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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홈페이지_www.junglesoon.wix.com/jaesoonle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루 ART SPACE LOO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110번지 Park110 빌딩 B1 Tel. +82.2.790.3888 www.artspaceloo.com
생명의 호흡과 박동, 정글에서 정원으로 ● 이재순의 작품에 대해 말할 때 선이나 실이나 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감각하고 인식하는 세계는 실이나 끈과 같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실과 끈으로 형상화한 '이어짐에 의한 세계'를 구축해 왔고, 그 세계를 횡단하는 '파동'의 운동을 기록해 왔다. 10여 년 전부터 그가 그려온 드로잉들은 반투명한 천의 일부분을 실로 꿰매고 그 위에 펜으로 선을 그은 것들이며, 설치작업들을 보아도 형형색색의 실이 뒤엉켜 전시공간의 허공에 이리저리 매달려 있거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또는 버려진 나무뿌리와 나뭇가지들을 실과 접착제로 이어 붙여 생장하는 또 다른 선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는 감아놓은 여러 실타래를 전시장 한편에 죽 늘어놓기도 하고, 실타래를 쌓아올려 「탑」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물론 그가 실과 끈에 애착을 갖게 된 배경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바느질을 하거나 베틀을 돌리는 여성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이재순의 작업에 겹쳐 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는 그의 작업을 에바 헤세나 아네트 메사제처럼 실을 늘어뜨려 무정형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형태의 여성주의 미술의 계보를 잇는 작업으로 간주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 실이나 끈, 또는 선적인 형태를 지닌 모든 것은 단지 여성성을 드러내는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재순에게 실이나 끈으로 대변되는 선이란 물질을 생성해내고 확장시키는 보편적인 요소이자 에너지다. 그의 관점에서는 무한소의 물질의 기본단위부터 무한대의 우주 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현대물리학의 끈이론과 묘하게 상통한다. 물론 그가 물리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고 이러한 착상을 해낸 것은 아니다. 그가 예술적 직관을 통해 도달한 곳이 물리학자들이 이론적 연구를 통해 도달한 곳과 일치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처럼 예술과 과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거쳐 같은 곳에 도달하기도 하는 법이다.
현대물리학에서 끈이론이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하여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궁극의 이론이 될 매우 강력한 후보인 것처럼, 이재순의 '끈예술'은 그가 한 명의 예술가로서 우주 전체의 모든 생명을 찬미하기 위한 궁극의 미학이 될 매우 강력한 후보다. 그는 이 미학적 깨달음의 가능성의 범위를 면밀히 가늠해보는 중이며, 이런 맥락에서 이번 개인전의 제목도 다름아닌 '끈(string)'인 것이다. 사실 그의 끊어지다 이어지고 흩날리다 뒤엉키는 선의 예술은 언제나 생명에 대한 찬가로 여겨진다. 식물, 동물, 인간 등 모든 생명체를 관통하는 생명의 숨결이 언제나 그에게는 경탄의 대상이고 영감의 원천이다. 그는 스스로를 식물적인 성향이 강한 작가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 따르면 식물적 영혼이란 영양분을 만들어내고 번식을 통해 생명을 확장하는 능력이다. 즉 생장과 번식의 능력이 식물성의 본령인 것이다. 생장과 번식은 곧 원초적 생명력의 발현일 터이다. 이재순이 이 원초적 생명력에 유독 민감한 까닭이 그의 두드러진 식물적 성향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쩌면 그의 작품세계 전체가 마치 끊임없이 가지를 치고 뿌리를 뻗는 생명력 강한 식물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이 전개되는 과정이 마치 뿌리줄기 식물이 뻗어 나가거나 홀씨가 바람에 실려 퍼지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과거에 했던 회화나 드로잉에서 모티프를 따와 독창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실뿐만 아니라 여러 재료들을 이용해 또 다른 작품으로 '생장'시키고 '번식'시킨다. 이처럼 그의 '이어짐에 의한 세계'는 단지 공간적 이어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 더 나아가 미래의 작품까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시간적 이어짐을 포함한다.
이번 개인전에 이재순이 선보이는 드로잉과 조각 작품들은 과거의 작품들과 차이를 보인다. 과거에 그가 선으로 펼쳐 놓은 세계는 넝쿨식물처럼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밖으로 확산해 나가는 방향성을 취했다면, 이번에는 보다 조형적이고 유기적인 형상들을 통해 생명력의 흐름이 작품 안으로 수렴하는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와 나무뿌리를 실과 접착제로 이어 붙인 조각 작품의 경우, 과거의 「파동」은 점점 더 확장하며 주변을 잠식해 가는 듯한 형태를 취했는데 이번 전시의 「공생연습」은 나뭇가지의 선들이 폐곡선을 이루어 생명의 에너지를 안으로 그러모은다. 또한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여러 점의 조각 작품들도 오랜 시간동안 아주 매끈하게 연마해 부드럽고 뚜렷한 윤곽선을 띠고 있어 에너지의 확산보다는 수렴을 연상시키며, 동화적인 분위기의 드로잉 작품들 대부분이 과거의 미발표 작품을 선택적으로 지우며 가꿔 나가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방향성의 변화가 생명력의 감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활동은 무조건적인 확장과 전개로 일관하지 않는다. 호흡은 날숨에서 들숨으로 이어지는 법이며, 심장의 이완은 심장의 수축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이재순의 생명에 대한 찬가도 확장과 수축의 리듬을 따라 울려 퍼져야 한다. 생명체을 번식시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생명체를 잘 생장시키는 일이다. 이재순의 과거 작업이 정글처럼 무성한 생명의 활력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업은 정원처럼 잘 가꿔진 생명의 지혜를 보여준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동물이 무리를 형성하며, 인간이 가족을 꾸리는 것이 모두 이러한 생명의 지혜가 발현되는 과정일 것이다. ■ 김홍기
Vol.20151207c | 이재순展 / LEEJAESOON / 李在珣 / draw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