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하고 성스러운 정원으로 가는 길목

강성원展 / KANGSEONGWON / 康聖苑 / painting   2015_0616 ▶ 2015_0623

강성원_삶-나들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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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원 카페_cafe.daum.net/holygardenart

초대일시 / 2015_0616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00번지) Tel. +82.2.580.1600 www.sac.or.kr

故 강성원작가 遺作전 ● 우리가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6월의 전시회를 기획하던 故 강성원작가는 지난달 4월 12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생과 삶의 나들이를 그림으로 그리다가 그것이 마지막 그림이 되었고... 시대의 자화상을 그리다가... 전시회를 준비하다가... 의사로부터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5개월 만에 떠났습니다. 그자화상이 본인의 자화상이 됐노라고 마지막 메모를 남기고 그는 갔습니다. 2014년 11월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이번 전시 까지는 할 수 있을 것으로 의사도 예측했고 가족과 제자들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故 강성원작가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시고 천주교 聖像만 조각하시던 부친과 생계를 걱정하여 파독 간호사의 길을 택했던 어머니의 사이에서 그도 화가의 길을 선택했고 하나뿐인 동생 또한 화가로서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다.

강성원_인생-나들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4
강성원_자화상_캔버스에 혼합재료_73×53cm_2014
강성원_자화상_캔버스에 혼합재료_117×80cm_2014

독일에서 10년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신표현주의의 대표주자로 각광을 받았으나 그의 작품의 세계는 상업주의와는 거리가 있었고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강한 메시지는 일반적인 미술의 커테고리와는 거리가있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그가 얘기하고자 했던 작품을 통한 메시지는 세상의 정화와 아름다운세상 만들기였지만 그의 표현은 어둡고 거칠었고 강했다. 병상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남긴 문자메시지에도 마지막으로 이번전시회는 꼭하겠노라고 다짐을 했지만... 홀연히 인생과 삶의 나들이를 마치고 떠나갔습니다. 몇 년 만에 개인전을 준비하다가 이번전시가 생의 마지막전시가 될 것을 알게 되고 많을 것을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가족과 제자들에게 숙제를 남기고 갔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작품을 연도별, 테마별로 전시하여 작가의 발자취를 밟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관심있게 볼 부분은 최근 작가를 아프게 만든 원인이 된 실리콘 등으로 만든 작품들입니다. 작가는 몇 년 동안 작은 작업실에서 3000개가 넘는 실리콘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작품에 몰두하며 환기를 잊었고 긴 시간 함께해온 담배가 자신의 운명을 빨리 앞당기게 됐지만 자신이 작품을 만들다 운명을 달리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작가가 암인지 모르고 만든 마지막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실리콘으로 만든 자화상으로 작가에게는 특 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나는?? 이라는 생각하게 합니다.작가는 이세상에 없지만 화가 강성원을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는 전시회이오니 오셔서 함께 마음에 담아가시길 바랍니다. ■ 故강성원 遺作전을 준비하는 사람들

강성원_제목미상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cm_2013
강성원_평강하고 성스러운 정원에서-폼페이인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00cm_2013
강성원_평강하고 성스러운 정원으로 가는 길목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5×145.5cm_2014

