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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1105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11월 15일 휴관
이도갤러리 GALLERY YIDO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191 이도 본점 3층 Tel. +82.(0)2.741.0724 yido.kr
구본창의 사진을 처음 접한 건 미국 휴스턴에서 개최되는 사진 축제 '포토페스트(FotoFest)'에서였다. 2000년 포토페스트는 미국 최초로 한국 현대사진전을 열었다. 당시 나는 구본창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고 이 사진작가에 대한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구본창의 대형 사진은 세월의 흔적에 얼룩져 그 이미지와 본성 자체가 서서히 시간에 굴복한 듯한 광활한 하늘과 바다를 인화해놓은 듯 보였다. '시간의 그림'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들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오랜 회벽의 사진이었다.' (사족을 붙이면, 이 평론을 읽은 그는 이를 계기로 대학교수직을 떠나 사진에만 전념하기로 했다는 짧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맙소사, 이런 걸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사진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소위 예술 사진에만 전념하기로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어느 작은 섬의 인구수에 맞먹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곧 한국에서 손꼽히는 사진작가가 되어 내 걱정이 기우였음을 보여주었다. 최근 그는 교수직을 다시 제안 받고, 젊은 세대에게 진 빚을 갚겠다는 생각에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 시간과 시간이 남긴 자국에 대한 집착은 당시 그의 작품에 분명히 드러나 있었고 이후에도 그의 사진을 대표하는 특징이 되었다. 이와 함께 그가 꾸준히 관심을 쏟은 것은 피사체에 내재된 변형이었다. 실제로 포토페스트에서 보여준 이미지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백자에 대해 설명한 작가 노트를 보면 사진작가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심오한 아이덴티티를 대상에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엿보인다. 그는 도자기 하나하나를 '귀중한 유물이라기보다는 도자기를 빚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어루만져주는 영혼의 그릇'으로 여기고 '마치 인물을 찍듯이 조심스럽게' 촬영했다고 썼다.
1989년 구본창은 한 잡지에서 영국계 오스트리아인 도예가 루시 리(Lucie Rie)가 백자 옆에 앉아있는 사진을 보고, 그 백자가 풍기는 '웅장하고 절제된 형상'은 단순히 장식품이라기보다 리의 '오랜 동반자', 즉 사람처럼 우정을 나누거나 적어도 교감을하고 영감을 주는 존재처럼 보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시간에 베인 자국과 이국땅에 떨어진 서글픔을 무방비하게 드러내는 백자의 모습은 내 가슴 깊은 곳을 울렸다'고 적었다. 그의 초기 작품인 회벽 사진이 생동하는 하늘이나 바다처럼 보였듯, 여기서도 무생물 대상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여전히 그는 시간의 흔적, 시간이 쉴새 없이 남겨놓는 기록에 마음을 빼앗겼다. ● 그럼 이국땅에 떨어진 서글픔은 무엇일까? 꾸밈 없고, 본질적으로 무색( 無色)인 백자는 한국과 한국인의 얼을 담고 있는 상징적 존재지만, 정작 한국에는 최고의 컬렉션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타국에 소장된 한국의 항아리와 백자다기를 사진에 담기 위해 전 세계 박물관과 개인 컬렉션을 찾아다녔다. 백자는 조선시대(1392-1910) 초기부터 거의 500년 동안 만들어진 한국 고유의 작품이다. 조선왕조는 도덕과 절약, 겸손과 검소를 강조하는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였고, 백자가 지닌 꾸밈없는 순수함과 단순한 모습은 이 신조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또한 조선 평민들은 유교사상 아래에서 매일 흰옷을 입었는데, 19세기에 조선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은 이 모습을 보고 백의민족이라는 별칭을 지어냈다.
