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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LEICHT
관람시간 / 11:00am~06:00pm
엘 갤러리 베이징 L GALLERY Beijing B1, Club Wing, St. Regis, 21 Jianwai Street,Beijing, China Tel. 86.10.85321284 www.lgallery.cn
L Gallery 베이징은2015년 5월 23일 부터 7월 5일까지 베이징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한국작가 박희섭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인간은 누구나 불로장생을 염원한다. 물(物)적인 것은 오래도록 보존되나 인간의 삶은 마치 유수와 같이 금세 지나가버린다. 세월과 자연 앞에서 한없이 보잘것 없는 존재인 인간이 자연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결국 삶의 무상함(無常)을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오는 것이다. 흔히 대자연은 시간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 말한다. 70년대 생인 박희섭은 십여년이 넘는 작품활동을 통해 그 시간의 자취를 찾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그 흔적들을 기록해 왔다. 초기 수묵작업을 시작으로 훗날 자개라는 자연의 재료를 이용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줄곧 '생명'과 '자연'이라는 두 명제에 주목해 왔다. 한국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박희섭은 2008년 이래 현재까지 주로 베이징에 상주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대부분의 소재들은 베이징에서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황실원림과 고목, 중국의 대표적 기석(奇石)인 태호석, 중국의 척박한 북방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능수버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소재들은 작가가 생명의 에너지를 체험 하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작가는 인간보다 '장생'하는 이와 같은 자연속 생명체들을 통해 시간이 생명에게 부여한 모종의 에너지를 경험하였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화폭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고자 했다. 여느 70년대생 작가와 달리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하는 자세는, 자연스레 그로 하여금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작업의 개념과도 잘 부합하는 자개를 활용하는 고유의 표현 방식을 찾게 해주었다. 조개가 제 생명을 다 하고 남기고 간 육신은 시간의 축적 대한 물리적 증거이다. 박희섭 작품에서 보여주는 필촉의 흔적은 작가가 직접 주문제작한 얇고 기다란 자개의 파편들이 모여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필요한 크기와 형상에 맞춰 자개를 조각조각 잘라가며 하나하나 정교하게 화폭 위에 아교로 붙여나간다. 마치 공필화에서 수차례를 반복하며 선염하는 방식과 같이, 작가는 아주 느릿한 속도로 화면을 채워나간다. 특히 다소 규모있는 작품을 제작할 때면 심지어는 호흡마저 조절해가며 보통사람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창작에 임한다. 과거 시도했던 조각, 설치등 여느 방식과 비교했을 때, 지금과 같은 '그림을 만들어가는' 인내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더욱더 자신을 비우는 법을 체득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존재감에 대한 깊은 경험도 얻게 되었다. 작가는 하나의 생명체로 그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또 다른 대상을 구현해 낸다. 이와 같은 박희섭의 창작과정은 흡사 자기수행(修行)의 의식(儀式)과 같이 느껴진다. 마치 에너지의 전환처럼 생명의 일부를 작품에게 건네주는 것과 같다. 자연이 가져다 준 크나큰 역량은 화폭 위에 응고되어 영원한 삶을 얻는다. 이와 같은 역량이 어쩌면 바로 작가가 여태껏 그토록 견지하고 또 갈구해온 장생(長生) 에 다다르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육체의 한계를 초월해 영원한 존재로 남고자 하는 장생에 대한 염원을 작품 속에 담고 있는 듯 하다.
