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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612_금요일_05:00pm
아티스트 토크 / 2015_0612_금요일_03:00pm 도슨트 / 전시기간 중 매주 토요일_02:00pm
종이협찬 / 한솔제지
관람료 / 대인 3,000원 / 소인 2,000원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GANA ART 서울 종로구 평창 30길 28 가나아트센터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정넘치는 사석원의사실(史實)과 색다른 기색(氣色) ● "나는 서울 토박이다. 어린 시절, 궁궐은 내 일상생활 속에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창경원 구경도 참 많이 했다. 내 어린 눈에 창경원은 '흰색 한복의 바다' 같았다. 고등학생 때는 경복궁 안 향원정 앞에서 스케치한 기억이 있다. 소나무에 살포시 내려앉는 잠자리 모습이 지금 내 눈에 아슴아슴하다. 우리 궁궐은 그저 일상에서 자그마하게 지나가는 추억거리가 아니더라. 도심 속에 궁궐이 버티고 있는 것부터 흔한 사례가 아니잖은가. 내 무덤덤한 일상 속에서 궁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사태가 벌써 예삿일이 아니란 거다. ● 나는 화가가 되거나 사가(史家)가 되고 싶었다. 어느 해 봄이었을 거다. 궁궐이 정말이지 아름답다는 생각을 모처럼 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만발한 꽃이며 전각의 우뚝한 몸뚱어리며 배경으로 물러나 앉은 산수며, 모두가 하나 같이 아름답지만 조선 역사의 상처와 질곡이 그곳에 어리비치는 것을 느낄 때, 아름다움에 비애가 겹쳐지더라. 조선왕조실록을 뒤지는 등 궁에 관한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보았다. 심지어 내 성 '사(史)' 씨의 고려 도래설(渡來說)까지 생각이 거슬러 올라갔다. 궁은 시간과 함께 퇴색하는 관광이 아니라, 역사에 비추어보는 관조일 때, 배면의 사연을 살며시 들려준다. 또 궁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한국적 미의 원형이나 전형을 떠올리게 하고, 나아가 당대의 미학을 끌어올려야 하겠다는 고차원의 각성을 심어준다. 건축미와 더불어 풍수에 바탕을 둔 궐내의 배치 같은 것도 동양의 미감을 한층 깊게 만드는 요소다. 다만 안타깝기는, 소실과 훼손의,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전철(前轍)이다. 초창기의 오리지널한 웅자를 상상해보라. 가슴이 저절로 두근거린다. 이러니 어찌 보듬고 싶지 않겠는가." (...)
들으셨나요, 사석원의 육성을. 저 말을 듣기도 전에 저는 사석원의 작업실에 줄지어 선 작품부터 둘러보았답니다. 그 중에 딱 하나가 제 눈에 오래 머물었습니다. 그 작품에 작가가 붙인 제목은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입니다. 해 뜰 무렵 같기도 하고 해 질 무렵 같기도 하네요. 꼭대기에 흑갈색으로 번진 하늘이 살짝 보이고, 그 아래 산발(散發)한 나뭇가지들이 중경(中景)을 흔들고 있습니다. 뒤편에 희끄무레한 정자 두 채가 어긋나게 서있고, 앞쪽에 홍매화 줄기에 깃든 부엉이 두 마리가 막 꿈틀거립니다. 줄기와 지붕과 땅을 덮은 눈이 소복합니다. 저는 한참 만에 느꼈습니다. 이 작품이 제 마음에 드리운 그림자를 말이죠. 그것은 '기색(氣色)'이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기색은 '어떤 행동이나 현상 따위가 일어나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눈치나 낌새'라고 합니다. 그렇죠. 무언가, 어디선가, 일이 생길 듯한 기미(機微)가 그것입니다.