구본창은 35mm 소형 카메라보다 긴 촬영 준비 시간을 요구하는 4×5인치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 천천히 각 도자기의 특성을 관찰했다. 그에게 백자는 먼 옛날 이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혼을 담고 있는 그릇인 까닭이다. 사진에 담긴 이미지는 백자의 나이와 역사를 반영하듯 살짝 흐리며, 명료함과 정확성이 생명인 다큐멘터리와 달리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많은 백자는 도공의 손길과 불가마에서 얻은 결함으로 가득한데, 마치 살아있는 물체처럼 윤곽선이 휘어져 보이는 도자기도 이따금 보인다. ● 그는 백자에서 옛날 한국인의 삶과 내면세계의 흔적을 찾아냈다. 마치 카메라가 단순한 '것들'이 지닌 변형의 힘, 즉 물체와 생물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기억과 은유 사이를 맴도는 가변적인 아이덴티티를 끄집어낸 듯 보인다. 유물에는 각각의 역사가 스며 있기 마련인데, 구본창의 사진은 그 역사를 말해주는 무형의 암시와 단서, 인상, 관련성을 은연하게 드러내 사진이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시대의 느낌을 재현한다. 바다가 연상되던 초기의 회벽 사진에서는 지각(知覺)에 따라 변형이 일어났다면, 백자 사진에서는 암시와 지식이 그러한 변형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 모름지기 예술이란 한눈에 들어오면서 미적으로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섬세한 의미는 그 안에 숨어 기다리고 있다. 그의 생각과 설명은 해당 대상의 관련 배경과 의의를 자세히 일러준다. 사진은 대상이 무엇인지 드러내어주는 캡션이나 텍스트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그의 이러한 설명은 작고 소박한 항아리 사진도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정물사진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순간 변형이 일어난다. 즉, 얌전히 놓여있던 항아리에서 지나간 세월의 숨은 이야기와 이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메아리가 새어나온다.
백자 특히 항아리는 둥글거나 곡선미가 있고 누가 봐도 여성스럽지만, 화려하기보다는 점잖다. 어여쁘고 우아하며 가냘프고 요염하게 곡선을 그리지만 금욕적일 정도로 조용하고, 완벽에 가깝지만 미묘한 흠이 있으며, 이제는 다소곳하게 박물관의 진열장 안에 놓여있다. 이 모습이 마치 평소 집에 들어박혀 지내며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했던 17-18세기의 상류층 여인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맨 처음 궁중 식기로 사용된 백자는 여인의 고운 살결처럼 희었는데, '피부가 흰 여자는 미인으로 통한다'고 작가는 썼다. (얼마 있다가 백자는 다른 사회계층으로 흘러들어가 일반 민가에서 사용되었다. 평민들이 사용했던 자기에는 하얀 바탕에 다른 색이 조금씩 섞여 있다.) ● 이 여인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는 부드러운 '살색조의 오래된 분홍빛' 사진 시리즈를 창조해냈다. 빛의 색온도를 조절해 베이지색의 한지를 배경으로 한 흐린 장밋빛 사진들은 광택이 흐르고 깨지기 쉬운 고가의 백자보다 더 따뜻하고 분위기 있고 '알 듯 말 듯한' 느낌을 풍긴다. ● 우리 인간은 자신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 나머지, 몇 세기에 걸쳐 백토를 포함한 모든 재료로 인간의 형상을 빚었다. 심지어는 아무 상관도 없는 대상에서 몸을 떠올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1919년 작 「물병과 사과가 있는 정물」에는 육감적인 곡선을 그리는 물병 위에 사과 두 개가 잘못 자리 잡은 가슴처럼 놓여 있고 그 밑에 또 다른 사과 두 개가 엉덩이처럼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나 유물 같은 성스러운 물건이 아니거나 조상을 숭배하는 나라의 사당이 아니라면, 형상이 아닌 사물에 오래전 망자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에는 조상을 숭배하는 전통이 있다. 아마도 이런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아 작가는 백자 속에 여인의 혼을 보았으리라.
