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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116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소피스갤러리 SOPHIS GALLERY 서울 강남구 역삼로 218(역삼동 770-6번지) 재승빌딩 B1 Tel. +82.2.555.7706 www.sophisgallery.com
천국보다 낯선 ● 푸른 초원 위에 고대적 웅장함으로 서 있는 토르소, 가려진 커튼 뒤에서 번민하는 큐피드 상, 눈 쌓인 평원에 기울어져 박혀 있는 금빛 프레임, 오랫동안 멈춰선 자동차와 어디론가 가려하는 미니어처 말, 희미해진 원근법 위로 정지된 시간의 가루가 되어 점처럼 퍼져있는 눈꽃송이들. 엄숙함과 완고함을 과시하는 하드커버의 미술책들 위로 나무가 자라더니, 급기야 뜨거운 폭발이 인다. 그러나 진공된 하늘 아래의 폭발은 음소거 된 멈춤이다. ● 윤병운이 지금까지 한결 되게 잡아온 주제는 언캐니(the uncanny)한 풍경이다. '친숙한, 친근한' 소재들을 초현실적인 시공간에 재배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낯선, 놀라운' 상황을 연출해낸다. '언캐니'란 단어는 친숙한 것이 그 일상성을 탈피하면서 가장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것이 되는 순간에 적용되는 말이다. 언캐니는 '은밀한, 친숙한'을 뜻하는 형용사 heimlich에 부정사 un을 붙인 독일어 das Unheimliche에서 유래했다. '익숙하지만 낯선'이라는 이 말은, 낯익음과 낯섦이 정반대의 의미를 갖지 않고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존재적 모순에 대해 프로이트가 언급한 심리학적 용어다.
궁정에 걸려있던 태양왕 마스크(낯익은 대상)와 초원에 박혀있는 태양왕 마스크(언캐니한 그림)는 그 자체 같은 것(태양왕 마스크)이면서 다르게 작용하는 효과(초현실적 분위기의 「Private Sun」)를 만들어낸다. 익숙한 일상의 대상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과 기억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독될 수 있다. 윤병운이 포착한 공간이 그 자신에게는 평안함과 친근함일 수 있지만, 처음 보는 누군가에겐 두려움과 소외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윤병운은 비현실처럼 보이는 풍경을 정확하고 엄밀한 붓질을 통해 현실감 있게 기록함으로써 오히려 모호하고 해체적인 내러티브의 역설을 만들어 놓았다. 기존의 익숙한 요소들을 본래 속해 있던 맥락으로부터 떼어내는 재맥락화/탈맥락화(re/decontextualization) 기법(strategy)을 통해 낯설고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상과 가상을 그럴듯하게, 그것도 정교하게 혼합시킨다. 그 기초적인 방법은 데페이즈망(전치, 전위)을 통한 '낯설게하기'이지만 과거 초현실주의자들의 느닷없는 자동기술적인 조합 보다는 서정적이고 설득력 있는 싯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친밀함과 낯섦이 뒤섞이면서 연출해내는 캔버스의 스토리텔링은 합리적이고 순리적이지 않은 시간의 편집을 통해 꿈과 현실을 역행하고 교차시키는 이창동이나 홍상수 감독의 리얼리즘을, 더 나아가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 영화의 초현실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요소가 시공간의 뒤틀림을 통해서 재맥락화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 현실의 조건이 되고, 적나라하게 드러난 불편한 진실 속에서 초현실의 공간이 열려진다. ● 꿈-무의식만 현실-의식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식도 꿈-무의식에 녹아들어 영향을 끼친다. 육화(肉化) 되지 못한 초현실은 꿈에 지배당한 현실 보다 무력하다. 꿈에 개입된 현실로 인해 그 꿈은 더욱 구체적이고 강해진다. 꿈속의 눈물이 현실의 눈물 보다 훨씬 더 쓰다. 캔버스 위에서 예술가는 무의식에게 유린당한 이성의 복구를 위한 소심한 복수를 시작한다. 낮 꿈을 꾸면서 무의식-기억의 흔적들을 논리적으로 재배치시키는 것이다.
