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밤의 표류

최상진展 / CHOISANGJIN / 崔相鎭 / painting   2015_0904 ▶ 2015_0923

최상진_오늘날의 안이자 밖_ 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 아크릴채색, 오일파스텔, 유채_181.8×181.8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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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 블로그_patinamole.blog.me

초대일시 / 2015_0904_금요일_05:00pm

스페이스 선+ 주최 신진작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스페이스 선+ Space Su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팔판동 61-1번지) B1 Tel. +82.2.732.0732 www.sunarts.kr

태양빛이 강렬하게 시야로 쏟아지면 사물과 사람들은 하얗게 지워진다. 눈앞의 것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눈을 찡그려 보지만 하얀 빛과 뒤섞인 이미지들은 이미 형체가 없다. 최상진 작가는 이렇게 화이트 아웃 되듯이 시야를 가리는 '어떤 것'들로 채워진 작품들을 선보인다. 화면은 반복되는 노란 동그라미나 작은 반점들, 회색의 연기로 덮어져 있다. 작품 앞에서 시야는 패턴의 장막에 가려진다. ● 작가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잡음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명이 생겨 난 이후 이물의 느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귓속에서 울리는 이물의 감각으로 빚어진 세계의 불투명한 소리들은 소통에 문제를 불러일으켰지만 그와 동시에 이물의 감각마저 포함해 세상을 이해하는 눈을 길러주었다. 이제 작가에게 이물의 감각은 그와 외부의 소통을 왜곡시키는 부정적인 장벽이라기보다 세상을 이해하는데 덧붙여진 또 하나의 추가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최상진_연기도 떠다니는 방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0.3×100cm_2015
최상진_어느 오프닝_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 유채_91×116.8cm_2015

이물에 대한 작가의 관점변화는 작품의 변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 작품들에서는 귓속에서 이명을 일으키는 가상의 캐릭터인 '파티나몰'을 통해 소통의 왜곡과 그로 인한 오해의 감정들을 이야기로 전달했다. 반면에 새로 선보인 작품들은 '파티나몰'이 사라지고 일상적인 인물과 거리의 윤곽 위에 전체적으로 흩뿌려진 점들, 흘러간 붓의 흔적과 같이 조형적인 표현을 통해 이물의 감각 자체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작품의 표면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봤을 때도 프로타주기법과 물감이 칠해진 겹의 차이, 다양한 패턴들로 화면 위에 나열된 상이한 표면은 불균등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오려붙여진 콜라주처럼 매끈한 경계선에서 맞닿은 질감과 형태의 이질감은 몽상적인 느낌을 살리고 이물의 감각이 만드는 즐거움을 전달한다. ● "일반적이지 않으면 표류하는 것일까? 과연 그들이 표류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이명으로 고립되었던 작가는 지금도 표류하고 있는가? 이명을 인정하고 다름에서 오는 감각들을 시각으로 제시하면서 그의 혼란스러운 표류는 감각을 탐색하는 여행이 되었다. 그에게 표류는 새로움의 시작이다. 전시제목인 『하얀밤의 표류』처럼 각자가 가진 미묘한 다름에서 생겨나는 자신만의 몽상적인 하얀 밤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 스페이스선+

최상진_습작22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5
최상진_습작19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유채_45.5×53cm_2015
최상진_습작23_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 유채_37.9×45.5cm_2015

하얀 밤의 표류1. 귀가 울리고 잘 들리지 않는 나의 상태는 어떤 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영향을 끼쳤다. 울림은 왜곡으로, 난청은 자의적 해석으로 나타났고 이러함이 사회화의 하나라고 자위하는 데에 환멸을 느끼는 요즘이다. 이명・난청은 일반적인 사회화에 방해가 되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기는 상황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여 소리보다 문자를 통한 소통에 의지를 더 하게 되었고 안식을 얻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체를 통한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에서 이명과 난청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느꼈다. 매체를 통한 전달이 일방적인 방향을 가질 수 있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리와 문자를 통한 소통에 한계를 느낀 나는 다른 시도의 필요성을 회화에서 찾고 있다.

최상진_습작25_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 아크릴채색_40×40cm_2015
최상진_습작2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53×33.4cm_2015
최상진_습작2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15

2. 밤은 어둡지만 오늘날의 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늦은 밤까지 또는 이른 아침까지 켜져 있는 인공 빛들은 시간을 거스르는 듯 발광한다. 곤히 잠들어 있을 시간대에 깨어있는 존재들은 표류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이지 않으면 표류하는 것일까? 과연 그들이 표류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이 계속 생긴다는 것은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 오늘날의 밤이 꼭 어둡지만은 않다면 오늘날의 낮은 밝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굳이 연일 보도되는 사건・사고로 인한 어두움의 중의적 표현에 기대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얀 밤은 어둡지만은 않은 밤이거나 밝지만은 않은 낮일 수도 있다. ■ 최상진

Vol.20150907h | 최상진展 / CHOISANGJIN / 崔相鎭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