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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714_화요일_05:00pm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선재센터 ARTSONJE CENTER 서울 종로구 율곡로 3길 87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 Tel. +82.2.733.8945 www.artsonje.org
'모든 망명에는 보이지 않는 행운이 있다'는 심보선 시인의 시 「금빛 소매의 노래」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망명이라는 고독한 슬픔과 보이지 않기에 꿈꾸는 모호한 기대와 행운이라는 찰나의 기쁨이 한데 뒤엉킨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모든 망명은 지금 여기 순간을 떠나야 하는 상실을 지시하지만, 그럼으로써 다른 시공간에 진입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명시한다. 장소에 대한 관심에서 확장하여, 공간을 구성하고 구획하는 사람과 문화, 그들(그것)과의 관계 맺음을 시도해 온 작가에게 있어 망명은 늘 생활 속에 실재해 온 것이자, 삶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대 행위였다. 이 전시에서 제시되는 망명은 멀지 않은, 실상 가까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 『모든 망명에는 보이지 않는 행운이 있다』라는 전시 제목으로 엮어낸 네 편의 영상 작업에서는 직접적으로 혹은, 느슨하게나마 망명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각각의 작품은 불가사의한 가상의 공간「프레스케이프」(2015), 장소에 대한 상상「원더랜드」(2012), 내적 공간에 대한 사색「아이솔란드」(2014), 미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설화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정치학적 이야기「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2015)를 말한다. 이 작품들은 흔히 강제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의 프레임에 갇혀있는 망명이 아닌-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비자발적인, 사회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육체적인 이동일 수도 있지만 정신적인 유목일 수도 있는, 무겁지만 동시에 가벼울 수도 있는 - 다소 복잡하고 아이러니한 망명을 그린다. ●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신작「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을 중심으로 하여, 서로 다른 결을 가진 작업들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장치로 소품(prop)을 사용하여 전시 공간 안에 세심하게 배치한다. 이 소품들은 작품 사이의 거리를 메우고 공간을 채우는데 충실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른 시공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번 전시는 관객들이 제한된 망명이라는 의미를 좀 더 다층적으로 살펴볼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
'망명'의 사전적인 정의는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다른 나라 혹은 다른 장소로 몸을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망명은 신체적으로는 물리적 이동을 수반하며 정서적으로는 상실과 슬픔, 정서적 고립감을 내포한다. 하지만 시공간의 절대적 경계 개념이 느슨해진 오늘날, 이러한 망명은 이주와 이동, 여행과 유목으로 그 외연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여행자, 이주민, 이동 중인 집단과 개인들로 우리의 몸에 기입된 '에스노스케이프'로서의 위치는 오늘날 우리 삶의 한 단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제는 빛바랜 용어가 되어버린 '글로벌리즘' 의 부침 속에서 삶의 내러티브는 글로벌 자본을 따라, 전자매체나 전략적 네트워킹을 따라, 혹은 개인적인 욕망을 따라 망명을 실질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끊임없이 내면화 하고 있다. ● 작가 염지혜는 2010년을 전후하여 이러한 장소이동과 여행, 이주로서의 삶의 방식을 실질적으로 채택한 바 있다. 아프리카 가나, 핀란드, 브라질 아마존 등에서의 한시적 유랑은「Solmier」(2009),「원더랜드」(2012),「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2015) 등의 작업으로 가시화되었다. 염지혜의 영상작업에서 망명은 한편으로는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가시적 이동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효과로서 표현되었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들은 물리적인 신체의 이동과 글로벌 자본의 흐름의 효과를 꿰차면서도, 잃어버린 장소, 다시 찾아 떠나는 여행, 실향에 대한 노스탤지어, 이국문화에 대한 환상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내포한다. 