파라다이스, 그 무중력의 시간 속으로 ● 평강하고 성스러운 정원으로 이 세상이 거듭나기를 열망했던 화가 강성원. 그러나 그는 어둡고 무거운 그림 속 이미지가 주는 압박감에 오랜 시간 시달렸던 것 같다. 어느 때 인가 그가 말했다. "아무리 자제력을 발휘하여 그림을 단순하고 밝게 표현하려 해도 마무리 과정에 들어서면 다시 침침한 분위기로 일관된다. 왜 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지 그 까닭을 정말 나도 모르겠다." 라고. ●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1990년대 그는 신표현주의의 기수로 평론가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점차 화단에서 소외되었고, 상업 화랑들도 그를 외면했다. 그의 그림은 무언가 비밀스럽고 난폭하기까지 해서 관람자들의 정서를 불편한 전율로 휘감아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일 것이다. ● 우리가 예술작품으로부터 받게 되는 충격과 진동은 얼마나 신선한가? 그러나 사람들은 강타당하는 어둠과 불안의 징후를 계속해서 만나려고는 하지 않는다. 내가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실기실에서 처음 그의 그림을 봤던 날이 떠오른다. 첼로 연주자를 그린 그림이었는데, 영적 기운에 휘감긴 듯 강한 화면 탓에 튕기우듯 한 발 뒤로 섬짓 물러났었다. ● 그렇다, 이제야 비로소 그의 작품에 관한 난해한 생각들이 조금 정리가 된다. 몸과 영혼의 온갖 배설물을 쏟아내는 듯한 그의 작업은 「방언 기도」를 닮았다. 성령의 은사를 전제로 한 「방언 기도」는 감각적으로 자아가 완전히 사라져 죽는 기도라고 한다. 마치 방언 기도하는 사람의 혀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듯 .... 그의 격렬한 붓질 또한 저절로 움직이곤 했기 때문이다. ● 평소 일상인으로서 강성원씨의 정서와 몸가짐을 그의 그림 안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깨어진 옹기무덤, 잘린 동물의 머리나 내장 찌꺼기, 흐물거리는 인간의 뇌, 또는 파괴되는 피아노 건반 등 부정적이고 기이한 형상들로 뒤범벅이 된 미분화의 무지막지한 대형 그림들 앞에서 사람들은 아연실색 주저앉아 버린다.

강성원_평강하고 성스러운 정원으로 가는 길목_캔버스에 혼합재료_146×97cm_2014
강성원_평강하고 성스러운 정원으로 가는 길목_캔버스에 혼합재료_200×200cm_2014

단언컨대, 그의 그림은 사람만을 향해 열려있는 그림이 아니다. 강성원씨의 그림은 고해성사이며, 구원을 향한 방언 기도이다. 시 "두이노의 비가"를 썼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신과 사랑은 그 자체의 완전함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충족의 상태를 지향한다고 하였다. 그 필연성에 대하여 나는 알 수 없지만, 강성원씨는 원죄 의식과 종교적 감성이 두드러진 작가였고, 그의 그림 또한 그 자체의 영성으로 충만한 채 늘 흘러내리고, 솟구치고, 튕겨나고, 가라앉았다. ● 생전의 마지막 개인전이 된, 2011년 5월 대구 CU갤러리의 기획초대전 "메시지 & 이미지"전에서 그가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미술도 최종적인 목표는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내 그림은 영혼 구원에 봉사되어지는 도구입니다. 신의 말씀과 사랑이 담긴 메시지 – 그것을 위한 이미지로 내 그림이 숨 쉬고 도약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 한동안 자신은 썩은 세상을 파헤쳐놓기만 한다고, 대안 없는 작업들을 자책하며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절망을 토로하기도 한 그였지만, 온 몸에 퍼져버린 암으로 죽음을 선고받은 후에야 비로소 끝낼 수 있었던 마지막 자화상 속에는 이런 빛나는 메모가 남겨져 있다. 「처음엔 조금 놀라고 했어도, 그것이 축복인 줄 후에 알았지」 ● 그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고, 그림 또한 탁월한 영성으로 완성시켜간 진정한 화가였다. 젊은 시절, 폼페이 여행 후 유적지 주변을 아프게 떠돌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1600년 동안 화산재에 덮혀 침묵한 그 무정한 시간으로부터 평생의 작업 명제가 되었던 파라다이스를 발견한 것 같다. 그의 유작 앞에 내가 감히 덧붙일 말은 없다. 다만 그가 삶의 마지막 길목에서 어둠의 빗장을 열고, 빛의 문 쪽으로 환히 걸어 들어갔으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그리고 추억한다. 어릿광대 같이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우리들의 탁한 호흡을 무언극처럼 살짝 끊어놓고 무대 뒤쪽으로 사라진 ... 그가 머문 그 무구한 무중력의 시간들을 ! ■ 백미혜

Vol.20150616h | 강성원展 / KANGSEONGWON / 康聖苑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