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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09:00am~05:00pm / 1,3째주 월요일 휴관
해녀박물관 HAENYEO MUSEUM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Tel. +82.64.782.9898 www.haenyeo.go.kr
거둠의 미학 – 작가 이유미의 신작에 부쳐 ● 제주의 바람은 작가 이유미의 표피 하나를 거두어냈다. 오랜 시간 작가가 놓지 않고 끌어 왔던 언어적 감성들, 때론 동화적으로 때론 병리학적으로 섬세하게 풀어냈던 구체적 형상들은 이제 더 이상 작가에게 중요하지 않다. 걷어낸 표피 하나를 통해 작가는 더 크고 중요한 한 가지를 거두었다. 오랜 고행을 통해 낡은 화두를 던져낸 수도승처럼, 작가의 작업에는 담백하고 명상적인 본질, 그 자체만이 강렬하게 남았다. ● 과거 2000년을 전후한 이유미의 작업은 나뭇가지, 식물표본, 한지 등의 자연적인 소재들을 절제된 기법들로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자연의 생명과 관계에 대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했다.
이후 2003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시리즈로부터 본격화된 인물시리즈는 쓰고 난 서예 한지 등으로 만들어낸 종이죽으로부터, 옹이와 같이 단단한 존재성을 지닌 이유미 특유의 사색적인 작품들을 구현해 냈다. 특히 재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먹의 농담에 따라 인물이 지닌 다양한 층위의 풍경들을 드러냈다. 검은 개와 함께 등장하는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들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도 같이 보듬어 주고 싶은 자그마한 존재이자, 불완전한 인간 형상들을 보여주었다. 상처받기 쉬운 순수한 영혼인 동시에, 온갖 잡념과 시련을 거쳐 고독함과 우울에 잠식당한 현대인의 응축된 단면을 표현한 작품이기도 했다. ● 이 시기 작품들은 조각이 놓여진 한 장면을 보기만 해도,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속에 자신만의 서사를 떠올리게 할 만큼, 다채로운 이야기와 상상력을 담아냈다. 또한 오랜 기간 물성(物性)에 대해 연구해 온 작가의 내공에서 비롯된 소소한 부분들과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요소들조차 존재의 이유를 담아 배치된 고심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작가와 관객은 서로 다른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며 소통과 해석의 장을 만들어냈다. ● 한 가지 눈 여겨 볼 대목은 이 시기 이유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작품의 장식성이다. 금박이나 진주, 산호 등 화려한 장식들이 가미된 작업이지만, 이것은 작업에 대한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공허하거나, 초라한 내면을 드러내는 매우 이질적인 느낌으로 작용해 왔다. 장식된 금박은 외견을 꾸미려는 치장이 아니라, 마치 찢어진 상처가 봉합되면서 드러나는 깊은 속살과 같은 것이었으며, 안에서부터 드러나는 내재된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간 이러한 작업들을 보아오면서, 항상 생각해 왔던 의문 한 가지가 있다. 다양한 재료와 형상들로 이유미 특유한 작품세계를 구현해 왔던 작가이지만, 늘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결코 놓지 않았던 일련의 존재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신작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존재감이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마치 한 순간 펼쳐버린 빈 손바닥처럼 작가 이유미의 작품들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공(空)의 의미를 설파하는 부처의 얼굴처럼 우주론적인 의미에서 존재를 다루고자한 이유미의 지난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일상이나, 고뇌, 관계 등 인간 존재가 지닌 세속적인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하나의 실마리였을까? 어쩌면 그간 이유미가 놓지 않았던 한 가지는 궁극적으로 닿을 수 없으나, 사색하는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추구하고자 한 바로 그것. 즉, 다채로운 형상의 표현 그 자체가 아닌, '본질'에 대한 강렬한 구현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번 작품들을 통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단순하고 힘 있는, 그러면서도 절제된 형태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이유미 작가의 새로운 막을 여는 매우 중요한 과도기적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렇게나 널어놓은 해녀의 잠수복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이번 작품들 중 특히 「그 바다 그 하늘 그 바람 그 사람」의 작품을 보면, 마치 꿰맨 자국과도 같은 인생의 상처처럼 드러날 듯 말 듯한 속살의 금박이 눈에 띈다. 