조짐은 화면 곳곳에 웅크립니다. 나무 뒤로 멀찍이 물러서는 고동빛 나는 공간. 이 공간은 그림 속에서 숨구멍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그러하되, 그 공간은 또한 차마 말로 표현되지 못한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 만한 구석입니다. 머리를 풀어헤친 나무 뒤쪽 후경은 자못 묵시적인 분위기입니다. 전경은 어떤가요. 눈을 찌를 듯 붉디붉은 매화, 그리고 물감이 뚝 뚝 떨어질 듯 알록달록한 부엉이가 떡 하니 차지했습니다. 그 대비가 마치 반어(反語)처럼 공교롭습니다. 하여, 뜻밖에 의아한 심정을 일으켜 세우죠. ●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그림 같아요. 무릇모든예술은보이는존재뒤에보이려는존재를숨기기마련입니다. 감상의 재미가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기색이 오로지 사석원 작품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을 테지요. 하여도 이번 사석원의 '고궁보월'에 나오는 출품작들을 한 마디로 뭉뚱그릴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저는 그것을 '색(色)다른 기색(氣色)'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서둘러 못 박건대, 작품들 거의 전편에 '징후'와 '예후(豫後)'가 똬리 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도 드물고 신기한 소재와 짝을 이뤄서 말입니다. (...)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은 제목에서 특정 장소를 알려줍니다. 창덕궁 후원에 자리한 존덕정과 관람정 일대가 이 그림의 무대입니다. 1776년 3월, 정확히 짚자면 3월 10일, 이 날은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가 옥좌에 오른 날입니다. 그 날 눈이 내린 기록은 없습니다. 홍매가 흐드러졌다는 기록 역시 안 보입니다. 사석원은 일부러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려 했군요. 눈은 서설이요, 홍매화는 축복이라고 할까요. 정조는 존덕정에 저 유명한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란 글귀를 게판(揭板)으로 걸었습니다. 온 개울에 비치는 밝은 달의 주인이 바로 자기라는, 정조의 흔감한 자부심이 펄펄 끓는 글입니다. 소동파가 이르기를 세상 모든 것에 주인이 있지만 청풍명월은 주인이 없어 누구나 만끽할 수 있다 했거늘, 정조는 딱 부러지게 그게 다 자기 것이라 선포했지요. 창덕궁 후원에는 볼 만한 풍경이 열 가지나 된다는데, '능허모설(凌虛暮雪)'이 그 중 하나이지요. 후원 북쪽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능허각에서 해 저문 날 바라보는 눈발이 무엇보다 가관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사석원이 서설을 굳이 존덕정 일대에 뿌린 까닭은 얼추 짐작이 갑니다. 정조가 이끌 새 시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 아닐까요. 부엉이가 꿈틀대는 것 같더니만 한 마리가 마침내 날갯짓을 시작하네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돼야 날개를 편다지요. 이 말은 역사적 조건은 지나간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로 전용됩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시행착오 끝에 얻게 되는 지혜의 가치를 이르기도 하지요. (...)
사석원 그림은 '물감 천지'입니다. 그림을 '물감으로 빚은 형상'이라고 치죠. 그때 사석원의 물감은 실질 형상보다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사석원의 물감은 그 형상을 형상답게 이끄는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사석원은 그림을 그림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다움(Picturesque)'으로 '그림(Picture)'을 빚어낸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것을 물감의 힘에 크게 의존하여 이루어낸다는 것도 사석원의 유(類) 다른 특징인데요, 그의 '물감 천지'는 간혹 '기원을 모르는 복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만큼 사석원의 렌더링(Rendering)이 특이하기 때문이겠지요. 퍼뜩 조선시대 문인화가인 이인상을 평가하는 후대인의 언급이 생각나네요. 인용합니다. "능호(이인상의 호)의 묘처는 익은 것에 있지 않고 날 것에 있으니, 오직 아는 자가 아리라(凌壺妙處 不在熟而在乎生 唯知者知之)." 사석원의 원색을, 먹으로 그린 화가인 이인상이 이룩한 날것의 맛에 견주는 일은 과유불급입니다. 하지만 원색의 '원(原)'이나 날것의 '생(生)'이나 그 출발이 같다는 점에서 사석원의 '물감 천지'는 알아주는 자가 알아주리라 믿습니다. (...)