□ 박희섭 작가 인터뷰 / 진행자 : 푸위_조혜정
Q: 제가 알기로 박희섭 작가님은 2008년부터 베이징에 거주하시며 작업을 하고 계신 걸로 아는데요, 중국에 오신 후 작업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떠한 변화들이 있으셨는지요? 특히 베이징은 일찍이 현대화를 이룬 메트로폴리탄인 동시에 중국에서 요금원명청 왕조의 수도였던 만큼, 전통 문화에 대한 분위기가 가장 농후한 곳이기도 합니다. 베이징에 거주하시며 근거리에서 동양의 전통문화를 많이 접하셨을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러한 베이징의 환경이 창작에 어떠한 영향을끼쳤는지 궁금합니다. ● A: 본인은 2008년 4월 송좡미술관 한국 작가 단체전을 계기로 베이징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중국의 도시들을 경험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 상하이를 비롯하여 몇몇 남방 도시들을 다녀왔었지요. 그러나 베이징은 그 규모가 다를 것임을 능히 상상할 수 있었기에 베이징이라는 도시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것인지 상당히 궁금한 마음으로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베이징은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대륙의 정치, 군사, 문화의 수도였으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강한 전통 문화의 분위기와 일찍이 이룩한 현대화와의 공존이 묘하게 동시에 느껴지더군요. 이전에 여행을 다녀온 다른 중국 도시들과는 느낌이 분명 달랐습니다. 이에 베이징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고 싶었고, 이러한 바램이 전해졌는지 그 해 여름 한국 켄 파운데이션의 후원으로 헤이차오 소재 레지던스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베이징에 상주하며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지요. ● 이러한 베이징에서 저의 창작 활동은 우선적으로 베이징 자연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연이라는 것이 베이징의 대자연이 아닌, 작은 일부분, 어떻게 보면 별 볼일 없고 대단하지도 않을, 저의 작업실 앞 뜰에 있던 버드나무들 입니다. (저는 2009년부터 1년 정도 똥잉 예술구에 머무르며 작업 활동을 했었습니다.) 베이징이 가지고 있는 보다 큰 가치를 생각할 때 제 대답이 허무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흔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여느 버드나무들과는 달랐기에 제게 큰 인상을 남긴 듯 합니다. 한국에서 버드나무는 주로 연못이나 강가에 심어져 있는, 바람결따라 나부끼는 가녀린 느낌의 수류입니다. 그런데 이 곳의 버드나무에서는 자연과 싸워 살아남으려는, 그리고 결국엔 살아남은, 매우 강한 생명에의 의지와 굳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해 겨울의 매서운 북풍과 황사라는 봄의 시련을 몸으로 이겨내고 있다는 증거인 버드나무 몸통의 투박한 껍질과 나무의 기기묘묘한 형상이 제게는 하나의 깨달음이 되었고, 저의 창작 활동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 또한 베이징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태호석 역시 제 창작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러 문헌을 통하여 태호석이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 속에서 애호되었고, 조선 사신들의 연행록에도 소개되었을 만큼 중요한 무언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조선 왕실과 조선의 문인들이 왜 그렇게 태호석을 소유하고 싶어했는지는 제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베이징에 거주하면서 실제로 태호석을 접하다 보니 그 이유가 느껴지더군요. 특히 동양 회화사에서 왜 항상 괴석이 이상적인 정원에 있어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되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베이징에서 태호석을 접하게 됨으로써 감히 괴석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며 저의 작품 이미지 구상에도 반영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베이징의 자연에서 큰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전통 정원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괴석과 유연함 속에서 굳건함을 보여주는 버드나무를 통해서 시간의 흐름과 축적, 자연의 웅장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해 보고자 하는 것이 저의 작품관입니다.
Q: 작가님께서 작업을 하시는데 있어 가장 궁극적인 개념은 "장수" 라 하셨는데요, 표현하시는 대상, 즉 나무, 괴석을 포함해 주로 사용하시는 재료인 자개 역시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 말씀하신점이 인상깊게 느껴졌습니다. 작품에 작가님 스스로는 물론이고 모든 이들의 무병장수에 대한 염원을 담고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작가님의 생각을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 A: 네. 제 작업의 대주제는 '장생'입니다. 2001년 1회 개인전 '장생의 꿈'에서부터 이번 2015년 12회 개인전 『영원의흔적』 까지 이러한 흐름은 동일합니다. 여기에서 장생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장생구시'를 의미합니다. '장생구시'에서 '장생'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닌 '생명력을 활성화시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작품의 주요 소재로써 '자개'를 선택한 것도 자개의 생명력을 빌어 '장생'의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의 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나전경함이 있습니다. 불교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1200년대에 만들어진 보관함입니다. 나전경함은 자개로 만들어졌고, 자개의 찬란함은 영겁의 시간을 거쳤음에도 퇴색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변함없는 자신만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개는 조개 껍질의 가장 안 쪽, 조개의 은밀한 내부지요. 조개 껍질의 투박하고 단조로운 바깥과는 달리 그 내부는 수백년 동안에도 변치 않을 신비하고 영롱한 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자연입니다. 따라서 저는 자개를 시간을 초월하여 자연과의 동화를 염원하는 소재로 보았습니다. ● 동양에서 정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왜 동양의 정원에서 나무, 돌, 물이 빠질 수 없는 요소인줄 아십니까? 