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 초록 Fluorescent Green

한석현展 / HANSEOKHYUN / 韓碩鉉 / video.sound.installation   2015_0911 ▶ 2015_1003 / 일,공휴일 휴관

한석현_Balance_담배화분, 관수설비, 빛, 구조목_210×150×8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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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911_금요일_06:00pm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주최 / 스페이스 오뉴월 후원 / 서울시립미술관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JUHEON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 8-6 Tel. 070.4401.6741

아주 오래가는 1회용 미학 - 현실태 ● 「RRP(Reverse Rebirth Project)」(2011~)는 한석현을 떠올릴 때 그가 제작한 여러 작품들을 모두 제치고 그의 간판 이미지처럼 연상되는 수준에 올랐다. 폐목을 모아 트러스 구조Truss structure로 짠 구조와 구조물의 빈틈 사이로 자라나는 묘목과 풀들 때문에 무릇 탄탄한 외관을 지닌 설치물이다. 「RRP」는 여러 시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제작되었음에도 각기 다른 외형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RRP」들을 묶어주는 공통된 인상은 있다. '어딘지 허술하게 균형 잡고도 용케 견디고 선 설치물'이라는 인상이 그거다. 「RRP」는 여러 장소에서 노출된 만큼 한석현의 작업 연보에서 인지도가 단연 높다. 또 작가 본인도 이 작품에 남다른 애착을 품는 것 같다. ● 꾸준히 제작되는 「RRP」의 생리는 한석현의 지난 작업 전개도를 역추적할 때 요긴한 진입로가 되어주고, 그의 작가주의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 쯤 될 것이다. 여러 「RRP」 중에서 아직까지 처음 세워진 자리를 지키면서 랜드마크가 된 경우도 있지만, 「RRP」는 기본적으로 해체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작된 설치물에 가깝다. 어딘지 허술하게 균형을 잡고 우뚝 솟은 외형도 한시적인 작품 수명 안에서 미적 효과를 최대치로 분출하려는 1회용품의 생리를 취한다. 「RRP」는 완결 시점을 연장하면서 '지금 여기'에만 집중한다. 완결보다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점에서 「RRP」와 한석현의 창작 태도는 '현실태'로 번역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energeia를 미적으로 실현시킨 경우 같다. ● 시효와 시한이 제한된 예술품에 왜 끌릴까? 강한 인상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1회용 예술은, 반영구적인 보존이 전제되는 작품의 일반론과 달리, 빠른 속도로 변하는 동시대의 세계와 그런 세계에 사는 동시대인의 감각과 쉽게 호환하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선명한 메시지와 시각적인 충격을 탑재한 작품은 매체 변화에 적응한 예술의 변종인 것 같기도 하다. ● 「RRP」처럼 강한 인상과 '지금 여기'에 의미를 둔 1회성 미감은, 한석현의 초기 작업에서도 우회적으로 드러난 것 같다. 예를 들어 채소의 신선함을 영구적으로 박제하려는 시장경제의 판촉을 비판한 작품 「Must be fresh!」(2006)는 재료로 비닐과 스치로폼을 썼다. 또 「Super-natural : till life」(2009)를 재현할 때 동원된 재료도 1회용 기성용품이 쓰였다. 「RRP」의 웅장한 부피를 충당한 건 서로 용도가 다른 폐목재들이었다. 기념비처럼 우뚝 솟은 「RRP」의 본질이 폐목재인 점이 감동의 밀도를 높인다. 제목마저 작품의 한시성을 암시하거나 강조한다. '순간적으로 형성된 광경' 정도로 해석될 「Instant scape」(2012)나 '1회용 정원'으로 번역될 법한, 유병서와의 협업 작업 「Disposable garden」(2014)을 보자.

한석현_아름다움, 규격 밖의 산물_가변설치_2015

발전 단계 : 단품 < 실내 설치물 < 현장 설치물 ● 작업 연대기를 통해 한석현의 일관된 관심사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다. 특히 초반 작업은 스케일에서는 상대적으로 2010년 설치에 비해 작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연과 풍경에 시장경제가 개입해서 초래된 변형이 초기 작업의 포인트인 것 같다. 변형되거나 과장된 자연의 외관과 이처럼 급변한 자연의 외관에 익숙해진 동시대인의 가치관을 당시 작업들은 재현하고 있다. ● 대형마트 식품 매장에서 만나는 파릇파릇한 신선도를 항상 유지한 상추의 상태는, 종교 도상이나 이오니아식 기둥 상단에 모셔진 상추의 모습으로 제시된다. 즉 변형된 자연 현실을 영구불변한 종교도상과 대등하다고 해설조로 제시하는 거다. 이런 직설화법은 「999.9 FINE FRESH」(2009)에선 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골드바로 재현된다. 순금을 999.9의 순도로 매긴 골드바에 빗대 금색을 녹색으로 대치해서 신선함의 순도를 나타내려 했을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의중을 해설조로 푸는 건 한석현의 초반 작업의 기류였다. ● 그렇지만 동일한 관심사를 다뤘으되, 변화가 2010년 이후로 보인다. 2009년 「Super- Natural: Still life」은 깔끔하게 마감과 선명한 메시지를 선호하던 초반 관성이 남은 경우라면, 2010년 「수퍼-네이처 Super-Nature」설치작업은 이런 취향과 결별한다. 친환경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호소하는 손쉬운 방법은 제품의 포장재를 1회용 녹색 플라스틱으로 통일시키는 것일 테고, 실제 전 세계의 매장에서 유사한 판촉이 사용된다. 「슈퍼-네이처」는 발견된 녹색 플라스틱 오브제를 잔뜩 쌓아서, 녹색=친환경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등식이 에워싼 우리의 삶을 재현한다. 전시장은 녹색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녹색 인공 섬이 들어선다. 「슈퍼-네이처」의 풍경이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으로 쌓은 인공 섬에 가깝다면, 「RRP」는 재활용 되지 않는 목재로 나무의 형상을 만든 경우다. 심지어 「RRP」에 묘목이 자라고 있으니 부분적이나마 생태적인 설치물의 면모까지 갖췄다. 생명체와 작품을 유기적으로 엮고 작업의 진정성까지 확보하려면, 전시장 내부보다 전시장 바깥에서 승부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결과 어딘지 허술한 형태로 기성 목재들로 균형을 잡은 거대한 나무 형태의 설치물이 현장을 점유해서 시위하는 모양새를 띠었다. ● 유통되는 자연 생산물의 신선도를 과장하는 현대적 삶에 주목한 한석현은, 해설조의 단품으로 시작했고, 발견된 오브제들을 산처럼 쌓아 공간을 점유하는 설치물을 중간 다리 삼아, 전시장 바깥의 현장으로 나가 의사(疑似) 자연인 거목의 형태를 취한, 자연을 전유하는 설치물로 발전시켰다.