이번 '고궁보월'전에 나온 작품 중에서 하나만 딱 짚어 얘기하라면 저는 아마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을 고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경복궁의 후원은 자경전 북쪽으로 펼쳐지는데, 향원지와 향원정이 고갱이에 해당됩니다. 고종이 섭정의 굴레를 벗겠다는 의지로 건청궁을 지을 때 남쪽에 못을 파고 섬을 만들어 향원지를 조성했고 취향교를 놓았답니다. 이 그림의 배경에 보이지요. 다리를 밟고 뛰쳐나오는 놈은 순록입니다. 십장생이라면서 사슴 아닌 순록을 내세운 것이 작가의 용심(用心)인 거죠. 넘치는 에너지가 뿔과 근골에 실렸어요. 모란이 있고, 괴석이 있고, 불로초가 있습니다. 나비와 반도와 거북이와 단정학도 발견하셨지요. 용트림하는 소나무가 의젓합니다. 공작새가 버젓이 그 위에 앉았군요. 이 작품의 기색은 분명코 밝습니다. 붉은 태양이 선연하게 빛나는 하늘을 보시죠. 하늘은 낙조로 온통 물들지는 않았습니다. 말짱하도록 새파랗기도 하고, 하얀 구름이 눈부시기도 합니다. 물든 것은 외려 북악산입니다. 도저히 현실로 믿기 어려운 파노라믹한 풍경입니다. 작가는 공간의 표현으로 하늘을 상정한 것이 아닙니다. 물의 색깔도 한 가지로 그리지 않았죠. 시간의 흐름을 좇아가려는 작심이 번연히 보입니다. 한 화면에 공존하기 어려운 흐름의 자취들이 남았잖아요. 이 기색이 또한 사석원의 긍정입니다. 뭔가 벌어지려는데, 초심의 각오가 부디 무뎌지지 않기를, 하고 비는 그 마음이지요. 둥글지만 납작한 거북 모양에서 천원지방(天圓地方)을, 거칠게 굽은 소나무 껍질에서 모진 영고성쇠를, 누구나 감지하게 묘사했습니다. 가까운 쪽이 부채의 살처럼 그려졌지요. 카메라의 화각(畵角)을 넓게 잡은 것은 장차 성취할 업적이 많다는 기대를 은근히 시사하려는 포석이지요. (...)
사석원은 이번 전시에서 정조와 고종을 주목했습니다. 고종은 정조의 포부를 본떠 근대화의 씨를 뿌리려고 했다지요. 규장각 제도를 왕권을 뒷받침하는 직속 보필 기구로 되살리고자 노력했고, 즉위하고 나서 이듬해 역대 임금의 행장을 모은 책을 여러 권 만들어 창덕궁 주합루에도 한 권 봉안했다더군요. 건청궁을 세운 것도 주합루와 서향각을 모방한 거고요. 그런 점에서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의 지향은 그 장려한 낙일(落日)이 아닙니다. 고종의 독립선언에 가깝습니다. 지축을 뒤흔들며 달려가는 순록의 '강(强)'과 나풀나풀 날아가는 나비의 '유(柔)'가 함께 담긴 것은 작가의 세심한 배려이겠지요. (...) ● 제가 물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맞아 유의미한 조형적 변화가 있었는가.' 그가 답했습니다. "내 생애에서 해야 할 일은 확실하다. 동양화 기법으로 서양 재료를 써서 동물을 통해 그 무엇을 조형화하는 것. 여생을 거기에 목매달고자 한다. 화가로서 지금 내 나이가 아주 좋은 나이다. 이 항구적 과제에 깊이를 집어넣기에 말이다. 궁궐을 그리면서 한국적인 미에 대해 눈이 떠진 셈이다. 여러 실험을 해본 조형적 측면에서도 내 재산이 부쩍 불어난 기분이다." 그의 설명이 미덥습니다. 화가로서 좋은 나이란 말이 와 닿았어요. 약년(若年)의 기욕(嗜慾)이 물러나고 있다는 말로, 저는 그렇게 새겼습니다. 사석원의 걸음걸이가 총명해지기를 빕니다. 이 글은 우정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하여 꼬투리를 답니다. 어불여상(飫不如嘗)이요, 성불여장(成不如將)이라. 배부름은 맛보기만 못하고, 이루어짐은 이루어지는 것만 못하노라. (...) (전시서문에서 부분발췌) ■ 손철주
Vol.20150612h | 사석원展 / SASUKWON / 史奭源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