동양에서 정원이 갖는 존재는 단순한 휴식처가 아닌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자연의 일부로 흡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정원에 담고 있다고 합니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물의 정원 속에서 자신들이 유토피아로 통하는 신선의 세계, 곧 '동천'에 들어가는 것을 꿈꾼 것으로 해석됩니다. ● 자개는 이미 생명을 다한 물질입니다. 그러나 그 영롱함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자개를 사용하여 나무와 괴석, 물과 같은 정원의 소재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정원에서 찾고자 했던 자연의 힘을 제 작품에 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 작품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영혼의 안식처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Q:작가님이 동양화를 전공하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전통방식인 붓이 아닌 자개 라는 재료를 선택하게 되신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여느 70년대 출생의 작가들과는 다르게 동양 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것 같은데 , 개인적인 성장배경 이나 경험에서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A: 그렇습니다. 질문하신 바와 같이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유년 시절 환경과 그 기억이 작품 세계 구축에 큰 영향을 미치지요. 제가 작품의 주요 소재로써 자개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였는지는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 사실 그러한 의미는 제가 자개작품을 꾸준히 접하고 공부를 계속하면서 얻은 깨달음에 가깝습니다. 질문을 받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는 어려서부터 자개와 친숙할 수 밖에 없었던 듯 합니다. 제가 어려서 살던 동네에는 자개 공방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동네에서 뛰어 놀다가도,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도, 항상 진열장에 전시되어있던 길상문, 장생문, 수복문과 같은 다양한 자개작품에 몇 시간씩 홀려 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의 작품에 펼쳐지는 색상은 오랫동안 전통주단집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복의 색을 아십니까? 매우 화려합니다. 한복의 색이 주는 아름다움에 반해 저는 한동안 한국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는 한국 전통염색 수업도 들었을 정도입니다. 질문에 답하다 보니 불현듯 유년시절 동네 공방에 전시되었던 자개작품을 넋 놓고 바라보며 황홀해 하던 기억, 한복의 색에 매료되어있던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벌써 자개와 한국의전통 색조를 주된 작업의 기둥으로 삼은지 십오년이 흘렀습니다. ● Q: 자개를 이용한 작업 외에, 지금도 별도로 전통 동양화나 서예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앞으로 자개 외에 또 다른 재료를 시도해 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 A: 사실 자개 작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전인 2001년에 있었던 첫 번째 개인전은 수묵 설치작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후 지속적으로 입체 작품들을 발표해왔고, 지금도 해당 분야를 탐구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좀 더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때는 다시 수묵작업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작업이 수행의 한 방법이라면 저도 어느 순간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복잡한 수식 없이도 세상 만물을 담백하고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말씀 드리다 보니, 처음 붓을 잡고 떨리는 손으로 화선지 위에 그었던 일 획, 일 획의 느낌이 새록합니다.
Q: 작가님께서 명말청초의 작가인 "석도"를 특별히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작업실에 방문했을때 책상위에 석도에 대한 책이 놓여져 있던 것이 인상깊게 느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석도의 어떠한 부분에 매료되셨는지, 혹은 특정한 이론에서영향 받으신 부분이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A: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그의 그림과 글을 읽었고 지금은 그의 생각을 제 가슴 속에 각인시키려 그의 그림과 글을 읽습니다. 석도는 그의 화어록에서 '아용아법', 즉 '나는 나의 법을 쓴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고지수미불능생재아지면목, 고지폐부불능안입아지복장' 이라고 했습니다.. '옛 사람들의 수염과 눈썹은 너의 얼굴과 눈가에서 자랄 수 없으며 예전 사람의 폐와 내장은 나의 배와 창자에 들여 놓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석도가 제게 주는 가르침의 글로 새기고 있습니다. 바로 창신의 길로 나아가라는 것이지요. ● Q: 스스로 평가하시기에 작가님은새로운 변화에 과감하게 도전하시는 편인가요? 새로운 회화언어를 탐구하는데 적극적이신가요? ● A: 어느 시기, 어느 지역을 떠나 지금까지 미술사에 있어 말단에라도 이름을 올린 화가들은 분명히 그 지역 상황에 맞는 시대정신을 드러낸 화가들이라고 봅니다. 청대의 팔대산인이 지금 이 시대에 활동하고 있다면 그의 수묵작업은 그가 남긴 기존 작품들과는 양식이 달랐을 것입니다. 세잔 역시 그러했을 것이구요. ● 저는 수묵화로 화업을 시작했지만 그 후 입체 설치작업에도 도전해 봤으며, 현재의 자개 작업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끊임없이 모색해 봤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재료, 어떠한 기법이든 제 것으로 소화시켜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
