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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_02:00pm~07:00pm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Tel. +82.2.3141.8842 www.cyartgallery.com
손으로 한 사유(思惟)가 의미하는 것들 ● 심수옥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 작품과 함께 오브제 작업을 선보인다. 그가 작업을 통해 그려내고 만들어낸 것은 모두 당근의 형상들이다. 흔히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당근이라는 대상에 주목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작가는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베란다에 방치해 놓아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당근에서 어느 순간 잎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된 것이 이 당근이라는 대상을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다루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 그런데 심수옥 작가의 작업을 전체적으로 보면 물질로서의 작업 결과물이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 결과물을 무의미하게 여긴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그의 작업에 있어서 작품으로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결과물로서의 물질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작업의 프로세스 전 과정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는 말이다.
"손으로 한 사유"라는 전시 주제를 보더라도 작가는 자신의 작업 과정 전체를 사유의 과정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작가는 그의 작업 과정은 사유의 과정이었으며 이것이 자신의 작업이 지향하는 바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이처럼 작업의 과정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일상적 생활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역할과 작가로서의 역할 사이의 간극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작업에 있어서 그 작업방식은 이러한 고민을 많은 부분 해소할 수 있는 방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렇게 해소될 수 있었던 내적 원인을 찾아보면 아마도 최근의 작업이 바느질과 같은 집중과 몰입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점과 작업 방식이 커다란 스케일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당근 하나 하나의 단위로 나뉘어진 짧은 호흡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상 생활의 흐름을 끊고 작업 속으로 진입 해야 하고 또 작업의 흐름을 끊고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한다는 과정에는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에 구조적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작가는 이 두 가지의 서로 상반되는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최적의 도구로서 최근의 작업방식을 발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일상에서의 복잡한 생각과 무거운 짐에 대해 그것을 잊기 위해서라도 강한 몰입도를 가진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고 최근의 작업은 그것을 충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짧은 호흡의 작업 특성상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어서도 성공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 작가는 당근의 모양을 망사천, 솜, 실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내고 이를 드로잉한 종이 위에 놓고 스케닝하고 다시 프린팅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래서 많은 수의 당근 이미지를 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를 변형하거나 자신의 사유 방식대로 재배열하기도 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몰입하였고 동시에 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였다. 강렬하고도 규칙적인 자극은 일상 속 사회로부터의 강한 억압에 대해 모르핀(morphine)처럼 마취제이자 진통제로 작동하였을 것 같다. ● 작가에게 있어서는 전원 스위치가 켜지고 또 꺼지는 것처럼 손에서 시작된 작업으로서의 사유가 자신의 내부에서 시작되었을 때 외부의 일상으로부터의 억압적 사유는 멈출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작업이 멈추게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것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마치 베란다에 내놓았던 그래서 잊어버렸던 자신의 몸 안으로부터 생명의 스위치가 켜져 싹이 새로 돋아나서 조금씩 자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은 희열을 발견한 순간과 같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시장에 쌓여 있는 당근이 무더기로 드러나 있는 것은 그러므로 작가의 내면에 가득 채워졌던 희열의 순간들에 대한 감정의 궤적이며 작가로서 살아있음을 곱씹어보는 사유의 궤적이기도 한 것이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또한 작가는 그 감정의 진한 색깔들이 미색의 상태로 무화(無化)되는 과정까지를 수공예적 드로잉과 디지털적 프린팅을 교차해가며 종이 위에 흔적으로 만들어갔음도 볼 수 있다. 이렇게 희미해져 가고 무(無)의 상태로 향해 가는 것 역시 작가에게 생명을 느끼게 하였던 그리고 외부의 자극을 막아주었던 바로 그 모르핀과 같은 것의 힘 때문인지 모른다. 아마도 작가는 손으로 한 이 작업들에서 그렇게 무화(無化)되어 가는 것이 자신의 삶이자 작가로서의 삶이라는 깨달음을 발견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바로 이러한 사유들이 설치되어 있고 기록되어 있다. ■ 이승훈
Vol.20160412f | 심수옥展 / SIMSUOAK / 沈守玉 / installation.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