심보선의 시의 한 구절에서 작가가 인용한 '모든 망명에는 보이지 않는 행운이 있다'에서 행운은 바로 하나의 시공간을 떠나야 하는 상실감과 그것의 또 다른 가능성, 이질적 시공간에 대한 기대감, 헤테로피아에 대한 설레임 등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 2012년 영상작품「원더랜드」는 한 남자의 인터뷰를 통해 망명의 보이지 않은 행운에 대한 기대를 담아낸다. 해뜰 무렵의 고요한 강가 풍경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독백으로 들려온다. 그 남자는 핀란드의 눈밭 한가운데 작가가 설치한 작은 인공 자연림에 앉아 스스로 나레이터가 되어 망명에 대한 자신의 기대를 고백한다. 핀란드 TV 산업의 편집자로 자신을 소개한 이 남자는 자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자신의 개인적 욕망, 이주의 긍정적 효과를 담담히 이야기한다. 눈밭 한 가운데 위치한 인공설치 자연림은 바로 그가 망명(이주)의 상상 속에 품고 있는 동경의 장소, 헤테로피아, 즉 브라질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두 문화 사이의 상호 융합, 거기서 기대되는 어떠한 긍정적인 문화변동을 암시한다. 핀란드의 차디찬 눈밭에 앉아 브라질의 뜨거운 석양을 바라는 '원더랜드' 효과에서 '망명'은 곧 '행운'이 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염지혜에게 특정 장소로의 실질적 이동은 작업의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2015년 영상작업「분홍 돌고래와의 하룻밤」은 브라질 아마존으로의 작가의 단기간의 망명에 기인한다. 현지에서 촬영된 이 영상 작품의 중심에는 '분홍 돌고래'에 대한 아마존의 오랜 설화가 작동한다. 브라질 아마존의 설화에 따르면 아마존 강에서 수영을 하는 처녀는 분홍 돌고래의 아이를 잉태한다. 보뚜로 불리는 이 돌고래는 멋진 남자로 변신하여 여자들의 넋을 앗아가고, 황홀한 수중도시 엥깡지로 그녀들을 유괴해 간다. 분홍돌고래와 처녀의 성적 교합은 브라질 아마존의 마법적인 컨텍스트이고 그것은 아마존의 인류학적 원시성을 강화시키는 문학적 기제이다. 그러나 분홍돌고래의 전 근대적인 마법과 신화화된 내러티브가 글로벌리즘, 자본주의, 계급 등 오늘날 작동하는 다양한 사회적 기제와 만났을 때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작가가 주목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작가는 '분홍돌고래' 자체의 일차적이고도 명시적인 내러티브가 아니라 그것이 타문화와 만나고 이질적 상황들과 접촉할 때 생겨나는 변형과 전이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그가 주목한 점은 현재 시점에서 분홍 돌고래의 번역의 고리들과 변형의 알레고리, 의미적 망명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브라질 아마존을 중심으로 돌출한 분홍돌고래의 설화를 단지 민족지학적으로 기술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원시적 내러티브가 오늘날 글로벌한 세계상에서 어떠한 의미적 '망명'을 거듭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분홍돌고래 설화는 현재 브라질 아마존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카니발, 성, 자본주의, 글로벌리즘의 순환 구조 속에서 역동적으로 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영상「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은 마치 분홍돌고래가 서식할 것 같은 아마존의 검푸른 바다의 이미지와 유리 빌딩의 브라질 도시 건축 이미지가 교차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아마존 밀림의 풍경을 지나 브라질의 언어와 토속민요를 배경으로 분홍의 애니메이션 이미지들이 '메타모포시스'하는 가운데, 처녀와 분홍돌고래의 성적 판타지가 보이스 오버 된다. 이어지는 남녀사이의 이국적인 춤의 영상 푸티지는 바로 이 설화의 성적 교합의 상징과 오버랩 된다. 시간의 통로를 연상시키는 붉은 통로관을 지나 이 영상은 일종의 엔터테이너 문화상품으로 전이된 분홍돌고래를 푸티지 영상으로 보여준다. 인공 수족관과 수영장은 아마존의 깊은 강 대신, 분홍돌고래의 현재의 운명의 장소가 된다. 훌라우프를 돌리고 아이들과 입을 맞추며 스킨 스쿠버의 지시에 의해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영상 속의 분홍돌고래는 이제 더 이상 신화 속에 위치하면서 처녀에게 아이를 잉태시키는 마법의 존재 '보뚜'가 아니다. 그는 이제 철저히 문화 산업구조 속에서 순환하는 하나의 부품으로 육화되었다. 다시 말해 아마존의 분홍돌고래는 마법과 설화의 중심에서 수족관과 놀이시설로 '망명'하고 상품의 중심으로 '변이'한 것이다. 이러한 분홍 돌고래의 운명은 자본의 흐름에 따라 도시로 망명한 아마존 여전사의 그것과 같고, 동시에 아마존 정글에서 도시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아마존 소년의 운명과 자연스레 접합한다.