Q: 중국에 머무시며중국 청년작가와 한국청년 작가의 현황을 비교했을때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작가님께서는 중국에 오시기 전부터 일찍이 한국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중 한명이라 알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 두 곳의 상황을 모두 경험하셨는데, 직접 관찰하고 느끼셨던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 A: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최근 몇년간 베이징을 기반으로 활동을 했습니다만, 사실 그 경험만으로 한국과 중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지요. 그래도 제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다음처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선, 작품을 창작하는 태도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의 작가들이 전공 분야에 관계 없이 과감하게 매체 실험을 하는 점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한국과 중국의 환경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은 영토가 넓은 만큼 문화와 환경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폭이 넓다는 것은 결국 작가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고, 창작에 있어서도 여러 실험과 도전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현시대의 미술계가 작가에게 그러한 자세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편 한국의 작가들은 그 어떤 지역의 작가들보다도 작품의 완성도와 세련미를 추구하는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은 영토에서 살을 부딪치면서 살아왔기에 그러한 미의식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의 고유한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어느 한 편만이 따라야 할 길은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중국 작가의 다양한 실험이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낮출 수 있고, 한국 작가의 세밀함이 거대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마치 양날의 검처럼 말입니다. ● 그 다음으로는 작품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작가들과 비교 했을 때 중국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가격에 대해 매우 스스럼없이 말한다고 생각됩니다. 베이징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교류 차 주변 중국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작가들이 직접 자신들의 작품 가격을 말하고, 작업실에 걸린 동료 작가들의 작품들, 골동품, 하물며 가구까지도 작업실에서 판다는 말에 저는 놀란 정도가 아니라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작가가 미술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습니다. 불문율입니다. 한국 작가들에게 직접 작품 가격을 말하라고 한다면 매우 거부감을 느낄 것입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그림을 여기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가격을 매긴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고, 그러한 정신 문화가 은연중에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중국 작가들의 그러한 모습에 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현실적인 감각이 있기에 중국 화상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작가들간의 네트워크에서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작가들은 자신과 가까운 다른 작가들을 소개해주는데 망설임이 없고, 서로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이와 경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작가들이 수평적 관계에서 서로를 예술적 동반자로 여기면서 같이 나아가려 하는 듯이 보입니다. 정말 부러운 점 중의 하나입니다. 베이징에 도착하고 얼마 후 송좡 미술관 옆 리 셴팅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리 셴팅 선생님이 직접 송좡 예술구 곳곳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함께 한 중의 미술에 대해 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중국이 전통적으로 손님에 대한 예가 극진하다고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시대와 세대를 뛰어 넘어 같은 분야의 사람이라는 점 하나로 격의 없이 대해 주시던 모습에 정말 감명받았었습니다. ● 이에 비하면 한국의 작가들은 매우 독립적인 편입니다. 최대한 다른 사람의 간섭과 영향력 없이 지내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작품 창작에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하기에 한국의 작가들이, 또는 한국의 미술 시장이 국제적 미술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한국인 작가로서 베이징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참으로 축복인 듯 합니다.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으니까요. 현재 중국은 문화적으로 세계 최강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한국은 다양한 문화 컨텐츠로 세계를 파고 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작품도 하나의 문화 컨텐츠가 되겠지요. 작품 제작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화권 미술 애호가들에게 이번 전시를 통해 저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받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L Gallery(구: Downstairs Gallery)는2012년 베이징 상업과 외교의 중심지인 CBD지역에 문을 연 갤러리다. L Gallery는 21세기 중국 컴템포러리 미술시장 성장과 더불어 활발한 문화교류에 앞장서며 개관 이래로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특히 동양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 국제적인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서도 해석될 수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전시를 선보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 엘 갤러리 베이징
Vol.20150523d | 박희섭展 / PARKHEESEOP / 朴喜燮 / painting