도자기가 홀로 서있는 다른 사진들과 달리, 한 사진에서는 한 도자기의 오른쪽 절반이 다른 도자기의 왼쪽 절반과 등을 마주하고 있다. 두 개의 도자기는 마치 서정이 흐르는 분홍빛 세계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듯, 자신감이 넘치고 웅변을 하는 듯한 풍만한 곡선을 서로에게 내보인다. ● 반면, 흑백사진은 당대 선비들의 삶을 상징한다. 겸손과 사양, 검약이라는 유교 이념을 몸소 실천했던 조선 선비들은 집에 작은 도자기와 서예도구를 두었다. 또한 구본창의 흑백사진은 여성적인 사물이든 남성적인 사물이든 서로 다른 분위기에 존재하며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볍게 조절한 부드러운 회색빛 이미지는 절대 하얗게 빛나거나 거멓게 흐려지는 법이 없다. 모름지기 백자는 저돌적이지도 뽐내지도 않은 채, 모든 유생들이 그러하듯 삶에 순응하고 정진해야 했다. ● 「달항아리」는 두 개의 긴 시리즈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한 시리즈는 하얀 항아리에 검은 그림자가 점점 드리워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고, 다른 시리즈는 반대로 검은 그림자가 걷히며 하얀 항아리가 드러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크고 둥그스름한 달항아리는 그 안이 비어 있어도 가득 차오르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달이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길흉화복이 반복되는 인생의 주기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특이한 형태의 사물 사진도 몇 점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다섯 개의 봉우리가 가운데를 고점으로 점점 낮게 솟아있는 물건은 외국인의 눈에 이빨로 만든 왕관처럼 보인다. 가는 길이 멀고도 힘든 한국의 영산(靈山)' 금강산'을 상징하는 이 물건은 서예가들이 지친 손과 마음을 내려놓을 때 사용하는 붓 받침대로, 금강산의 기운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이다. 또한 작은 공 모양이나 단순히 둥그스름한 모양 위에 조그만 구멍이 나있는 물건은 '무릎' 연적으로, 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두는 그릇이다. 유교에서는 에로티시즘이 감춰져 있었기 때문에 여인의 무릎을 닮은 이 연적은 조선 선비들이 곁에 둔 물건 중 가장 핀업걸 달력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 백자처럼 소장 가치가 높은 도자기를 촬영한 사진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 대상물을 '스타'로 치켜세운다. 즉, 무대 중앙에 홀로 세운 후 그 당당한 풍채에 환한 조명을 쏘고 실제 이상으로 미화해 큰 의미를 부여한다. 겸손은 이런 이미지들에 드러나지도 않을뿐더러 적합하지도 않다. ● 반면, 구본창의 사진은 존경을 담아 띄우는 러브레터보다도 화려하지 않다. 그의 사진 속 백자에는 도공과 사진작가가 의도한 이중의 겸손과 절제가 스며 있다. 이 둘의 묘사는 스타덤의 원칙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대신 피사체를 중앙에서 살짝 옮겨 구도의 원칙을 따르거나, 대상의 일부만 사진에 담기게 한다. 예를 들어, 절반이 잘린 도자기의 굽이진 곡선은 여인의 엉덩이에서 잘록한 허리, 가슴 바로 밑까지 이어지는 옆 라인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또 어떤 사진에는 4분의 1만 보이는 항아리 뒤쪽에 다른 둥근 항아리가 절반만 모습을 드러낸 채 서있는데, 두 항아리 모두 스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나란히 놓인 곡선, 열린 주둥이로 어두운 빈 속을 내보이는 불룩한 형체에 가까워 보인다. 어떤 도자기는 한 박자 쉬었다가 시간이 남긴 상흔을 드러내고, 또 어떤 도자기는 주저 없이 큰 균열을 내보인다. 여기서도 그의 집착이 엿보이는데, 어쩌면 이는 우리 모두가 사로잡혀 있는 생각일는지도 모른다. 즉, 시간은 지나가는 길목에 서있는 것들을 살아있든 죽어있든 모두 휩쓸고 가며 모든 존재는 그 길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근접 촬영한 디테일 사진은 미국의 추상화가 사이 톰블리 도 울고 갈 만큼 무수한 연필 스크래치를 선보인다. 그는 백자의 두드러진 특징인 결함과 시간의 두드러진 특징인 손상에 집중함으로써 수공예 작업과 그 솜씨에 경의를 표하고, 또 지불하지도 지불할 수도 없는 지나간 세월의 가치를 인정한다. ● 구본창은 한국의 백자를 찾아 세계 여행에 나설 때 역사와 목적의식, 이 두 가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일본은 1592년과 1597년에 조선을 침략했고, 191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한국을 점령했다. 두 차례의 왜란 동안 조선백자에 매료된 일본인들은 수많은 도자기를 약탈해갔고, 특히 도공들의 납치를 통해 도자 기술과 가마들이 상당량 일본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오히려 본고장인 한국에서는 백자 제작의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오늘날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오래된 백자는 많은 수가 일본에 있고 일부는 머나먼 이국땅에 있다. ● 구본창은 자신의 사진이 무력으로 빼앗긴 한국의 보물들을 되찾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노력 덕분에 그 아름다움과 과거에 묻혀 있던 백자들이 우리 곁으로 왔기에 이는 특별한 선물이다. ■ 비키 골드버그 Vicki Goldberg
Vol.20151108f | 구본창展 / KOOBOHNCHANG / 具本昌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