벗어버린 잠수복에서도 오랜 기간 익숙해진 신체의 형상이 떠오르듯, 잠수복이라는 무심한 물질 자체에서도 인간 삶의 본질이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 흥미로운 것은 마치 부조석상과도 같이 느껴지는 견고함이다. 어쩌면 작가에게 이번 작업은 현무암을 정으로 때리고 부수는 석수의 작업과도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오래 전 작가가 마음에 담고 다녀가 보았을 운주사 미완의 와불처럼, 이번 전시에서 덩그러니 놓여진 토르소 형상들은 명상적이고도 성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신작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한 가지는 인물이 가진 시점이다. 이번 작품에서 인물들은 특정한 방향을 보고 있지 않다. 고개를 숙여 세상을 외면하거나, 마음을 닫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마음 속 자신의 화두를 들여다보듯, 자연스레 고개를 들고 반쯤 감은 눈으로 명상하듯 세계를 응시한다. 별을 바라보고, 화분을 안고, 검은 개를 쫓아가던 지난 작품 속 인물들이 어느덧 오랜 기다림과 고행을 거쳐 깨달음을 알아가는 수행자가 된 것만 같다. ● 이번 작품들에서 인물이 가진 명상적 요소들은 단독으로 표현되면서, 속(俗)에서 성(聖)으로의 구도가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작품「길을 찾아서-그 사람」이 마치 초기 인도 불상과도 같은 담담한 부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작품 「스스로를 위로하다」는 십자가에 걸린 예수의 상을 보는 것과도 같은 고요하면서도 막막한 감동을 전한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형상이되, 실은 특정한 존재가 아닌, 작가가 추구하려는 본질에의 노력 그 자체의 추상성을 보여주고 있다.
새싹을 든 인물 군상의 표현 「길을 찾아서」에서처럼, 이제 이유미 작가는 오랜 시간 천착했던 많은 물음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은 듯하다. 그리고 아직은 그 결실이 무엇일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제 살을 드러낸 작은 새 잎들만으로 생명의 출발점에 서 있다. 간직하기보다 버리는 것, 잡고 있기보다 내려놓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둘 것은 둔 채로, 제주의 바람 속에 거둠을 이루어내는 이유미 작가에게 새로운 다음 장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백승미
바람이 불어도...-지나가거나 마주친, 날아가거나 남겨진 것들에 관하여 ● 인간으로 사는 것.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것. 짧은 즐거움과 긴 괴로움을 반복하는 것. ● 쉬지 않고 빠져나가는 시계 속 모래처럼, 돌려세우지 못하는 삶의 이야기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삶의 허무와 겸손을 동시에 마주하게 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제주의 바람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바람 한 자락에 나의 경험이자, 당신의 경험, 생을 가진 존재가 공유하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 제주의 바람은 여러 모습으로 자취를 남겼다. 바람이 부는대로 자라난 나무, 풀처럼 바닥에 바짝 누운 나무, 흔들려 떨어질 것 같지만 조그마한 바람의 통로를 지닌 돌담. 우연히 바람에 날아와 옷깃에 붙어 있는 씨앗, 그렇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빨랫줄에 걸려 펄럭거리는 해녀들의 검은 잠수복이었다. 그 위를 스치는 바람이 있었다. 잠수복은 이 방향 저 방향에서 휘휘 불어대는 바람으로 물기를 털고, 삶의 숨을 다시 들여 마신다. 오랜 노동의 시간을 단단하게 담아낸 잠수복은 그 자체로 켜켜이 쌓인 삶의 궤적이었다. ● 해녀의 검은 잠수복은 마치 영혼과 육체가 빠져나간 허물이며 숨길 같았다.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늙은 몸뚱이와 손과 발의 굳은살처럼, 아니 내면에 숨겨져 있는 섬세한 감정들처럼 곳곳에 그 자취를 담고 있다. 살아가기 위한 그들만의 방식,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온갖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순간들이 모두 생생히 살아 있다. 그리고 어느새 험난하고 고단한 오늘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감사한 침묵으로, 또 다른 내일을 마주할 힘과 용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제주의 바람을 통해 자연,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 작업이 오늘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인생의 한 겹, 한 자락 자취로 남길 희망해 본다. ■ 이유미
Vol.20151005f | 이유미展 / LEEYOUMEE / 李裕美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