한석현_다시, 나무 프로젝트: 뿔 Reverse-Rebirth project: Antlers_설치과정 기록영상_00:13:07_2015

관계미학 ● 제작된 편수로 보나, 현재까지 보존된 작품으로 보나, 그리고 '과정 예술'의 진수를 드러내는 점으로 보나, 「RRP」는 한석현의 대표작으로 부족함이 없다. 한데 「RRP」를 그의 대표작으로 인식시키는 또 다른 매력은 불특정 다수가 개입해서 작업의 의미를 발생시키는 관계 미학적 면모 때문일 것이다. ● 예술을 공동체와 유리시키지 않는 관계 미학적 태도는 콜렉티브 활동에 가담하던 그의 재학시절에서도 관찰된다. 「앵두색 육교」 혹은 「육교 앵두」로 불리는 2007년 공공미술이 그 시작점 일 것. 이 작업은 한석현 단독 작업은 아니고 그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들이 주축이 된 '마이크로웨이브'라는 아트 콜렉티브의 공공미술 해프닝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도시문화를 재조명하는 프로젝트 '이문, 석관 마이크로플렉스'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공공미술이 빚은 소동의 전말은 이렇다. 신이문동의 멀쩡한 육교를 '마이크로웨이브' 회원들이 하루 밤새 빨간색으로 도색해 놨다. 이 사건에 대해 동대문구청은 원상복구를 요구했고, 그 요구를 받아들여 본래 취지가 온전히 실현되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육교가 앵두색으로 변함으로써 평범한 육교에서 새로운 랜드마크처럼 재탄생할 수도 있고, 그렇게 변한 육교 위에 벤치도 꾸며 만남의 장소도 될 가능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밝힌 마이크로웨이브 회원(유병서)의 입장에서 보듯, 이 작업은 지역 주민의 삶에 관여하는 예술을 지향한 결과다. 한편 작가 단독의 성과보다 창작 공동체의 협업으로 작업을 완성하는 콜렉티브라는 창작 형식 역시 관계 미학적 잔재로 볼 만하다.

한석현_그린그린_초록병 위에 식물꽂이_가변설치_2015

반전 ● 지나온 작업 연보를 따라가면 한석현의 일관된 제작 공정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완결된 권위'를 차용하되 그 권위에 거역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다. 권위의 외관을 차용한 작업들은 대부분 비영구적인 외형이거나 과정의 상태로 마감된다. 또 일시적인 작업의 수명도 '예술의 영원성'이라는 업계의 도그마에 반하는 태도로 볼 만하다. 그의 작업 대부분이 '지금 여기'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현실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 건 그 때문이리라. ● 2000년대 중후반 작업들이 종교 도상, 골드바처럼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고정된 지분을 확보한 아이콘을 차용한 점을 환기하자. 차용된 아이콘들은 권위를 조롱하고 거역하는 반전의 형식으로 돌변한다. 「Must be fresh!」가 신선도를 부풀리는 상업 자본의 생리를 종교 도상, 고전 기둥, 999.9 금괴 등에 빗댔다면, 「Super- Natural:Still life」는 같은 관심사를 인생무상의 메시지를 탑재한 네덜란드 정물화 전통을 차용해서 친환경 메시지의 무상함을 경고한다. ● 이처럼 고유한 권위의 도상들을 차용해서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 되돌려주던 한석현의 초기 작업들은 초대형 설치물로 변모하는 2010년 이후의 대표작들에선, 자연이 문명에 의해 다듬어지는 과정을 역행시키는 반전 드라마로 발전한다.

ps. 작업의 동력을 반전에서 가져오는 건, 작품의 외형 뿐 아니라 작품 제목을 다는 작명법으로도 옮겨가는 것 같다. 잦은 중의적 언어유희가 그 예인데, 「슈퍼-네이처」라는 제목은 한국에서 슈퍼마켓을 이를 때 쓰는 약칭 슈퍼와 슈퍼마켓이 내놓은 가공된 자연을 결합시킨 것일 게다. 하지만 슈퍼네이처는 사실상 허구적인 괴이한 현상을 뜻하는 '초자연'을 의미하는 단어이므로 가공업체가 식료품 가게 안에서 판촉하는 괴이하게 변형된 식료품을 뜻하기도 할 게다. 「RRP」도 한국식 발음으로는 같은 음 '리버스'가 두 번 반복되는 작명이지만, 역행을 뜻하는 리버스reversed는 재탄생을 뜻하는 rebirth와 충돌한다. ■ 반이정

Vol.20150912j | 한석현展 / HANSEOKHYUN / 韓碩鉉 / video.sound.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