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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12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스케이프 GALLERY skap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8-4(소격동 55번지) Tel. +82.2.747.4675 www.skape.co.kr
정정엽은 한국과 현대사회에서 여성과 생명, 공존 문제를 다양한 예술행동으로 펼쳐오고 있는 작가다. 여성노동, 멸종위기 동식물, 팥을 중심으로 한 곡식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이반되지 않는 예술형식을 고민해 왔다. 왜곡된 여성현실과 노동문제를 터, 두렁, 여성미술연구회, 입김, 갯꽃 모임을 통해 바로 잡는데 힘 써왔다. 황해미술제 전시기획과 지역 활동, 한국현대미술선 출판미술 활동도 작업의 연장으로 실천하고 있다. 작가는 "예술의 평화적 충돌이 가장 싼 값에 공존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 2011년 가을, 이른바 '팥'과 '오색 콩' 작품으로 '날 것들의 아름다움'을 한남동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보여준바 있다. 그 사이 5년이 흘렀다. 15차례 작업실 변천사를 겪고 새로 안성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2016년 벽두, 『벌레』로 10번째 개인전을 펼친다. 싹, 나물과 나방, 열매 등 구질하고 징그러울 수 있는 미산리 마을의 생명들을 도시의 세련 된 중심 무대로 이끌고 나온다.
정정엽의 싹과 벌레 그리고 썩은 과일 그림 ● 작품의 소재들은 달래. 두릅. 당귀, 냉이, 질경이, 고들빼기, 감자와 고구마, 가지도 보인다. 그리고 수십 종의 벌레들이 꽃비 내리듯 쏟아지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시골이라면 늘 상 보는 모습이지만 왠지 낯설다. 감자, 고구마 같은 경우 먹기에는 석연치 않은 싹이 돋아 있다. 외계물체 같고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감자와 고구마를 주인공으로 그린 화가가 있을까? 고흐도 감자를 먹는 사람은 그렸지만 감자만을 전면에 그리지는 않았다. 그 후 감자의 겉모습만 베낀 정물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 정정엽 작가가 그린 감자 싹과 나물 그림은 그들 자체로써 격조와 존재감, 생명의 황홀감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것도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티끌 하나 살수 없는 세련되고 럭셔리한, 초대 받지 않은 공간에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 당혹스럽고 놀라게 한다. 감자들은 세포 증식 되고 거대하게 자라 내장기관을 드러낸 채 말끔한 현대식 건축 공간에 놓여 기묘한 긴장감을 주며 압도한다. 이를 지원하는 나방도 날아든다. 이들이 문명과 공존, 화해를 하려는 것 같아 엉뚱하면서 순진하고, 애틋하면서도 우직하게 보인다. ● 인간은 어머니의 양수에 담겨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고, 호흡하고, 똥을 싼다. 정작 우리들 생명은 양수를 터뜨려 태어나지만, 그 음습한 모습만은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한다. 정정엽의 감자 싹은 자신의 몸을 자양분으로 키워내는 어미 몸의 숭고한 주름과 인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뿌리식물의 한 단면을 탯줄이나 내장기관처럼 보여 줌으로써 왜곡된 통념을 깨기 위해 선택된 소재로 보인다. ● '학일리에서 주운 과일'은 마치 밀레의 이삭줍기를 연상시키는 감동이 있다. 수확을 끝낸 가을 저녁 들녘, 허리 숙여 벼이삭을 줍는 아낙의 마음이 겹쳐진다. 제 3세계 여성들이 일상 겪는 노동이요 심정이다. 과일 그림은 얼마나 흔한가. 마트에 사과도 생명과 동떨어진 코팅 포장된 상품일 뿐 학일리에서 주운 열매들은 바람이나 병충해로 가지에서 '투두둑' 떨어져 버림받은 과실들이다. 모두 그냥 지나칠 썩어 버려진 과일 앞에 작가는 멈춰 섰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그것들을 담아와 작업실로 돌아와 그림으로 살려 냈다. ● 버림받은 과일이라 상품이나 돈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건강한 부위도 남았고 상처 속에는 농염한 씨앗도 살아 있다. 이들도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생명체요 살림살이의 방편이다.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그림에 담겨 있다. 이들의 존재감과 씨를 품고 있는 생명력은 성한 삶 못지않은 존귀한 아름다움이 있다. 오방색 프레임은 정제되고 가공된 미의식에 대한 반기(反旗)로도 읽힌다. 또한 가공된 미의식에 치우쳐 성형을 부추기는 세태에 대한 일격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 사회의 단면을 품고 있는 중의적 정물화로 미술교과서에 실리면 좋을 그림이다.
정제된 현대미술과 독점자본에 대한 반기(反旗) ● 나방 그림은 크기에서 압도한다. 그냥 볼 수 없었던 나방의 눈과 표정, 자세도 드러난다. 나비와 달리 야행성인데다 불빛을 보면 달려드는 성가신 존재다. 비록 가루와 모노톤의 색감이 혐오스러워 인간들은 피하려 하지만, 자연에는 나비뿐 아니라 나방도 생태계의 일원으로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가. 작가는 이를 장엄한 모습으로 캐스팅한다. ● 정정엽의 이번『벌레』전에는 그 동안 뿌린 씨앗들이 발아하듯 온갖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부스럭거리고, 수런대고, 움트는 소리. 소리의 정체는 나물과 나방 그림이 단순한 풍경이나 정물이 아니라 생명감과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설정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가공된 캔버스 천이 아닌 생 광목천을 전통시장에서 주문하여 쓴다. 까슬까슬한 천의 표면에 갈필로 정성들여 그리기도하고 재빠르게 문지르기, 흘리기, 뿌리기 등 다양한 기법으로 기운을 살려내거나 일상의 비루한 소품들을 등장 시켜 현실과 현장에서 존재하는 생명감을 절묘한 형식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 마을-고들빼기 사이로 유혈목이 '스르륵' 지나고, 계단에서 싹수 터진 감자가 '어기적'거리며 내려온다. 나방 그림에는 오래된 허름한 집에서 나는 비루한 냄새와 선풍기 바람이 '붕붕' 인다. 달래의 이파리와 뿌리들은 경쾌한 율동으로 '획획' 바람을 일으키고 '싹싹싹' 움트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이전에 보여준 '팥' 작업이 일상의 축적이고 시라면, 이번 벌레전의 '싹' 작업은 일상의 놀이나 산책 같다. ● 촌스러움은 일면 현대사회에서 죄악으로 몰린다. 그러나 정제되고 포장된 맛들은 멀지 않아 들통 난다. 날것들은 상상 이상으로 힘이 세다. 거대자본과 문명사회의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숨통이요 내릴 수 없는 깃발이다. 현대미술이 안개 속을 헤매며 대중과 불통한다면 더불어 공존하는 삶은 가꾸기 힘들어진다. 정정엽의 최근 작업은 돈과 물질, 경쟁으로 내몰리는 배에 평형수 같은 무게감을 갖고 있다. 『벌레』전에 걸린 28여점의 생산물은 정제된 현대미술과, 대량으로 생산 소비되는 독점 자본에 대항하여 맞장 뜨는 그림들이다. ■ 박건
Vol.20160121b | 정정엽展 / JUNGJUNGYEOB / 鄭貞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