분홍돌고래 주변으로 선회하는 인류학적 설화는 자본에 잠식되어 또 한 번의 망명을 경험한다. 분홍 돌고래의 성적 판타지 설화는 현대 자본을 따라 달콤한 분홍젤리로 포장된 여성의 성기로 드라마틱하게 재등장한다. 화려하게 흘러내리는 색의 흐름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반인 반수의 매끈한 분홍 이미지의 메타모포시스는 설화와 상품 사이에서 진행되는 이러한 역동적인 변이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서 브라질 아마존의 신화가 상품의 주요 맥락이 되어버리는 역설의 사회적 배경을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브라질 아마존의 주도(州都) 마나우스의 고무 무역이 그 배경 중 하나이다. 마나우스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 고무무역의 성행으로 예술과 문화를 주도하나, 그 이후 예기치 못한 고무 밀수의 등장으로 부의 원천을 상실한다. 영상에 등장하는 화려한 아마존의 오페라 극장은 당시 마나우스의 주도적인 경제 상황을 대변한다. 작가는 오페라 하우스의 극장 모형을 연약한 흰색 종이로 만들어 아마존 강에 띄우는데, 이는 마치 과거의 영화가 사라진 마나우스의 현재를 보여주듯 한 남자의 오페라 노래 소리를 배경으로 물속으로 점차 가라앉는다. 글로벌 신 자유주의에서 분홍돌고래의 전 근대적인 마성은 추방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성을 파는 신체-젤리가 된다. ● 작가는 이러한 망명과 이주의 의미를 시각적 층위에서 표상하기 위해 '비디오 몽타주' 방식을 미학적으로 선택한다. 비디오 몽타주는 어찌 보면 시각적 망명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베르토프가 언급하였듯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서로 통약 불가능한 멀리 떨어진 사물들을 극적으로 서로 연결시키면서 미지의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열어주기 때문이다. 아마존 정글풍경과 도시의 건축적 이미지, 마나우스에 위치한 과거 오페라 극장 영상과 현재 마나우스의 항구이미지, 분홍돌고래 설화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푸티지 영상들과 애니메이션의 몽타주는 작품「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을 가로지르며 대위법적으로 이어진다. 분홍돌고래를 중심으로 파생되는 이미지들의 비선형적 결합은 에이젠슈테인이 언급한 상호 감각적 경험을 전달한다. 이러한 이질적 몽타주는 전근대적 신화와 탈 마법화된 현재 사이의 간극을, 망명이 가져다준 숨겨진 맥락들을 효과적으로 상기시킨다.
이러한 파편들의 결합과 몽타주의 미학은 영상「아이솔란드」(2014)의 주된 작업 방식이다. '아이솔란드'는 Iceland(아이슬란드)와 isolate(분리하다), solitude (고독)을 조합하여 만든 단어이다. 손이 가리키는 이미지를 따라 바다에 떠 있는 집, 반죽되는 밀가루, 자유롭게 바뀌는 얼굴 형상의 애니메이션들이 뫼비우스 띠처럼 몽타주 된다. 고정된 형태를 거부하는 비정형성과 논리적 범주화의 거부, 다층적인 시공간의 혼합이 이 영상 작업의 골조를 이룬다. 무의식의 흐름을 쫒아가는 듯한 이 유연한 영상의 흐름은 마치 자유롭게 링크되는 망명의 상상적 모습과도 같다. 염지혜는 이러한 이동하고 순환하는 하나의 세계상을 다큐멘터리적 감성이 아닌, 허구(설화)와 역사적 사실, 푸티지와 애니메이션, 촬영된 이미지들이 뒤섞인 파편화된 몽타주적 감각으로 펼쳐내 보인다. 작가에게 비디오 몽타주는 망명이 의미화 하는 혼성성과 유연성을 시각의 층위에서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 염지혜의 영상 작업들에서 '망명'은 (아마존의 설화를 포함하여) 하나의 문화 컨텍스트가 다른 문화와 만날 때, 혹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같은 여러 사회적 기제들에 의해 새롭게 작동될 때 생기는 잡종적 정체성, 유연한 변화, 다성적 소리들을 포괄한다. 특히「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은 탈 마법화의 효과와 그것에 의해 추방된 전 근대적인 내러티브가 현재의 다양한 사회정치적 장치에 의해 어떻게 상호접합하고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망명은 하나의 문화와 다른 문화 사이의 상호 융합,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세계를 새롭고 복잡한 체제로 변화시키는 그 무엇이다. 이때 망명은 새로운 기대감을 던져주는 행운의 감각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상실과 고독감을 안겨주거나 저항감을 던져주기는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망명의 장소는 행운의 아비투스로서의 '원더랜드'와 분리된 고독을 의미하는 '아이솔란드' 그 중간 즈음에 있을지 모른다. ■ 배명지
Vol.20150714b | 염지혜展 / YEOMJIHYE / 廉智惠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