토르소, 책, 자동차, 장난감 등의 인공적 문명의 기물들은 초원과 바다, 숲과 눈, 하늘과 구름 등의 생명력을 지닌 무언의 자연 위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다. 정지된 풍경에 새나 눈, 구름, 물결, 불꽃의 운동적 요소를 집어넣는다. 정지된 것과 움직이는 것,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 소멸하는 것과 생성하는 것 사이의 대비는 무의식과 의식이 공존하면서 서로 작용하는 힘의 긴장을 강화한다. 꿈속에 개입된 의식과 현실에 개입된 무의식이 겹치는 공간은 수직적인 커튼이나 수평적인 지평선의 모호한 경계 위에 주로 설정된다. 그것은 깨어있는 꿈인 자각몽(lucid dreaming)과 낮에 꿈꾸는 유토피아이자 파라다이스인 백일몽(白日夢, day-dreaming)이 섞이는 공간이다. ● 윤병운은 "내 작품이 꿈꾸는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로도 잠들지 못하고, 의식의 세계로도 깨어날 수 없는 정확하게 모호한 그 지점이다."라고 말한다. 또 "자각몽이 꿈속에서의 현실인식이라면 내 작업의 이미지는 현실에서 마주친 꿈의 잔상(흔적)"이라 말하고, 그 기억의 흔적을 통해 "새로운 과거(the new past)"를 그리겠다고 했다. 그의 시간은 그래서 양가성(Ambivalence)을 지니며 순환한다. 아직 오지 않은 과거, 부재하는 현재, 언젠가 봤던 미래가 그의 화면에 시간적 깊이를 더해준다.
윤병운의 이런 이중적 현실의 인식은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상황논리』(2003)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맥락을 벗어난 신체에 집중했던 그의 초기작들 중에서도, 어둠 속에 대부분 묻혀 있는 그의 얼굴을 그린 「의식의 가장자리」와 「응시」, 프란시스 베이컨 식의 투명 사각틀 속에 자신의 몸을 가둔 「감정의 숲」, 빛과 어둠의 베일을 두른 「공간-순간」 등의 작품은 "문맥을 상실한 이미지"를 불특정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그의 작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언캐니한 리얼리즘과 친숙한 슈르리얼리즘'의 화해적 공간을 예비해놓았다. ● 윤병운의 최근작 「Windows」는 45개의 작은 캔버스들이 모여 거대한 창밖 풍경 이미지를 만드는 설치작품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설치작품일 수도 있다는 이유는 창틀처럼 배열된 이 그림 앞에 관객이 위치해야 비로소 작가의 시선과 일치되면서 작품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배열된 캔버스의 개수와 모양은 창문 밖 정면으로 보이는 집의 창문과 일치한다. 때문에 우리가 안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 가상의 집도 저 앞의 집과 똑같은 형태일 것이며, 저쪽 집안에서 바라보는 이쪽의 풍경도 이 그림과 똑같을 것이다. 화면에 잘리어 나갔지만 좌우에 보이는 집들도 세 개의 커다란 창틀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윤병운은 대칭과 균제를 통해 기하학적인 통일의 구도를 평면적일뿐만 아니라 심층적으로 설계해놓음으로써 캔버스 안에서의 구성과 조합에만 머무르지 않고, 화면 중심과 밖의 공간으로 몰입되고 연장되는 이미지의 전개를 그리지 않고도 드러내주었다. 그림 밖의 나의 시선을 그림 속의 타자의 시선과 일치시킴으로써 여기(현재)에서 바라보는 저기(꿈의 기억), 저기(상상)에서 바라보는 여기(현실)는 하나가 된다. 회화가 피안(彼岸)의 세계를 차경(借景)할 수 있는 창문이며, 전경과 후경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필름-막과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 예로부터 예술가는 이곳과 저곳, 토피아(Topic)와 유토피아, 이승과 저승, 차안(此岸)과 피안, 현세와 내세의 경계에 가려진 베일 그 자체의 신비로움을 사랑하던 자였다. 윤병운은 기억의 흔적을 덮은 설경(雪景)의 저편, 고요한 망각의 숲(Lethe's Forest)으로 깊숙이 들어가려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아직 막간(intermission)이다. ■ 이건수
Vol.20160116b | 윤병운展 / YOONBYUNGWOON / 尹秉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