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가장 武裝家長

허보리展 / HURBOREE / 許보리 / installation.drawing   2015_0918 ▶ 2015_1005 / 추석당일,9월28일 휴관

허보리_A Hand Grenade On A Hand_C 프린트_50×3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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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보리 홈페이지_www.hurboree.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추석당일,9월28일 휴관

세움 아트스페이스 SEUM 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소격동 73번지) Tel. +82.2.733.1943 www.seumartspace.com

여자가 남장을 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 넥타이를 매는 것이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는 것 자체가 남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수많은 남성 가장들이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아침마다 직장으로 나선다. 허보리 작가는 그런 남성 가장들이 마치 전투를 하러 집을 나서는 것 같다고 한다. 삶이 치열한 전쟁 같은 점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양복을 입든 안 입든 마찬가지지만 작가는 남성의 아이콘인 넥타이와 양복을 소재로 만든 무기를 통해 삶의 치열함을 드러낸다. 삶의 고달픔, 치열함에 대한 고민은 애초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나 등장할 법한 중세 방패와 칼을 입지 않는 양복과 넥타이 제작으로 드러났다. 어린 남자아이들이 어느 나이가 되면 좋아하게(환장하게) 되는 칼과 같은 중세 판타지물의 전투 아이템을 통해 경쟁으로 점철되는 현대인들의 상황을 드러내는 작업에 이어 작가는 판타지적인 면을 제거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실제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실제 사이즈의 반으로 축소한 탱크와 실제 사이즈인 M4와 M2 자동소총 그리고 M2에 쓰이는 탄과 탄통, 여러 가지 고폭탄과 수류탄을 넥타이와 양복천으로 정교하게 제작해 누구든 작품을 들고 군인 흉내를 내고 싶도록 만든다.

허보리_Useless but Necessary 17.5_K1A1_ 오래된 양복, 넥타이, 실, 바느질, 이불솜, 나무프레임_170×414×153cm_2015
허보리_Useless but Necessary_M2HB Machine Gun_Loaded_ 오래된 드레스셔츠, 양복, 실, 바느질, 이불솜, 나무프레임_61×176×89cm_2015

이런 무기를 작가는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다. 대신 용산전쟁기념관을 드나들며 전투기, 그리고 탱크를 종일 스케치했다.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지닌 전투기나 전투함이 안보 산업과 군비 경쟁으로 상징되는 국가 체제를 함의한다면 백병전을 하듯 살고 있는 일상의 '武裝家長'은 대량 살상무기보다는 개인화기가 더 잘 어울린다. 그리하여 개인화기에 대한 연구 결과가 그의 드로잉 작업으로 이어진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접한 적 없는 작가는 실물 사이즈 프라모델 소총을 조립하며 구조를 연구했고 인터넷에 나오는 무기 사이트와 전문 블로그,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쇼핑 사이트 이미지를 면밀히 연구했다. 심지어는 국방부 홈페이지를 뒤져 민원실로 전화해 무기화사단을 방문해 155밀리미터 백린탄을 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복잡하고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실제 방문을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 여러 학습 과정을 거침으로써 작가는 제원과 더불어 무기의 역사까지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M34 백린탄은 누가 어디서 누구에게 사용하였는지, 어떻게 사용하며 어떻게 구성되는지 드로잉과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드는 작업을 통해 군대를 경험한 남성들 보다 더 무기와 밀착되는 경험을 거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무기를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사이즈이나 사용할 수 없는 말랑말랑한 무기를 손으로 만드는 작업은 어쩌면 치열한 현실에 대한 무기력을 드러냄과 동시에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폭력적인 체제의 핵심을 거세시킨다. 탱크와 자동소총의 포신과 총구는 힘없이 구부러져 있다. 공격적으로 뻗은 총의 남성적 이미지는 허보리의 다독이는 손길과 여성적 시선 아래 부드러운 곡선과 말랑말랑한 촉감을 얻는다.

허보리_High Explosive Shell Study Drawing 1_종이에 펜, 색연필_21×15cm_2015
허보리_Useless but Necessary_M1 Helmet_실크 넥타이, 실, 바느질_16×27×23cm_2015

넥타이와 양복을 해체하고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바느질을 치열하게 수행한 작업은 남성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을 담는다. 당연하게도 허보리의 이런 작업이 총구 위에서 죽음을 건 경쟁에 내몰린 이들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이러한 현실을 되돌이켜보는 기회를 만들 뿐만 아니라 나아가 길고 부드러운 포옹처럼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해낸다. 남성들이 수행하는 전쟁에 쓰이는 무기에 맞서 천과 바느질이라는 재료로 이루어낸 수고로운 노동은 인간이 파멸적 도구만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님을 역설한다. ● 200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가 무너진 지 14년이 되었다. 이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2014년 12월 비로소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허보리 작가가 다룬 오리지널 무기들이 살상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양복을 입은 '제1의 성'이 전쟁을 만들고 돈을 돌리고 금융을 장악하고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세계를 명확하고 냉정하게 보아야 함은 당연하다. 허보리의 말랑말랑하지만 정교한 양복 무기들은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애통하고 잔인한 면에 생각을 미치게 만든다. 이 세계는 약육강식과 비정이 판치는 세계이지만 우리는 가냘픈 촛불이 일렁이듯 본능과 파괴에 맞서 평화와 부드러움을 옹호해온 이들을 안다.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면 바로 그 작고 가냘픈 부드러움에 바쳐져야 하는 것 아닐까. ■ 서준호

Vol.20150918h | 허보리展 / HURBOREE / 許보리 / installation.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