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람

김신혜展 / KIMSHINHYE / 金信惠 / painting   2015_0910 ▶ 2015_0924 / 월요일 휴관

김신혜_백두에서 한라까지 From Mt. Baekdu to Mt. Halla_장지에 채색_195×533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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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혜 블로그_kshye7.blog.m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통의동 6번지) 이룸빌딩 1층 Tel. +82.2.730.7707 palaisdeseoul.com blog.naver.com/palaisdes

맑고 깨끗한 여가상품 즐기기: 후기산업사회의 이미지 소비문화 ● 조선시대 선비들은 전국에 펼쳐진 우리의 강산을 여행하며 그림이나 시로 그 감상을 남겼다. 산수유람은 생활과 부역의 무게에서 벗어나 자연을 향유할만한 여유가 있는 계층이 즐기는 고급여가생활이었다. 나귀를 타고 느리게 팔도를 유람하며 자연의 기운과 정취를 느끼는 선비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명승지와 아름다운 풍광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정자를 찾으면 느린 걸음마저 멈추어버린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옛 사람들로부터 시간이 지나고 점점 속도가 붙게 되면, 빠른 걸음으로 관광지들을 향해 이동하면서 그 곳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아 유유히 사라지는 현대인으로 장면이 바뀐다. 우선 사진에 담아두고 다른 목표점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오늘날의 여행 풍경에 익숙해서 그런지 과거 선비들의 모습은 과하게 여유로운 느낌마저 든다. ● 현대인에게 관광이란 대중적인 산업이다. 관광은 레저, 숙박, 항공, 공원조성 등 다양한 산업들과 맞물려 있는 국가적 차원의 사업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한 지역을 아는데 먹고 마시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여행자들은 십 년 전부터 자신들이 30년 전통 원조임을 주장하는 유명 음식점들에 발길을 멈춘다. 음식점에 들어선 사람들은 음식이 나오면 맛보기 전에도 역시 사진 먼저 찍는다. 시점은 점점 멀어져 바쁘게 사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은 건물 속으로 사라지고, 건물과 나무는 산 속의 점들이 되어가고, 전체의 산과 바위들로 합쳐질 때쯤 우뚝 선 병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의 산수를 담은 병은 화면 안에 부끄러운 듯 곱고 바르게 서 있다.

김신혜_독도 Dokdo_장지에 채색_130×130cm_2015
김신혜_지리산 the Jiri Mountains_장지에 채색_130×130cm_2015

김신혜 작가는 버려진 빈 병에 붙은 라벨에서 지나치게 이상화된 자연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물이나 술, 음료수 용기는 내용물이 비워지면 곧 버려질 운명이다. 용도 폐기되기 전에는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외관으로 다가간다. 물도 돈을 주고 사서 먹어야 하는 오늘날은 물병들도 각기 다른 이미지와 전략으로 소비자 앞에 다가간다. 상품으로 진열된 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불순물 없이 순수한 물'이므로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는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수함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산골이나 심층에서 길어 올렸다는 카피로 강조된다. ● 오늘날 자연에서 멀어진 도시인들은 자연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자연에 대한 기억은 미디어를 통해 제공된 산, 나무, 바다, 물 등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직접 경험보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선행하여 접하며, 여행지에서 본 자연을 어디선가 본 그럴듯한 이미지와 비슷하게 찍어 재생산한다. 자연을 망각했기에 이미 제시된 이상적, 혹은 전형적 자연이미지를 기호처럼 학습한다. 일정 용량으로 제작된 병에 담겨있는 음료들 역시 그 성분이야 어떻게 되었던 '맑고 깨끗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자연은 '순수한', '몸에 좋은', '치유적인', '상쾌한' 등가기호가 된다. 이렇게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상품에 대한 사용가치, 실질적 소용과 기능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김신혜_한라산 Mt. Halla_장지에 채색_117×91cm_2015
김신혜_울릉도 Ulleung Island_장지에 채색_130×130cm_2015

자연이미지와 함께 적혀 있는 제품명은 약속이나 한 듯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명칭이 대부분이다. 소주나 생수의 제품명에 장소명이나 '깨끗함'을 의미하는 명사나 형용사를 넣는 것은 정형화된 형식이다. 백두산, 한라산, 울릉도 등의 상징적인 명칭을 사용하고 산수화처럼 먼 시점에서 조망하는 풍경이미지를 매치시키면서, 실제 장소나 풍경과는 상관없지만 그럴싸해 보이는 상징성을 판매한다. 직접 마셔보고 가늠해보기도 전에, '해양 심층수', '깊고 깨끗한 지리산 암반수', '청정', '참', '맑은', '공식(적인)' 등의 수식어는 내용물의 질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을 강요한다. 물이나 소주처럼 별 특징 없는 음료에 대해서도 상품들마다의 작은 차이마다 역시 별 차이 없는 이미지를 대입시켜 선호도를 가지게 한다. 심지어 같은 용량의 그저 '물'일 뿐인데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 저마다 각 지역의 특산이라는 물이 마트에 쌓여있다. 몇 백 년 전만해도 시간을 들여 그 장소에 찾아가야만 마실 수 있던 물은 장기보관 가능하게 처리되어 집 안방에서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음식점 이름마저 생경하게도 타지역명을 사용하며, 명승지조차 온갖 지역과 장소가 혼재되어 사라진 고향처럼 이미지만 남아있다. 상품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에 닿게 해줄 수 있을 듯이 가장하여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가면이며 허구이다. 욕망을 자극하여 순간적으로 우리의 소비행동을 이끌어내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거나 분석하려 하지는 않는다. 작가가 '어느 날' 카페에 앉아 마시던 '애리조나 그린티'에 그려져 있는 '붉은 매화'를 본 적이 있었는가에 의문을 갖게 되었듯이, 평소에는 그것의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에 매혹되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품에 입혀진 표면들의 향연, 얇은, 심지어 반투명한 라벨지에 새겨진 이미지는 고도의 설득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신혜_백두산 Mt. Baekdu_장지에 채색_145.5×112cm_2015
김신혜_수집된 산수 Collected Landscape_플라스틱 병_유리병 등_가변설치_2014

이제 우리는 앉은자리에서도 전국방방곡곡을 경험할 수 있다. 여행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을 이미지를 소비하고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것이 진짜 백두산에서 온 물인지, 한라산의 물로 만든 소주인지를 직접 보고 확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누구도 심도 있게 질문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품의 디자인은 많은 부분에서 개인의 선호도와 연결되며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김신혜는 작품 속에 상품의 전략과 같은 전략, 즉 예쁘고 보기 좋은 이미지를 그린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전략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목적을 잃은 라벨의 그림들은 그림 그 자체로 보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어떤 목적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 김신혜의 작품은 음료병들에 그려진 자연의 이미지를 풀어낸다. 상품명 뒤로 물러나있어 무의식 수준에 머물고 있던 자연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통해 의식의 수준으로 이끌어낸다. 풍경을 구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상품 이미지의 허구성이 드러나면서 그것이 진짜 독도, 지리산, 백두산의 모습인지 궁금해 하게 된다. 오히려 병이 뒤로 물러나면서 상품에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지위도 역으로 드러낸다. 작품에 펼쳐진 풍경 한 가운데 병의 형태가 지하부터 지상까지 거대하게 박혀 있다. 우리 산천에 자리 잡은 거대한 빈 병. 이 알레고리는 우리 삶에 이미지를 소비하는 문화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 이수

Vol.20150911k | 김신혜展 / KIMSHINHYE / 金信惠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