을 심각하게 새겨봐야 할지, 부담 없이 즐겨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예컨대 이지러진 채 수직으로 쌓여 있는 전‧현직 남북의 지도자들과 작가의 두상은 처참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총알 모양의 투구를 뒤집어 쓴 정장차림의 사내가 등장하는 연작(連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불'이라는 상징과 연계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 사내를 숙연하게 응시해야 할지, 가볍게 웃어넘겨야할지 태도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모순을 수습하기 위해 '풍자'라는 제3의 길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관객을 양가감정(ambivalence)에 처하게 만드는 작품의 구조를 철회하지 않는다.

김지현_황금 투구_레진에 페인트, 나무 좌대_140×53×53cm_2016

김지현이 원활한 감상을 희생해서라도 작품의 양가감정적인 구조를 고수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세대가 주인공이 되어 창출하였던 '87년 체제'가 못난 모양새로 해체되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되는 회한과 조소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가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이상향'을 뜻하는 'utopia'라는 명사를 쓰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비꼬임의 뉘앙스를 동반하는 'utopian'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 까닭도 유사한 맥락일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87년 체제'의 가장 뚜렷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직선제(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와 경제 정의의 구현(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물)을 작품의 직간접적인 테마로 삼고, 30년 전에 추구되었던 '이상향'이 오늘날 얼마나 퇴행적인 모습으로 전락하였는지를 드러낸다. 특히 작가는 '87년 체제'를 가져온 주인공들의 초상을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패러디해서 나타냈는데, 정장을 빼어 입고 정치경제의 제일선에 섰던 청년 엘리트들이 초심을 읽고 자본의 맹목적인 '총알'로 변질되는 과정을 신랄하게 형상화시켰다.

김지현_fire spiting_디지털 프린트_120×80cm_2013

작가는 『UTOPIAN』에서 제시되는 도상(圖像) 속에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첨가한다. 그럼으로써 이 전시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들'을 비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조소(嘲笑)하는 데 있음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 전시에 내포되어 있는 비웃음에는 분노와 비애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어, 제3자로서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헬조선'에서 처참하게 각자도생하고 있는 2010년대의 청년들에게 『UTOPIAN』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코드로 구성된 전시일 수도 있다. 이 사회의 주인공으로 대접받기는커녕,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되는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에도 벅찬 그들에게는 이 전시에 배어 있는 회한마저도 '엘리트적'이고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김지현_프로메테우스 증후군2_레진에 페인트, 사진 꼴라쥬_110×35×40cm_2016

하지만 이 전시에는 '헬조선'이 도래한 책임을 구세대에 전가시키고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이 사회 중장년층의 솔직한 자화상이 담겨 있다. 그 세대가 토로하는 서사(敍事)는 비록 지금의 사회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섬세하게 청취하고 공들여 분석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가 여전히 그들이 창출하였던 '87년 체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간 지속되었던 그 체제는 이제 수명을 다해간다. 과거의 이상향(utopia)이 비현실적인(utopian) 것으로 판명된 이 시점에 사회는 새로운 이상향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김지현의 『UTOPIAN』은 오늘날의 청년들에 의해 새롭게 구성될 'UTOPIA'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로서 시의성을 획득한다. 특히 오랜 퇴행 끝에 반등의 전기를 마련하고 있는 현시점의 우리사회에 김지현의 전시는 의미심장한 현실인식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 ■ 강정호

김지현_UTOPIAN-그것을 꿈꾸는 나와 그들展_갤러리밈_2016

유토피안, 유토피아를 꿈꾸는,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 ● 나는 내가 꿈꾸는 것들이 나의 욕망임을 느끼기 시작한다. 흘러 드는 많은 생각들, 쏟아내는 화려한 말들, 나와 그들은 유토피아(UTOPIA)를 꿈꾼다. 유토피안(UTOPIAN) 이기를 꿈꾼다. 스스로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노력, 그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스스로를 연민한다. ● 나는 개인적인 욕망과 정치적인 그것의 어느 중간쯤에 서있다. ■ 김지현

Vol.20160428g | 김지현展 / KIMJIHYUN / 金知鉉 / sculpture.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